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부터 우리 집 옆공터에 빌라를짓기 시작했다.새벽부터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계속되는 소음으로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남편이 갑자기 둘이서 덕산 시골집에 가서 쉬고 오자고 했다.이번 주에는 아무도 들어 가지 않아서 남편과 단 둘이서 가게 됐다.
1. 한적한 시골집으로 가다,
쉬는게 목적이니 조용한 시골집으로 가서 하루밤을 자고 다음날 가까운 수덕사의 수덕여관을 가보기로 했다. 덕숭산 도립 공원안의 수덕사는 전국의 유명사찰 중에 대표적인 곳이다.,
마을 입구에 있는 남편의 모교 수덕초등학교 는 시골학교 답게 "줄넘기 대회"에 종합 1위를했다. 현수막을 보며 혼자 미소짓게 한다. 손자 손녀가 있다면 이 학교에서 초등 저학년을 보내고 싶다.
마을 앞의 논에는 벼들이 한창 자라고 있다. 시골집에 올 때마다 계절에 따라서 바뀌는 곡식과 채소를 알게 된다. 서울에서 주로 성장한 내겐 가끔 경이로운 일이기도 했다. 땅의 무한한 포용력과 무한한 나눔과 사랑에 겸손해 지기도 한다.
시골집 앞의 밭에서는 콩잎이 엄청 넓어졌다. 이제 열매를 만들시기이다.
집 앞 사랑방 앞의 밭은 2주전 시누이형님 부부가 제초기로 잡초를 다 깍아 놓았다.
2. 아내를 위한 남편의 확실한 봉사가 여행의 목적
덕산 오거리 에 있는 정육점에서 삼겹살 1 kg를 사고 덕산 농협에서 마늘, 상추 ,등등을 조금 사고 나머지는 다 집에 있다고 그냥 들어 갔다.
편한 차림으로 평상에 앉아서 소박한 안주로 둘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가는 줄 모르게 보냈다.
** 삼겹살, 정육점에서 준 파절이는 내가 초를 많이 넣어서 먹을 때마다 코를 톡 쏘는 시큼함이 전해 왔다.마트에서 산 마늘, 깻잎, 상추, 고추는 밭에서 땄다. 집에 있던 막걸리 반 병과 소주 2병을 마시며 주제 없는 이야기를 했다. 주로 내가 경청하는 편이다.
남편은 퇴근후 나를 앚혀 놓고 정치,사회, 종교, 집안 문제를 늘 프리핑 하던 습관대로 혼자 잘난 척을 하며 연설을 했다. 에고 마누라 앞에서나 그러지 누구 앞에서 그러나 ! 생각하고 잘 들어 준다. 들어서 손해 나는 것은 없으니까.^^ 이게 바로 나의 장점이라고 남편은 생각을 한다.
먹고 난 설걷이는 당연히 남편이 다했다.
나는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보다 어느새 잠이 들었다. 집 짓는 소음 때문에 잠을 못잤는데 아주 깊은 잠을 잤다.
방안에서 내다 본 창밖의 풍경이다. 주차장 바닥에 작은 돌들이 남편 형제들이 노력한 보람으로 깨끗하고아름답게 정리 돼 있다.
. 남편은 어느새 일어나서 생수를 빈 병에 다 받아 놓고 샤워까지 하고 내가 깨기를기다리고 있었다.늘 여러 가족들이 함게 들어 와서 각자 일을 분담해서 하고 함께 식사를 하고 단체 행동을 했다. 단 둘이 들어와서 늦게 편하게 대화를 하고 늦잠을 푹 자고 일어나니 사방에서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사방에서 들어오는 아침 햇살만으로도 행복한 것을 처음 느꼈다.
돌담 밑에는 대전 집에서 옮겨 심은 서광이 뿌리를 완전히 내려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늦게 깨어서 밥맛도 없으니 라면으로 간단히 먹기로 했다. 라면은 남편이 잘 끓이니까 앞장서서 끓이고 ....^^ 나는 김치와 고추를 상에 놓고 ..쿄쿄쿄
어제 고기로 포식을 했으니 간단하게 라면과 풋고추와 김치로 아침을 때웠다. 이런 때는 편한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3. 고암 이응로 기념관과 수덕여관
시골집에서 수덕사 까지는 10분이 채 안 걸린다. 대전으로 올라 가는 길에 요즘 새로 생긴 이응로 화백 미술관과 수덕여관을 보고 가기로 했다.
수덕사 입구의 음식점들이 많은 길로 걸어 들어 갔다. 늘 차로 수덕사 정문으로 들어가서 이곳은 처음 가본다.
음식점 앞의 장독대가 음식점의 역사를 말해 준다.
남편의 뒷모습속에 처음으로 할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했다. 에고 손자 손녀도 없는 할아버지...동안이라서 모두 나이보다 적게 본다지만 뒷 모습에서 갑자기 느껴진 세월의 나이를 느낀 나는 마음이 짠해졌다. 둘이 사이좋게 지내야지 우리 둘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누가 알겠는가? 사이 좋게 지내도 남은 세월이 그리 길지도 않다. 평균 수명까지만 생각해도 살아 온 세월보다 살아 갈 세월이 적다. 그리고 둘 중에 한 명이 아플 수 있는 세월을 빼면 정말 시간이 조금 남았다.
