빨래터
지나면서 도로변에 높이 치솟은 나무가 보였다. 저게 집들 가운데 왜 우뚝 섰을까. 한 집 두 집 뜯기더니 드러나면서 아담한 모습의 쌈지공원이 됐다. 지나다 일부러 들렀다. 지난날 농민들이 일하다 말고 우우 몰리면서 무엇이 뒤틀렸는지 다대포 첨사를 대놓고 비난했다. 마침 동래부에 가려던 차에 쉬면서 듣고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포졸을 풀어 그들에게 뭇매를 가했다. 고을 원을 옆에 두고 짓씹는 것이 참을 수 없었다. 물고를 내고 말았다. 걸핏하면 모여 앉아 수령을 욕하는 그늘나무도 싹둑 베버렸다. 몇 해 뒤 좌우로 싹이 터 올라왔는데 그때 죽은 사람 수만큼 높이 자랐다. 지금은 두서넛이 태풍으로 부러지거나 말라 죽고 대여섯 그루가 서 있다.
그 하나하나가 모두 아름드리로 여름날 시원한 쉼터를 만들어준다. 빽빽이 들어선 집들을 사들여 헐고 앉을 자리를 편하게 다듬었다. 길 건너편에도 같은 나무가 높다랗다. 오래된 회화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는데 시들시들 죽자 해제했다. 이 나무도 얼마 뒤 되살아나 잎이 여기저기 돋아나 무성해졌다.
배가 불룩한 게 아름을 재면 몇 번을 돌아야 한다. 그리 크다. 그 밑은 샘터로 상수도 들어오기 전까지 오랜 세월 우물로 사용했다. 지금도 펑펑 물이 나와 빨래터를 만들었다. 얼마나 어여쁜지 좌우로 졸졸 흐르는 물가에 주위 부녀자들이 빨래를 들고 와 씻어댄다. 마치 박수근의 그림처럼 아기자기 정감이 넘치는 곳이다. 여기도 집들이 빼곡했는데 시에서 정리해 건너편보다 더 근사하게 다듬어놨다.
회화나무(槐)를 따서 마을 이름 괴정(槐亭)이 됐다. 다시 시 지정 보호수가 됐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이 나무 아래가 좋아 수시로 찾아와 쉬었다 간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신주나무이다. 어쩌면 나를 지켜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부처에게 절하듯 나무에 의지하는 마음이다. 작은 도서실을 마련하고 넓은 그늘 밑에 잘 다듬은 돌의자를 가지런히 놓았다. 밤에도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대낮처럼 조명을 밝힌다. 휘황찬란하다.
매주 화요일이면 빨래터에 앉아 한참 동안 피리와 하모니카를 분다. 길에서 한길쯤 낮게 아래로 파 내려가 시원함을 느낀다. 물이 언제나 졸졸 흐른다. 해맑은 샘물가 돌의자에 앉아 연주 아니 연습 삼아 불어 본다. 단소는 대여섯 곡 할 줄 알고 하모니카는 동요와 가곡, 가요, 찬송가 등 스무남은 곡을 한다.
더는 외워 익히기 힘들어 아는 것을 간직하려 한다. 단소는 여남은 곡을 했는데 뜸하다 보니 영산회상과 정선아리랑 등 몇 곡이 감감해지면서 그만 날아갔다. 어찌 힘들게 배워 익혀 살려놓은 건데, 무심하게 잊어 지나. 다시 악보를 찾아서 하려다가 이것도 많다 싶어 그만뒀다. 텃밭에서 잠시 일하고 늘어지게 불었다. 바닷길 걷다가도 파도를 보면서 불면 시원한 바람과 찰랑찰랑 물결치는 소리와 함께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수십 년이 지나니 그것도 구차하다. 그만두고 지난 지 오래다. 어쩌다 한번 불면 헤매게 된다. 이러다 다 잊어버리겠다 싶어 부는데 그게 화요일 빨래터이다. 친구를 만나 점심 먹고 당구장으로 가는 날이다. 하필 맛 나는 손칼국수 집이 여기 있다. 굵은 데다 미리 썰어놓아 우둘투둘한데 여긴 그때그때 만들어 보드랍고 가는데다 김치를 넣어 밥 말아 먹기 좋다.
더우나 추위 때나 사철 더부룩 맛나게 들이킨다. 밀가루는 근기 없는 음식이라 해도 우린 잘 넘어가고 든든하기만 하다. 고려 때 중국에서 들어와 누룩으로 컬컬한 막걸리를 마시고 빵과 수제비, 칼국수가 맛나자 저잣거리 다른 음식점이 문 닫게 됐다. 밀이 원수 같다 해서 국수(麴讐) 말이 나온 것 같다.
