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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몸을 먼저 치유하고 돌볼줄 아는 의료인
자신의 마음을 먼저 놓아버릴 줄 아는 의료인
.
의사여, 자신을 먼저 치유하라
많은 이의 요청에 따라 강의와 강연, 워크숍 시간에 나의 자가치유 경험을 여러차례 나누었다. 이 의사가 자신의 많은 병을 어떻게 고쳤는지 모두들 듣고 또 듣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장에서는 그 치유와 회복경험의 하이라이트 부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야기를 통해 지금까지 다룬 치유의 원리와 기법이 현실에서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가 상세히 드러날 것이다.
몸소 경험하고 임상에서 관찰한 결과,
인간이 겪는 대부분은
원칙 몇가지를 준수하면
쉽게 치유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카르마(업)의 강한 영향에
지배를 받는 경우가 아니라면,
많은 질병에서 회복될 수 있다.
역설적으로
모든 희망을 포기한
심각한 경우가
오히려 즉시 반응을 보이고
결과가 아주 좋을때가 많다.
그것은 아마도 드디어 놓아버리고 이제 기분좋게 사리를 알게 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 과학 사학자 토머스 쿤이 말한 "페러다임의 전환"을 할 준비가 된 것이다.
즉
넓은 시야에서 상황을 다르게 보고,
마음을 열 자세가 되어 있다.
때로는
만성질환으로 아프고 괴롭고
죽음의 공포에 직면하고 나서야
소중히 여겼던 신념들을
기꺼이 버리고
진료의 실상에 눈을 뜨게 된다.
이 장에서는 한 의사가 수 많은 육체적 질병에서 어떻게 치유되고 회복되었는지 상세히 다룬다. 먼저 이러한 자가치유를 가능하게 만든 기본 원리를 상세히 기술할 것이다. 그러면서 앞서 다룬 내용의 일부를 다시 살펴보고, 그 내용과 기본원리를 통합한 체험으로 합칠 것이다.
먼저 기본 개념부터 이야기하자.
기본 원리
# 생각은 하나의 사물이다.
생각에는 "에너지와 형태"가 있다.
# 마음은 생각과 감정으로 몸을 통제한다.
그래서 몸을 치유하려면 생각과 감정을 바꾸어야 한다.
# 마음에 품은 것은 몸으로 나타난다.
# 몸은 진정한 자아가 아니다.
몸은 마음이 통제하는 꼭두각시 인형과 같다.
# 어떤 신념이 바탕에 깔려 있는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무의식적 신념은 병으로 나타날 수 있다.
# 병은 억제하거나 억압한 부정적 감정에 생각이 합쳐져 생긴다.
생각은 질병에 특정 형태를 부여한다.
# 생각은 억제하거나 억압한 감정이 일으킨다.
따라서 감정 하나를 놓아버리면 그 감정이 일으킨 수천, 수만가지 생각이 사라진다.
# 특정신념 하나를 취소해 신념에 부여된 에너지를 물리칠 수 있어도,
생각자체를 바꾸려고 하는 것은 시간낭비다.
# 어떤 감정을 항복하는 방법은
감정에 대해 비난하거나 판단하거나 저항하지 않고 감정을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다.
감정을 살펴보고 관찰할 뿐 수정하려 애쓰지 않고 그대로 느낄수 있게 놓아둔다.
감정을 기꺼이 포기하고 때가 되면 감정이 다 떨어져 없어진다.
# 감정이 다시 거세게 일어날 수 있다.
이는 인식해 항복할 감정이 더 있음을 뜻한다.
# 어떤 감정을 항복하기 위해서는
때로 특정 감정을 포기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 어떤 감정을 포기하기 위해서는
때로 감정의 바탕에 깔려있는 보상을 인정하고 놓아버려야 한다.
# 감정은 진정한 자아가 아니다.
감정은 생겼다 없어졌다하는 프로그램이지만 내면의 진정한 큰나는 항상 그대로이다.
그래서 더이상 일시적 감정을 나자신으로 동일시 하지 않아야 한다.
# 생각을 무시하라.
생각은 내면의 감정을 끝없이 합리화하는 것일 뿐이다.
# 삶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부정적 감정이 생길때마다
항복하겠다는 의도를 변함없이 유지하라.
