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4:11
사랑의 속성은 하나 됨입니다. 하나가 되기까지 주고 더 주려 하지요. 막힘이
있어도 낮은 곳으로 흘러가 닿는 바다처럼, 사랑도 그렇게 낮고 낮아져 온 땅을
품으려 합니다. 크고 높으신 하나님이 낮고 천한 우리 가운데 오사 사랑으로
인류를 품으십니다. 하나가 되고픈 사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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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왜냐하면 추상명사가 아니라 동사니까 그렇습니다.
‘유나의 거리’를 아줌마처럼 열라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상머슴 상만이
소매치기 유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언제나 유나에게 안테나가 맞춰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유나의 소매치기를 끊게 하기위해 별별 짓을 다하지만 유나가 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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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듣지 않습니다. 우연히 유나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유나가 엄마에 대한
보복으로 자기 자신을 학대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머니를 만납니다. 어렵게
어머니를 만나 그동안 어머니가 유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시할머니가 엄마를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아내서 유나에게 자초지종을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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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었는데 유나는 오히려 쓸데없는 짓을 왜 했냐고 발끈합니다. 그래도 상관없습니다.
유나만 소매치기를 끊고 착하게 산다면 뭐든 못할게 없습니다. 제가 아는 데요
사랑하는 사람은 뭐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고 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저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이미 하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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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행동하시고 움직이십니다. 사랑 동사는 ‘사랑을 한다는’ 능동태와 ‘사랑을
받는다는’ 수동태가 존재하는데 이 둘 사이에 원활한 ‘소통‘이 없이는 그 의미
그대로 전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사랑은 궁극적으로 소통입니다.
또 원활한 소통은 사랑을 전제로 하지요. 상머슴 상만이 유나를 사랑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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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감히 비교할 수도 없는 사랑으로 하나님은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 행동
하시고 움직이시고 개입하셔서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시고 계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랑이 제대로 깨달아지고 받아들여질 때 의미가 있지 않겠습니까?
자고나면 사랑타령 하면서도 사랑을 받고 있는지 조차 모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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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해본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 만큼 행복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요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는 자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이며,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거하십니다. 성전이 무너진 후로는 이런 방식으로 하나님이 새 성전을 만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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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입니다. 로마의 황제를 신의 아들이요, 세상의 구주로 고백하던 시대에 이것은
매우 위험한 고백이기에 크리스천은 아무나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성을
부인하던 이단들에게는 세상의 핍박과 오해를 피할 수 있는 묘책으로 보일 수
있을지 모르나, 그것은 실제로 죽음의 고통에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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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지 못한 술책에 불과했습니다. 그것은 인간 예수처럼 죽음의 순종으로 아버지와
사람을 사랑한 삶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쳐서 윤리적 가현주의를 조장하는
하책입니다. 실천하는 사랑은 우리에게 심판에 대한 두려움을 몰아내고 담대함을 줍니다.
사랑할 때만큼 마음이 떳떳하고 든든할 때가 없는 것을 아는 사람만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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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시작했으면 위협과 고난 앞에서 잘 인내할 수 있고, 실패와 오해 앞에서도
넘어지지 않으며, 찬사와 환호가 없더라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대한 사랑만이 형벌의 두려움을 이길 수 잇게 해줍니다. 주님이 나를 받아주신다고
믿어질 때 나는 가장 행복하고 담대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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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세상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만큼 강한 사랑의 언어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나니(14)”
전깃줄 이론 이라는 것이 있는데 플러스와 마이너스 선중에 하나만 끊어져도
단선이 되어 작동하지 않는답니다. 전류가 계속 공급되는 것만으로 움직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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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를 돌아서 나가는 흐름까지 계속 연결 되어야한다는 것이지요. 주님을 향한
사랑의 전류나 주님으로부터 오는 전류가 끊기거나 막히면 사랑전선에 문제가
생긴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완성하는 일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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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사랑이 없는 것은 하나님과의 동행에 문제가 아닐까?
남의 낯을 피하거나 비밀히 하는 사랑이 아니라 두려워할 것이 없는
담대한 사랑, 떳떳한 사랑을 하고 있는가?
사랑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 오늘 나는 어떤 사랑을 드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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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라(11)
신자의 서로 사랑과 하나님과의 관계성(12-16)
신자의 서로 사랑과 하나님의 미래 심판(17-18)
서로 사랑하라는 살명 정리(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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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13a)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13b)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니라(13c)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14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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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 하노니(14b)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15a)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15b)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15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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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16a)
우리가 알고 믿었으니(16b)
하나님은 사랑이시라(16c)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1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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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16e)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17a)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17b)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17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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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18a)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18b)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18c)
두려워하는 자는(1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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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18e)
우리가 사랑함은(19a)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19b)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20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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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20b)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20c)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20d)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21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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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빚진 자_
참 신앙의 기준, 예수 증거_
담대함을 주는, 실천하는 사랑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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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온전한 사랑이 우리가운데 거하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주님, 아무리 말씀이 그러해도 저는 저의 마음에
합한 자가 아니면 사랑하지 못하는 못된 한계가 있습니다. 그것을
버리기란 내 자신을 죽이는 만큼이나 어렵고 힘듭니다. 성령님, 나를
도와주십시오. 주님이 내 속에 거할 때 비로소 온전한 사랑이 가능함을
압니다. 머릿속에 안다는 것만으로 절대 실천할 수 없음을 또 잘 압니다.
성령님 오셔서 내 못된 자아를 태우시고, 오늘 하루도 온전한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하루가 되게 도와주십시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그런 하루가 되도록 조심하겠습니다.
2022.12.25.sun. Cl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