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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三國志)의 병법(兵法) 풀이 (1 - 13) *
[영한대역 만화 삼국지(三國志 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 국내 및 세계 최초
- 출처 : 영한대역 칼라 만화 삼국지(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 저자 : 21세기 영어교육연구회(21st C.E.T.A.)
- 출판사 : (주)파우스트 칼리지
1. 가도멸괵(假道滅虢)의 계략
길을 빌려 괵(虢)나라를 멸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
괵(虢)나라는 중국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아우인 괵중이 세운 제후국(諸侯國)인데, 진(晉)나라의 침입으로 괵나라가 멸망함으로써 생겨난 이야기로 《천자문(千字文)》에 실려 있는 성어(成語)이다.
중국 춘추시대 이웃나라인 우(虞)나라와 괵나라는 진나라와 경계가 서로 맞닿아 있었다. 진나라의 헌공(獻公)이 괵나라로 쳐들어가려고 순식(荀息)에게 그 의견을 묻자, 순식은 '괵나라로 가려면 우나라를 통과해야 하므로 우나라 왕에게 옥과 말을 보내 길을 빌려달라고 해야 한다'고 하였다. 순식의 계략에 따라 헌공은 우나라로 옥과 말을 보냈는데, 욕심 많은 우나라 왕은 재상인 궁지기(宮之寄)와 논의하였다.
진(晉)나라가 괵(虢)나라를 치기 위해 우(虞)나라에 길을 빌려줄 것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 이때 우(虞)나라의 대신 궁지기(宮之寄)는 길을 빌려주면 우(虞)나라는 망하게 될 것이라며 결사적으르 반대했다.
그러나 우공은 진나라에 걸을 빌려주었고, 결국 괵나라와 우나라가 모두 멸망했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진군이 괵나라를 멸망시킨 뒤, 급한 속도로 회군해 오니 우공이 마중을 나갔다. 우나라 도읍의 교외에 주둔하고 있던 진군은 우공이 마중 나온 틈을 타서 돌연 기습을 했다. 우공은 방심하고 있다가 손 한번 써 보지 못하고 포로가 되고 말았다. 결국 우나라가 이렇게 간단하게 망하니 진나라는 길을 빌려달라는 핑계로 두 나라를 삼킨 일석이조의 전과를 거둔 셈이 되었다. 가도멸괵(假道滅虢)은 그 본래의 뜻이 작은 나라가 적(敵)의 시야에 끼여 위협을 받을 때, 그 틈바구니에서 강한 세력을 이용해 상대를 제압하고 기회를 노려 강한 세력을 기습하는 것을 가리킨다. 결국 가도멸괵(假道滅虢)이란 그 진실한 군사적인 의도를 숨기기 위한 구체적인 수단으로 이용되는 계책인 셈이다.
2. 관문착적(關門捉賊)
- 문을 닫아걸고 도적을 포획하라
關門捉賊 小敵困之, 剝, 不利有攸往.
문을 모두 걸어 잠가 집 안으로 들어온 도적을 잡는 계책이다. 얼마 되지 않는 적을 포위해 잡을 때 사용한다. 적의 행동이 민첩하고 궤사에 능할 때 급히 추격하거나 멀리 쫓아가는 것은 불리하다. 이는 “적이 변화무쌍하게 변할 때 움직이는 것은 좋지 않다”는 뜻을 지닌 〈박괘(剝卦)〉의 ‘박(剝), 불리유유왕(不利有攸往)’ 괘사와 취지를 같이한다.
"문을 걸어 닫고서 소탕하라." 원문에 보면 적(敵)을 만나면 즉각 포위하여 섬멸하라고 나와 있다. 그러나, 뿔뿔이 름어져 도망가는 적(敵)을 너무 깊숙이 쫓아가지는 말라고 했다.
적(敵)을 잡을 때 반드시 문을 잠그듯 포위를 단단히 하라는 것은 적(敵)이 도망가는 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들이 도망가서 다른 적(敵)에게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또 도망가는 적(敵)을 지나치게 추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그들이 유인술을 쓰고 있지나 않은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이 경우의 적(敵)이란 갑자기 습격해오는 기습병이나 불시에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유격대를 가리키는 것이니, 그들의 목적은 아군을 피로하게 하여 그들이 뜻하는 바를 달성하는 데 있다.
3. 격장지계(激將之計)
장수의 감정을 자극시켜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계책
상대 장수의 감정을 결정적으로 자극시켜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계책. 흔히 성격이 급한 적장(敵將)을 상대로 사용한다. 적벽대전 직전에 제갈량이 강동으로 손권을 방문하여 조조에게 항복하라고 권하니까 손권왈 “왜, 유비는 항복하지 않느냐?” 그러자 제갈량이 말하길 “우리 유예주는 벽성들에게 추앙받는 사람인데, 어찌 항복을 하겠느냐?" 라며 손권의 심기를 건드렸다. 대표적 인 격장지계(激將之計)중의 하나다.
나관중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중 적벽대전 직전의 대목이다. 조조는 강동의 손권에게 유표가 지배하고 있는 형주의 땅을 나누자고 제안하면서 만약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대군을 일으켜 강동을 취하겠다며 사실상 항복을 요구한다. 조조의 막강한 군사력에 두려움을 느낀 손권의 신하들은 조조에 대항하기 보다는 항복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이에 유비의 군사 제갈량은 손권을 찾아가 “자신이 없으면 지금이라도 조조에게 투항하는 것이 그나마 목숨을 보존하는 길”이라고 권한다.
그러자 손권은 “왜 유비는 투항하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제갈량이 답하기를 “조조는 천자를 핍박하고 조정을 농락하는데, 어찌 한실의 후예인 유비가 역적에게 투할할 수 있겠느냐”며 손권의 심기를 건드렸다. 여기에 손권의 부인과 대도독 주유의 부인을 취하겠다는 조조의 싯구를 전하니, 화가 치민 손권은 마침내 조조와의 일전을 결정하고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한다. 이로써 적벽대전의 서막이 시작된 것이다. 장수의 감정을 자극시켜 의도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계책을 이르는 ‘격장지계(激將之計)’의 유래다.
4. 공성계(空成計)
아군이 열세일 때 방어하지 않는 것처럼 꾸며 적을 혼란에 빠뜨리는 전략.
(1) 36계(計) 가운데 제32계이다. 빈 성으로 적을 유인해 혼란에 빠뜨리는 계책을 말한다. 실력이 없으면서도 허세를 부리는 허장성세(虛張聲勢)와 통한다.
《삼국지(三國志)》 《촉서(蜀書)》 〈제갈량전(諸葛亮傳)〉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제갈량이 촉나라 군대를 양평관에 주둔시키고, 대장군 위연(魏延)과 왕평(王平) 등으로 하여금 위(魏)나라 군대를 공격하게 할 때의 일이다. 군대를 모두 다른 곳으로 보냈기 때문에 제갈량이 주둔하고 있는 성에는 병들고 약한 일부의 병사들만 남아 있었다.