# 부정적 감정을 갖기보다는 자유를 원하겠다는 결정을 하라.
# 부정적 감정을 표출하지 않고 항복할 것을 선택하라.
# 긍정적 감정에 대한 저항과 회의적 태도를 항복하라.
# 부정적 감정은 포기하고, 긍정적 감정은 나누라.
# 놓아버리고 나면 미묘하고 가벼운 기분이 따라온다는 점에 주목하라.
# 감정을 포기한다고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감정을 포기한 덕에 원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길이 트인다.
# 삼투현상을 통해서 얻으라.
내가 원하는 바를 갖고 있는 사람의 오라속에 끼어들라.
# 유유상종한다.
같거나 비슷한 동기로 움직이며
자신의 의식을 확대해 치유하려는 의도가 있는 사람들과 어울려라.
# 내면의 상태는 알려지고 전해지는 것임을 알아차려라.
말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주변 사람들은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직감한다.
# 지속하면 성공한다.
어떤 증상이나 질병은 즉시 사라지기도 한다.
하지만 상태가 아주 만성적이라면 몇달이나 몇년이 걸리기도 한다.
# 놓아버림 기법에 대한 저항을 놓아버려라.
놓아버림 기법 수행으로 하루를 시작하라.
하루를 마칠때 그날 활동에서 남은 부정적 감정을 모두 포기하는 시간을 가져라.
# 마음에 품은 것에만 영향을 받는다.
부정적 생각이나 신념에 영향을 받는 것은 그것이 내게 적용된다고
의식적이나 무의식적으로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 육체적 장애에 이름을 붙이지 말라.
꼬리표를 붙이지 말라. 하나의 꼬리표는 하나의 프로그램이다.
실제로 느끼는 것, 즉 감각 자체를 항복하라.
"우리는 질병을 느낄수 없다". 질병은 마음에 품은 추상적 개념이다.
예를들면 우리는 천식을 느낄 수 없다.
무엇을 실제로 느끼고 있지?하고 자문하면 된다.
가슴이 조이고, 쌕쌕거리고 기침하는 육체적 감각을 그냥 관찰하라.
공기를 충분히 마시지 못하고 있다라는 생각을 느낄 수 없다.
그것은 겁에 질린 마음속 생각일 뿐이다.
하나의 개념 천식이라는 프로그램일뿐이다.
실제로 느끼는 것은 목구멍이나 가슴속의 긴장내지 조임이다.
# 감정에 대해서도 이름을 붙이지 말라.
감정에 꼬리표와 같은 이름을 붙이는 대신,
그냥 감정을 느끼면서 감정 이면의 에너지를 놓아버릴수 있다.
감정의 에너지를 알아차려 포기하기 위해 감정에 공포라는 꼬리표를 붙일 필요는 없다.
많은 병의 치유
이 의사의 경우는 동시에 앓고 있던 병이 너무 많아 일일이 기억해 낼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강의를 할때면 색인카드로 병의 목록을 만들어 놓아야 했다. 50세일때, 아래의 모든 질병을 동시에 앓았다.
편두통이 만성적으로 빈번하게 나타났다.
유스타키오관이 막혀 귓병으로 고통받았다.
근시와 난시로 삼중초점렌즈를 처방받았다.
부비강염과 후비루증과 알레르기가 있었다.
다양한 유형의 피부염이 있었다.
통풍 발작이 있어서 차 트렁크에 지팡이를 넣고 다녀야 했고, 식사에 제약을 받았다.
콜레스테롤 문제가 있어서 식사에 제약을 받았다.
십이지장 궤양이 20년 동안 만성적으로 재발했고, 어떤 의학처방도 효과가 없었다.
궤양이 재발하면 그로 인해 췌장염 발작이 간헐적으로 일어났다.
위염과 위산과다, 간헐적 유문경련 증상이 있어서 식단에 제약을 받았다.
재발성 대장염이 있었다.
게실염으로 결장이 맹장염같은 상태였다.
출혈이 있으면 입원해서 수혈을 받아야 했다.
위장관 끝부분에 흔히 생기는 문제가 있어서 수술 일정이 잡혀있었다.
목에서 4번째 경추의 위치가 잘못되어 관절염이 있었다.
요통 증후군으로 척추 지압이 필요했다.
