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와 생기의 근원되신 예수님 강사 이영권 목사
(겔37:5-10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6.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 7.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8.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9.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10.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삶의 목적과 방향을 잃고 살아가는 인생이 주님을 믿고 영접하면 새로운 피조물 되어 주시는 생수와 생기로 살아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보통은 종교라는 말을 들을 때 사찰이나 성당, 교회나 기도원 등을 떠올려 생각하게 되고, 많은 사람들은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가지 예식과 행사에 참여함으로 종교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사람이 되고, 생수로 목마름이 없어지고 생기로 천국생명을 얻어 현재의 삶을 천국으로 변화시키고, 재림하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까요?
1.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범죄 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쫒게 났고 대화가 두절되어 마귀의 종노릇하고 탐욕으로 살다가 사망하게 이르고 말았습니다.
(롬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모든 사람들은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조상의 죄가 유전되는 유전적 원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유전적 죄를 말하지 않더라도 육신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모두다 죄를 지은 죄인이라 성령님과의 교제는 철저히 단절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진리의 영이신 성령님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를 믿는 우리는 성령님이 함께 계시고 역사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성전삼고 오셔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와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십니다.
(약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죄를 지은 사람들은 성령과의 관계가 전혀 없으므로 성령님이 있는 것도 알지 못하므로 희망이 없는 캄캄한 밤길을 걸어가는 인생과 같습니다.
2. 수가성 우물가 여인처럼 생수를 얻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변화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과의 대화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4:5-7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예수님이 길을 가다가 정오쯤 되어 피곤하여 사마리아 인근 우물가에 앉으셨고, 제자들은 음식물을 사기 위해서 동네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초췌한 모습을 한 사마리아 여자가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가면을 쓰고 우물가에 앉아 있는 예수님을 본체만체하고 물을 길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 여인을 보고 “나에게 물을 좀 주시오”하니 여자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 당시에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에 사는 사람들을 저주하며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나라에 포로로 잡혀가서 고난 가운데 있을 때, 남아있던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방인들과 피가 섞여서 진짜 유대인이 아닌 가짜 유대인들이 되었고, 포로 귀환 후 이들은 귀환한 유대인들의 멸시를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사람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 더구나 인적이 끊어진 대낮에 여자가 혼자 물 길러 왔는데 젊은 예수님이 우물가에 앉아서 물 좀 달라고 하며 말을 거는 것은 안 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문스럽게 “당신은 남자이고, 유대인은 사마리아 사람과 대화를 하지 않는데 당신은 나보고 물을 좀 달라고 합니까?”라고 여자가 물었습니다.
(요4:9-11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주님은 죄 지은 우리를 실존의 절망에 대한 해결해 주시려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죄를 어떻게 처리할 수도 없고, 죽음의 문제도 해결할 수가 없고, 살아있는 가치도 설정할 수가 없는 절망적인 존재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이 여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요4:13-1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님 속에 있으면 생수가 넘쳐나고, 그 생수로 말미암아 행복이 다가오고 새로운 삶을 살 수게 되는 것입니다.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가끔 신기루를 봅니다. 목이 너무 말라서 가슴이 탈 때 갑자기 아름다운 시내가 흘러 내려가고 거기에 아름다운 나무들이 서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너무나 반가워 힘을 다하여 그 곳에 뛰어갑니다. 그곳에 물이 소리를 내어 흐르고 있어 신발을 벗고 옷을 걷어 올리면서 물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착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원하게 물을 마십니다. 자기는 생수를 마신다고 생각하지만 모래를 마시는 것입니다. 신기루를 보고 물이라고 마신 사람은 모래를 마시고 죽고 맙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사는 우리들이 모두다 신기루를 보고 살고 있습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꿈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고 신기루를 보고 달려가는 것입니다. 결국에 이 세상살이도 다 신기루로 포장된 곳입니다. 세상의 것으로는 근원적인 목마름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영혼의 목마름을 해갈하는 생수는 오직 십자가에 못 박혀 고난당하신 예수님께 나가서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수를 마시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요7:37-38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죄의 문제, 허물의 문제, 질병의 문제, 저주의 문제, 죽음의 문제도 다 해결해주시니 그것이 생명수가 아닙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생명수를 꿈꾸어 보고 그것을 내 가슴속에 받아들이며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희생 제물이 되어 주시고, 주시는 생명의 은혜를 우리가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의지하고 감사하면 우리는 생수를 마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 생수는 우리 속에서 넘쳐나는 승리를 주십니다. 세상에서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으면 예수님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허락해 주십니다.
그러면 이 영적인 목마름은 왜 우리들에게 있을까? 대통령이 되면 목마름이 사라질까요? 돈이 많으면 사라질까요? 돈이 많아지고 명예가 많아질수록 행복해지지 않고 더 근심과 염려가 많아지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렘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데 하나님을 모시고 있으면 적게 버나 많이 버나 먹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버린 사람은 자기 스스로 부귀영화, 공명의 우물을 파헤치지만 다 터진 우물이라 물이 고이지 않는 것입니다.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 없는 인생은 터진 웅덩이 같아서 이 세상 것으로는 채워놓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생기의 바람이 불어오면 생명을 얻습니다.
주님께서는 생수를 마시게 할 뿐 아니라 생기의 바람이 불어오게도 하십니다.
유대 광야에서 흩어져 말라져 죽고 뼈가 온 들판에 흩어져 있는데 거기에 주님께서 그 뼈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살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본문 (겔37:7-10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너는 생기를 향하여 대언하라 생기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주 야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하셨다 하라 이에 내가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이 되시고 생기의 근원이 되십니다. 하나님 계신 곳에는 언제나 보좌에서부터 생수가 흘러내리고, 생명 강이 흘러내립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 보좌로부터 생기의 바람이 불어옵니다. 이 바람에 모든 먼지와 티끌은 다 날아가 버리고 수십만의 죽은 뼈들이 살아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전부 뼈다귀 같이 마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사는 것이 뼈다귀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주님 바라보고 “주님의 생기를 보내 주십시오. 우리가 대언을 합니다.”라고 하며 “생기야, 우리 가정에 불어오너라, 우리 육체에 불어오너라”고 명령하면 생명의 바람이 불어와서 혼란이 사라지고 미움이 사라지고 저주가 사라지고 육신의 병이 낫게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