이때 위의 대도독 사마의(司馬懿)가 15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성으로 쳐들어 왔다. 이 소식을 들은 제갈량은 군사들로 하여금 성 안의 길목을 지키게 하고, 성문을 활짝 열어둔 채 20여 명의 군사를 백성들로 꾸며 청소를 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자신은 성 밖에서 눈에 잘 띄는 적루(敵樓)의 난간에 기대앉아 웃음 띤 얼굴로 한가롭게 거문고를 뜯었다.
대군이 몰려와도 아무 일 없는 듯 청소를 하고 있는 백성들과 거문고를 뜯고 있는 제갈량을 본 사마의는 제갈량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몰라 군사를 거두고 물러가 버렸다.
《삼국지연의》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제갈량이 거문고를 뜯어 사마의를 물리쳤다는 탄금주적(彈琴走敵)과 뜻이 같다. 거문고를 울려 적을 쫓아냈다는 뜻이다.
(2) 제갈량(諸葛亮)이 퇴각할 때의 일이었다,사마의(司馬懿)의 십수만 병력이 밀려오는데 휘하에는 몇 천 병력밖에 없었다. 제갈량은 성문을 활짝 열고 성루에 올라가 악기를 타며 태연해 하는데, 이를 본 사마의가 ”제갈량은 평생에 위험한 모험을 질대로 하지 않았다. 그가 이렇게 성문을 크게 열어 놓은 것은 반드시 매복이 있는 것이다. 우리 군마(軍馬)가 만일 성안으로 공격해 들어갔다가는 반드시 또 그의 계교에 빠질 것이니, 속히 물러나느니만 못하다“ 하고 후퇴했다.
제갈랑은 위군(魏軍)이 물러가는 것을 보고 설명하기를, “사마의는 내가 평생에 위험한 노릇을 않는 것을 아는 까닭에 이 같은 모양을 보고 복병이 있을까 의심하여 물러간 것이다. 내가 이번에는 부득이하여 시도해 본 것이다. 나도 큰 위험을 안고 공성계(空成計)를 써본 것이다. 만일 상대가 사마의가 아니었다면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 함부로 계교를 쓸 일은 아닌 것이다."
심리적인 싸움에서 공성계(空成計)같은 계책이란 최후의 절대절명한 위기에 한 번쯤 시도해 볼 일인 것이다.
5. 구호탄랑지계(驅虎呑狼之計)
- 호랑이가 늑대를 집어 삼키는 계책
(1) 여포가 유비를 도울 때 일이다. '이호경식지계'를 이용하여 여포와 유비를 갈라놓고 서로 싸우게 만들려 했으나 유비가 받아들이지 않자 순욱이 재차 내놓은 계책이 구호탄랑지계(驅虎呑狼之計)이다.
‘이호경식지계(二虎競食之計 - '두 마리 호랑이가 먹이를 다투도록 만드는 계책'이라는 뜻으로, 대적하는 상대의 갈등을 조장하여 서로 싸우게 함으로써 이득을 취하는 계책을 말함.)’를 이용하여 유비와 여포의 사이를 틀어지게 하려고 하였으나 유비가 받아들이지 않자 순욱이 재차 내놓은 계책이 구토탄랑지계(驅虎呑狼之計)이다.
조조 : 그 계책이 틀어질 모양이나 어찌하면 좋겠소?
순욱 : 그러면 또 한 가지 계책이 있는데 ‘구호탄랑지계(驅虎呑狼之計)'가
있습니다.
조조 : 그것은 어떤 계책이오?
순욱 : 비밀리에 사람을 원술에게 보내어 '유비가 남군을 치겠다는 표문을 올렸다.’고 알리면, 원술은 필시 노하여 유비를 치려고 할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유비에게 원술을 치라는 조칙을 내리는 것입니다. 그리하 여 그들 둘이 맞붙어서 싸우게 되면 여포는 반드시 다른 맘을 먹고 유비를 공격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구호탄량지계(驅虎呑狼 之計)’ 즉 ‘호랑이가 늑대를 집어 삼키는 계책’ 입니다.
조조는 매우 기뻐하며 먼저 사람을 원술에게 보내 유비의 표문을 알리고, 이어 황제의 조서를 유비에게 내려 보냈다.
(2) 이호경식지계(二虎競食之計)라고도 한다. 《사기(史記)》의 〈장의열전(張儀列傳)〉에 변장자(卞莊子)가 두 마리의 호랑이를 잡은 이야기가 나온다. 변장자가 호랑이를 찌르려고 할 때에 그가 묵고 있던 여관에서 심부름하는 아이가 말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두 호랑이가 소를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고기를 먹어 보고 맛이 있으면 반드시 서로 다툴 것이고, 다투게 되면 반드시 싸울 것이며, 싸우게 되면 큰 놈은 다치고 작은 놈은 죽을 것이니, 다친 놈을 찌르면 단번에 두 마리 호랑이를 잡았다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변장자가 그 말을 따라 기다리니, 과연 두 마리 호랑이가 싸워 큰 놈은 다치고 작은 놈은 죽었다. 변장자는 다친 놈을 칼로 찔러 단번에 두 마리의 호랑이를 잡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서도 이 계책이 언급된다. 여포(呂布)가 서주(徐州)에 주둔한 유비(劉備)에게 몸을 의탁하자, 조조(曹操)는 두 사람이 힘을 합쳐 자신을 공격해올 것을 두려워하였다. 이에 순욱(荀彧)은 무력을 쓰기보다는 유비와 여포가 서로 싸우게 하는 계책을 써야 한다고 말하였다.
"황제에게 청하여 유비를 서주목(徐州牧)으로 임명하게 하고, 여포를 제거하라는 밀서를 내리십시오. 유비가 여포를 제거하면 유비는 한쪽 팔을 잃는 셈이 되어 처치하기 쉬워질 것입니다. 유비가 여포를 제거하지 못하면 여포가 반드시 유비를 죽일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두 마리 호랑이가 먹이를 두고 다투게 만드는 계책입니다(此乃二虎競食之計也)."
그러나 유비는 이 계책에 말려들지 않고 오히려 밀서를 여포에게 보여주었다. 이렇게 볼 때, 이호경식계는 상대방의 사이를 이간하는 이간계(離間計)에 속하며, 남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이는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計)와도 비슷하다.
6. 금선탈각(金蟬脫殼)의 계교
- 매미가 허물을 벗듯 달아나라. 즉, 적(敵)과 싸움을 계속하면서, 몰래 정예 부대를 다른 곳으로 은밀하게 빼돌려 또 다른 적(敵)을 습격하는 계책이다.