레이노이드 증후군으로 불리는 진동장애가 있었다. 혈액순환이 잘되지 않는 까닭에 손가락 끝에 감각이 사라지고 조직이 죽는 괴저가 임박한 지경이었다.
중년 증후군으로 손발이 차고, 활력과 성욕을 잃었으며, 우울증이 왔다.
척추아래쪽의 모소낭포는 수술로만 치료할 수 있는 상태였다.
기관지염과 만성기침으로 인해 두통과 척추 굳음증, 요통 증후군이 악화되었다.
덩굴 옻나무에 민감해 매년 피부가 벗겨졌고, 때로는 입원해야 했다.
무좀이 있었다. 호텔 방바닥에서 무좀이 옮는다는 신념체계가 있었다.
비듬이 있었다. 비듬은 이발소에 가면 생긴다는 신념체계가 있었다.
티에체 증후군이라는 연골염증이 있었다.
늑골과 흉골이 만나는 지점이 고통스럽게 부어오르는 드문 장애가 있었다.
이와 잇몸에 문제가 있었다. 치아 아래쪽 주변에 뼈가 없었고, 잇몸에 대해서는 수술을 권고받았다.
전반적으로 에너지 불균형상태여서 신체운동학으로 시험해보면 에너지체계 전체의 균형이 깨져 있으며, 경락전체가 약한 것으로 나왔다.
돌이켜보면 이런 몸이 어떻게 계속 움직이고 제구실을 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각각의 장애로 인해 식단에 거듭 제약이 생겨 상추와 당근만이 가까스로 안전한 음식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 때문에 11킬로그램이 줄어 몸이 바싹 마르고 초췌해 보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친구들 몇이 저 몸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를 놓고 내기를 건적도 있었는데, 쉰셋쯤이면 쓰러지지 않을까하는 것이 대다수의 짐작이었다.
당시 내심 의아했던 점은 이러했다.
"고등교육을 받고 성공해 사회에서 창조적으로 제구실을 하며 균형잡힌 삶을 살고 있는 전문직 남성으로 정신분석을 샅샅히 받고 수많은 요법도 거쳤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많은 육체적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일까?"
물론 업무량이 많기는 했지만 운동이나 창조적 활동의 비중도 그에 못지 않았다. 목수일, 벽돌쌓기, 목공예, 건축디자인을 즐겼다.
더구나 영적인 삶에도
적극적이어서 업무시간 전후로
매일 두시간씩 명상을 했다.
서론에서 열거한 기법들도 탐구했다.
자기최면, 자연식, 반사요법, 홍채진단, 극성요법, 확언, 유체이탈, 집단집중상담, 바디워크요법, 이완법 등을 체험했다.
"이렇게 다수의 기법과 치유모임,
요법을 활용하고도 믿기지 않을만큼
긴 목록의 질병을 여전히 안고 있다는 기이한 역설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
"또한 긴 목록의 질병과 질병에 따르는
끊임없는 통증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성공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까?
답은 대단히 강력한 의지인듯 했다" 강력한 의지덕분에 모든 장애를 뚫고 나갔고, 효과적으로 제구실을 하는데 장애가 되는 모든 것에 개의치 않을 수 있는 힘이 있었다. 주로 감정이 그런 장애물이었다.
그런 의지력으로
어떤 감정을 억제하면
억제된 채 그대로 있었다.
과학의 꿈은 '객관성"이다.
객관적이란 감정이 없다는 의미다.
의료현장과 과학연구에서 이 꿈을 도달하기 위해서
감정을 억제해야 했다.
환자와 가족이 겪는 고통은
끝이 없어보였다.
날이가고 해가 가도록 수그러들지 않고
지속되었다.
깊은 연민으로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다보니
감정억제 상태가 더욱 심각해졌다.
억제한 감정에서 오는 압력이
삶의 모든 방면에서 커졌다.
이로 인해 질병이 다양해지는 것은 분명했다.
어느 시점부터
항복기제와 기적수업을 연구해
삶에 매일 적용했다.
업무일정이 바빠서
새로운 기법에 들일 시간은
거의 없었다.
다행히
기적수업의 워크북으로
어떤 문장이나 그날의 레슨을
종일 묵상하기만 하면 됐다.
