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천상제님- 계시 - 도주님 -유명--도전님
도주께서 기유년(十五歲時) 四월 二十八일에 부친과 함께 고궁을 떠나 이국땅인 만주에 가셨도다. (교운 2장 4절)
도주께서는 경술년에 어린 몸으로 나라에 충성하는 마음에서 일본 군병과 말다툼을 하셨으며 이듬 해
청조(淸朝) 말기에 조직된 보황당(保皇黨)원이란 혐의를 받고 북경(北京)에 압송되었다가 풀려난
엄친의 파란 곡절의 생애에 가슴을 태우고 고국만이 아니라 동양 천지가 소용돌이치는 속에서
구세제민의 큰 뜻을 가슴에 품고 입산 공부에 진력하셨도다(교운 2장5절)
도주께서는 九년의 공부 끝인 정사년에 전력을 다하시던 중 한 신인이 나타나 글이 쓰인 종이를 보이며
이것을 외우면 구세 제민(九世 濟民) 하리라 고 말씀하시기에 도주께서 예(禮)를 갗추려 하시니 그
신인은 보이지 않았으되, 그 글은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지기금지 원위대강(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至氣今至 願爲大降 이었도다.(교운 2장 7절)
그 후에 도주께서 공부실을 정결히 하고 정화수 한 그릇을 받들고 밤낮으로 그 주문을 송독하셨도다.
그러던 어느 날 왜 조선으로 돌아가지 않느냐. 태인에 가서 나를 찾으라 는 명을 받으시니 이때 도주
께서 이국 땅 만주 봉천에 계셨도다.( 교운 2장 8절 )
도주께서 다음 해 정월 보름에 이 치복(호:석정)을 앞세우고 정읍 마동(馬洞) 김 기부의 집에 이르러
대사모님과 상제의 누이동생 선돌부인과 따님 순임( 舜任)을 만나셨도다. 선돌부인은 특히 반겨 맞아들이면서
상제께서 재세시에 늘 을미생이 정월 보름에 찾을 것이로다 라고 말씀하셨음을 아뢰이니라.
도주께서 그것을 받으시고 이곳에 보름 동안 머무시다가 황새마을로 오셨도다.(교운 2장 15절)
위의 전경 말씀과 같이 도주님께서는 1909년 만주 봉천으로 가셨다.(가셨을 때의 지명은 봉천이
아니라 만주 신양이었는데 가신 직후에 봉천으로 지명이 바뀌었음, 4월 28일 봉천명 치성) 그 후
9년 동안 입산수도에 진력하셨다가 1917년에 대순진리를 감오득도하시고 계시를받으셨다.(2월 10일 득도치성)
계시에 의해 조선 태인 으로 오셔서 1919년 선돌부인으로부터 봉서를 받으셨다.
상제님으로부터 도주님으로 이어진 종통은 계시에 의한 것이며, 도주님으로부터 도전님으로 이어지는 종통은
유명(遺命)에 의한 것으로, 이러한 대순진리회의 종통은 천부적이며 절대적인 신성성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