金蟬脫殼 存其形, 完其勢, 友不疑, 亂不動, 巽而止, 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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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가 허물을 벗듯 달아난다는 뜻으로, 은밀히 퇴각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계책이다. 먼저 진지의 원래 모습을 보존하고, 아군의 방어하는 태세를 유지한다. 그래야 우군도 의심하지 않고, 적도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이를 틈타 은밀히 주력을 이동시켜 위기를 벗어난다. 이는 “사물이 길들어져 순해지면 폐단이 그치니 이를 고(蠱)라고 한다”는 뜻을 지닌 〈고괘(蠱卦)〉의 ‘손이지(巽而止), 고’ 단사와 취지를 같이한다.
진지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방어태세를 갖추어 우군에게 의심하는 마음이 들지 않도록 하고, 적(敵)도 감히 함부로 침범하지 못하도록 한 다음, 적(敵)이 어리둥절할 때 몰래 주력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
이것은 벌레들이 과일을 파먹는 원리에서 활용한 것이다. 우군과 연합하여 적(敵)과 싸울 경우에는 적(敵)과 아군과 우군 세 당사자의 형세를 자세히 관찰하여야 한다.
만약 다른 곳에 제3의 적(敵)이 나타났으면, 진지가 그대로 있는 것처럼 위장한 다음 조용히 빠져나가야 하니, ‘금선탈각(金蟬脫殼)’의 계책은 단순히 도망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대를 분할하여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동할 때는 기치와 장막을 그대로 두고 징과 북을 여전히 울려 전투태세의 본래 모습이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처럼 보여 적(敵)이 감히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고, 우군에게도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금선탈각(金蟬脫殼)’이란 적(敵)과 싸움을 계속하면서, 몰래 정예 부대를 다른 곳으로 은밀하게 빼돌려 또 다른 적(敵)을 습격하는 계책이다.
7. 만천과해(瞞天過海)
- 하늘을 속여 바다를 건너라.
瞞天過海 備周則意怠, 常見則不疑, 陰在陽之內, 不在陽之外. 太陽, 太陰.
하늘을 속여 바다를 건넌다는 뜻으로 적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법을 동원해 승리를 거두는 계책이다. 통상 사람들은 스스로 준비가 철저히 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해이해지기 십상이다. 또 늘 보아오던 것에 대해서는 크게 의심하지 않는다. 비밀스러운 계책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 속에 감추어 있다. 결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이는 《주역》의 음양이론처럼 가장 공개적으로 드러난 행동 속에 가장 비밀스러운 계책이 담겨 있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
"눈을 속여 상대의 판단을 흐리게 하라." 원문에 보면 ‘군사적 방비가 지극히 주도면밀하고 철통같은 경우, 오히려 병사들의 투지는 해이해져서 적(敵)을 업신 여기기 쉽고, 평상시 늘 보는 것에 대해서도 쉽게 의심하지 않게 된다.' 고 적혀 있다.
암암리에 수행하는 작전이지만, 공개적인 작전 속에 포함되어 언뜻 보기에 공개적인 작전과 서로 모순, 상치되지 않는다. 이는 역리에서 음과 양이 서로 조화롭게 작용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몰래 수행하는 작전일수록 큰 성과를 얻어 야 하니 지엽적인 문제에 연연하여서는 안된다. 몰래 처리한다고 해서 밤중에 물건을 훔친다든지, 궁벽한 마을에서 사람을 죽이는 따위의 뻔히 눈에 보이는 어리석은 짓은 모사(謀士)가 할 일이 아닌 것처럼, 사기꾼의 수법은 대단히 엄밀하여 만천과해(瞞天過海)의 일종처럼 보인다.
즉, 상대가 이쪽을 절대적으로 믿게 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특성이 있다, 자연스럽게 믿도록 해 놓고, 상대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8. 미인계(美仁計)
- 미인을 이용해 유인하라
美人計 兵强者, 攻其將. 將智者, 伐其情. 將弱兵頹, 其勢自萎. 利用御寇, 順相保也.
미인을 미끼로 삼아 적을 유인하는 계책이다. 적이 강하면 적장의 공략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적장이 지혜로우면 심리적으로 접근해 그의 투지를 좌절시켜야만 한다. 적장의 투지가 약해지면 병사들의 사기도 땅에 떨어지고, 전투력 또한 위축된다. 이는 “남이 둘 사이를 이간하지 못하도록 활용함으로써 화목하게 지내면서 서로 보호한다”는 뜻을 지닌 〈점괘〉의 괘사를 역으로 활용한 것이다.
삼십육계에서 보면 31계가 미인계(美人計)이다. 그 원문에 “점괘에서 제시하기를 자신의 복수의지를 깊숙히 감추고. 상대의 내부에 있는 허점을 노려 그들을 약화시키면, 국면을 호전시켜 존립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31계는 패전계에 속해 있다. 이 계책은 패전상태에 있거나 지극히 불리한 환경에 직면됐을 때에 쓰는 계책이다. 패배를 반전시켜 승리로 이끌고 불 리한 조건을 역이용해서 유리하게 만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월이 아니다.
미인계(美人計)는 간단히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사용하기가 아주 복잡한 계책이다.
그러나 일국의 운명을 뒤바꿀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은 여자가 나타나면 성공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이 미인이 지적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면, 성공은 거의 불을 보듯이 확실해진다. 최후로 임무를 수행할 의지를 갖추고 있다면 이미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점에서 미인계의 귀매괘는 젊은 여자가 시집가는 것을 뜻하지만, 정상적인 혼인이 아니라는 데 묘미가 있다. 성(性)을 무기화한 유일한 계책이다.
9. 반간계(反間計)
- 적(敵)의 첩자를 회유한 뒤 역이용하라
反間計 疑中之疑, 比之自內, 不自失也.
적(敵)의 첩보망을 역이용하는 계책이다. 아군의 내부에 적(敵)과 접선하고 있는 오열(五列)이 있을 때 이를 뛰어넘는 새로운 오열을 만든다. 적(敵)이 침투시킨 첩자를 회유해 아군을 위해 일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는 “안에서 군주와 친하게 지내며 자신의 역할을 잃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 〈비괘(比卦)〉의 ‘비지자내(比之自內), 부자실(不自失)’ 효사와 취지를 같이한다.
간(間)이라고 하면, 적(敵) 상호간에 의심하고 꺼리도록 하는 것. 반간(反間)이라고 하면, 적(敵)의 첩자를 역이용하여 적(敵)의 상호간을 이간시키는 것을 말한다.
손자병법에서도 반간(反間)이라고 하면, 적(敵)의 간첩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반간계(反間計)를 운용하는 데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용법이 있다. 한 가지는 적(敵)의 관리를 매수하여 아군의 간첩으로 만드는 일이다. 다른 한 가지는 바로 옆에 적(敵)이 있는 줄 뻔히 알면서 모르는 적하며, 거짓 정보를 흘려서 돌아가 보고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 일종의 장기취계(將機就計)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장기취계(將機就計)- 기회를 잘 이용해 계책을 써야 한다는 것을 의미. 즉 계책을 쓸 좋은 기회는 조금만 늦추면 사라지고 말기 때문에 추호의 유예나 망설임도 있서는 안 된다는 뜻.
