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무엇으로 증명할 것인가?”
여기서 “표지標識”는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 자녀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자신을 세상 사람들과 구별하기 위해서 반드시 가져야하는 두드러진 특징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에는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라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에는 “내 하나님은 맹세의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이름을 불러줄 때마다 마음이 뭉클 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항상, 언제나, 분초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또 당신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을 위해 맹세하십니다.
한번 한 맹세는 절대로 잊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희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듯이 아무리 크고 많은 대가를 치르게 된다 할지라도 절대로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돌이키지도 않으십니다. 가장 알맞은 때가 이르게 되면 가장 이상적으로, 반드시, 무조건 이루어주십니다. 그들은 둘 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위해서 거룩하게 구별된 제사장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그들이 결혼했습니다. 제사장 가문에서 출생했고, 제사장 가문 출신끼리 결혼했다는 사실은 당시로서는 이중적인 영광이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대단히 부러워할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의인δὲ δίκαιοι들”이었습니다. 사실 “기록된바 의인은 없다. 하나도 없다.”(롬3:10)라는 증거에 따르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설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다. 차별이 없다.”(롬3:21-22)라는 증거대로,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기꺼이 당신 자신을 거룩한 희생 제물로 내놓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완벽한 의를 덧입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설 수 있을 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본성적이고 본질적으로 또 율법적으로 볼 때 의인이었다기보다는 의의 유일한 기준이 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의인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자신의 전부를 온전히 헌신한 경건한 믿음의 사람들에게만 붙여졌습니다. 성민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가장 탁월한 칭찬이었습니다. 누구나 다 듣고 싶었던 이상형理想型이었습니다. 그들은 또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고, 당부하고, 지시한 권위 있는 계명ἐντολαῖς들을 빠짐없이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옳고, 정당하다고 여기시는 규례δικαιώμασιν들을 지켰습니다.
인위적인 요소가 완전히 배제된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계명과 규례 곧 명령과 생활 규범들을 온전히 지켰습니다. 그들은 또 흠이 없는ἄμεμπτοι 사람들이었습니다. 비난이나 책망을 받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거룩하신 하나님은 물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하나도 빠짐없이 지켜보고 있었던 주변 사람들에게까지도 인정과 칭찬을 받았습니다. 참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런 그들에게는 한 가지가 없었습니다. 성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축복인 동시에 면류관, 미래와 희망, 자랑거리, 기업으로 믿고 있던 자식이 없었습니다.
유대 랍비들은 하나님 앞에서 파문을 당할 수 있는 일곱 가지 유형을 나열한 목록의 서두에서 유대인이면서도 아내가 없고, 아내가 있으면서도 자식이 없는 사람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성민 이스라엘은 이를 대단한 부끄러운 일로 여겼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형벌이라고까지 여겼습니다. 탁월한 신학자인 그William Barclay의 주장에 따르면, 합법적으로 이혼할 수 있는 사유事由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이미 자식을 낳을 가능성을 거의 기대할 수 없는 노인 중에서도 노인이었습니다. 그들의 사이에서 아이가 생겼습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대단한 화제 거리가 될 일이었습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일이었습니다. 수군거릴 일이었습니다. 아내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이 대단히 싫었습니다. 수군거리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다섯 달 동안이나 숨어 지냈습니다. 그러면서도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눅1:25)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베풀어주신 놀라온 은혜와 자비와 축복이라고 여겼습니다. 시간이 흘러서, 이윽고 해산할 달이 다가왔습니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아주 순조롭게 건강한 아기를 낳았습니다. 소식을 전해들은 이웃과 친척들이 한달음에 몰려왔습니다.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태어난 아이를 신기한 듯 구경했습니다. 마음을 다해서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팔일이 더 지났습니다. 유대인의 전례에 따라서 할례를 행할 날이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은밀하지만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자식을 달라고 기도해 왔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겠다고 말씀하시자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었던 아버지는 그때까지 혀가 굳어버린 채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친척들은 그의 이름을 아이의 이름으로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순간, 어머니는 아니라고 외쳤습니다. 정말로, 절대로 아니라고 외쳤습니다. 강력하게 거부했습니다. “요한Ἰωάννης”이라고 해야만 한다고 마치 절규하듯 외쳤습니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이었습니다. 실제로, “요한”의 출생은 노인중의 노인이 될 때까지 자식이 없었던 부부에게는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는 은혜였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요한의 출생과 함께 그동안 굳어 있었던 혀가 풀려서 말을 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에 곧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풀리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은혜였습니다.
장차 요한의 메시지를 듣고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가득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될 것이기 때문에 더욱 큰 은혜였습니다. 무엇보다 요한의 출생은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구원을 위해서 당신 자신을 거룩한 희생 제물로 내놓으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고하기 때문에 은혜들 중에서도 은혜였습니다. 이렇게 요한은 출생하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거룩한 도구였습니다. 오랫동안의 광야 생활을 거쳐 회개의 세례를 외치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여자가 낳은 수많은 선지자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거듭났습니다.
