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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37:18
귀한 것은 쉽게 얻을 수 없습니다. 쉽게 얻었다면 가짜일 수 있도 있습니다. 말씀 한마디로 천지를 창조하시듯 요셉의 꿈도 단번에 이루실 수 있는데, 꿈과는 모순처럼 보이는 곡절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꿈의 문자적 실현이 아니라, '사람'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목적일 것입니다. 공주야! 사람을 보면 절망하고 역사를 보면 희망이 안 보일 때가 있다. 의미를 찾을 수 없어 비통함에서 떠나지 않을 때도 있다. 왜 이런 시간과 사건들이 있어야 하는가?
Precious things are not easy to get. If you got it easily, it could be fake. Just as you create heaven and earth in a word, Joseph's dream can be realized at once, but there are many twists that seem to contradict the dream. Then, not the literal realization of the dream, but 'people' Israel is God's purpose. Princess! When you see people, you despair, and when you look at history, you can see no hope. Sometimes you can't leave your heartbreak because you can't find the meaning. Why should there be such times and ev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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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종착역은 어디일까? 요셉이 오는 것을 본 형제들은 그 요셉을 통해서 자신들을 염려하는 아버지 야곱의 마음은 보지 못했다. 형들을 볼 마음에 들뜬 동생의 마음은 보지 못했다. 오직 자신들의 헛된 욕망과 시기심으로 굴절된 요셉만 본다. 한 소중한 가족과 생명으로 보지 않고 자신들이 누릴 부와 권력의 경쟁자로만 본다. 그를 잃어버렸을 때 아버지가 겪을 고통을 생각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
Where is the final stop? The brothers who saw Joseph come did not see the heart of Jacob, the father, who cared for them through Joseph. I did not see the heart of the younger brother who was excited to see his brothers. They only see Joseph, who is refracted by their vain desires and envy. They do not see it as a precious family and life, but as a competitor of their wealth and power. He does not think of the pain his father will suffer when he is lost, and above all, he is not afraid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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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살해 하려고 하는 것은 요셉의 꿈이었지만, 그 꿈은 요셉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르우벤은 죽이는데 반대한다. 나중에 살려줄 요량으로 구덩이에 넣자고 제안한다. 장자로서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린다. 유다도 그가 자신의 동생이요 혈육임을 강조하며 그를 죽이지 말고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자고 제안 한다. 그나마 나은 제안이다. 그럴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단호한 조치로 동생을 안전하게 지키지 못한 결과에 대해서는 핑계할 수 없다.
Joseph's dream was to kill them, but he did not know that the dream belonged to God, not to Joseph. Reuben opposes killing. I propose putting him in a pit as a plot to save him later. As the eldest son, I understand my father's heart. Judas also emphasizes that he is his brother and blood, and proposes not to kill him, but to sell him to the Ishmael people. It's a better offer. I don't know if there was a reason for it, but there is no excuse for the consequences of not keeping his brother safe by decisive 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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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인 비교를 통해서 내가 지은 죄에 대해 스스로 용서하고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형제들은 요셉의 옷에 숫염소의 피를 발라 그를 죽은 것으로 위장한다. 아버지를 속인 야곱이 이제 아들들에게 속아 요셉이 죽은 줄로 알고 큰 고통을 겪는다. 요셉을 통해 이루려 했던 야곱의 채색 꿈도 깨졌다. 편애와 인간적인 기대가 가져온 또 한 번의 아픔이다. 야곱이 자기 지혜로 만든 계획이 무너질 때 하나님의 꿈이 이루어질 것이다.
I should not forgive and justify myself for my sins through relative comparison. The brothers put male goat's blood on Joseph's clothes and disguise him as dead. Jacob, who deceived his father, is now deceived by his sons and suffers greatly, thinking that Joseph is dead. Jacob's dream of coloring, which he tried to achieve through Joseph, was also broken. It is another pain brought about by favoritism and human expectations. God's dream will come true when the plan Jacob made with his wisdom collaps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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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형제들이 그 꿈을 죽이려고 하였지만 그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꿈을 성취하는 출발이 되었다. 하나님은 나중 된 요셉을 먼저 된 자로 삼아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어가고 계셨다. 비젼을 먼저 주시고 비젼에 합당하게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방식이 보이는가? 나는 지금 어떤 옷을 입고 있는가? 우리 모임에서 소외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나는 형제들의 시기 속(어려운 상황)에서도 그 꿈을 마음에 두고 사는가?