10. 부저추신(釜底抽薪)
- 문제의 근원부터 해결하라
釜底抽薪 不敵其力, 而消其勢, 兌下乾上之象.
솥 밑의 장작을 꺼낸다는 뜻으로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고자 할 때 사용하는 계책이다. 적(敵)의 예봉과 직접 맞닥뜨리지 않고 적(敵)의 기세를 꺾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다. 이는 물을 상징하는 태(兌)가 밑에 있고 하늘을 상징하는 건(乾)이 위에 있어 “부드러움으로 굳셈을 제압한다”는 뜻을 지닌 〈이괘(履卦)〉의 태하건상(兌下乾上) 괘상과 취지를 같이한다.
"힘으로 이길 수 없거든 적의 기세를 떨어뜨리는 방법을 써라!” 원문에 보면, 힘으로 적(敵)을 상대하여 이길 수 없거든 적(敵)의 김을 빼라고 되어 있다. 즉 비유해서 말한다면, 둘이 끓는 것은 일종의 기세에 의한 것이니 그것은 바로 불타는 기세다.
끓는 물과 뜨거운 물이 합쳐진 힘은 양(陽) 중의 양으로써 그 기세를 누구도 당할 수 없다. 위료자가 말하기를, “사기(士氣)가 왕성할 때는 적(敵)과 부딛혀 싸우고, 사기(士氣)가 떨어지거든 달아나라.”고 하였으니, 기세야말로 긴요한 힘이었던 것이다.
적(敵)의 기세를 누그러뜨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상대가 싸울 뜻을 잃도록 만들어야 한다. 기세 있게 끓는 물통의 뚜껑을 열어 김을 빼는 것처럼 적(敵)의 투지를 약하게 만들어야 된다는 것이다.
11. 상옥추제(上屋抽梯)
- 지붕 위로 올린 뒤 사다리를 치워라
上屋抽梯 假之以便, 唆之使前, 斷其援應, 陷之死地. 遇毒, 位不當也.
지붕 위로 올려놓은 뒤 사다리를 치운다는 뜻으로 적(敵)을 함정에 빠뜨리는 계책이다. 짐짓 허점을 보여 적이 유리한 상황에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고, 적이 맹목적으로 전진하게 사주하고, 연후에 적의 앞뒤를 끊어 고립무원의 사지에 빠뜨린다. 이는 “독을 품고 있는 마른 고기를 씹는다”는 뜻을 지닌 〈서합괘(噬嗑卦)〉의 ‘우독(遇毒), 위부당(位不當)’ 효사와 취지를 같이한다.
“나무에 올려 놓은 후 흔들어라.” 일부러 파탄지경에 이른 것처럼 보여 적(敵)에게 좋은 조건을 줌으로써, 아군 깊숙이 들어오도록 유인한 다음 선두 부대와 후위 부대를 끊어 적(敵)의 주력 부대를 헤어날 수 없는 사지에 빠뜨린다. 즉, 적(敵)의 식욕을 이용해 독이 든 고기를 먹게 하여 죽이는 것이다.
사(唆)란 적(敵)에게 조그마한 이익을 주어 유인하는 것이다. 만약 조그마한 이익만 주고 유인한 다음 다른 계략을 쓰지 않는다면, 적(敵)은 미적거리며 더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상옥추제(上屋抽梯)’의 계책을 쓸 때에는 반드시 적(敵)이 흔쾌히 이쪽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있는 좋은 사다리를 걸쳐놓고 올라가도록 유혹하듯이 상대가 미적거리지 않고 이쪽의 뜻대로 하게끔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12. 수상개화(樹上開花)
- 가짜 꽃으로 나무를 크게 장식하라
樹上開花 借局布勢, 力小勢大. 鴻漸于陸, 其羽可用爲儀也.
나무 위에 꽃이 피었다는 뜻으로 적을 혼란에 빠뜨려 시비를 판정하지 못하게 만드는 계책이다. 궤사를 동원해 진세를 펼치면서 적은 병력을 막강한 병력인 양 가장한다. “기러기가 가장 높은 정상으로 날아가니, 그 날개를 접고 있는 모습이 고결해 가히 의표(儀表)로 삼을 만하다”라는 뜻을 지닌 〈점괘(漸卦)〉의 괘사와 취지를 같이한다.
꽃이 없는 나무에 조화(造花)를 붙여 마치 화려한 모습을 보이듯이 병력수가 적더라도 많이 보이게끔 치장하여 적(敵)을 압도하라는 것이다. 원문에 보면 남의 병력을 빌려 진지를 구축하면, 약소한 병력으로도 강대한 군대처럼 보이게 된다.
큰 기러기가 높이 날아오를 때, 떨어뜨리는 깃털은 예식에서 장식품으로 쓸 수 있다는 논리처럼 기세를 타야 세 과시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나무는 본디 꽃이 없는 나무이지만 꽃을 피우게 할 수 있다. 즉 비단이나 종이로 오리고 색칠하여 조화를 만들고 나뭇가지에 그것을 붙이면,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관찰하지 않고는 쉽게 그 진위를 알아차릴 수 없다. 아무리 빈약한 가지뿐인 나무일지라도 아름다운 꽃을 만들어 붙이고 나뭇가지를 서로 결합시켜 찬란한 빛을 발하도록 완벽한 꽃나무를 만들어라. 이것은 곧 우군의 본진에 정예 부대를 포진시켜 왕성한 기백과 웅장한 위세를 과시하여 적(敵)을 제압하라는 것이다.
13. 순수견양(順手牽羊)
- 모르는 척 양을 끌고 가라
順手牽羊 微隙在所必乘, 微利在所必得. 少陰, 少陽.
가는 길에 슬쩍 양을 끌고 간다는 뜻으로 적(敵)의 허점을 노려 승리를 거두는 계책이다. 적(敵)이 조그마한 틈이라도 보이면 놓치지 않고 적극 올라타 승기(勝氣)를 만들어낸다. 적이 가벼이 여기는 작은 이익이라도 놓치지 않고 적극 취해 승기를 만들어낸다. 소음(少陰)은 작은 실수나 허점을 말하고, 소양(少陽)은 작은 승리를 뜻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작은 것에서 시작한다.
“작은 이익일지라도 손이 닿기만 하면 챙겨라.” 원문에 보면, ‘조그마한 틈이라고 생기면 놓치지 말고 이용해야 하고, 보잘 것 없는 이익이라도 생기면, 있는 힘을 다해 손에 넣어라. 적(敵)의 조그마한 실수가 아군에게는 승리의 발판이 된다. 대군이 움직일 때는 작은 헛점과 실수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런 기회를 잘 이용하면 전쟁을 치루지 않고도 승리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전법은 승자도 활용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범수(范睢 - 범저(范雎)라고도 함)가 진송왕에게 다음과 같이 건의했다.
"대왕께서 이웃 나라를 치게 되면 한 치의 땅을 얻어 오고 대왕의 땅이 되며, 한 자의 땅을 얻어도 대왕의 땅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명한 ‘득촌즉왕지촌(得寸卽王之寸)이요, 득척역왕지척(得尺亦王之尺)’이라는 계책이다.