이 기법의 힘은 용서기제를 활용해 죄책감을 완화하는 것에 있다. 이 두가지 도구가 함께 효과를 발휘했다. '항복하기와 용서하기'가 동시에 하루종일 계속되었다.
"마음속 압력을 완화하는 방법을
마음이 알고나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듯
온갖 쓰레기가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놀랄만큼 아주 풍성하게 올라온다.
생겨난 시점에서는
거의 알아채지도 못했던 생각과
감정이 되돌아왔다.
삶이 너무 바빠
챙길 시간이 없었던 생각과 감정이었다.
감압과정이 스스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때 발견한 사실 한가지는
모든 부정적 감정이나 생각은
죄책감과 연관되어 있으며,
이런 감정과 생각을 아우르는 죄책감은
끊임없이 억제된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분노만 일어나는 경우는 없다.
실제 감정은 분노와 죄책감이다.
누군가를 비판하는 생각을 할때마다
죄책감이 든다.
마음이
세상과 세상일,
세상 사람들을
끊임없이 심판하고, 비판하는 것이
죄책감이 끝없이 올라오는 근원이다.
죄책감 자체가
부정적 감정을 낳고,
부정적 감정도
그자체로 죄책감을 낳는다.
이 치명적 조합으로 인해
우리가 무너지는 것이며
질병과 불행이 만연하는 것이다"
"죄책감이 없는 곳이 없다보니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든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신이 지금 다른 어떤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너무 오랫동안
많은 죄책감을 안고 살아서
더이상 죄책감을 인식하지도 못하면서
일반적인 죄책감을 어떻게든 세상에 투사한다.
이것이
사람들 대부분에게
적이 필요한 이유다.
내면의 죄책감을 투사할 대상이 필요한 까닭이다.
"또한 감정도 무시했다는 점을 발견했다.
억제한 감정으로 인해 피해자처럼 느낄 수 있는데,
이런 감정 위로 분노가 올라왔다.
좌뇌 성향의 사람에게
감정이란
사리와 논리, 합리에
반대되는 것이었다.
거기에다
감정은
여성이나 아이들,
예술가 타입에게나 어울리는 것이라는
남성 우월주의적 발상까지 겹쳐있었다"
감정을
지적으로 이해하고
임상면에서 분석할 문제로 삼았다.
내면에서 감정이 생기면
꼬리표를 붙이고
대충 분류해 서류철을 해놓듯
치워버렸다.
놓아버림 기법을 행한 초기에는
반발이 생겨
감정을 혐오한 나머지
감정을 다루는 일에서
큰 두려움을 겪은 시간도 있었다.
과정중 받아야 했던 고통이
모멸처럼 느껴졌다.
이로 인해
자아개념을 바꿔야 했다.
지적 능력과 동일시가 강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좋든 싫든
모든 사람은
생각하고 느끼는 유기체라는 점을
인정해야만 했다.
계속 현실을 부인하면 기법의 효과가 없을 것이었다. 오래지 않아 감정이 들어도 상관없게 되었다.
놓아버림 기법에서는
유일한 탈출법이
감정을 인정해 포기하는 것인데,
몸 상태가 좋아지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하기도 수월해졌다.
내면에서
감정에 직면하는 일이
처음에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터널 끝에서
빛이 비치는 것을 보니
희망이 생겼다.
기법을 사용한지 며칠 만에
위장관 끝부분의 상태가
저절로 신속하게 호전되어
수술이 취소되었다.
몇달이 지나면서
수년내지 수십년간 있던 증세들도
강도가 약해지고,
빈도도 낮아지기 시작했다.
특히
편두통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요통이 사라졌다.
몸이 더 가볍고
더 강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때
예기치 못한 위기가 닥치며
감정 압박이 격심해졌다.
엄청난 출혈과 함께
게실염이
심각한 형태로 되돌아왔다.
내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
"이렇게 하는 것이
효과가 있든 없든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병원에 가서 수혈을 받는 대신,
완전하게 항복했다"
복부에서 계속되는
모든 감각문제를 받아들이고
저항하지 않았다.
감각에
이름이나 꼬리표를
붙이지 않았다.
생각하거나 말하는 대신
감각과 경련,
통증과 하나가 됨을 느꼈다.
아무리 격심해도
감각에 저항하지 않았다.
면도날에 올라선 듯한
위기 상황속에서
모든 감각과 감정을 인식해 항복했다.
