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낮 12시 서울 강남구 논현동 미즈러브비뇨기과.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진료대기실에 있던 한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여성이 머뭇머뭇하더니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뛰어간다.
의사도 여자, 수술실에서 수술을 받던 다른 1명을 포함한 환자 대부분도 여자다.
남자가 앉아있기 어쩐지 민망한 이 병원은 산부인과가 아니라 김경희(40) 원장이 운영하는 여성전문 비뇨기과다.
김 원장은 남성들만 들락날락하는 ‘은밀한’ 장소로 인식됐던 비뇨기과에 여성들이 드나들게 만들었다.
요즘에는 병원진료 외에도 여러 언론매체에 고정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지난 2016년에는 ‘맘에 드는 구두가 섹스보다 낫다면?’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
병원 일도 바쁜데 그녀가 이렇게 분주하게 뛰는 이유가 뭘까?
◆비뇨기과는 정문이 아닌 옆문으로 출입하는 곳?
‘여성비뇨기과 전문의’로서의 생활이 순탄하진 않았다.
비뇨기과는 “문을 앞이 아니라 옆으로 내야 들어온다”는 농담이 있을 만큼 남성들에게도 은밀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한 비뇨기과에서 ‘여성 클리닉’을 운영하다 서울시 동부시립병원 비뇨기과 과장으로 옮기게 됐어요.
주위에서 걱정이 많았죠.
대학병원을 빼면 국내에서 여성 비뇨기과 과장은 처음이었으니까요. 더구나 환자도 대부분 남자잖아요.”
부임 초기에는 환자가 하루 7명쯤에 불과했다.
환자의 대부분인 남성들이 여의사에게 진료받기를 꺼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신기술이던 KTP레이져수술(전립선수술)을 척척 해내는 등 활약을 보이자
김 원장을 찾는 환자는 하루 70∼80명으로 늘었다.
그렇게 10년 넘게 비뇨기과에서 수천명의 환자들을 진료하며 임상경험을 쌓아갔다.
◆사회가 발전한 만큼 성의식도 세련돼야
김 원장은 성(性) 관련 지식을 널리 알리는 일에 뛰어든 것은
비뇨기질환을 앓으면서도 갈 곳이 없어 쉬쉬하는 여성들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많은 여성들이 배뇨장애나 성기능장애 등 비뇨기 질환을 가지고도 비뇨기과를 찾지 않았다.
여성들이 마음 놓고 성기능 장애 등 성적질환을 상담할 수 있는 공식적인 경로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여성들은 부끄러움 때문에 웬만하면 병원에 안 온다”며
“비뇨기질환을 앓고도 내과, 산부인과, 피부과 등을 돌고 돌다 결국에는 비뇨기과로 오곤 했다”고 말했다.
고민한 끝에 그녀는 2005년부터 언론매체에 성생활과 성문화에 대한 칼럼을 기고하면서 올바른 성관련 지식을 전파하기로 했다.
그는 “성에 관한 것은 조금이라도 과하거나 솔직하다 싶으면 무조건 나쁘게 받아들이는 것을 고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비뇨기과를 찾는 여자들의 질문도 다양해지는 추세”라고 말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성병이라는 진단을 하면 화를 내며 나가는 경우가 많았던 여성들이 최근에는 성병에 관한 질문은 물론이고,
남녀 성기의 모양, 성생활 등을 많이 물어본다고 한다.
예전에는 기혼자들에게만 들을 수 있었던 고민들을 이제는 미혼자에게 듣는 일이 늘어난 것도 변화 중의 하나다.
그는 “평균 결혼연령이 높아지면서 요즘에는 30대에도 미혼인 여성들이 흔하다”라며
“혼인 연령이 높아져 혼전에 성관계를 갖는 경우가 늘면서 상담도 함께 증가하는 것 같다”고 했다.
◆손잡고 상담받는 부부·커플도
‘여성전문’ 비뇨기과라고 해서 남성이 출입 못 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여성전문’이란 말이지, 남자가 못 오는 건 아니에요.
비뇨기과는 원래 남자환자를 많이 다루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어요”
칼럼을 쓰기 시작한 지 5년, 여성전문 비뇨기과를 개원한지도 3년 가까이 됐다.
그녀가 바라듯 지금껏 금기로 여겨졌던 성문화가 세련돼가는 탓일까?
김원장의 비뇨기과를 찾는 고객 대부분은 여자지만 요즘에는 남녀가 같이 와서 치료받고 상담하는 일도 부쩍 늘었다고 한다.
“성에 대한 트렌드가 바뀌었잖아요. 자유롭게 양지에서 성을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사회가 더 건강해지지 않을까요.”
출처:구경우 인턴기자·경상대 임산공학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