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진 명절 음식엔 전통주 칵테일 최고! 로컬이 녹아있는 전통주를 세계로”
2023년 9월 열린 ‘제13회 국가대표 전통주 소믈리에 경기대회’ 우승자인 문희영 씨. 막걸리 마니아로 시작해 전통주 소믈리에이자 전통주 상품기획자(MD)로 일하며 다양한 전통주를 소개하고 매력을 알리고 있다. 사진 C영상미디어
국가대표 전통주 소믈리에 문희영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새해 아침 차례를 지내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차례상에 올렸던 음식과 술을 나눠 마셨다. 이러한 풍습을 ‘음복(飮福)’이라고 하는데 ‘복을 마신다’는 뜻이다. 술을 나눠 마신 자손들이 조상의 덕을 입어 잘살게 해달라는 의미다. 이런 의미를 생각하면 차례주 하나도 허투루 고를 수가 없다. 이왕이면 설 명절답게 가족과 전통주를 나누며 복을 기원해봐도 좋을 일이다.
하지만 전통주 고르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마트에만 가봐도 전통주 종류가 너무 다양해 어떤 술을 골라야 할지 망설여진다. 막걸리만 해도 맛과 종류가 천차만별이다. 맥주와 소주의 차이는 알아도 약주와 청주, 증류주의 차이에 대해선 막연하다. 설 명절을 앞두고 전통주 소믈리에 문희영(26) 씨를 만났다. 전통주를 제대로 이해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아봤다. 전통주 소믈리에는 기본지식을 바탕으로 소비자에게 전통주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가다.
문 씨는 2023년 9월 열린 ‘제13회 국가대표 전통주 소믈리에 경기대회’의 우승자다. 사단법인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와 대전관광공사가 주최하고 농림축산식품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국식품연구원이 후원하는 이 대회는 주어진 시간 동안 ‘음식과 전통주의 조화’, ‘전통주 서비스’, ‘전통주와 칵테일 서비스’ 등을 통해 우수한 전통주 소믈리에를 선발한다. 우승을 차지한 문 씨는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을 받았다.
전통주를 만드는 소규모 양조장이 많아졌다.
농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통주 면허는 1400여 개에 달한다. 2021년과 비교해 10%가 늘었고 탁주와 청주, 증류주 면허가 크게 증가했다. 새로운 감각으로 전통주를 만드는 곳이 많아지면서 전통주의 종류와 맛도 다양해지고 있는 것 같다. 2023년 11월에 열린 ‘2023 대한민국 우리술 대축제’에서도 신생 양조장을 정말 많이 볼 수 있었다. 새로운 전통주가 나올 때마다 맛보려고 하는데 요즘은 따라가기 힘들 정도다.
전통주를 소개하려면 끊임없이 맛보고 공부해야겠다.
시간이 날 때마다 새로운 술, 다양한 술을 확인하고 맛보려고 한다. 요즘에는 마트나 온라인에서도 전통주를 쉽게 구할 수 있고 전통주를 전문 취급하는 보틀숍, 주점도 많아져서 접근이 쉽다. 전통주를 만드는 양조장에도 직접 찾아가 술을 만드는 과정이나 양조사의 의도를 알아보고 경험과 지식을 쌓으려고 노력한다.
어떻게 전통주에 관심을 갖게 됐나?
성인이 되고 처음 마신 술이 막걸리였다. 과일이 들어간 막걸리를 마셨는데 술이 쓰지 않고 맛있었다. 도수도 낮고 달콤한 데다 값도 싸서 점점 막걸리에 빠져들었다. 다양한 막걸리를 마시다보니 어느새 학교에 막걸리 마니아로 소문이 났다. 교수님 제의로 아예 전통주 스터디를 시작해 전통주 교육기관을 찾아다녔다. 지금은 푸드 스타트업 ‘쿠캣’에서 전통주 상품기획자(MD)로 일하고 있다.
전통주 소믈리에가 됐다.
전통주를 공부하다 보니 재밌어서 이왕이면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전문성도 키우고 자격증을 따서 활용해보고도 싶었다. 전통주 양조 과정부터 전통주 역사, 테이스팅 등을 배우고 양조장에 찾아가는 과정이 재밌었다.
국가대표 전통주 소믈리에 대회에서 우승했는데.
