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현절 후 세 번째 주일
성경 ; 사9:1-4, 고전1:10-17, 마4:12-22
제목 ; 이 어둠의 땅에 영광의 빛으로 오셨다!
지난 21일, 청해부대 소속 UDT대원들이 벌였던 ‘아덴만 여명작전’의 성
공은, 답답했던 우리의 가슴을 아주 시원하게 뻥 뚫어주었습니다. 우리나라
의 자랑스러운 UDT 대원들은, 이 작전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해적에 의해서
납치되어 끌려가던 삼호주얼리호(號)의 선원 21명을 구출하게 되었습니다.
구출 작전을 하는 동안, 우리 측에서는 해적 13명 중 8명을 사살하고 5
명은 생포했습니다. 그 반면에, 우리 측 피해는 전혀 없었습니다. 삼호주얼
리호 선장만 해적이 쏜 총에 맞기는 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그 밖에, 다른 인질들과 우리 측에서는 단 한 사람도 피해가 없었다고 합니
다.
그동안, 소말리아 해적들에 의해서 우리나라 상선들이 납치를 당할 때마
다, 우리 측에서는 그 나쁜 해적들에게 어마어마한 협상금을 주어야만 했습
니다. 물론, 그들에게 그 많은 돈을 준다는 것이 참으로 억울한 일이었습니
다. 하지만, 우리나라 선원들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습
니다. 그러나 이번에 ‘아덴만 여명작전’이 성공함으로써, 다시는 그처럼 억울
하고 속상한 일을 당하지 않게 되리라고 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보면 억울하고 속상한 일을 참 많이 겪
어야 합니다.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
람들보다 더 잘 살아야 하는데, 그러나 우리 현실은 그 반대라는 생각을 갖
게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성실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는 정말 힘들게 사
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 반면에,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즉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억울하
게 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도 별로 상관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아
무 탈 없이 편안하게 잘 사는 것처럼 보이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개그콘서트의 한 코너에서는, 개그맨 박성광이 나와서 ‘이
세상은 일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목청을 높인 일이 있습니다. 그
래서 그는 날마다 술을 퍼먹지 않으면 너무나 억울하고 속상해서 살 수 없
다고 외쳤던 것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부정부패가 너무나 심한 고급 공직자와 정치들인들, 그
리고 경제인들 때문에 살맛이 안 난다고 소리치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
람들은, 자기들만 의로운 척 하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죄인 취급하는 예수
쟁이들이 꼴 보기 싫어서, 하루속히 세상을 떠나고 싶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세상에는 억울하다고 말하거나 속상해야 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사람들을 그처럼 억울하게 하거나 속상하게
만드는 사람이 그 누구냐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들은 말하기를 ‘나
는 다만 피해자일 뿐이지 타인에게 피해를 준 일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데,
과연 누가 그들을 억울하게 만들고 속상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까?
제가 아는 어떤 분은 위트와 유머가 아주 많은 분입니다. 그분이 무슨
말을 하면, 사람들은 언제나 배꼽을 잡고 웃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농담을
많이 하다 보니,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웃자고
하는 이야기이지만, 그 당사자에게는 큰 아픔과 고통을 주는 때가 많은 것입
니다.
어느 날, 하루는 그가 저를 소재로 해서 사람들을 웃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나를 소재를 해서 웃기니, 나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뚱뎅이’이라
고 하면서 놀렸습니다. 그 사람의 몸집이 대단했기 때문에, 저는 그렇게 말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제가 그렇게 말한 것이 아주 기분이 나빴던지 ‘말이
면 다냐?’고 하면서 버럭 화를 냈습니다. 자신은 나를 가지고 농담 삼아 맘
껏 놀리더니, 내가 자기에게 ‘뚱뎅이’라고 했다고 해서, 그처럼 화를 냈던 것
입니다. 저로서는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사람
들이 자신의 실수와 잘못은 잘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고 있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거나 속상하게 한 일들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한다. 제발 싸우지 마라. 교회
안에 분열이 없도록 참마음으로 하나가 되라. 아무쪼록 같은 생각과 같은 목
적으로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고전1:10)’고 간절하게 권면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얼마나 다툼과 싸움이 많았으면, 사도 바울이 그처럼 ‘제
발 싸우지 말라.’고 호소했겠습니까? 그런데, 고린도교회가 왜 그처럼 서로
다투는 일이 많았을까요? 말할 것도 없이 ‘나는 옳은데, 너는 틀렸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나는 원칙대로 올바르
게 살려고 애쓰는데, 아무개가 틀려먹었기 때문에, 내가 믿음생활을 온전히
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다 보면, 교회를 다니다가 그만 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대다수가 ‘교인들이 서로
다투고 싸우는 꼴이 보기 싫어서, 교회 다니기를 그만두었다.’고 말하는 것
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만이 참으로 예수의 제자다.’라고 떠들지 말
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깨끗하고 정의롭게 살아가는 내가
어찌 그 더러운 곳에 끼일 수 있겠느냐?’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世上)이라는 말의 한자적인 의미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를 통틀어
서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사람이라면, 나도 그 더러운 세상을 이
루고 있는 한 구성원입니다. 그런고로, 세상이 잘못되었다면, 그 잘못된 책
임이 나에게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다니는 교회에 문제가 있다면,
그 교회의 한 구성원인 나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피해자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인 것입니다. 자기 자신도 다른 이웃과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거
나 걱정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음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
람보다 그 자신이 더 많은 손해와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와 같은 생각이 이 사회와 교회, 또는 가정을 더욱 분열
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 사도 바울의 주장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만이 참으로 그리스도의 제자다라고 떠들지 말라. 그렇게 하면, 그들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조각나게 하는 일이 된다(고전1:13)’고 했습니다.