손 가까이 있는 것부터 철저히 챙겨 이득을 얻으라는 것이다. 비록 작더라도 이득을 얻을 수만 있다면, 소홀히 넘기지 말아야 한다. 장사의 비결 같은 말이지만, 싸움에서도 필요 불가결한 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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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읽는 영한대역 세계명작 만화]
징기즈칸[Genghis Khan, 成吉思汗]
출생 – 사망 : 1162 ~ 1227
재위 기간 : 1206 ~ 1227
지역 : 아시아 대륙
왕조 : 몽골 제국
거대한 몽골 제국은 동방으로부터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유럽 세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서양사에 공포의 상흔을 남긴 징기즈칸, 그리고 몽골은 어떠한 존재였을까?
(1) 배경 - 동방 왕의 전설
리처드 왕의 십자군도 만족스러운 전과(戰果)를 올리지 못하고 유럽 세계가 이슬람과의 오랜 싸움에 염증이 났을 무렵, "적국 이슬람의 동쪽 저편에 기독교도들의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 왕은 프레스터 존(Prester John), 즉 '사제 요한'이라고 한다"라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동방에서 이슬람과 싸우면서 기독교의 성지 예루살렘을 노리고 있다는 이 왕의 이름은 서방의 '십자군' 사이에 하나의 구세주의 전설로서 사실인 양 퍼져 나갔다. 전설의 근원이 된 것은 당시 위구르와 몽골 고원의 일부에서 널리 퍼져 있던 네스토리우스파(派) 기독교(景敎)의 일부인데 그 실체는 전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유럽은 이 허상을 바라고 있었다. 페쇄된 시대에 성스러운 왕이 동방에서 나타나 이슬람군을 격파해 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결국 희망대로 동방에서 전설의 왕이 왔다. 하지만 그 왕의 이름은 징기즈칸이었다.
(2) 태생 - 몽골의 고아
징기즈칸이 이끄는 몽골이 역사의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13세기 초이다. 당시 몽골 고원에서는 위구르 유목 제국이 해체된 이후에 3세기 반에 걸쳐 분열과 할거(割去)가 이어졌다. 요(遼)를 비롯한 주위 국가들은 모두 몽골의 유목 부족이 하나로 뭉치는 것을 두려워했는데 그 이유는 과거의 흉노(匈奴), 돌궐(突厥)같이 하나가 된 부족 연합은 틀림없이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유력한 부족이 나타나면, 그 대항마(對抗馬)를 지원하여 서로 싸우게 했고 그래도 안 될 때는 대군을 북벌(北伐)하게 하여 직접 격파했다. 경연(硬軟) 양면에서 간섭한 결과 유목 부족들이 통일되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요(遼)가 금(金)에 쓰러지고 멀리 중앙 아시아에서 서요(西遼)가 된 이 당시에는 몽골 고원에 대한 압박도 다소 느슨해져 있었다. 사실, 이 시대에 이르면서 몽골 부(部)는 통일되었고, 칸도 3대째에 이르렀다. 그러나 유목 부족 사이에서 여전히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고, 몽골 고원 전체를 하나의 군단(軍團)으로 통일할 사람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징기즈칸, 그의 어릴 때 이름은 테무진이었는데 초년 시절은 그리 평탄치 않았다. 아버지 에스게이는 쿠트라 칸의 뒤를 이어 몽골 부의 제4대 족장에 오를 것으로 촉망받고 있었으나 테무진이 어렸을 때 숙적(宿敵) 타타르 부(部)에 의해 독살당했다. 그러자 에스게이를 따르던 타이치우트 씨족은 손바닥 뒤집듯이 테무진을 배신했고, 테무진의 복수를 염려해 어린 그를 죽이려고 계획했다. 난세에 이용 가치가 없는 사람을 배척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각별히 사악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테무진이 어리고 힘이 없을 때 제거하려 한 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테무진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호에른의 엄한 교육 때문에 테무진은 아주 가혹하고 격렬한 성격으로 자라났다.
이런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테무진을 비롯한 4형제가 강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이때 에스게이의 또 다른 아내의 아들, 이복형제 두 명이 찾아와서 그들이 낚은 고기를 빼앗았다. 테무진은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말했는데, 어머니는 형제끼리 싸워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어머니의 책망을 듣고 테무진은 남동생 카사르와 활을 들고 집을 나가 이복형제를 앞뒤에서 공격하여 활로 쏘아 죽였다. 집으로 돌아온 두 아들을 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된 어머니는 "같은 집안 사람끼리 싸워서 어떻게 하느냐"고 테무진을 꾸짖었다고 한다. 그런 성격의 소유자가 조용히 참으며 살 리가 없었다.
테무진은 보르테를 아내로 맞이하면서 승승장구하게 된다. '눈에 불이 있고 얼굴에 빛이 있는' 소년 테무진과 소녀 보르테를 약혼하게 한 것은 아버지 에스게이였지만 정식 결혼은 그로부터 9년이 지나서야 성사되었다. 이때 보르테가 갖고 온 결혼 선물 크로텐(검은담비) 가죽옷이 테무진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 당시에 크로텐 가죽옷은 매우 고가품이었고 유목민 사이에서 진귀한 옷이었다. 테무진은 이 털가죽을 가지고 케레이트 부(部)의 군주 토오릴 칸에게 찾아갔다. 토오릴 칸은 선친 에스게이의 친한 친구였고 그를 같은 편으로 만들면 100만의 우군을 얻게 되는 셈이었다. 테무진은 몽골 고원 최대의 군주를 우군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이용하려는 과감한 도박에서 결국 이겼던 것이다. 크로텐 모피에 기분이 좋아진 토오릴은 기뻐하며 말했다.
"답례로 너의 해산된 씨족 사람들을 모아 주마."
(3) 인격 - '유린하라'고 초원은 말했다
유목민의 생활은 가혹한 편이다. 으레 초원이라고 하면 초목과 바람, 끝없이 높은 하늘을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기후는 1년 중 짧은 여름에 불과하며 이 시기를 제외하고는 혹독한 추위 속에 갇힌다. 1월의 평균 기온은 영하 26.1도. '눈에 방목된 소의 머리가 얼어서 깨지거나' '쇠꼬리가 얼어붙어서 뚝 잘려 땅에 떨어지기도' 하는 가혹한 환경 속에서 유목민들이 철저한 약육강식의 논리로 살아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정확한 판단력과 단호한 행동력이 없으면 유목 생활을 해나갈 수 없으며 그것이 몽골 제국 전체의 특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징기즈칸은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는 "남자가 쾌락과 기쁨으로 삼는 것은 모반인(謀叛人)을 유린하고 적을 정복하여 재산을 박탈하고 그 시종들의 눈, 코에서 눈물을 흘리게 하며, 그들의 살진 말을 타고 그들의 아내를 나의 침상으로 삼아 그 장미 같은 뺨을 애무하고 진홍빛 입술에 입맞춤하며 끌어당기는데 있다"고 말했다.