꼬박 네시간 동안 항복했다.
네시간이 지나자
출혈이 멈추고 경련이 사라지더니
게실염이 치유되었다.
나중에
몇번 가볍게 재발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같은 식으로 다루면
결국에는 발작이 가라앉으면서
사라졌다.
이렇게
항복기제자체가
엄중한 검증을 통과했다.
다른 모든 방법으로
실패한 일이
항복기제로 성공을 거둔 것이다.
항복기제를 계속 적용하니
다른 장애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며
앎의 경험이
생각을 대체했다.
앎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얻어진다.
앎은
우리가 알아보게끔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어느 날 아침에
잠에서 깨자
덩굴 옻나무 알레르기가 나았다는
앎이 있었다.
동시에 바로 그이름 "덩굴 옻나무"라는 꼬리표가 그 자체로 하나의 프로그램이자 신념체계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어떤 경우를 만나도 덩굴 옻나무에 면역성이 있다는 앎이 있고 나서, 밖에 나가 덩굴 옻나무를 건드리고 만지작거리고 화분에 담아 그날 저녁에 있었던 인터뷰에 가지고 가기까지 했다.
인터뷰의 주제는
"자가 치유에 미치는 의식의 힘"이었다.
어느날 또다시
"아는 상태"를 체험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아차 하는 사이
강한 살충제 가스에
맞닥뜨렸을 때였다.
수년동안 그런 유독가스에 심한 알레르기가 있었고, 냄새를 맡으면 심한 편두통이 생겼다. 그러나 그 특별한 날에는 문득, 유독가스에 면역성이 있다는 앎이 생겼다.
최근 소독한 집에 들어가
유독가스를 아주 깊이 마셨는데도
아무런 뒤탈이 없자,
자유에 환호하는 기분이 순간 퍼져나갔다.
자유롭다는 것,
마음의 힘을 경험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순간
사람은 마음에 품은 것에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마음에 품은 것 때문에
세상에서 노예나 피해자가 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에 대한
오래된 신념에 대해서도
똑같은 일이 생겼다.
콜레스테롤에 대한
신념과 개념을 취소하자,
유제품을 다시 먹어도
콜레스테롤 수치에
어떤 부정적 영향이 없었다.
혈액검사를 해보면 건강에 해로운 콜레스테롤 수치는 갈수록 내려가고 있었다.
게다가
음식에 대한 과민증과
알레르기도 사라졌다.
그러나
당 과민증과
기능성 저혈당증이 사라지는 데는
1년이 걸렸다.
한동안 스트레스를 받으면
여전히 재발하곤 했다.
특히 커피와 설탕이나
단 것을 먹은 뒤에
격렬한 신체활동을 할때
그러했다.
한편 수년간 심하게 제약받았던 식단이 마침내 정상을 되찾았다. 게실염때문에 금지된 씨앗류가 들어간 음식과 궤양과 대장염때문에 먹지 못했던 온갖 음식은 물론 뜨거운 쵸콜릿 시럽을 얹은 아이스크림 선데까지 먹을 수 있는 해방감이란!!
기능성 저혈당이 없어지기 까지는
몇년이 걸렸지만,
끝내는 수년간 금지되었던
온갖 단것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중년기 증후군 또한
신념체계였다.
이 신념체계를
취소하고 항복하니
손발이 찬 증상이 없어졌다.
체력이 더 좋아지면서
몸으로 하는 일에는
무한하다 할 만큼
참을성이 생겼다.
위중하던 증상은 끝을 보았으므로 가벼운 병 몇가지에 의식적으로 손을 대었다. 모소낭포는 그것에 대한 신념을 항복하자 6주만에 사라졌다. 유스타키오관은 비행기 안에서 늘 막혀 오른쪽 귀가 심하게 아프곤 했는데, 바로잡는데 2년이 걸렸다.
증상에 대한
모든 생각과 감정을 놓아버렸고,
동시에 관이 오른쪽 관자놀이 뼈와 이루는 각도가
정상각도로 바뀐다고 시각화했다.
고도변화에 따라
귓속압력이 조절되는데
더이상 아무 어려움이 없었다.
한편
목의 통증이 점차 사라져
춤을 출 수 있게 되었다.