겨울 김치 국밥 맛이 난다. 나만 좋은 게 아니라 친구도 좋다며 동래에서 여기까지 온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 고 매주 만나 먹으니, 좀 일찍 나와 샘 가에 앉아 천연덕스레 피리를 불고 앉았다. 그 바람에 잘 불지는 못해도 그냥저냥 잊지 않고 이어간다. 학교 그늘에 앉아 불면 뱀 나온다고 뭐라 한다. 집에서 불면 이웃이 시끄럽다고 말한다.
가족도 잘 분다는 소리를 하지 않는 걸 보면 못 부는가 보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데 혼자 신명이나 불고 있다. 푹 꺼진 곳이어서 일부러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르는 외딴곳이다. 그러니 나에겐 안성맞춤이다. 실컷 두 악기를 불고 주섬주섬 일어나 친구가 기다리는 식당으로 올라간다.
그래도 수십 년 전 대전 호텔에서 수백 명 교사 모임 때 민요 ‘한오백년’과 앙코르로 가요‘희망가’를 단소로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소리가 안 나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다. ‘피피’ 하며 애먹일 때가 있다. 또 몇 해 전 교회 연말 예배 때 ‘천부여 의지 없어서’를 하모니카로 간드러지게 해내 늙은이가 그런 것도 하나 놀랍게 여기는 것 같다.
한번은 빨래터에서 아리랑을 하는데,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를 따라부르는 소리가 난다. 다음 ‘나를 버리고’ 할 때는 크게 소리가 들려 다 한 뒤에 뒤돌아보니 유치원생들이 가다 말고 내려다보며 함께 불렀다. 선생과 함께 와 환호하며 박수로 크게 인사한다. 머리 허연 노인이 그러니 신기한가 보다.
내 딴에는 잘한다고 여기는데 다들 왜 그럴까. 뭐가 나온다느니 시끄럽다. 밭에 와 일 안 하고 노래만 하나. 요즘 누가 케케묵은 퉁소인 단소와 하모니카를 부느냐 나무란다. 가늘게 부니 그저 좋기만 한데도 그런다. 후텁지근 삼복더위에 숨이 턱턱 막히는 밤중, 어디서 가냘픈 피리 소리가 들리면 하늘에서 복음이 내려오는 게 아닐까.
잠을 청하려면 어디서 끊겼다 이어서 들리는 피리 소리에 세종이 누군지 불러세웠다. 일 개 어전 군사로 근무 태만이 아닌가. 그가 바로 고불 맹사성이다. 이 일로 정승으로까지 올라갔다. 박정희 대통령이 아내 잃고 허전한 마음을 달래려 청와대 뜰에서 단소를 불었다. 국악인 이생강의 단소 소리를 들으면 오줌을 잘금잘금 지린다. 듣노라면 있던 근신 걱정도 다 사그라든다.
반음 높은 하모니카를 부니 피리 소리가 난다. 그 어여쁜 가락이 간장을 녹인다. 7, 8월 회화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바닥에 하얗게 떨어져 내리는 빨래터에서 ‘섬집아기’를 잔잔하게 불러본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
첫댓글 재밋는 글 감사하고 수고하셨습니다
단소에 하모니카 당구도 잘 하시고
못하시는 게 뭡니까
찜통 같은 여름 짜증도 나는데 이렇게
글이 나오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신대구 고속도로 밀양IC 빠져 나오면
송림 삼거리에 시원한 열무 국수가 맛집으로
인기가 있어요 만두와 찐빵 곁 들어...
얼음골 피서 한 번 오시면 계절 별미로 안내 할께요
노량진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타러가노라면 외국인이 바이올린을 자주 켜고있습니다. 클레식이나 가요들을 걸림없이 켜주면 가던길 멈추고라도 듣고 가겠지만, 듣보잡 음악을 땀뻘뻘흘리면서 연주합니다. 그렇다고 재능봉사도 아닌것 같은데...왜냐면, 자기앞에 모자를 놔두거든요.ㅠ 그런건 솔직히 공해나 다름없습니다.
쌤께서 그 빨래터에서 연주하시는 하모니카곡을 한번 들어보고싶습니다.
아마도, 하모니카나 단소말고,다른 악기였으면 집에서도 머라하시지 않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입니다.
잘 불다가 지루해서 몇 해 게을렀더니 잊어져서 다시 시작합니다.
영산회상은 되게 어려워 땀 흘리며 익혔습니다.
그런데 안 하니 사라졌습니다.
다음에 만날 기회가 있으면 들려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