징기즈칸의 이 잔학성은 젊을 때 겪은 여러 굴욕적인 사건이 원인인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죽음을 당하고 가난의 밑바닥에서 허덕이며 아내를 빼앗기고 아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의 아들을 낳은('징기즈칸의 큰아들' 박스 글 참조) 데 대한 분노는 마음 속 깊이 앙금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징기즈칸이 단순히 어두운 분노에 자극받아 행동할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떤 분노에도 좌우되지 않는 냉철함, 그것이 징기즈칸이 무서운 진짜 이유였다. 그의 냉철함과 지략(智略)은 원정(遠征)에서 충분히 발휘되었다.
(4) 징기즈칸의 큰 아들
징기즈칸의 아내 보르테는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메르키드족에 의해 납치당했다. 그녀는 토오릴 칸이 9개월 동안 교섭을 벌인 끝에 징기즈칸에게 돌아올 수 있었는데, 돌아온 직후에 사내아이를 낳는다.
징기즈칸은 아들의 이름을 주치[朮赤]라 했는데, '객인(客人)' 즉 '이방인'이라는 뜻이다. 이런 이름을 붙인 이유는 보르테가 남편에게 돌아오는 도중에 뜻하지 않게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설과 사실은 징기즈칸의 아들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5) 대서정(1) - 호레즘 샤와의 대립
1219년, 징기즈칸은 서양 세계에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때까지의 10년 동안 그는 몽골을 강력한 통일 국가로 통합하고 중국 북부의 금(金)을 침략하여 정복했다. 당초에는 유목민 특유의 약탈 행위로 시작된 이 침략은 해를 거듭하면서 토지를 제압하고 항구적으로 지배하는 정복 행위로 그 성격이 바뀌어 갔다. 혹독한 자연 속에 자란 유목민들에게 정착민들의 토지는 처분하기에는 너무 풍요로웠던 것이다. 지배를 하게 되면서 몽골 유목민들의 성격도 바뀌어 많은 나라를 정복하고 지배하기 위해 서쪽으로 눈을 돌렸다. 몽골의 서양 정복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 당시에 서아시아 최대의 이슬람 국가이던 호레즘 샤 왕조는 1210년에 국력이 쇠퇴해 있던 서요(西遼)를 멸망시키고 북쪽은 카스피해 연안으로부터 남쪽은 페르시아, 동쪽으로는 힌두쿠시로부터 서쪽은 코카서스(카프카스)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징기즈칸은 몽골의 접경 지역에 위치한 호레즘 샤와 당초에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1215년에 징기즈칸은 호레즘 샤가 보낸 사절단에게 말했다.
"내가 동방의 패자가 될 것이니 샤는 서방의 패자가 되시오. 우리는 서로 평화와 우호를 유지하여 상인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해야 하지 않겠소?"
그러나 징기즈칸의 진의는 다른 데에 있었다. 『집사(集史)』에 의하면 1216년에 대금(對金)침략에 일단락을 지은 징기즈칸은 몽골 전군에게 2년간 휴식을 명령했다. 부족 전체적으로 대원정 준비가 진행되어 서방으로 첩보(諜報)·조략(調略)을 목적으로 통상단이 보내졌다. 표면상의 우호 관계는 적의 내정을 다 살필 때까지의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1219년에 호레즘 영(領)인 오트라르(시르다리야 강의 동안, 그 지류 아리스 강 남쪽에 있었으며 옛 명칭은 파라브. 호레즘 왕국 시대에는 그 국경 도시가 되고, 태수가 몽골의 대상을 살해했기 때문에 징기즈칸이 서부 정벌을 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에서 몽골 통상단이 첩자 혐의로 학살을 당했다. 문명국 사이에서 통상단이 파견되는 경우 그것은 보통 스파이로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며,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받아들일지 아닐지 판단하는 것이 일반적 방식이었다. 호레즘이 취한 방법은 그다지 문명적이지 못했다. 징기즈칸은 분노했고, 이것은 침략을 개시할 아주 좋은 빌미였다.
(6) 대서정(2) - 중앙 아시아에서 러시아로
용의주도한 첩보 활동을 벌인 결과 호레즘에 대한 조사가 끝났다.
골 왕조, 아바스 왕조를 누르고 이슬람 세계의 최대 패자(覇者)로 알려졌던 서방의 강국은 실은 겉보기보다 실속은 없었다.
호레즘 샤 왕조가 갑자기 대두하게 된 것은 아랄해(海) 북방의 사나운 유목 민족인 터키계 캉글리족(族)의 무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직접 충성을 맹세한 것은 호레즘 국왕 무하마드의 생모, 캉글리족 출신의 테르켄 하튼이었고, 호레즘 왕조에서는 어머니와 아들이 대립하고 있었다. 캉글리족이 군사 쿠데타를 일으킬 것을 염려한 무하마드는 병력을 집중시킬 수 없었다. 이러한 사정은 몽골측에 바로 누설되었다. 몽골의 철저한 내부 교란(攪亂)의 결과, 공격의 손길은 무하마드의 어머니 테르켄 하튼에게까지 뻗어 있었다고 전해진다. 결국 호레즘 군대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개별적 도시 방위군으로 몽골 군대 전체와 싸워야 했고, 마침내 모조리 패하고 만다.
1219년, 징기즈칸이 이끄는 원정군은 오토라르 시를 공격하고, 이어서 마와라 안나르 지역을 침공했다. 나중에 제왕 티무르에 의해 번영하는 이 지역은 옛날부터 중앙 아시아에서 가장 비옥한 지대였고 수도 사마르칸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탐내던 곳이었다.
오아시스 여러 도시를 공격, 함락시킨 몽골군은 공성전(攻城戰)에도 뛰어났다. 오토라르를 공략하는 데는 5개월이 걸렸지만 부하라는 며칠 만에, 그리고 사마르칸트는 4일 만에 함락되었다. 금(金)과 서하(西夏)에서 등용한 기술자에게서 습득한 공성전 기술이 주효했음은 물론이고, 몽골군(軍)이 두려워 자진해서 문을 여는 도시들도 많았다. 사전에 조사한 대로 호레즘 샤 왕조의 행동은 전혀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몽골군은 강력하고 잔학한 군대임을 알려 전쟁 전부터 정보전에서 상대방의 사기를 꺾어 놓았다. 사마르칸트에 몽골군이 오기 직전에 국왕 무하마드는 도시에서 도망쳐 버렸다.
