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조선족자치주(延邊朝鮮族自治州)
면적 4만 3547㎢, 인구 219만 5000명(1998)이다. 주도(州都)는 옌지시[延吉市]이다. 조선 말기부터 한국인이 이주하여 개척한 곳으로 이전에는 북간도라고 불렀다. 1952년 9월 3일에 자치구가 설립되고, 1955년 12월에 자치주로 승격되었다. 옌지[延吉]·투먼[圖們]·둔화[敦化]·허룽[和龍]·룽징[龍井]·훈춘[琿春]의 6개 시와 왕칭[汪淸]·안투[安圖] 2개 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11개 민족이 거주하고 있는데 그 중 조선족이 41%를 차지하며, 나머지는 한족(漢族)·만주족(滿州族)·후이족[回族]의 순이다.
지린성 동부에 자리잡고 있으며, 헤이룽장성[黑龍江省]과 접한다. 창바이산맥[長白山脈]과 라오예링산맥[老爺嶺山脈] 경내로 뻗어 있고, 그 사이에 옌지분지가 펼쳐진다. 이 때문에 해발고도 500∼1,000m 지점이 많다. 이 산지에서 흘러 나오는 하천은 둥베이수계[東北水系]의 근원이 된다.
주요 하천으로는 투먼강·쑹화강[松花江]·무단강[牡丹江]·쑤이펀강[綏芬江] 등이 있다. 투먼강 유역에 있는 중국의 국제개발지인 훈춘경제개발지를 ‘동북아 금삼각주(東北亞金三角州)’라고 부른다.
기후는 대륙성 기후이나 변화가 잦고, 강수량은 산지가 많기 때문에 하천의 수량이 풍부하다. 연평균기온 2∼6℃, 1월 평균기온 -14.1℃, 7월 평균기온 21.6℃, 연평균강수량은 500∼700mm이다. 농업은 주로 곡저평지(谷底平地)에서 이루어지며, 쌀·콩·조 등의 곡물을 생산한다. 특히 벼농사는 한국인이 이주한 뒤에 발달하였으며, 90년의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또 잎담배는 지린성 생산량의 4분의 5를 생산하며, 그밖에 특산물인 인삼과 과일도 많이 난다.
산지에는 삼림이 우거져 중국의 중요한 임업지대를 이룬다. 투먼·둔화·다스터우[大石頭]에 3대 제재소가 있으며, 그밖의 여러 곳에서 목재공업이 이루어진다. 또 이 목재를 원료로 하는 제지공장이 투먼·스옌[石硯]·카이산툰[開山屯] 등에 산재한다.
동부에는 각종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으며, 그 중 허룽과 훈춘의 석탄, 왕칭의 오일셰일(유혈암), 톈바오산[天寶山]의 구리·납, 훈춘의 금 채굴이 손꼽힌다. 공업으로는 농업기계·철강·정유·전자 분야의 발전이 두드러지며, 공장은 옌지 등의 시 지역에 분포한다.
교통은 창춘[長春]·지린·투먼을 잇는 창투철도[長圖鐵道]가 지역안을 동서로 가로지르고, 옌지에서 허룽과 카이산툰으로 지선(支線)이 분기한다. 또 투먼에서 무단강과 함경북도 온성(穩城)으로 통하는 무투철도[牡圖鐵道]가 갈라진다. 도로는 철도를 따라 뻗어 있는데 남북으로 관통하는 도로가 발달하였다. 항공편으로는 옌지공항이 있는데, 국내선으로는 베이징·창춘·선양까지 운항하고, 국제선으로는 한국 부산까지 운항한다.
일제강점기에 이곳은 독립운동의 근거지였으므로 청산리항일전승지(靑山里抗日戰勝地)·봉오동(鳳梧洞)항일전승지·일송정(一松亭) 등 유적지가 많다. 그밖에 백두산천지·정줴사[正覺寺]·전샤오공주묘 [眞孝公主墓]·룽후석조각[龍虎石刻]·이커당아비[依克唐阿碑]·시구청[西古城]·아오둥청[敖東城]·바롄청[八連城] 등의 고대유적이 남아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연변대학·연변의과학원·연변사범대학·연변예술학원·농업학원 등이 있다.
이른바 북간도에 해당하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어느 속을 가더라도 우리나라 60년대를 연상케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인구의 40% 남짓을 차지하는 조선족이 그 중심을 형성하지만, 그 밖에도 한족 만주족 등을 비롯하여 19개 민족이 섞여 있다. 이 자치주에는 연길 도문 돈화 용정 훈춘의 5개시와 안도 화룡 왕청의 3개현이 있으며, 이 자치주의 주도가 연길시다.
延吉(연길)
연길역에 도착하면 우리말로「연길에 오시니 반가워요」라고 역건물 위에 크게 쓰여 있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주도인 이곳 사람들은 우리말로 말하고 여자들은 한복을 입고 다닌다. 이곳에 사는 중국인들은 우리말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시내 중심에 있는 인민 공원에 가면 한국 유행가가 흘러 나오기도 하는데, 이따금씩 눈에 띄는 경찰들이 떠들어대는 중국말만 없다면 한국의 어느 지방도시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가질 정도이다.
