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는 외국손님 맞이 등 행사가 많았고, 국가적으로 커다란 지진피해도 있었습니다.
저는 고교 때부터 청주 수동교회에서 성장해왔는데, 100동안 이 교회는 어떤 모습으로 존재해 왔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1907년부터 청주지역에 선교가 시작되었고, 1916년에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했습니다.
1907년은 조선이 망하기 직전의, 정미7조약이라는 굴욕적인 협상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그 시기에 진천, 청주, 광해원, 충주에 까지 복음이 전파되어 성당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농민운동 등 나라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운동도 다 사라지고 그야말로 나라를 팔아먹는 도둑들만 우굴 거리던 시기였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많은 우국지사들과 동학교도들이 기독교에 희망을 품고 개종하여 신자수가 급증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1907년은 우리나라의 기독교 신자 뿐만아니라 성공회 신자들도 늘었습니다.
서울 대성당 관할 사제였던 김우일(영국인 선교사; Gurney) 신부님이 지방에 갑자기 내려가셔서 진천에 교회를 세우시고, 청주, 음성, 광혜원 등에 사람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왜 지방까지 내려왔을까요? 충청도 지역에 향토사학자들 주장에 의하면 지역민들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 교회는 김요한 주교님의 선교 의지에 의해 세워졌지만 그에 비하면 젊은 교회에 해당됩니다.
주중에 오신 도널드 신부님에 의하면 영국의 피터버러 교구가 후년에 900주년을 맞이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통일신라시대 사찰 정도의 역사에 해당되겠지요.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거나 새워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라지는 교회도 있겠지만, 하느님의 뜻을 받아 열심히 믿는 교회는 이처럼 오래 오래 지속될 것입니다.
최근에는 한국 교회가 50년 이내에 커다란 위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우선 젊은이들이 교회를 멀리하기 시작했고, 2050년에는 인구가 감소하여 인구절벽이라는 사상초유의 사태를 맞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찾아 살리는 것이 교회의 본분인데,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교회의 빈자리가 늘어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어떤 방식으로 일을 하실까? 지금까지 내가 믿는 방식의 신앙에서 하느님이 원하는 방식으로 신앙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십니다(누가 16:19-31).
“예전에 부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화사하고 값진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다.
그 집 대문간에는 사람들이 들어다 놓은 라자로라는 거지가 종기 투성이의 몸으로 앉아, 그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우려고 했다. ....”
저에게도 찾아오는 걸인들이 꽤 있는데, 거짓 걸인이 아니면 거의 도와주곤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중, 부자와 거지의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1997년 IMF 기금 시대 이후에 빈부의 격차가 극심해졌습니다.
상위 10%와 하위 10%를 비교하는 지니계수를 보면 8.6 정도로, 한국은 OECD 국가 중 중하위권에 속합니다. 상위 10% 중 거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이들의 연봉이 7000만원 정도입니다.
우리나라 상위 19% 정도 까지를 중산층이라고 한다면 나머지는 서민층에 속합니다.
비리로 감옥에 들어가 있는 모 검사는 오피스텔이 200여 채가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부자와 저에게 찾아오는 정도의 걸인을 비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얼마 뒤에 그 거지는 죽어서 ...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되고... 부자가 죽음의 세계에서 고통을 받다가 ....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라자로를 보내어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제 혀에 축이게 해 주십시오... 애원하자
얘야 너는 살아 있을 동안에 온갖 복을 다 누렸지만 나자로는 불행이란 불행을 다 겪지 않았느냐? ... 그래서 너는 거기서 고통을 받는 것"이라며 아브라함은 구원 요청을 거절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인간다운 삶을 살며 하느님이 이 땅에 살게 해주신 값을 하려고 한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라자로는 그저 가난하게 산 것 밖에 없는데, 하느님은 역 보상을 해주신 것입니다.
이 땅에서 누렸던 사람은 빼앗고, 누리지 못한 사람에게는 보상을 해준다는 것입니다.
이는 문자 그대로의 해석보다는 언젠가는 역전이 일어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가문과 학력을 기반으로 출세가도를 달리던 모 검사가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감옥에 들어가는 역전이 일어났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일생동안 고생만하다가 여유가 생기면 몸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어떤 분은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젊었을 때는 돈은 없어도 희망으로 가슴이 떨렸는데, 이제 여유가 생겨서 여행 좀 하려고 하였더니 가슴도 뛰지 않고 다리만 후들거리더라는 것입니다.
인생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허무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요?
어떻게 부자가 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를 기독교인들은 고민해야 합니다.
기독교를 믿어서 잘 사는 것일까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올바로 나누어주는 것에 기쁨을 느끼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열심히 일해 왔는데도 가난하게 산다면, 하느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보상해주시는 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즐겁게 나누어 주는 부자와 가난한 이가 같이 예배를 보는 것이 기독교 신앙인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추구해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한계가 있고, 갖고 싶은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를 넘어서 무한한 기쁨을 얻는 것이 예수님이 제시하는 세계인 것입니다.
죽는 날까지 찬양과 기쁨에 찬 삶으로 하느님께서 축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것은 내가 가지려는 것이 아니라 내려 놓으려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가 올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므로 갈 때도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으려는 삶에서, 내려 놓는 삶에서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육체의 기쁨이 아니라 영혼의 기쁨으로 축복받는 삶이 될 수 있기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댓글 제가 시골 갔다 오느라 이제야 실었습니다. 죄송~~~
감사합니다
새로 임명받으신 교회위원분들 회장님들 축하드립니다. 짝짝짝!!!
잘 읽어습니다.
공감하며 감사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