서양 세계에 이 사태는 전설의 구현으로 전해졌다. 프레스터 존은 다윗 왕으로 이름을 바꾸고, 페르시아를 석권하고 바그다드 근처까지 육박했다는 정보가 로마 교황청을 통해 유럽에 퍼졌다. 환상의 구세주가 나타났다는 데 힘을 얻은 십자군은 아이유브 왕조의 수도 카이로를 공격했으나 물론 동방으로부터의 원군(援軍)은 오지 않았다. 십자군은 참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서양 세계에 동방에서 온 군단이 루시(러시아)를 향해 올라오고 있다는 새로운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7) 진격 - 러시아 공략전
사마르칸트에서 도망친 호레즘 국왕 무하마드는 서쪽으로 달아났다. 무하마드가 도망친 것은 몽골군을 내지(內地)로 유인, 공격하려는 책략이었다는 설이 있지만 이미 때늦은 일이었다. 국왕의 추태가 호레즘 샤 왕조의 해체를 앞당겼다는 설도 있다.
이 시기에 니샤푸르에서 징기즈칸이 낭독한 선언문에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사령관, 대관, 평민들이여. 신이 동에서 서에 이르는 지상의 제국을 짐에게 준 것을 알라. 항복하는 자는 목숨은 살려 줄 것이다. 그러나 저항하는 자는 불행을 당하여 처자(妻子), 평민 모두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풍요로운 마와라 안나르를 제압한 징기즈칸은 세계 제패의 실현을 계획했는지도 모른다. 징기즈칸의 군대는 이란 서부 여러 지역을 공략하는 한편, 장군 제베와 스베테이가 군대를 이끌고 루시로 향했다. 무하마드를 쫓아간다는 것이 명목이었지만 사실은 새로운 땅을 정복하기 위한 침략 행위였다.
무하마드는 추격을 피해 카스피해 남안의 쿠르간까지 달아났다. 그러나 결국 몽골군에게 발견되어 카스피해 앞바다의 아바스쿤 섬으로 다시 탈출했으나 폐병이 악화되어 죽고 말았다. 이것이 1220년 12월의 일이다.
제베와 스베테이의 진군은 계속되었다. 몽골군은 그대로 카스피해 서안에서 북진하면서 도시들을 함락해 나갔다. 카프카스 지방을 지나 흑해 연안으로 들어간 원정군은 곧 칼카 해반(海畔)에서 루시군(軍)과 일전을 벌인다.
몽골군은 당초에 남러시아 초원에 분포하는 터키계 유목민 부족 킵차크족(族)을 정복하려는 계획도 있었는데, 킵차크족은 예전의 징기즈칸의 숙적 메르키드족과 교류하는 부족이기 때문에 제압해야 할 적이었다. 몽골군이 쳐들어오자 킵차크의 족장이며 루시와 인연이 있던 코치아는 루시측에 협력을 요청했고, 루시의 대공 게오르규는 몽골에 대항하는 동맹을 맺게 된다.
루시 제후들로 이루어진 연합군은 드네프르 강 우안(右岸)에 진을 치고 몽골군을 기다렸다. 연합군은 8만 정도였고, 이에 비해 몽골군은 훨씬 열세였다. 첫 전투에서는 연합군의 가리치 공(公)이 몽골군을 압도했다. 기세등등해진 연합군은 후퇴하는 몽골군을 추격했고, 몽골군은 연합군을 방어하면서 칼카 강 동안(東岸)까지 후퇴했다. 그러나 그것은 몽골군의 책략이었다. 몽골에 비해 기동력이 뒤떨어지는 루시군(軍)은 추격전에 지쳐 있었는데, 가루치 공은 혈기만을 믿고 칼카 강을 건너는 작전을 감행했다. 때를 기다리고 있던 몽골군은 일제히 반격에 나섰고 루시군은 꼼짝없이 격파당하고 말았다.
가루치 공의 군단과 그것을 지원한 킵차크 군대는 괴멸되었고 몽골군은 제후들을 추격하여 그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키에프 공, 체르니고프 공은 붙잡혔고 공전승(共戰勝)의 연회석상에서 함께 처형되었다.
칼카 강의 결전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그후 원정군은 동쪽으로 전진하여 징기즈칸의 본군대와 합류하여 본국으로 돌아갔다. 루시 남쪽에 몽골군의 직접적 영향이 미치지는 않았지만, 이 패배는 루시 제후, 그리고 흑해 건너편의 비잔틴 제국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상흔(傷痕)을 남기고 몽골은 이렇게 떠났다. 1227년 징기즈칸은 서하 정복전이 한창일 때 죽었는데, 그가 만든 제국과 정복에 대한 야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서양 세계는 다시 한번 징기즈칸의 그림자에 떨게 된다.
(8) 재방문 - 유럽 침입
1236년, 루시인들이 몽골을 거의 잊어갈 무렵에 몽골은 다시 동쪽에서 왔다. 징기즈칸의 뒤를 이은 오고타이 칸의 명령하에, 죽은 징기즈칸의 장남 주치의 아들인 바투 칸이 군을 이끌었다. 이번 원정의 목적 또한 킵차크족 지배, 호레즘 잔당의 괴멸, 그리고 서양 세계의 정복이었다.
바투 원정군은 우선 가까이 있는 킵차크족을 공격했다. 유목민 집단에 불과하며 몽골처럼 군단으로서 통일되지 않은 킵차크족은 몽골군의 적수가 못 되었다. 어떤 자들은 서쪽으로 도망치고 어떤 이들은 투항하여 대부분이 몽골의 지배하에서 몽골군의 일원으로 재편성되었다.
새롭게 킵차크군을 얻게 된 바투 원정군은 그 다음으로 루시를 침공했다. 카스피해에서 북상하여 모스크바, 블라디미르 여러 도시를 장악하고 노브고로드를 위협한 후에 방향을 바꾸어 폴란드, 헝가리 방면으로 침입해 들어갔다.
겁에 질린 두 나라는 동유럽의 비잔틴 제국과 로마 교황에게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했지만 당시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는 신성 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2세와의 전쟁에 패해 그 호소에 귀를 기울이려 하지 않았다.
(9) 압도 - 발슈타트 전투
유럽의 권력자들이 방관하고 있는 동안, 몽골군 별동대는 폴란드에 침입하여 폴란드 대공은 국내가 수습되지 않은 채 이를 맞아 싸우게 되었다. 1241년 4월, 양군은 리그니츠 평원에서 대규모 전투를 벌이고 몽골군은 폴란드군을 괴멸했다. 이곳은 훗날 발슈타트라 불렸는데 독일어로 '시체의 도시'라는 뜻이다. 이는 전투 후에 시체가 많이 나왔기 때문인 듯하다. 이 전투의 규모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들이 있지만, 몽골군의 가차없는 살육은 러시아인들에게 이질적인 모습으로 비쳤을 것은 확실하다.
그 무렵 바투가 이끄는 본대(本隊)는 헝가리로 향하고 있었다. 당시 헝가리 왕국의 군대는 유럽 최강으로 알려져 있었고, 국왕 베라 4세가 이끄는 헝가리군은 전력상 몽골군에 뒤지지 않았다고 한다.