Although the brothers tried to kill the dream, it became the starting point to achieve the dream of God. God was fulfilling the promise he gave to Abraham with Joseph as the first to be. Can you see God's way of giving the vision first and making it suitable for the vision? What are I wearing now? Who are the people who are marginalized in our meeting? Do I live with that dream in mind even in my brothers' times (difficult situ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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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을 죽이려고 모의하는 형들(18-22)
형들에게 잡혀 구덩이에 던져진 요셉(23-24)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린 요셉(25-28)
요셉의 죽음에 대한 야곱의 애통(29-35)
애급에 팔린 요셉(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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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그들에게(18a)
가까이 오기 전에(18b)
그들이 요셉을(18c)
멀리서 보고(18d)
죽이기를 꾀하여(1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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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이르되(19a)
꿈꾸는 자가(19b)
오는 도다(1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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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를 죽여(20a)
한 구덩이에 던지고 (20b)
우리가 말하기를(20c)
악한 짐승이 그를(20d)
잡아먹었다 하자(20e)
그 꿈이(20f)
어떻게 되는 것을(20g)
우리가 볼 것이니라(20h)
하는지라(20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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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우벤이 듣고(21a)
요셉을(21b)
그들의 손에서(21c)
구원하려하여(21d)
가로되 우리가(21e)
그 생명은(21f)
상하지 말자(2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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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우벤이(22a)
또 그들에게 이르되(22b)
피를 흘리지 말라(22c)
그를(22d)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22e)
손을 그에게(22f)
대지 말라 하니(2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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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그가(22h)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22i)
구원하여(22j)
그 아비에게로(22k)
돌리려 함이었더라(2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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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23a)
형들에게 이르매(23b)
그 형들이(23c)
요셉의 옷(23d)
곧 그 입은(22e)
채색 옷을 벗기고(2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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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잡아(24a)
구덩이에 던지니(24b)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24c)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2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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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앉아(25a)
음식을 먹다가(25b)
눈을 들어 본즉(25c)
한 떼 이스마엘 족속이(25d)
길르앗에서 오는데(25e)
그 약대들에(25f)
향 품과 유향과(25g)
몰 약을 싣고(25h)
애급으로 내려가는지라(25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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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가(26a)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26b)
우리가(26c)
우리 동생을 죽이고(26d)
그의 피를 은익 한들(26e)
무엇이 유익할까(2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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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를(27a)
이스마엘 사람에게 팔고(27b)
우리 손을(27c)
그에게 대지 말자(27d)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27d)
우리의 골육이니라 하매(27e)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27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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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에 미디안 사람(28a)
상고들이 지나는지라(28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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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28c)
요셉을 구덩이에서(28d)
끌어올리고(28e)
은 이십 개에(28f)
그를(28g)
이스마엘 사람들에게(28h)
팔매(28i)
그 상고들이(28j)
요셉을 데리고(28k)
애급으로 갔더라(28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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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우벤이 돌아와서(29a)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29b)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29c)
옷을 찢고(2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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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들에게로 와서(30a)
가로되 아이가 없도다(30b)
나는 어디로 갈까(3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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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31a)
요셉의 옷을 취하고(31b)
수 염소를 죽여(31c)
그 옷을 피에 적시고(3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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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채색 옷을 보내어(32a)
그 아비에게로(32b)
가져다가 이르기를(32c)
우리가 이것을 얻었으니(32d)
아버지의 아들의(32e)
옷인가 아닌가 보소서 하매(3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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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가 그것을(33a)
알아보고 가로되(33b)
내 아들의 옷이라(33c)
악한 짐승이 그를 먹었도다(33d)
요셉이 정녕 찢겼도다. 하고(3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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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옷을 찢고(34a)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34b)
오래도록(34c)
그 아들을 위하여(34d)
애통하니(3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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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자녀가(35a)
위로하되(35b)
그가 그 위로를(35c)
받지 아니하여(3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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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되 내가 슬퍼하며(35e)
음부에 내려(35f)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35g)
그 아비가(35h)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35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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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안 사람이(36a)
애급에서(36b)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36c)
보디발에게(36d)
요셉을 팔았더라(3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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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를 죽이자_Let's kill the dreamer.
형제를 구원하자_Let's save the brothers.
아버지를 속이자_Let's deceive our fa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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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는 채색 옷을 입어본 적이 없지만, 아니, 말씀의 채색 옷을 입혀주셨는데 공동체를 돌아보며 섬기지 못한 것을 용서해주세요. 꿈만 꿀 뿐 섬기지 않으면 일장춘몽이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면서 다시 문맥을 보는 훈련을 통해 티-칭의 꿈을 꾸겠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향한 소망으로 현재의 슬픔과 고난을 이기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향한 소망으로 현재의 슬픔과 고난을 이기게 하소서.
Lord, I have never worn colored clothes, but, no, forgive me for not being able to look back at the community and serve them. I will dream of teaching through training to see the context again, keeping in mind that if I don't serve, I will become a spring dream. May I overcome the present sorrow and hardship with my desire for God.Let the hope of God overcome the present sorrow and suffering.
2026.5.5.fri.Clay
신학 비평//
하나님은 왜 꿈꾸는 자를 애굽으로 보내시는가? 창세기 37장은 “꿈”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람”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의 꿈만 이루시는 것이 아니라, 요셉이라는 사람 자체를 만들어 가십니다. 그래서 꿈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구덩이와 배신과 침묵의 시간을 통과합니다. 형제들은 요셉을 보면서도 아버지 야곱의 마음을 보지 못했습니다. 동생의 설렘도 보지 못했습니다. 시기심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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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그들은 “꿈꾸는 자를 죽이자”고 말하지만, 사실 죽이려 한 것은 하나님의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계획까지 죽일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악한 선택조차 구원의 경로 안으로 사용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르우벤과 유다입니다. 완전한 의인은 아닙니다. 타협하고 우유부단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불완전한 사람들까지 사용하십니다. 성경은 영웅전이 아니라 “결핍된 인간을 통과하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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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중요한 장면은 채색옷입니다. 형제들은 요셉의 옷을 벗기고 피를 묻혀 야곱을 속입니다. 과거에 아버지 이삭을 속였던 야곱이 이제 자기 아들들에게 속습니다. 속임의 역사가 되돌아온 것입니다. 인간의 계산과 편애로 만든 꿈은 무너집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꿈이 다시 시작됩니다. 그래서 본문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a.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b. 하나님은 꿈보다 사람을 먼저 빚으신다. c. 구덩이는 실패가 아니라 훈련의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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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인간의 악도 하나님의 구속을 막지 못한다. e. 채색옷은 벗겨져도 하나님이 주신 소명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꿈만 꾸는 사람인가, 아니면 사람을 살리는 사람인가? 나는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를 경쟁자로만 보고 있지 않은가? 지금의 구덩이가 끝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애굽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길이라고 믿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