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이야기는 지난 5월, 방아골 잔잔한잔치에 참여했던 황새둥지(예술가정주형대안문화공동체)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박경철 작가의 양말목 집 만들기 워크숍 일지를 발췌한 내용입니다. 사진자료 (강요한, 신명수)
봄이라지만, 이날의 태양은 초여름이라 할 만 했다. 정오를 향하기 한 시간 전, 마을 밥상 잔디밭에 미치지도 않은 거리에서, 주택과 빌라 건물 넘어 북적한 소리가 바람을 타고 넘어왔다.
“아니, 벌써 시작했나!”
그곳에 이르자, 상황은 이미 한 두 시간 전부터 <3회 잔잔한 잔치> 준비를 위한 주민과 관계자, 행사에 필요한 음향 장비, 무대 세트 설치로 마을 행사를 알리고 있었다. 저층주거지 회의를 통하여 알고 있었던 주민들이 소임에 열중이었다. 주민 대표 분을 비롯하여 몇몇 분과 인사를 나누고서 주변을 훑었다.
순간, “장갑이 필요하겠군!” 큰 둥지로 돌아가 붉은 반 코팅 장갑을 끼고 돌아왔다. 지난 달 2회 행사에 불참했던 불성실함이 자책으로 다가왔다. 이내 할 만한 일거리를 찾아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주위는 어느새 사람들이 몰려들고, 곳곳에는 각자의 행사 준비로 북적거리게 되었다.
“아니, 아니. 저 전봇대에 먼저 걸어야지.” “아니에요. 저 나무에 먼저 걸어야 해요.” “아. 맞아! 저 나무가 먼저야.” 이미 두 차례 정도의 경험은 현장의 분위기를 조성하기에 충분한 밀착감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번은 내가 올라갈게.” 항상 근면한 한 복지관 직원의 말을 뿌리치고 사다리를 나무 상단에 기대어 놓았다. 어디서 구해온 것인지, 사다리는 불안정하게 좌우가 요동쳤다. 아무튼 밑에서 두 세 사람이 부여잡고, 한 발 한 발 올라 나무에 묶여 있던 로프를 확인하고, 천막 끝에 동여 맨 끈에 턴버클이 달린 로프를 힘껏 당기어 밑으로 내려뜨렸다. 그러자 두 세 사람이 그 로프를 신호에 따라 조금씩 당기었다. 턴버클에 걸린 비너를 나무에 묶여 있는 로프에 걸면 되는 것이었다. 위에서 “당기세요!” “좀 더.” “예. 좀 더요.” “아니, 아니! 잠깐!” 협동은 호읍이다. 여차하면, 즐거움이 침묵으로 전락될 수 있다. “자! 깔짝. 조금만.” “오케이!” “그 상태로 잡으세요.” “딸칵” 비너를 나무에 묶여 있던 곳에 걸자 경쾌한 마찰음을 내었다.
노란색, 흰색의 삼각형 지붕이 하나의 나무와 세 개의 전봇대를 빌어 지붕이 얹혀졌다. 검은 바닥의 무대는, 떠있는 색의 반사된 빛이 분산되어 행사장을 눈부시게 하였다. 그 사이, 잔디밭 주변은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복지관을 오가며 하얀 탁자와 등받이 의자를 대여섯 개씩 짊어지고 나르고 있었다. 사방은 햇볕으로부터 방어를 위한 천막을 펼쳐 자리를 잡고, 준비되었던 물품들을 늘어놓거나, 먹거리를 위한 집기를 갖추기도 하고, 각종 놀이를 위한 도구나 용품들이 관람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니. 이 탁자를 좀 옆으로 밀면 안 될까?” “음~ 뭐, 안 될 거는 없지만.” “아직 다른 분들이 오지 않았으니까! 오면, 상의하고 옮겨보는 게 낳지 않을까요?” “아. 그래.”
다양한 음성과 기자재를 배치하며 들리는 소리가 한데 섞여 가는데, 낯익은 목소리가 귀에 닿았다. “저기, 세 분이서 의자 좀 더 가져다주세요.” “아. 예. 선생님.”
