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저학년 학부모들, "새 학기에 제발 이런 담임선생님 만나지 않게 해주세요"
개학을 열흘 남짓 앞둔 요즘 초등학생 자녀를 둔 어머니들 모임에서 최고의 화제는 새학기 담임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자녀의 담임선생님은 1년치 로또”라는 말이 유행이다. 그만큼 1년 내내 같은 교실에서 지내며 어린이의 성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담임교사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크다.
18일 오전, 교육열 높기로 소문난 서울 양천구 목동아파트 단지 내의 한 카페. 초등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올라가는 자녀를 둔 동갑내기 주부 네 명이 모여 새 학기 담임교사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자녀의 후환이 두렵다’는 참석자들의 요청에 따라 실명은 밝히지 않는다.
※ 참석자(가명)
정송희(·36· 초2 아들), 이수진(36· 초6 딸, 초2 딸), 김주경(36· 초5 아들, 초2 아들), 윤영미(36· 초2 아들)
- 김주경: 아이가 둘 이어서 담임 선생님을 총 일곱 분 만났어요. 모든 학부모가 마찬가지겠지만 물질을 바라는 선생님이 제일 싫어요.
- 윤영미: 교사라고 할 수 없죠. 재작 년쯤인가. 저희 언니 얘긴데요. 담임선생님이 연세가 좀 있으신 분인데 반말로 “애가 뭘 가져갈거니 밥 한 번 먹자”고 하더래요. 아이가 집에 왔는데 손에 상장이 쥐어 있었답니다. 화가 나는 게 아니라 겁이 덜컥 나더래요.
- 이수진: 저는 총 여덟 분을 겪어봤는데 아직도 잊히지 않는 일이 있어요. 우리 큰 애가 3학년 때 엉엉 울면서 집에 왔어요. “엄마, 난 아무리 손을 들어도 선생님께서 발표를 시켜주시지 않아”라고 하더라고요. 발표를 시켜도 틀렸다고 면박을 심하게 주면서 바보를 만들고요. 그래서 인사를 다녀왔더니 다음부터 애한테 그렇게 신경을 쓰더라고요. 씁쓸했죠.
- 정송희: 저는 아직 두 분 밖에 못 겪어서 그런지 물질을 밝히는 선생님은 못 봤어요. 하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니 엄마들 사이에서 “약을 먹인다”는 속어가 떠돌아요. 약발이 들 때도 있고 내성이 생길 때도 있다는 거죠. 내성이 생기면 더 강한 약을 필요로 하고요.
- 윤영미: 내 조카 담임이 촌지로 유명한 선생이에요. 그래서 과일 상자랑 돈 봉투를 가지고 찾아갔대요. 근데 의자에서 반쯤 엉덩이를 떼면서 방석을 들더니 그 밑으로 넣으라는 시늉을 하더래요. 내 동생이 센스가 있어서 얼른 집어넣었대요, 하하.. 승용차 키를 주면서 과일상자는 거기에 넣어달라고 하고요. 내 동생이 모멸감에 결국 울음을 터뜨리더라고요.
- 김주경: 기가 막혀서…. 단 한 번의 뇌물수수로도 바로 퇴출시켜야 옳다고 봐요. 촌지 관행은 ‘스승’을 그냥 ‘일꾼’으로 전락시킨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싶어요. 아이들도 그렇게 배워야 사회에 나가도 뇌물 나쁜 것을 알죠.
- 정송희: 촌지는 우리 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게 없는 것 같아요. 이제 제발 없어지면 안 되나요? ‘일부 교사의 문제’라고 축소하기에는 엄마들의 부담이 너무 많아요. 꼭 돈이 아니어도 말이죠. 학기 중에 주는 선물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사실상 대가의 의미가 안 담겨 있다면 거짓말이잖아요.
- ▲ 서울의 한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겨울방학식을 마친 후 학교를 떠나기 직전 선생님과 포옹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조선일보
◆ “제발 아이들을 소중하게 생각해주세요”
- 윤영미: 우리 애 담임은 젊은 남자선생님이었어요. 처음에는 행운이라고 생각했어요. 남자선생님이 워낙 적으니까. 평소에는 성격도 서글서글하세요. 그런데 도맡은 행정업무가 너무 많았나 봐요. 왜 수업시간에 공부는 안 가르치고 일을 하죠?
- 이수진: 우리 애도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공부는 안 가르치고 일을 한 대요. 한 번은 교탁 위에 유인물을 올려놓고 가져가라고 하고 또 무슨 일에 열중하시더래요. 늦게 나가서 없다고 하니 “에이씨, 니가 찾아봐”라고 하시더래요. 그러니 애는 선생님한테 말도 못 붙이고 엄마한테 “찾아서 복사해줘”라고 하더라고요. 결국 진도도 다 못 나가고 2학년 끝났죠.