성경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죄를 짓거나 잘
못을 행한 일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당시의 죄인들
에게 행하는 형벌 중에서 가장 무서운 형벌인 십자가형을 당하셔서 돌아가
셨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그 당시의 권력자들인 제사장 그룹과 율법
학자들의 비위에 거슬리는 말씀을 하시고, 또 그런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제사장 그룹과 율법학자들은, 그들을 따르는 백성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
하기보다는, 그들이 갖고 있는 지위와 권력을 이용해서 불의한 이득을 취하
는데 급급했습니다. 그래서 그 더러운 돈을 가지고 호의호식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지적하면서 그 지은 죄를 회개하라고 촉구했
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따지기보다는, 그들 때문에 고통
을 당하고 있는 불쌍한 백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돌보는 일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마음과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을 멀리하고 예수님을 가까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더욱 예수님을 미워하게 되었습니
다. 감히 그 누구도 지적하지 않던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대
다수의 사람들이 자기들을 멀리하고 주님을 따라가자, 그들은 위기의식을 느
꼈던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면서 주님의 뒤를 따랐더라
면, 세계 역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으리라고 여겨집니
다. 하지만, 사람이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더군다나, 권력이나 재물이 있을 경우, 더더욱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왜
냐하면, 진정한 회개는 그 모든 것들을 다 포기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권력을 가지고 예수님을 죽였습니
다. 예수를 죽일 만한 죄목이 없으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신성
모독죄’로 얽어매어서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당시의
유대 총독이었던 빌라도조차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
(요18:38)”고 말했지만, 그들은 자기들 뜻대로 예수를 죽일 수 있었습니다.
예수가 죽자, 그들은 만세를 불렀습니다. 다시 그들만의 세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어 공격하던 예수가 사라졌으니, 이제는
더 이상 두려워할 일이 없게 된 것입니다.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권
력과 재물의 단맛을 맘껏 즐기면서 세상을 편히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엄청난 오해요, 아주 큰 착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참으로 미약하고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잠깐 살
다가 갈 인생은 결코 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미처 깨
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어디까지나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조물주
이신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으
로서 누리게 될 축복을 누리지 못하지 못할뿐더러, 마지막에는 비참한 최후
를 맞이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런 사실을 분명하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느
냐, 불순종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 만물과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 그 뜻대
로 산 사람들은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되었거니와, 그렇지 않았을 때에는 실
패로 끝나고 말았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물론, 권력과 재물을 갖게 될 경우, 잠시 동안에는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착각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교만에
빠지게 하고, 그 결과 재물과 권력에 더욱 집착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 재
물과 권력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런고로, 권력과 재물을 의지했던 사람들
은, 그 권력과 재물이 다했을 때에 함께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권력을 가지고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만든, 그 당시의 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 그들은 생각하기를 ‘예수만 없으면
천년만년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는, 죽으신 예수를 다시 살리심으로써, 그들의 그런 생각과 그 인생이 아주
크게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그동안 그 사는 재미가 솔솔 했을 것입니다. 단 한
번의 해적질로 참으로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한민
국의 상선을 납치했을 경우에는 100%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
들에게 있어서 한국의 상선은 가장 좋은 먹잇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의 그런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
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덴만 여명작전’의 성공으로 말미암아, 납치범들
이 대부분 사살되거나 생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고로, 대한민국의 상선을
건드리면, 그들이 원하는 돈은 고사하고, 자신들의 생명조차 부지할 수 없다
는 사실을, 이번 사건을 통해서 뼈저리도록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사야서 9장 1절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그토록 어둡고 절망
에 가득 찬 시대도 영구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선포했습니다. 왜
냐하면, ‘어둠 속에서 고통을 받던 백성들이 큰 빛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
이라는 것입니다.
