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의 ‘벡실리움’(Vexillium)은 로마 군대의 군기를 본뜬 것입니다. 본디 고대 로마 군대는 독수리를 그려놓은 군기를 들고 다녀서 독수리라는 뜻의 ‘아퀼라’(Aquilla)라고도 불렸습니다. 그리고 그 군기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것을 잃어버리는 것을 중대한 수치로 삼았습니다. 레지오 마리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역시 벡실리움을 중심으로 하여 단원들의 일치를 추구합니다. 벡실리움의 중요성은 이냐시오 성인이 자신의 책 ‘영신수련’에서 안내한 ‘두 개의 깃발’을 통해 더 잘 알 수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넓은 평원에 두 개의 깃발이 세워져 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깃발이고 다른 하나는 사탄의 깃발이며 그 사이에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양 진영 가운데 있는 이 사람들을 두고 그리스도와 사탄은 자신의 진영으로 오도록 작전을 펼칩니다. 그리스도의 작전은 ‘가난과 겸손과 업심여김’이고 사탄의 작전은 ‘권력과 부귀와 명예’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사탄의 작전이 사람들을 끌어들이기에 너무나 매력적지만, 사실 모든 사람들 안에는 하느님의 모상이 새겨져 있기 때문에 그 거룩함의 소리에 민감한 이들은 용감하게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모이게 됩니다.
본디 전투장은 혼란 그 자체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진영이 어디인지 분간이 서질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할 때는 고개를 들어 자기가 속한 군대의 깃발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살이에 정신이 없고, 바쁜 일상 속에서 무엇이 옳은지 판단이 서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할 때에는 우리의 깃발인 벡실리움을 바라보십시오. 벡실리움 맨 위에 새겨진 성체, 그 아래 양 날개를 펼친 비둘기 성령, 그리고 사탄의 머리를 짓밟고 계시는 성모님을 바라보십시오. 성체 안에 담긴 무한한 사랑의 정신, 성령의 인도 아래 사탄의 유혹을 떨쳐내고 하느님께 온전히 순명하신 성모님의 그 정신을 바라보십시오. 그러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진영에 안전하게 머물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