자신의 생애 전체를 통째로 다 투자해서 “은혜 위에 은혜”(요1:16b) 직역하면 “은혜를 잇는 은혜” 곧 한 번 받은 은혜가 능력을 다 발휘하면 또 다른 은혜가 조금도 쉬지 않고 충만하게 넘쳐흐를 수 있도록 거룩한 통로가 되어주기 위해서 세상에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증거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의 은혜가 역할과 능력을 다하게 되면 전혀 다른 색깔의 또 다른 은혜가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하게 부어질 수 있도록 이어주는 거룩한 통로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쉬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는 충만한 은혜 가운데서 잉태했습니다. 은혜 가운데서 태어났습니다. 은혜 가운데 살았습니다. 궁극적인 은혜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했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하게 부어진 은혜를 감춰놓고 혼자만 독차지하지 않았습니다. 혼자만 누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탐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타락한 종교 장사치들로부터 압제와 착취를 당하며 목자 없이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었던 불쌍한 영혼들에게 쉬지 않고 끊임없이 흘려보냈습니다. 그는 이렇게 존재하는 자체가 은혜였습니다. 은혜는 그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는 가장 독특하고 강력한 표지였습니다.
그Abraham의 결정적인 표지는 믿음이었습니다. 수없이 흔들리면서도 믿음만큼은 놓지 않았습니다. 그Isaac의 표지는 순종이었습니다. 믿고 의지했던 아버지가 자신을 마치 짐승이라도 되는 것처럼 각을 떠서 희생 제물로 바치려는 순간에도 묵묵히 순종했습니다. 그Jacob의 표지는 하나님의 임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자 권리를 스스로 차지하기 위해서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도망자 신세로 전락한 그와 함께 해주셨습니다. 오랫동안 종살이하던 삼촌의 집에서 도망치듯 나올 때도, 자식들이 끔찍한 살육을 벌인 이방인의 땅에서 도망쳐 나올 때도 함께 해주셨습니다.
그Joseph의 표지는 살아내기였습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젖 먹던 힘까지도 다 동원해서 제아무리 몸부림쳐도 스스로는 절대로 빠져나올 수 없는 지극히 절망적인 형편 곧 끝없는 나락奈落으로 떨어졌습니다. 지옥의 땔감 정도로나 치부置簿해 왔었던 이방인의 손에 팔렸습니다. 당시로서는 기능이 다하게 되면 언제든지 아무렇게나 버려지게 되는 무수히 많은 도구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던 종으로 전락했습니다. 억울하고도 더러운 누명을 뒤집어썼습니다. 옥에 갇혔습니다.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혀 졌습니다. 하나님마저도 잊어버리신 것 같았습니다.
통곡하며 “제발, 제가 왜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처지에 아무렇게나 던져져야 하는 지 딱 한 마디만 해주소서!”라고 외쳐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마디는커녕 어떤 반응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믿음을 놓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힘겨운 지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지만 이를 악물고 버티며 살아냈습니다. 그의 표지Moses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온유溫柔였습니다. 지극히 작은 문제만 있어도 참지 못하고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는 것은 물론 심지어 돌을 들어서 쳐 죽이려고 달려들었던 성민 이스라엘에 대해서 끊임없이 참고, 참고, 또 참았습니다.
그David의 표지는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성민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던 전장을 찾았습니다. 당시, 성민 이스라엘은 적장 골리앗의 위협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누구하나 맞서 싸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의기양양한 골리앗이 하남을 경멸하고 모독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는 달랐습니다. 자신에게는 최고의 무기였던 물맷돌 하나 달랑 들고 골리앗과 맞섰습니다. 단 하나뿐인 생명을 걸고 싸웠습니다. 당당하게 완벽한 승리를 거뒀습니다.
그John의 표지는 사랑이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구원을 위하여 견디기 힘든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보고 기념하는 사순절 절기 세 번째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표지는 누구도 거절할 수 없는 절대 주권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절대 능력과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탁월한 섭리로 지으신 세상을 통치할 수 있는 자기 부인입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의 구원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수치와 조롱과 멸시를 당하셨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벌레가 되셨습니다. 젖 먹던 힘까지 다 동원해서 의지했던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으셨습니다. “여호와여, 제발 멀리 떠나가지 마소서. 오 나의 힘이여, 어서 오셔서 나를 도와주소서. 칼에 맞아 죽지 않게 나를 구해 주시고, 사나운 개들의 입으로부터 내 목숨을 건져 주소서. 사자의 입에서 나를 구출해 주시고, 들소의 뿔에 받혀 죽지 않게 나를 보호해 주소서.”(시22:19-21)라고 부르짖었지만 거절 당하셨습니다. 모든 뼈들은 모두 어그러졌습니다. 마음은 밀랍 같이 녹았습니다. 몸은 모든 뼈 하나하나 다 셀 수 있을 만큼 깡 마르셨습니다.
질그릇 조각 같이 깨졌습니다. 혀는 입천장에 달라붙었습니다. 죽음의 진토塵土 속에 아무렇게나 버려졌습니다. 그럼에도 당신에게 주어진 죽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과연 어떻습니까? 저와 여러분의 표지는 과연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르겠다는 무리들을 향해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눅9:23-24)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당신을 따르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목숨까지도 포기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믿음의 자세가 삶의 두드러진 특징 곧 표지標識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은 정말 간절하게 부르짖어 구했던 은혜, 구하지 않았지만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한 하나님께서 값없이 선물로 부어주신 은혜,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은혜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소중한 목숨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기꺼이 순종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것을 통해서 이미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하게 부어져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혼자만 누리지 않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흘려보내는 복된 사순절 절기,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찐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증명해 보이는 곧 자신의 표지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복된 사순절 절기, 무엇보다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구원을 위해서 하늘의 높은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나타나셔서 모진 조롱과 멸시와 고난을 당하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앞서가신 길을 따라가는 복된 사순절 절기를 보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