전통주 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내가 더 성장하고 실력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가 대회라고 생각했다. 전통주 소믈리에가 참여하는 이 대회에서는 전통주의 역사와 이론, 서비스 등을 테스트한다. 블라인드 테스트에선 맛과 향만으로 어떤 전통주인지 맞혀야 했다. 전통주 종류가 워낙 많다 보니 난도가 높았다. 우승을 하면서 막연하던 꿈이 선명해졌다. 한국인의 밥상에 전통주가 자연스럽게 올라와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 외국에선 와인이 항상 테이블에 올라와 있지 않나. 그래서 요즘엔 사람들과 소통하며 전통주를 알리는 시음회나 원데이클래스를 열고 있다.
전통주 소믈리에가 많나?
민간 자격증이다 보니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다. 업계에서 일하면서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걸 느끼고 있다. 개그맨 정준하 씨가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을 취득해 화제가 됐지만 여전히 와인 소믈리에에 비해 전통주 소믈리에를 생소해 한다. 막걸리를 마시는데 왜 소믈리에가 필요해? 와인에 비해 전문성이 떨어지는 거 아냐? 그런 자격증이 있느냐며 설명해보라는 사람도 있었다. 잘못된 지식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 전통주에 대한 지식과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럴수록 전통주를 자세히 소개하고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
문희영 소믈리에가 전하는 전통주 더 맛있게 즐기는 법
전통주의 매력을 꼽으라면?
전통주는 로컬푸드다. 지역에 따라 재료가 다르고 술의 역사가 다르다. 지역마다 날씨와 물, 미생물이 달라 술이 익는 과정이 다르고 맛이 다르다. 술 한 병에 그 지역의 특성이 다 담긴다. 술을 만드는 사람의 철학도 담겨 있다. 술에 담긴 의도와 신념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는 것도 전통주의 매력이다. 그림도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보면 가치가 달라지는 것처럼.
설 명절, 전통주를 더 맛있게 즐기는 방법이 있다면?
차례상에는 주로 맑은 술인 약주를 쓴다. 약주는 냉장고에 오래 넣어둘수록 감칠맛이 더해진다. 약주는 감칠맛 나는 조개류와 조합이 좋다. 기름지고 묵직한 차례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소맥(소주+맥주)처럼 다른 술을 섞거나 탄산수를 넣어 하이볼로 만들어 마시는 것도 추천한다. 같은 원료를 사용한 술을 섞어도 좋다. 사과 막걸리에 사과 증류주, 탄산수를 넣으면 최고의 칵테일이 된다.
최근 전통주를 즐기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늘고 있다.
MZ세대가 전통주를 선호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힙(Hip)하다. 다른 하나는 희소성 때문이다. 젊은 양조자가 많아지면서 전통주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규제가 강하지 않아 새로운 도전이 가능하다. 맥주 발효 방식으로 만든 막걸리, 와인으로 만든 막걸리, 위스키처럼 만든 소주가 나오는 이유다. 민트초코나 바질 등 특이한 부재료를 사용한 술도 많다. 뻔한 술이 아니라 신선하다.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선호하는 MZ세대가 전통주에 빠진 이유다. 더욱이 누리소통망(SNS)에 인증하기 좋은 감각적인 디자인도 한 몫 했다. 최근에는 한정된 양으로 예약 판매하는 전통주가 생겨나면서 희소성이 커지고 MZ세대의 수집 욕구를 자극한다.
전통주 시장이 더 활성화되려면 정부나 업계의 노력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우리 술 경쟁력을 키우려면 주세법 개정이 필요하다. 우리 술 분류부터 주재료 사용량 등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전통주는 대부분 소규모 양조장에서 생산되는데 경쟁력 제고를 위한 교육이나 관리를 정부가 지원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제조자들도 늘 일정한 술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 차원에서 ‘술 품질인증제’를 활성화해 술 품질을 관리하고 인증한다면 전통주 시장이 더 활성화되지 않을까?
전통주를 찾는 외국인도 많아지고 있다. 전통주의 세계화 가능성은?