그 큰 빛은 ‘죽음의 그림자에 덮여서 캄캄한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비춰질 것이다(2)’라고 했습니다. ‘죽음의 그림자’란, 영원한 죽음의 그림자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이 세상 불의와 죄악 때문에 갖게 되는 절망과 좌절
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살맛을 잃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큰 빛을 보게 되면, 다시 말해서, 진리와 영광의 빛으
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확실히 믿게 될 경우, 그런 사람들은 인생을 새롭
게 살 소망을 갖게 됩니다. 억지로 마지못해서 사는 인생이 아니라, 그야말
로 왜 무엇 때문에 산다고 하는 ‘인생의 확실한 목표’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동안,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올바르게 살아보려고 애쓰다가도,
세상에서 이루지는 일들이 너무나 불공평하고 실망스럽기 때문에, 인생을 바
르게 살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
처럼, 사람을 적당히 속이기도 하고, 때로는 거짓말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예수를 알고 믿게 됨으로써 새로운 소망과 인생의
목표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고로, 이제는 더 이상 세상 사람들의 어떤 평
가에 따라 흔들릴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의 평가는 시시때때로 변합니다.
언제는 좋다고 말하다가도, 무슨 일이 생기면, 좋다고 말하던 그 입으로 나
쁘다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평가요 시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불변하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바라봐야 합니
다. 더군다나, 이 세상의 주관자는, 그 어떤 권력자나 돈 많은 사람이 아니
라,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악한 세력이 이 세상을 완전히 지배하
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우리의 착각입니다. 성경말씀을 보거나 세계 역
사를 살펴보면, 이 세상 역사의 주관자는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느 정육점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이 정육점에서는 쇠고기와 돼지
고기는 물론, 닭고기까지 팔았습니다.
해가 저물어가는 어느 저녁나절, 한 아주머니가 닭고기를 사기 위해서 이 정
육점에 들렀습니다. 때마침, 정육점 주인은 하루 일과를 다 마치고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아주머니는 정육점 주인에게 “아저씨, 늦게 와
서 죄송합니다만, 닭고기 좀 살 수 있을까요?”하고 물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정육점 주인은 냉장고로 다가가서 냉장고 문을 열었습니
다. 냉장고 안에는 딱 한 마리의 닭이 남아있었습니다. 정육점 주인은 그 닭
을 들고 와서 그 아주머니가 보는 앞에서 저울 위에다가 닭을 올려놓았습니
다. 저울의 눈금은 3kg을 가리켰습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그것보다도 조금만 더
큰 것이 있으면 좋겠는데요. 다른 것으로 한 번 골라봐 주세요.”하고 부탁했
습니다. 이에, 정육점 주인은 냉장고 문을 열고서 그 닭을 집어넣고 다른 닭
을 꺼내는 것처럼 하다가 똑같은 닭을 다시 꺼냈습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닭은 딱 한 마리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인은 똑같은 닭을 다시금 저울 위에 올려놨는데, 이번에는 4kg이 나
왔습니다. 자기 손가락으로 저울을 살짝 누르면서 무게를 달았기 때문입니
다. 그것도 모르고, 아주머니는 매우 만족해하면서 돈을 지불하고 가게 문을
나섰습니다. 주인은 문을 나서는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야릇한 미소를 머금었
습니다.
그런데, 문밖으로 나가던 그 아주머니가 갑자기 다시 문안으로 들어서면
서 주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저씨, 아무래도 이것 가지고는 조금 부
족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조금 전에 달았던 그 닭마저 함께 다 싸 주셨으
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상황이 어떻게 전개 되었는지, 아쉽게도 그 뒤의 이야기는
제가 알지 못합니다. 다만 짐작하건대, 그 정육점 주인은 큰 곤욕을 치렀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정육점은 아예 문을 닫고 폐업을 했거나, 아니면 그
주인이 바뀌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고기 무게를 속여 팔았으니, 어찌 그런
사람이 그 자리에서 계속 영업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정육점 주인이 거짓말을 함으로 말미암아 폐
업을 하는 것으로 끝날 수 있겠지만, 사람이 세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속
일 경우에는 생명을 영원히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물
론, 하나님은 자비와 긍휼이 많으신 분인 고로, 우리의 잘못을 뉘우쳐 고백
할 경우, 우리의 거짓된 생활을 용서하여 주실 것입니다.
다만, 진리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 그분을 진심으로 모셔 들여서 살게
될 경우, 우리가 행하는 아주 작은 거짓조차 다 드러나게 되어 있음을 기억
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거짓된 인생을 계속 살아가면서도 자기 잘못
과 허물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도록
합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잘못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 잘못을 고쳐 살도록 합시다. 아무쪼록, 우리를 부르셔서 제자로 삼으신
주님의 마음에 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