점심시간을 훌쩍 지나자 행사장은 그 모양새를 갖추며, 따뜻한 봄날을 맞은 마을 주민들이 삼삼오오 거리에 몰려들었다.
“아이고, 이러다 황새 양말목 집은 자리도 없겠다!”
즉시 큰 둥지로 걸음을 내달려 캐리어에 행사 물품과 공구를 싣고서 자리를 잡았다.
마을 골목에서 하는 행사치고는 제법 시끌벅적하다. 잔디밭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노랫말이 귓가에 들리다 말다 하는 사이에, 몇 달 전 행사에 쓰였던 양말목 집의 벽체 모양을 세우고, 담벼락 아래 짐을 부렸다. 본격적인 작은 마을 축제가 벌어졌다.
“음~지붕을 어떻게 올려볼까!” 양말목 벽체에 턱을 괴고, 한 손에 쥔 출자를 “칙~ 착, 칙~ 착” 거리며,
분주하게 얽힌 마을 주민들의 움직임을 따라 생각에 잠겼다. 이내 아이들이 앞을 스쳐가며 손끝으로 살짝 건드리거나, “아저씨! 이게 뭐에요?” 어떤 아이는 “이거 집 아니에요?” 낭랑한 음성이 귓전을 간지럽힌다.
“이게 무슨 집이야?” “창문도 없잖아!” “아니야. 집 아니야.” “아니야! 이거 문인데!” 한 아이가 경첩으로 연결되어 앞뒤로 움직이는 곳을 밀었다 당겼다 하며 눈길을 맞춘다.
“와우! 어떻게 알았어? 문인지.” “안에 들어가도 되요?” “어, 그럼.” 한 남자아이가 들어가자, 서너 명의 아이들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며, ‘키득키득’ 거린다. “이 안에서 뭐해요?” 잠시 당혹감에 뜸을 들이고서, “아~ 오늘은 이 집에서 자는 거야.” “네?” 녀석도 잠시 난감한 표정을 하지만, 이내 받아친다. “지붕이 없잖아요?” “비 다 맞겠다!” “그렇지! 그래서 지금 지붕을 만들 거야!” “와! 정말이요?” “그럼.” “어떻게요? 저도 만들래요.” “그래. 좋았어! 그럼. 이리 와봐.”
한 남자아이는 문을 넘어서, 바닥에 준비된 각목과 톱, 직각자, 나사못 통, 자투리 목재, 전동공구가 너부러져 있는 곳에 쪼그리고 앉는다. “자. 잘 봐야 돼.” “미리 재두었던 각목을 톱으로 자르기가 무섭게, 녀석이 쥐고 있던 톱에 손을 가져다 대며, “이거 저도 할 줄 알아요!” “제가 할래요.” “어~ 할 줄, 알아?” “근데~ 이 톱은~” 녀석은 작심을 했는지, 기어코 톱을 손에 쥔다. 변수에 대한 즉흥적인 상황 판단에 이르렀다.
아이들은 찐득이와 탁구공이다. “어. 이거 볼래?” “이게, 나사못이거든.” “이걸로 나무에 구멍을 뚫을 수 있거든.” “잘 봐.” “이야~! 내가 할래요.” 그나마 톱보다는 낫겠다 싶어. “어~ 여기 검은색 스위치 보이지?” “이 손가락으로 이렇게 잡고, 나무에 이렇게 기울이지 말고 똑바로 세우는 거야.” “그리고 다른 왼손으론 이 윗부분을 손바닥으로 이렇게 누르는 거야.” ‘드르륵’ 거리며 나사못 머리에서 이탈된 전동드라이버가 공회전을 한다. “아니, 아니. 그렇게 세게 누르지 말고, 조금씩 살짝 누르다가 좀 더 눌러가는 거야!” “그렇지!” 목구멍에서 쾌재를 내뱉는다. 녀석도 뿌듯한지 눈을 마주치며, 자신이 나무에 박힌 나사못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함박웃음을 짓는다. “어, 이건 뭐예요?” 옆에 있던 여자아이가 묻는다.
