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22일 월요일
소백산 성혈사(小白山聖穴寺) /전통사찰
- 경북 영주시 순흥면 덕현리
성혈(聖穴) 절 남쪽에 바위굴이 있고 그곳에서 성승(聖僧,덕이 높은 승려)이 너와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주지역 여러 선비가 성혈사에서 공부하거나 기도하여 벼슬에 나섰다고 한다.
부석사, 초암사와 같이 비슷한 시기에 건립되었고 창건한 이는 의상대사라고 전하지만 전하는 기록은 없다.
의상대사가 초암사에 자리에 초막을 짓고 부석사를 지었고 뒤에 초암사를 지었다.
그런데 초암사 서까래가 매일 없어지는 사건이 생겼다. 의상은 서까래를 찾아 나섰고 수풀이 쌓인 곳에서 서까래를 찾았다.
서가래가 있던 자리에 초막을 지었고, 초막이 성혈사의 시초가 되었다.
(성혈사 안내문 정리)
소백산 국망봉 아래 초암사와 성혈사가 있다. 국망봉을 지나 소백산이 끝나는 능선 아래에 부석사가 있다.
초암사와 부석사는 제법 떨어져 있다. 이곳에 초막을 짓고 부석사를 지었다니, 의아하다.
아마 초암사와 성혈사에서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짓기 전에 잠시 머물면서 기도하였는지도 모르겠다.
날이 흐린 것이 아쉬울 뿐이다. 성혈사는 나한전을 빼고는 근래 지어진 절이다. 풍상을 겪었을 것이다.
일주문
누각은 별도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누각 아래엔 심검당이 있다. 심검당 앞은 주차장이다.
대웅전 뒤 반송이 일품이다.
성혈사 신중탱화 /경북 문화재자료
1775년(영조 51) 그렸으며 대웅전 왼쪽에 걸렸다.
요사
산신각
성혈사 나한전 /보물
1553년(명종 8) 처음 지었고 임진왜란 뒤 1634년(인조 12)에 다시 지었다.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다포양식 맞배지붕, 기둥은 배흘림으로 중간이 두껍고 위와 아래로 갈 수록 가늘다.
형설당, 나한전 앞에 있다.
성혈사 석조 비로자나불좌상 /경북 유형문화재
8세기 후반, 9세기 초반 양식을 보인다고 하지만 만든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요사
삼성각
염불당
소백산 초암사(小白山草庵寺) /전통사찰
- 경북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 두 가지 설이 전한다.
첫째는 676년(문무왕 16) 부석사를 짓기 위해 터를 보러 다닐 때 이곳에 초막을 지어 수도하며 기거하던 곳.
둘째는 의상이 지금 부석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서까래가 없어져 도력(道力)으로 살펴보니 이 절터에 떨어져 있었다.
의상은 이것이 부처님의 뜻이라 믿고 여기에 초암을 짓고 한동안 수행한 뒤 부석사를 건립했다고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발췌, 조금 고침)
성혈사와 초암사는 비슷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 성혈사가 초암사이고 초암사가 성혈사일 수도 있지만 알 순 없다.
1988년 가을부터 산악회 버스를 타고 산에 다녔다. 그때 소백산 산행은 무박 2일이었다.
새벽 4시쯤 배점리에서 걷는다. 한 시간 가량 걸으면 초암사를 지난다. 그땐 지금처럼 큰 절인 것으로 느끼지 못했다.
암자 한 칸과 초라한 삼층석탑이 기억이 난다. 초암사를 해가 있을 때 지나간 적이 없다.
지금은 배점리에서 초암사 600m 앞까지 차로 올 수 있어 초암사를 찾기엔 편하다. 국립공원 주차장, 주차료 4,000원.
죽계구곡(竹溪九曲) 제2곡이 있는 계곡 옆에 초암사가 있다.
내가 기대하였던 절은 아니지만 국망봉을 가고픈 마음이 크게 일었다. 국망봉까지 4.4km. 지금 철쭉이 연하게 피었을 텐데....
소백산초암사중창사적비, 비구니 명덕보원 승탑(명덕보원 승려는 근래 입적한 것 같다)
초암사 동부도 /경북 유형문화재, 초암사 서부도 /경북 유형문화재
높이 2m, 어느 승려의 부도인지 알 수 없고 고려 때 봉안한 것으로 보인다. 동부도보다 서부도 조금 늦게 만들어진 것 같다.
죽계2곡
범종루
염불당(종무소), 안심당
초암사 삼층석탑 /경북 유형문화재
통일신라 때 만든 삼층석탑으로 높이 3.5m이다. 상륜부는 없어졌고 일부 시멘트로 보완하였다.
대웅전
삼성각
대적광전
심검당
소백산에 여우가 사는 것 같다. 국립공원초암사탐방지원센타 앞에서.
학가산 진월사(鶴駕山陳月寺) /전통사찰
- 경북 영주시 평은면 용혈리
신라 문무왕 때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조선 선조 때 무태사라 하였다가 그 후에 진월사로 바귀었다.
1720년(숙종 46) 설신(雪信)과 계원(戒元)이 무량보전(無量寶殿)을 지어 주불을 지장보살에서 아미타삼존불로 바꾸어 봉안. 1758년(영조 34) 체붕(體鵬)이 법당을 중수하고 심원각(心遠閣)을 신축하였으며 칠성탱화(七星幀畵)를 봉안하였다.
1797년(정조 21) 계문(戒文)이 심원각을 중수, 1807년(순조 7) 정신(定信)이 무량수전을 중수, 1810년 응향각(凝香閣)을 중수.
1865년(고종 2) 원담(圓潭)이 심원각을, 1891년 희민(曦玟)이 산신각을 중수하였으며, 1919년 보정(普貞)이 법당을 중수하였다.
1922년 요사를 중수하고 1986년에 삼성각을 건립하였다.
'남쪽 학가산에 학이 봉황산 자락으로 날아오르는 형국이 있으니 그곳에 절을 지으면 부석사 건립에 장애가 없을 것'이란 꿈을
의상대사가 꾸었다는 이야기가 전하면, 그때 지어진 절이 진월사이다.
(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발췌하여 진월사 안내문 참조하여 조금 고침)
진월사로 가는 길은 외롭다. 몸이 피곤하니 마음이 외로웠던 모양이다. 영주시 전통사찰은 아홉 곳, 진월사가 마지막이다.
영주댐이 보인다.
학가산진월사 현판이 걸린 누각, 심원루이다.
무량보전
향로전
심검당
삼성각
아미타불, 석불, 가까이 가진 않았다.
단아한 느낌, ㅁ자로 건물이 놓여져 있어 포근한 느낌이며 괜찮은 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