모든 종교는 추구 하는 것은 같다고 생각한다. 욕심과 집착을 버리라는 것 ..모든 죄와 갈등은 욕심과 집착때문에 생기는것이다.
무슨 소망들을 빌었을 까? 나는 건강과,아들들이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을, 그리고 평화로운 일상을 소망한다...그동안 겪은 고난이면 인생의 내 몫의 분량은 다 겪은게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
예술이란 이름으로 조강지처를 두고 유학을 가서 뜻이 같은 여성과 한께 한 이응로 화백의 미술관이 수덕사 입구에 새로 지어졌다. 바로 옆에 수덕여관이 복원되서 지어졌고 ...조강지처 때문에 더 유명해진 이응로 화백의 미술관은 대전에도 있다.
실내 촬영이 금지 돼 있어서 입구에서 한장 찰칵, 벽면의 작품은 이응로 화백의 작품이라고 한다.입장료는 무료이다.
위의 그림은 이응로 화백이 동백림 사건으로 구속되어 중앙정보부에서 옥고를 치루고 ,잠시 본처 박귀희여사에게 돌아 왔을 바위에 정을 가지고 그린 암각화(巖刻畵)이다. 불란서에 있는 후처에게 돌아 갈 남편을 정성껏 간호한 아내의 한이 느껴졌다.
* 고 이응로 화백 : 출처: 다음 검색,이미지에서
복원된 수덕여관도 줄을 길게 쳐 놓아서 들어 갈수가 없었다. 조강지처의 기다람과 포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 2001년 본처 박귀희 여사가 세상을 뜨고 방치 돼 있던 여관을 예산군에서 복원했다. 일엽스님이 비구니가 되기 전에 머물렀던 것으로도 유명한 여관이었다.
오랜 객지 생활을 하다 남편의 고향으로 돌아 오고 우리 부부사이는 급격히 좋아졌다.
내가 미움과 과거의 집착을 서서히 마음에서 내버리기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학교를 마치고 취업이 되서 서울에서 함께 생활을 하게 되니 마음에 평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
가까운 서울이라도 한 달에 한번도 못 만나는 아이들이다.
전화는 자주 하지만 둘 다 직장 때문에 바쁘고 자격증 시험도 계속 봐야 하기 때문이다.
아들 형제가 둘이 생활하게 되서 정말 다행이다.
서로 어려움을 알게 되고 대화를하고 의지를 하고 살아야 형제의 정도 깊어진다.
두 아이를 30년이 넘게 키우면서 늘 잔잔한 기쁨과 믿음을 주었다.부모로서 자식들에게 마음고생을 많이 시키고 다른 부모처럼 해주지 못한게 많은데도 잘자라준 아이들이 고맙다.
남편과 나는 서로 사이좋게 살고 건강해서 두 아들들의 짐이 되지않도록 노력을 할 것이다.좋은 시부모, 좋은 할머니,할아버지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자식들에게 집착을 버리고 그 아이들이 우리를 필요로 할 때 도움이 되는 부모가 되고 싶다.
** 부부는 30년이 넘게 살면 천생연분이라는말이 떠오릅니다.
30대는 그저 모르고 평화롭게 살았고 제가 주로 사랑을 받고 살았지요.
40대는 사업 실패가 원인이고 악연들 때문에 무척 싸우고 살았습니다.제가 전쟁같은 사랑의 시기라고 말하는 이유는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50 대는 서로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느끼고 좀 마음이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저와 남편을 바라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60이 코앞으로 다가 왔습니다. 남편은 내년 2월에 환갑이고 저는 60이 됩니다.
지금은 서로 고맙고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서로에게 확실한 내편은 남편과 아내라고 믿게 되었지요.그래서 서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애잔하게도 보고 상대방이 편한게 바로 자기가 편한 것도 알게 됐습니다.
인성좋고 부드럽고 착한 남편과 노후를 함께 할 수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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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코너 베스트로 선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교육이외에 여행을 주로 쓰고 싶습니다.제 자신에게 상을 주는 것은 바로 좋은 곳으로의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화면 캡쳐 할줄 아직 몰라서 그냥 복사해서 붙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집안에 우환이 생겨서 ...제가 곧 배워서 캡쳐 해서 올릴게요.^^ 죄송해유....
추카~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단장님이 전화로 가르쳐주셔도 못알아 들어서 죄송합니다.^^
9월에 복지관에 가서 바로 배울게요.
축하드립니다 ^^
고맙습니다.
다음에도 좋은 결과 나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축하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여행기사를 더 잘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축하합니다~~파란만장한 인생사 속에서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글이네요.
파란만장한 인생길을 함께 극복해 온 33년의 세월이 우리 부부를 하나되게 한 듯합니다.^^
여행을 통해서 이제 더 편하고 다정하게 지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