조선족이 그 주류를 이루는 연길시는 명실공히 연변자치주의 문화 교육 경제 중심지로서 초등학교부터 대학(연변대학)에 이르기까지 한국어로 강의를 한다. 연변의 인민공원에는 교포들이 유람하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가는 곳마다 유행가가 하르고 노인들이 어린이들을 데리고 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延吉四市場(연길사시장)
북간도의 후예들이 우리말을 크게 외치며 장사하는 곳으로 60,70년대 우리나라의 남대문시장을 연상케 한다. 중국에 와서 말이 통하지 않던 것이 이곳에 오면 시원하게 해결된다. 동포끼리라는 것을 내세워 물건을 비교적 싼값으로 살 수 있다. 그러나 연길사람들은 중국의 다른곳에 사는 교포들로부터 연변깍쟁이라느 말을 들을만큼 똑똑하다는 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시장 안에는 연변특산품을 미롯하여 순대와 족발 등을 파는 곳까지 있어 발길이 닿는 곳마다 흥취가 난다. 전통적인 한국음식도 여기에서는 싼값에 사먹을 수 있다.
龍井(용정)
연길에서 버스를타고 40분을 달리면 해란강이 흐르는 용정에 닿을 수 있다. 지금은 비록 일송정 큰 솔의 그림자는 없지만 해란강을 보며 선구자를 불러보는 감격을 누릴 수 있다.용정이란 이름은 전설에서 유래한 것으로 용정에는 원래 물이 없었다고 한다.『한 착한 소년이 물을 해결하기 위해 우물을 파기 시작했는데 너무나 지쳐서 우물가에서 그만 죽고 말았다. 그후에 우물가에 무지개가 비치고 천둥소리와 함께 용이 하늘로 올라가면서 샘물이 솟았다. 그후로 이곳에 마을이 생겼고 용정이라 명명하였다』는 것이 전설의 내용이다.
圖門(도문)
연길에서 열차를 타고 남쪽으로 1시간을 달려 도문에 이르면 두만강 건너편의 북한땅이 보인다. 두만강을 건너는 도문강대교의 국경경비초소를 보면 국경선에 와있다는 것이 실감난다. 유람선을 타고 도문강을 따라 가면 북한쪽 강가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노는 모습과 부녀자들이 강가에서 빨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가까운 곳은 서로 큰소리로 몇마디 말도 건넬 수있을 정도로 가깝다. 연길에서 도문까지는 열차로 1시간 정도면 도착하며, 도문역에서 도문강대교는 도보로 1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도문시는 작은 변경도시이므로 도문역 주변에 있는 도문賓館(빈관)에 숙박해야 한다. 여권 신분증확인등 복잡한 수속절차를 거쳐야 한다.일반여관에는 투숙이 불가능하다. 식사는 도문시 자유시장(역에서 도보로 5분 정도)에는 한국식 전문 식당에서 삼계탕, 보신탕, 된장찌개나 불고기, 야채등을 먹을 수 있다.
白頭山(백두산) 연길에서 자동차편으로 용정을 거쳐 5시간을 달리면 미인송 소나무들의 발그레한 줄기들이 미끈미끈하게 뻗어 있는 장관이 전개된다. 공기가 너무 맑아 선경에 온 것 같다. 백두산에 올라 천지를 보려면 새벽에 가는 것이 좋으므로 대개 이곳에 있는 二道白河公司(이도백하공사)에서 경영하는 호텔에서 1박을 해야 한다. 이튿날 새벽 5시쯤 일어나 중국쪽 백두산 정상인 천문봉으로 올라가는 중국군 소속 지프를 타면 편리하다. 안개속을 뚫고 30여분을 지그재그로 오르면 침엽수림이 점점 작아지다가 이끼로 변한다. 화산암만이 널려 있는 곳에 차가 멈추면 거리서부터 50m는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二道白河(이도백하)를 따라 배두산천지로 가다 보면 멀리 장백산온천이 있다. 이 온천은 온도가 83도나 되서 계란을 삶아 먹을 수 있을 정도다 이곳에서 온천욕을 할 수 있는데, 피부병에 아주 효험이 좋다고 한다.
[찾아가는 방법]
연길에서 용정-송화강-二道白河 (이도백하)-백두산으로 이어지는 노선이 백두산으로 가는 최단거리 노선이다. 교통수단은 택시, 중형버스, 대형버스 그리고 헬리콥터까지 있다. 백두산 등반은 7, 8월이 적기이나 7월말부터 8월 중순경이 가장 무난하다. 백두산에는 9월초에 눈이 온다.
[天地(천지)]
천지로 가는 길은 天文峰 (천문봉) 가는 길과는 별도로 二道白河公司 (이도백하공사)에서 二道白河(이도백하)가 흐르는 계곡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한시간 정도 달리면 백두산온촌에 도착하는데, 이곳에서 하차하여 장백폭포를 보면서 산허리로 난 좁은 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야 한다. 지척으로 폭포의 물보라를 보며 천지입구로 접어들면 신비스런 천지가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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