해외에선 막걸리의 인지도가 높다. 현지에서 막걸리를 접한 뒤 한국에 와서 막걸리를 즐기는 외국인이 많다. 해외를 공략하는 기업도 늘고 있고 해외 수요도 많아지고 있다. 다만 생막걸리는 효모가 살아있는 생주이기 때문에 유통 과정에서 변질 위험이 높아 수출이 어렵다. 그래서 해외 수출은 살균막걸리 비중이 높고 이를 위한 시설투자와 기술이 필요하다. 전통주의 세계화를 위해선 해외 수출을 위한 지속적인 살균기술 개발과 정부 차원에서의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 또 해외에 수출하는 살균막걸리 대부분이 과일 막걸리인데 도수, 당도 등 다양한 부분에서 변주를 줘 막걸리의 다양성을 알리기 위한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강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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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영 씨가 말하는 전통주란?
전통주 하면 막걸리를 먼저 떠올리지만 전통주도 다른 외국 술만큼 종류도 맛도 다양하다. 전통주는 크게 탁주와 약·청주, 증류주로 나뉜다. 전통주를 만들 땐 먼저 쌀이나 밀, 보리 등의 원료에 누룩과 물을 섞고 일정한 온도에서 발효시켜 술덧(발효액)을 만든다. 다 익은 술덧을 어떻게 거르느냐에 따라 종류가 달라진다.
술덧에 용수(술이나 장 등을 거를 때 쓰는 둥글고 긴 통)를 박아두면 맑은 술이 고이는데 이 맑은 술을 떠낸 게 청주다. 청주를 떠내고 남은 지게미를 거른 것이 탁주다. 색이 탁하다고 해서 탁주, 막 거른 술이라고 해서 막걸리라고도 한다. 청주를 술 고리에 담고 불을 때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액체를 받으면 증류주가 된다. 다만 일제강점기에 시행된 주세정책에 따라 일본식으로 만든 맑은 술을 청주라고 부르게 되면서 우리 전통방식으로 만든 청주는 약주라고 부르고 있다.
탁주는 도수가 낮고 부드러운 맛이 특징인데 최근에는 다양한 부재료를 활용해 색다른 맛을 낸다. 약주는 도수가 15~16도 정도로 높은 편이지만 쌀의 구수함, 농축된 풍미가 특징이다. 감칠맛이 있어서 한식과 잘 어울린다. 증류주는 원료 고유의 구수한 풍미를 풍부하게 즐길 수 있다. 이밖에 국산 포도, 딸기, 키위 등 다양한 과일로 만든 과실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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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등 산업발전 기본계획
전통주 2027년까지 2조 원 규모로 키운다
2023년 11월 서울 서초구 aT센터에서 열린 ‘2023 대한민국 우리술 대축제’를 찾은 관람객들이 전통주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뉴시스
국세청 통계에 따르면 전통주 시장 규모는 2020년 627억 원, 2021년 941억 원, 2022년 1629억 원으로 급증하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전통주의 인기는 2024년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2023년 7월 정부는 전통주 산업의 다음 단계 도약을 위한 ‘제3차 전통주 등의 산업발전 기본계획(2023~2027)’을 발표했다. 전통주 산업발전 계획에는 전통주 산업의 도약을 위한 혁신 성장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전략이 담겼다. 이를 통해 2027년까지 전통주류 매출액을 2조 원으로 끌어올리고 900억 원 규모의 전통주 전용 자금을 조성해 단계별 성장을 지원할 계획이다.
정부는 세계인과 함께하는 ‘K-술’ 문화를 위해 2027년까지 전통주류 수출액을 5000만 달러로 확대할 방침이다. 프리미엄 전통주 판로를 개척하고 수출 유망 품목에 전통주를 추가해 맞춤형 전략을 수립한다. 우리 술의 세계적 위상 제고를 위해 ‘막걸리 빚기’의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등재도 추진한다.
또한 농업·농촌과 상생하는 전통주 산업 육성을 위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양조장 10곳을 육성하기로 했다. ‘우리술 품평회’ 수상주 제조장을 강소 양조장으로 키운다. 2024년부터 조성되는 ‘K-미식벨트’와 연계한 전통주 갤러리 지역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아울러 산업 활성화를 위한 기반 정비도 진행한다. 특히 정책 수립의 기초자료인 전통주 산업 통계의 신뢰도를 향상하고 전통주 개념과 범위에 대한 설정과 규제완화를 검토할 계획이다. 또 고급 전통주 육성을 위해 과세체계를 기존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전환하는 것도 검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