- 윤영미: 우리 애 교실에서 주먹짱인 아이가 있는데 조울증을 앓고 있어요. 기분 나쁘면 애들을 무차별로 때리고 화장실에서 친구 바지를 벗기는 무법자였죠. 근데 아무 조치 없이 그대로 방치를 하는 거예요. 교실이 걔 하나 때문에 정글이 됐어요. 물론 우리 애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다보니 많이 강해져서 다행인데요. 약한 애는 전학가게 됐어요.
- 이수진: 지금은 애들이 저학년이라서 오히려 왕따가 심해요. 그걸 알면서 놔둬요. 아이를 불러서 “힘들지, 견딜 수 있을 거야”라는 한마디만 해줘도 좋을 텐데. 우리 큰 애네 반에서는 담임이 반 아이들한테 “걔(왕따 당하는 아이)가 좀 그렇지?”라고 같이 맞장구를 치더래요. 상처받는 아이 위로해주고 기운 내라고 했으면 좋겠어요. 학교의 역할이 중요하잖아요.
- 김주경: 체벌도 좀 교육적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애가 전에 있던 학교 담임 얘긴데요. 과학실에서 실험 중에 물을 쏟은 애한테 손 내밀라고 하더니 “그렇게 부주의한 손은 필요 없어”라면서 진짜 가위로 자르는 시늉을 하더래요. 그러다 손을 베어서 피가 난 아이도 있고요. 펜치로 귓불을 물지 않나. 듣고 까무러칠 뻔 했어요.
- 정송희: 자로 등짝을 때리거나 손으로 머리를 때리면 정말 기분이 나빠요. 우리 애는 지각하면 겨울에도 상의 벗겨서 교실 밖으로 내보내요. “너는 자세 고쳐야한다”면서 창가에 상의 벗겨서 세우기도 하고요. 이쯤 되면 고문 아닌가요?
◆ “이런 담임선생님을 원한다”
- 김주경: 저는 무서운 선생님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지난 해 연세 많으신 여선생님이 담임이셨는데 참 좋았어요. 그다지 자상하고 관심 있는 분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우리 아이가 숙제부터 준비물 챙기는 것까지 스스로 하는 법을 가르쳐주셨거든요. 노련하심에 반했어요.
- 윤영미: 학부모와 소통해주실 수 있는 분이었으면 좋겠어요. 학원은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전화가 와요. 학교는 그렇지 않죠. 애를 믿어야겠는데 어리고 믿음이 안 가니 선생님을 찾지 않겠어요? 작년 담임선생님은 “이렇게 전화하시면 기분 나쁘거든요”라고 화를 내시더라고요. 한 반에 30명이면 하루에 한명씩 모든 학부모와 전화할 수 있을텐데.
- 정송희: 우리 아이는 운동을 무척 좋아해요. 1학년 때 선생님은 체육시간에도 운동장에 내보내질 않고 교실수업만 그렇게 좋아하시더래요. 귀찮겠지만 운동장 수업을 적극적으로 해주실 수 있는 분이었으면 좋겠어요. 아마 사내아이 부모들은 대개 같은 마음이겠죠.
- 이수진: 아이들은 노는 시간 너무 부족해요. 학원들을 최소한 3개씩은 다니잖아요. 친구들과 어울리고 숙제도 함께 하고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숙제를 많이 내주셨으면 좋겠어요.
- 윤영미: 모든 애들에게 공정하시고 아이들 하나하나를 사람 만드는 일에 주력하셨으면 좋겠어요. 부족한 점보다 “너는 이렇게 잘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장점을 부각시켜주시고요. 자기표현의 기회를 많이, 다양하게 부여해주시는 선생님이면 참 좋겠어요.
- 이수진: 저희 큰 애 초등학교 4학년 때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항상 자신감 심어주시는 분이었어요. 종업식 때 “너희들을 믿은 것을 후회하지 않고 나의 믿음에 조금의 의심도 없다”며 눈물을 쏟으셨대요. 아이들이 헤어지기 싫어 모두 울었대요. 이런 선생님 없나요?
- 윤영미: 사실 그런 선생님은 극히 드물 거라고 봐요. 이야기는 이렇게 저렇게 많이 했지만 솔직히 지금의 학교에 그다지 바라는 게 없는 게 저만의 생각은 아닐 거예요. 그저 다치지 말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다 왔으면 좋겠네요. 오늘 이야기하는 내내 굉장히 씁쓸해요. 저는 학원도 하나밖에 안 보내는 유별난 엄마인데도 그래요.
- 정송희: 저학년 학부모는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서 관심도 많고 불만도 많아요. 안 좋은 얘기만 많이 한 것 같아 안타깝네요. 저도 아이의 새학기를 맞이하면서 기분이 들뜨기보다는 불안하고 무거운 게 사실이에요.
- 김주경: 아직은 ‘1년치 로또’ 당첨자 발표가 안 났잖아요. 당첨자는 내년 이맘 때 나오게 될 것이고. 아이는 학원이 아닌 학교에서 사회인으로 자라요. 아무리 학교교육이 답답해도 1년 후에 “로또보다 더 소중한 선생님을 만났다”고 얘기할 수 있게 되길 비는 것은 모든 학부모의 똑같은 마음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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