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암살을 위한 15번의 암살 시도 중 가장 큰 파장을 몰고 왔던 발키리 사건이 영화화 됐다. 주인공 슈타펜버그 대령은 히틀러의 광기가 독일과 유럽을 파멸시키기 전에 그를 막을 방법을 찾았다.
그리고 그는 독일 최상위층 장교들이 주축이 된 비밀암살조직에 가담하게 된다. 드디어 종전 1년 전인 1944년, 히틀러가 비상시를 대비해 세워놓은 발키리 작전을 역이용하여 히틀러를 암살하고 나치정부를 전복시킬 작전을 시행하게 된다.
역사적 사실이 말해주듯이 영화 ‘작전명 발키리’의 결말은 오픈 되어 있다. 하지만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관객은 상상력을 발휘하게 된다. ‘폭탄이 조금 더 히틀러 가까이에 있었다면’, ‘조금만 더 작전이 빨리 수행되었더라면’, ‘더 헌신적으로 작전을 수행했더라면’ 이라는 안타까움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그 상상력의 마지막 종착지는 모두 히틀러가 ‘그때 죽었더라면’ 일 것이다. 조금 더 일찍 히틀러가 죽었더라면 상상해 볼 수 있는 더 좋은 결말과 함께 말이다.
역사상 독재자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독재’가 ‘획일적으로’ 모든 권력을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처럼, ‘독재자의 죽음’ 또한 사람들이 ‘획일적으로’ 염원한다는데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는 봉기한 시민들에게 권력이 넘어가면서 부인과 함께 도망치다 붙잡혀 현장에서 즉결심판으로 사형을 선고 받고 5분 만에 기관총에 난사당했다. 유고슬라비아의 밀로세비치는 종신형을 기다리다 감옥에서 죽음을 맞았다. 캄보디아의 폴 포트 또한 2003년 태국 국경지대의 정글에서 조용히 삶을 마쳤다.
이들이 하나같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것과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이들의 죽음이 자국민뿐 만 아니라 세계인민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보장하고, 안전을 보장했다는 것이다.
후세인이 제거된 이라크의 상황만을 보더라도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민족간 학살과 대량살상 무기로 세계 평화의 위협이 되었던 이라크는 후세인 축출 4년 만에 지방선거를 무사히 치뤄 낼 정도로 민주주의가 서서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북한의 경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북한인민에 대한 인권유린과 핵무기를 이용해 전세계를 위협하는 행동은 김정일 정권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북한은 김정일 개인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정일 이외에 누구도 권력을 잡을 수 없는 사회임은 물론, 김정일에 관해서는 그 어떠한 비난도 허용되지 않는다.
사회주의 국가의 기본 조직이라 할 수 있는 당 조직은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김정일이 1973년 조직지도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 모든 권한과 결정권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김정일의 최측근이라 불리는 사람들도 수 십년 간의 검증기간을 거쳐 김정일에게 맹종하는 자들이라는 것이 확인된 사람들이다. 나치 정권 시절 괴벨스, 히믈러, 괴링 등이 그랬듯이 말이다.
지금 북한의 현실에서 김정일의 죽음은 북한의 변화에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슈테판버그 대령이 히틀러를 위해서가 아니라 조국 독일을 위해 행동하겠다던 장면을 떠올려 본다.
혹자는 김정일 축출 후 북한 내부의 혼란을 걱정하지만 어차피 겪어야 할 혼란이라면 김정일을 조기에 정권에서 몰아 내는 것이 주민들의 고통을 줄이는 길이 될 것이다.
김정일은 자연사 할 수 있고, 암살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국제심판대에 서게 될 수 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김정일의 죽음 혹은 제거가 북한의 개혁개방과 민주화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개인의 죽음이 역사에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은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비극일 것이다. 하지만 독재자의 죽음이 인류의 비극을 멈출 수 있다면 그것은 그 때문에 고통 당하는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에게는 축복이 될 것이다. ‘작전명 발키리’는 지구상에서 독재가 종식되기를 기대하는 이들의 염원을 모아 만든 영화이다.
북한에서는 이미 한국 영화나 드라마가 알판(VCD, DVD)으로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그 알판 사이에 바로 이 영화가 들어간다면 주민들이 어떤 느낌을 받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의 마지막에 ‘그들은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란 문구가 나온다. 실패한 작전이었지만,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독일 국민은 역사적 양심의 가책을 덜 수 있었다.
우리에겐 북한민주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노력이 햇볕정책이라는 이름으로 독재와 공존하고자 했던 남쪽 통치집단에 대한 북한주민의 원망과 우리 양심의 가책을 덜어줄 것이다.
만약, 김정일을 제거하기 위한 북한 내부의 반체제 단체의 시도가 영화화 된다면 그 결말은 성공이기를 진심으로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