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46호 부석사조사당벽화(浮石寺祖師堂壁畵)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 조사당에 있었던 고려시대의 벽화.
모두 6폭인 벽 그림의 내용은 제석천(帝釋天)과 범천(梵天)·사천왕(四天王) 등의 호법신장(護法神將)들이다. 제석과 범천은 불교의 호법신 가운데 최고의 신이다. 그리고 사천왕은 이 두 천신(天神)에게 직접 통제되는 천왕(天王)이다. 제석과 범천은 풍만하거나 우아한 귀부인의 모습이다. 그리고 사천왕은 악귀를 밟고 서서 무섭게 노려보는 건장한 무장상이다. 위풍당당하거나 우아한 형태와 능숙한 필치 등에서 고려 불화 가운데서도 독특한 품격을 보여 주고 있다. 본래의 채색에 몇 번에 걸쳐 새로 덧칠한 것이 많아서 원모습은 많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래도 고려 불화풍이 꽤 간직되어 있는 편이다. 원래 이 그림은 조사당 입구에서부터 사천왕과 제석천·범천의 순으로 배치되어 석굴암과 비슷한 구도를 보였다. 뿐만 아니라, 그 그림들은 불(佛) 대신 부석사 창건주이자 화엄종의 조사(祖師)인 의상조사(義湘祖師)를 외호(外護)하는 신장들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조사당의 의상조사는 부처님과 동격으로 존숭되었다. 이것은 화엄종의 수사찰(首寺刹)에서 신라 화엄종의 초대 조사에 대한 존숭의 정도가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알려 주는 좋은 예이다. 이것은 조사당이 본법당(本法堂)보다 높은 데 위치하게 한 것과 함께 화엄종에서는 초대 조사를 부처님보다 오히려 더 받들어 모셨던 것을 시사하는 중요한 회화 자료이다. 고려시대(高麗時代)의 회화(繪畵)는 보존된 유적(遺蹟)이 매우 희귀해서 그 양상을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힘든다. 부석사(浮石寺)의 조사당벽화6면(祖師堂壁畵六面)은 이 건물(建物) 내진(內陳) 벽면(壁面)에 그렸던 건축당초(建築當初)의 작품으로서 확인되어 현재 이 벽면 전체를 그대로 떼어내어 안전장치를 한 후에 부석사무량수전(浮石寺無量壽殿) 안에 보관하고 있다.
조사당건물창건연대(祖師堂建物創建年代)는 이 건물을 중수(重修)할 때 발견한 묵서명문(墨書銘文)에 따라서 서기 1377년으로 밝혀졌으므로 이 벽화의 제작연대(製作年代)도 이로써 확인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재 국내에 유존(遺存)된 고려시대(高麗時代)의 벽화는 이 조사당벽화(祖師堂壁畵)를 비롯해서 예산수덕사대웅전벽화(禮山修德寺大雄殿壁畵)(1308년 건립(建立)) 개성수락암동고분벽화(開城水落巖洞古墳壁畵) 장단법당방고분벽화(長湍法堂坊古墳壁畵) 개풍군공민왕릉벽화(開풍郡恭愍王陵壁畵) 등의 유례(遺例)가 있으나 회화적(繪畵的)인 격조(格調)로 보나 그 보존상태(保存狀態)로 보나 유존(遺存)된 고려시대의 벽화를 대표하는 것은 이 조사당벽화(祖師堂壁畵)이다.
이 조사당벽화(祖師堂壁畵)는 천왕상(天王像) 각 1면(面)과 보살상(菩薩像) 2면(面)으로 구성되어 있는 바 그 내용을 조사당내진(祖師堂內陣) 원위치(原位置)의 순서대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1) 보살상(菩薩像)(불명미상(佛名未詳))(2) 다문천왕상(多聞天王像)(3) 광목천왕상(廣目天王像)(4) 증장천왕상(增長天王像)(5) 지국천왕상(持國天王像)(6) 보살상(菩薩像)(불명미상(佛名未詳))
이들 벽화(壁畵)는 토벽(土壁) 위에 프레스코로 그린 것이며 배경을 심록색계(深綠色系)로써 메꾼 뒤 홍(紅)·자(자)·녹(綠)·백(白)·다(茶)·금채(金彩) 등으로 상용(像容)을 농채(濃彩)한 것이다.
사천왕상(四天王像)들의 상용(像容)은 특히 힘찬 운동감을 나타낸 동적인 선으로 윤곽(輪廓)을 그렸고 그 안에 설채(設彩)를 해서 전반적인 인상은 매우 힘있는 율동감이 넘쳐 있다고 할 수 있다. 양보살상(兩菩薩像)은 보살상(菩薩像)이 지니는 정일감(靜溢感)을 잘 살려서 정적(靜的)이고도 유려(流麗)한 선(線)을 잘 구사(驅使)해서 고려조(高麗朝) 예술(藝術)이 지니는 아름다운 선의 성격을 잘 보여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원래의 건축(建築)이 황폐(荒廢)되었을 당시 우루(雨漏)로 오염(汚染)된 부분이 남아 있고 또 후세의 묵서(墨書) 낙서 등도 화면을 더럽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근래 그 채색(彩色)이 발견 당시보다 약간 퇴색되어 가는 경향을 나타내고 있는 점이 우려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