“아저씨. 저도 할래요.” “어~ 잠깐만~” “선생님~ 이건 뭐예요?” 또 다른 녀석은 줄자를 잡고서 땅바닥에 굴린다. “어~그건. 이렇게 나무에 대고, 이렇게 요 눈금에 맞춰서, 이렇게 긋는 거야.” “나무에 그은 선이 보이지?” “연필이나 볼펜으로 그으면, 더 잘 보이는데. 아쉽네.” 열 살은 넘어 보였던 여자아이가 땅바닥에 깔고 앉아 있던 책가방을 열면서, “선생님. 잠깐만요.” 지퍼를 열며 뒤적거린다. “아~없어요.” “음~” “뭐. 괜찮아!” “아저씨! 저 이거 할래요.” “선생님! 이렇게 하는 거죠?” “아니냐.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우리 아빠가 하는 거 봐서 알아.” “아빠하고 나하고 책상도 만들었어.” “그래서 이거(전동드라이버, 전동드릴을 가리키며) 나도 알아.” “와~ 정말!” “네!” “아빠하고 책상도 만들었어?” “의자도 만들었어요.”
“이야!~~” 그새 개구쟁이 같던 여덟 살 남자아이가 톱으로 각목을 자르고 있었다.
역시 아이들은 전투개미라 할 만하다. 우측 방어는 좌측이 열리는 것이고, 좌측 방어는 우측이 열리는 것이며, 전방은 무방비이고 후방은 대책이 없다.
싫증난 아이가 간줄 알았지만, 조막만 한 손에 떡을 들고 내밀었다. “와!~~” “이게 뭐야?” “선생님 줄려고 저기서 만들었어요.” “와! 정말. 아아~~” 입을 한껏 벌리자 녀석이 입에다 넣어 준다. “음. 와. 맛있는데!” 아이가 웃는다. 곁에 있던 엄마와 아이가 서로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며 서 있다. 전동공구를 처음 만져 보았다는 남자아이는, 잠시 동안의 놀이가 일정의 자신감이 심어졌는지, 그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즉각 반응은 거짓이 없다.
“이야. 빨간색으로만 했네. 예쁘네.” 양말목 집 벽체는 다양한 크기로 조합된 틀로 만들어졌다. 각 네모 틀에 가윗밥을 일정하게 혹은 직교로, 엇갈리게 하여 곳곳을 메운다. 익히 알고 있었던 한 여자아이가, 여전히 쪼그리고 앉아서 가윗밥을 걸고 있었다. “어~ 재밌어?” 시끌벅적했던 골목이 어느새 천막을 내리고, 탁자를 접고, 의자를 포개어 모아둔다. “음~ 어쩌지. 거의 행사가 끝난 거 같은데.~” “잠깐만요. 요것만 하고요.” 여자아이는 그렇게 눈길 한번 건네지 않고 하던 것을 마무리하고 ‘휙’ 사라졌다.
마치 아이들이 바통을 이어받기라도 하듯, 한 아이가 가자 다른 두 여자아이가 검은 비닐봉지를 ‘바스락’ 거리며 나타났다. “……” 말이 없다. “이게 뭐야?” “우와 아이스크림이네!” 하나를 집어 내민다. “잘 먹을게~” “저기 선생님들도 있는데.” 그러자 바닥을 쓸고 있던 곳으로 종종걸음을 한다. “고마워요” 잔잔한 웃음이 서로의 입가에 고이고, 아이들은 수줍은 눈길을 드리우고서 이내 뒤돌아 뛰어간다. 엄마한테……
“자, 저기 선생님! 좀 옆으로 더 붙으시고요.” “예. 좋습니다!” “이제 찍습니다.” ‘찰칵.’ “한 번 더 찍을게요.” 무대에 다닥다닥 걸터앉고, 뒤로 옹기종기 서서, 앙증맞거나, 귀엽게, 큰 웃음을 짓거나, 두 손으로 꽃받침을 취하여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개중에는 초지일관 무뚝뚝하다. “자 찍습니다.” 갑자기 누군가, 외마디로 “자유 포즈로!” “네네~” ‘찰칵’
내일은 저 녹색 철망이 어쩔 수 없이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둘러 쳐질 것이다. 그러한 생각은 카메라 셔터 소리에 잘려, 공중으로 분산되어 흩어져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