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링* 외 1편
박성진
수도관의 방관이 고장난 것일까
온종일 욕조 속에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꼭지를 단단히 틀어막아도
백 밀리리터의 수압을 견뎌내지 못하는
그녀, 쉰내 나는 생을 안고 있는 듯
배수구가 불그스름하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녹내음이
집안 전체를 덮어버릴 것만 같아
나는 펜치로 그녀의 음부를 분리했다
우수수 떨어지는 녹가루 속에 튀어 오르는
고무 패킹 하나
얼마나 집을 뛰쳐나가고 싶었으면
저 높은 천장까지 솟구치는 것일까
바닥에 흩어진 기억들을 더듬어 보는 동안
그녀의 신음소리가 들려올 것 같은 아찔한 저녁
*슬링 : 요실금 수술
하늘에 걸린 지도
하늘에 지도가 걸려 있더라
비단으로 짠 드레스같은 금수강산 펼쳐져 있더라
소년의 가슴에 별을 심어주던
문지기 되어 꿈쩍도 않고 작은방 지키던 한국도 걸려 있더라
보증으로 망한 살림
빚 못 갚아 빨간 딱지 집안 가득 붙여진 날
풍선 속에 지도 한 장 신주 모시듯 고이 접어
눈물 한움큼 섞어 저 머얼리 날려 보내며
다른 소년 꿈 되길 기원하길 여섯 해
향림사* 벤치에 누워 푸른 하늘 보자 하니
어릴 적 날려보낸 지도 그 곳에 놓여져 있더라
하늘을 찔러대는 저 거목이 풍선을 삼켜버린 것인가
구멍난 양말 속에 행여 산타할아버지 선물 못 줄까
정성스럽게 꿰매어 대던 가느다란 실같이
쭈욱 쭉 뻗은 가지들이 그려낸 수맥
제비나비 산제비나비 산호랑나비 표범나비 왕나비
꽃밭 잘못 들어선 단풍들이 그려낸 지맥
묵묵히 그려진 대한민국은
구석진 곳 한 소년 꿈 아닌
이 곳 지나는 이들 꿈으로 박혀 있더라
별들도 가만가만 내려와 둘러보는
우리 강산 내 강산 걸려 있더라
새벽하늘 속에 푸른빛으로 굳건히 걸려 있더라
*향림사: 순천시 가곡동에 소재한 절
1985년 광주광역시 출생-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순천대학교 국어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 석사졸업-2013년 『애지신인문학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