춤을 추면서
목통증에 대한
모든 저항을 항복하니
곧 몸이 자가치유 자세와
움직임을 위하기에 이르렀다.
마치
내면의 척추 지압사가
척추를 맞춰주는 듯했다.
보이지 않는 치유자가
척추를 재조정해주는 듯한
기묘한 느낌이었다.
그러는 동안
손발의 혈액순환에도 변화가 와서
더이상 손발이 차가운 일이 없어졌다.
손가락 끝의 진동장애로 인한
괴저의 위험도
병세가 역전되었다.
손가락 끝의 부드러운 부분이 다시 부풀면서 핑크색을 되찾았다. 그전에는 손가락에 감각이 없어서 책장 넘기는 일도 못할 정도였다.
정도가 심한 병들이 치유되면서
그보다 가벼운 증상들을
살펴볼 에너지와
여유도 생겼다.
비듬은
이발소에서 옮아오는 것이라는
오래된 신념이 있었다.
신념을 항복하자
비듬이 없어졌다.
무좀의 원인을
호텔 방바닥에서 찾았던 신념에 대해서도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신념을 끊임없이 취소하자
무좀이 없어졌다.
어느해 추수감사절에 급성통증 상황에 기법을 시험할 기회가 생겼다. 거대한 통나무가 왼발위에 떨어져 발 앞쪽의 뼈를 모두 부러뜨렸다. 석고 붕대를 하는 대신, 놓아버림 기법을 사용했다. 그랬더니 크리스마스에는 댄스플로러로 복귀할 수 있었다.
또 발목을 심하게 삔적도 있었는데,
다치자마자 곧바로
통증항복에 들어갔고
몇분만에 치유되었다.
눈의 치유
어느 날 저녁에 항복기제에 관해 강의하면서 위에서 이야기한 치유경험을 칠판에 열거하고 있었다. 청중 한명이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그 모든 병을 고치셨다면 왜 아직도 안경을 쓰시는 것죠? 시력이 안 좋은 것은 고칠 수 없으셨나요?"
그러고 보니 안경쓰는 것을 병이라고 생각해본적이 없네요. 몸의 해부학적 구조 결함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지적을 받고 보니 그것도 고치지 못할 이유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고는 이중초점 안경을 벗어서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사실 그때는 시력이 더 나빠져서 삼중초점 안경을 처방받아 주문한 참이었다.
그날 저녁에 강의를 마치고 떠날때는
믿음과 신뢰가 충분하면
시력이 스스로 회복되리라는
이전과 동일한 앎이 있었다.
안경없이 운전해 귀가 하자니 시야가 흐릿했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도로 경계석을 비추는 것을 보면서 천천히 달렸다.
필요한 것은 항상 보이되
원하는 것은 보지 못하리라는
내적 앎이 있었다.
이후로 6주동안 매일 눈을 쓰며 사는 일상의 이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많은 것을 관찰하고 배웠다. 시각의 이면에는 단순한 호기심에서부터 경쟁심이나 성적관심, 지적 자극에 이르는 무수한 다양한 감정이 있었다.
우리가 눈을 쓰는 용도 중에서
세상에서 제구실을 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5%정도뿐이었다.
그러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봐야 하는 것만 보였다.
신문과 잡지를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영화를 보러가는 것은
다 불가능했다.
도로에서는 마치 만화영화에 나오는 고도근시의 행운아 미스터 마구가 운전하는 듯했다. 불가사의한 현상이 거듭되었다.
무언가를
보지 않으면 안되는 순간에 이르면
곧바로 보였다.
도로를 달리다가 제대로 봐야 하는 그 순간에 벼랑끝이 보이는 식이었다. 대단히 불안했고, 끊임없이 공포를 항복했다. 6주가 지나자 마침내 공포가 바닥난듯 했다. 대신 깊은 항복이 일어났다. "보도록 허용된 것만 보지 뭐!" 감정이 원해서 이전까지는 시각의 도움을 받아서 보았던 다른 목표들을 기꺼이 포기했다.
그러자
내면에서
깊은 정적과
평화의 느낌이 생겨났다.
우주를 운영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과 하나됨을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시각 이 완전하고 완벽하게 돌아왔다.
전에는 볼 수 없거나
읽을 수 없었던 것이
아주 또렷이 보였다
.
