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때 달라요
素欣 이한배
군대 갔던 손자가 18개월 만에 제대했다. 군에서 보낸 손자는 긴 세월이겠지만 입영한다고 했을 때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제대란다. 나는 35개월하고도 10일을 더 했는데 말이다. 그래도 20여 일을 일찍 제대했다고 고맙게 생각했었다. 그때는 복무기간이 36개월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군 복무기간보다 딱 반으로 줄어들었다.
우리나라는 전쟁이 끝난 게 아니고 여전히 휴전 상태이다. 거기다 북한은 그땐 없던 핵을 만들어 더 위험해졌는데 복무기간은 반토막이 났다. 무엇이 맞는 걸까? 난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못 된 것 같은데 그게 맞는다고 아예 법으로 정해버렸다. 휴전이 단지 오래됐다는 것뿐인데 국방이 너무 느슨해지는 건 아닐까?
요즘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을 보면서 남의 일 같지 않다. 지금에 와서는 먼저 공격해 전쟁을 일으킨 하마스는 휴전하자는데 이스라엘은 인질 석방 없이 휴전은 없다며 단호하다. 그게 정답 같아 통쾌했다면 어폐(語弊)가 있는 걸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리도 저런 단호함을 보여줄 수 있을 만큼 국방이 튼튼할까 걱정이 된다.
살면서 맞고 틀림으로 정답을 낼 수 없을 때가 참 많다. 오히려 맞고 틀린 걸 정확하게 하면 흑백 논리라고 핀잔맞는 게 요즘 세상이다. 옛날에는 맞았는데 지금은 틀리는 경우가 참 많다. ‘그때그때 달라요’라는 말이 절로 나오고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 상황을 수없이 맞닥뜨리면서 그때마다 새롭게 판단하고 결정해야 하는데 점점 더 어려워진다. 때로는 제대로 할 적도 있지만, 잘못 판단하여 고집을 부리게 되면 꼰대 소릴 듣기 십상이다. 상황에 따라, 시대 변천에 따라 판단 기준이 달라져 맞았던 게 틀리고 틀렸던 게 맞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는 느낌이다.
제대했다고 인사하러 온 손자에게 알면서도 넌지시 물어봤다.
“군대에서 매 맞아 봤니?”
“할아버지 요즘은 때리면 즉시 영창 가요”
나 때는 고참한테 매를 안 맞으면 언제 때리나 불안해서 잠을 못 잤다. 지금의 생각으로는 군대서 매를 맞는 게 정답이 아니란 걸 알 것 같다. 내가 군대 생활할 때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그때는 그게 정답까지는 아닐지라도 당연하였다. 졸병 때 처음 곡괭이 자루로 서너 대 맞고 다음 날 화장실 가서 넓적다리 뒤를 보게 되었다. 맞을 때는 이를 악물고 맞았는데 살가죽이 시퍼렇다 못해 검게 변한 걸 보고는 왈칵 울음이 났다. 나중에는 으레 그러려니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군대는 군기가 으뜸이다. 군기가 제대로 잡혀야 일단 유사시에 명령체계가 서고 일사불란하게 싸울 수 있다. 그걸 믿었기 때문에 그 고통을 감수할 수 있었다. 또 전쟁터에서 제대로 싸우려면 그 정도 고통쯤은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때리면 아예 감방엘 간다고 하니 변해도 많이 변했다. 매를 안 들고도 군기를 잡을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지만, 이거야말로 꼰대 생각이라고 핀잔 들을 것 같아 입을 다물고 있다.
나는 제대하면서 세상 살아가는데 자신이 생겼었다. 매 맞고, 힘든 훈련 받고. 나를 완전히 광야에 내동댕이쳐졌던 36개월. 그 고난의 시절을 잘 넘겼는데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위에서 군대 갔다 오더니 어른이 다 됐다는 소릴 듣곤 했었다. 그만큼 군대는 남자를 남자답게 만들어 주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무엇이든 새로운 걸 배우려면 1년 반 만에 이루어지긴 쉽지 않다. 입대하여 군인다워지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3년이란 기간도 그리 긴 기간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소한 지금의 1년 반보다는 군기가 더 많이 잡히지 않았을까? 그만큼 군의 질은 떨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왜 줄였을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맞고 틀림이 요즘처럼 헷갈리는 적은 별로 없었다. 맞으면 맞고 틀리면 틀린 게 누구에나 똑같이 적용되고 그 기준이 흔들린 적이 없었다. 그만큼 변화가 더디었던 탓도 있겠다. 옛날을 기준으로 판단해서 말하면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아직도 그런 소릴 하느냐, 그러면서 꼰대라는 둥 핀잔맞게 된다.
헷갈리는 건 나뿐만이 아니다. 요즘은 판사들의 판결도 오락가락 그때그때 다르니 이래도 되나 싶다. 사실 ‘그때그때 다르다’라는 말은 기준이 없이 형편, 분위기,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는 부정적 의미이다. 우리가 사석에서 하는 말이지 공적인 나랏일을 보거나 재판하는 자리에서 나와서는 안 되는 말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이 말이 뉴스를 보다 보면 수시로 머리에 떠오르게 되니 안타깝다. 다른 사람의 운명을 결정지으면서 어찌 ‘그때그때 다르다’라는 생각으로 할 수 있을까? 판단 기준이 자주 바뀌거나 법 대로가 아닌 판단으로 재판이 이루어진다면 법이 무슨 소용이며 판사가 왜 필요할까. 어쩌다 ‘그때그때 달라요’가 아무 데서나 쓰는 말이 됐는지 모든 게 헷갈리는 의문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