도로 표지판, 어두운 조명 밑의 작은 글씨,
방 건너편에 멀찍이 있는 물건들이
아주 세세하게 보였다.
운전면허 갱신을 위해 새로 시력검사를 받았더니, 검사관이 시력이 완벽하니 안경은 더이상 필요없겠다고 했다. 이전의 눈 검사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여기저기서 이 이야기를 한 이래로 상당히 많은 사람이 안경을 벗고 같은 경험을 했다. 매우 흥미롭게도 다들 6주가 걸렸다고 했다. 성공한 이들 중 한사람은 다시 안경을 쓰기로 결정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안경쓴 모습에만 너무 익숙한 아내가 안경을 안쓰니 매력없어 보인다고 했단다. 그래서 아내를 기쁘게 해주려고 도수없는 안경을 쓴다고 했다. 단지 아내를 사랑해 아내를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안경을 쓴 것이었으니, 시력 손상때문에 안경을 써야하는 것과는 이유가 사뭇 달랐다. 시력 치유의 경험을 한 사람들이 모두 발견하고 동의하는 사실 한가지가 있다.
"우리는
안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본다"
최근 사례로 태어난 직후부터 앞을 보지 못했던 여자가 있다. 안쪽 안구에는 심각한 이상이 있었다. 시력 회복에 대한 상의를 듣고여자는 의학적 진료를 계속 받으면서 시력에 대해 놓아버림 기법을 수행했다. 여자는 강의가 끝난 뒤에 다가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는
박사님이 옳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마음을 통해서 본다는 것을
압니다.
그것이
저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니까요.
저는 보고 있습니다.
마음을 통해서요!"
"이처럼
기적에 가깝기까지 한 치유 사례들을
모두 이해하려면,
신체적 과정과 치유의 메카니즘,
의학적 치료의 원리에 대한 생각을
크게 바꾸어야 한다.
끊임없이 항복할때
활성화되는 어떤 것속에
자가 치유의 힘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첫댓글 기적에 가깝기까지 한 치유 사례들을 모두 이해하려면, 신체적 과정과 치유의 메카니즘, 의학적 치료의 원리에 대한 생각을 크게 바꾸어야 한다. 끊임없이 항복할때 활성화되는 어떤 것속에 자가 치유의 힘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응원합니다 ㅎㅎㅎ
그때 발견한 사실 한가지는 모든 부정적 감정이나 생각은 죄책감과 연관되어 있으며, 이런 감정과 생각을 아우르는 죄책감은 끊임없이 억제된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분노만 일어나는 경우는 없다. 실제 감정은 분노와 죄책감이다. 누군가를 비판하는 생각을 할때마다 죄책감이 든다.
죄책감이 없는 곳이 없다보니 현재 무슨 일을 하고 있든 마음 한구석에서는 자신이 지금 다른 어떤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너무 오랫동안 많은 죄책감을 안고 살아서 더이상 죄책감을 인식하지도 못하면서 일반적인 죄책감을 어떻게든 세상에 투사한다. 이것이 사람들 대부분에게 적이 필요한 이유다. 내면의 죄책감을 투사할 대상이 필요한 까닭이다
죄책감....
자신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느끼는 근원!
이처럼 기적에 가깝기까지 한 치유 사례들을 모두 이해하려면, 신체적 과정과 치유의 메카니즘, 의학적 치료의 원리에 대한 생각을 크게 바꾸어야 한다. 끊임없이 항복할때 활성화되는 어떤 것속에 자가 치유의 힘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수의 기법과 치유모임, 요법을 활용하고도 믿기지 않을만큼 긴 목록의 질병을 여전히 안고 있다는 기이한 역설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
"또한 긴 목록의 질병과 질병에 따르는 끊임없는 통증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성공적으로 활동할 수 있을까?
어느 시점부터 항복기제와 기적수업을 연구해 삶에 매일 적용했다. 업무일정이 바빠서 새로운 기법에 들일 시간은 거의 없었다. 다행히 기적수업의 워크북으로 어떤 문장이나 그날의 레슨을 종일 묵상하기만 하면 됐다. 이 기법의 힘은 용서기제를 활용해 죄책감을 완화하는 것에 있다. 이 두가지 도구가 함께 효과를 발휘했다. 항복하기와 용서하기가 동시에 하루종일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