헝가리의 수도 부다(현 부다페스트)로 진로를 잡은 몽골군과 헝가리 국왕군은 사요 강의 하반(河畔)에서 대치했다. 몽골군의 노궁포(弩弓砲)가 빗발치듯 쏟아져 헝가리군 내부에서는 참전한 수도원장과 국왕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이 혼란을 틈타 몽골군은 헝가리를 격파했다. 참패한 헝가리군은 몽골군의 추격을 받아 퇴로에는 여정 이틀에 걸쳐 시체가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10) 공포의 전설 - 타타르의 멍에
유럽은 위기에 처해 있었고, 몽골군이 어디까지 공격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헝가리에서부터 서쪽으로 향하면 그곳은 독일, 프랑스와 평원이 이어져 있었다. 라인 강 이외에 몽골군의 진격을 저지할 요충지는 없었다. 그대로 대서양에 도달하고 마는 것이다. 바투군은 헝가리 평원의 목초 지대에 주둔하며 전진에 대비하고 있었다. 만약 몽골군이 유럽을 정복했더라면 라인 강가의 구릉지대는 목초지대로 모습을 바꿔, 훗날 유럽의 역사, 아니 세계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유럽을 구한 것은 1241년 12월의 오고타이 칸의 갑작스런 죽음이었다. 정복 명령은 본래 오고타이 칸이 내렸으므로 그것을 계속할 것인지는 대회의를 열어 결정할 문제였다. 바투 칸은 빈을 눈앞에 두고 군사를 돌려 유럽을 떠났다. 그후에 몽골군이 유럽을 공격하는 일은 없었지만, 루시 땅에서는 제후와 각 도시, 그리고 정교회(正敎會)가 몽골의 지배를 완전히 받아들여 이후 수백 년간 루시는 킵차크 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를 러시아인들은 '타타르의 멍에'라 불렀고, 이 말은 지금도 불행을 뜻한다.
몽골인들의 지배는 몽골군의 가혹함과 잔학성에 비하면 훨씬 온후한 편이어서 기독교는 보호되었고 국내의 치안은 양호했다. 하지만 그들은 러시아인으로부터 10분의 1세(稅)를 거두는 한편 그들의 노동력을 이용했는데, 거역할 경우에는 가차없이 학살했다.
러시아 제후는 이 타타르의 멍에 아래에서 단결을 결의했다. 1380년에 모스크바 대공 드미트리 돈스코이는 주위의 제후에게 킵차크한국의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호소하여 크리코보 전투에서 한번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대군을 이끌고 역습한 킵차크한국에 패하여 모스크바는 황폐화되었고 1만 내지 2만 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결국, 러시아가 타타르의 멍에에서 탈출하려면 이반 뇌제(雷帝) 시대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11) 몽골 제국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서양 제국에게 몽골, 그리고 징기즈칸은 파괴와 약탈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몽골에 관한 저서들은 대부분 그들의 파괴와 약탈, 폭력과 살육만이 묘사되어 있다. 그들이 서양 세계에 던져준 공포를 생각하면 당연하겠지만, 몽골이 서양 세계에 준 또 다른 영향 ― 몽골이 동서의 교통을 활발하게 만들었다 ― 에 대해서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몽골의 지배자들은 '초원의 길'이라 전해지는 동서의 교통로에 역과 말과 숙사(宿舍)를 마련했고 그 때문에 외국 사절과 여행자들은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었다. 또한 금과 은으로 된 파이자라는 여권이 발행되어 이것이 있으면 외국인도 여행할 때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상인 마르코 폴로가 멀리 중국을 여행하다 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그 영향이 크다. 파이자는 현재의 러시아 영(領)에서 여러 장 발견된 바 있다.
몽골인들은 통상을 통해 얻는 이익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결국은 육로뿐 아니라 해상로도 열렸다. 몽골 제국의 지배하에 통일을 회복한 중국 남부 항구에서 3층 갑판의 큰 배가 인도를 향해 항행(航行)했다. 몽골 제국의 보호하에 중국, 페르시아, 인도, 중앙 아시아, 흑해 주변에서 러시아까지를 포함한 거대한 통상 시장이 나타나 세계는 동과 서가 서로 통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쇄술, 항해자의 나침반, 화기(火器), 사회생활의 매우 중요한······이것들은 유럽에는 없는 것들이며 몽골의 영향에 의해 극동(極東)에서 유럽에 이입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몽골 고원의 한촌(寒村)에서 태어난 소년 테무진, 징기즈칸은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상징으로서, 또 한편으로는 세계를 발전으로 이끈 공로자로서 역사에 그 이름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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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로 읽는 영한대역 세계 명작 칼라 만화]
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 /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
(1)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은 영국의 작가 에밀리 브론테가 필명 엘리스 벨(Ellis Bell)로 출간한 유일한 소설이자 유작 소설이다. 아버지 패트릭 브론테 신부가 성공회 사제였던 가정환경상 에밀리는 어린시절을 사제관이 있던 영국 요크셔의 황량한 벌판에서 보내면서 작가로서의 상상력을 길렀으며, 어른이 된 후 요크셔 벌판의 폐가(TopWithens)에서 영감을 얻어 《폭풍의 언덕》을 썼다. 캐서린(Catherine Earnshaw)과 히스클리프(Heathcliff)와의 불멸의 사랑을 우울하면서도 아름답게 묘사한 작품으로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뛰어난 게 장점이다. 출간당시에는 비윤리적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20세기에 토머스 몸 등에 의해 재평가되었다. 한국어판은 범우사 등의 문학전문출판사들에 의해서 역간되었다.
(2) 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 줄거리
1801년 황량한 벌판에 위치한 폭풍의 언덕에 세입자인 락우드씨가 찾아온다. 자신이 세든 집인 드러시크로스 저택의 주인인 히드클리프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두 거칠었고 잘 곳도 변변하지 못하여 감기에 걸려서 돌아온다. 집에 돌아온 락우드는 폭풍의 언덕과 드러시크로스 저택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가정부 넬리 딘에게 그동안 있었던 두 집안의 역사에 대해서 듣는다.
이야기 1
폭풍의 언덕의 주인이었던 언쇼는 리버풀에 갔다가 거지꼴을 한 소년을 데려온다. 가족들은 출신을 알 수 없는 소년에게 경계심을 갖고있었는데, 특히 아들 힌들리는 히스클리프를 미워한다. 죽은 아들의 이름까지 지어줄 정도로 히스클리프를 편애하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죽은 후, 아내 프랜시스를 데리고 집에 돌아온 힌들리는 결국 히드클리프를 머슴처럼 가혹하게 학대한다. 게다가 어린시절부터 같이 자랐던 친구이자 애인인 캐서린까지 드러시크로스 저택의 아들인 에드거에게 사랑을 품자, 이에 상심한 히드클리프는 가출한다.
이야기 2
몇 년후 부자가 되어서 돌아온 히드클리프는 몸이 약했던 아내 프랜시스의 죽음이후 폐인이 된 힌들리를 도박으로 빈털털이로 만들어버린다. 알코올 중독으로 힌들리가 죽자, 그는 힌들리의 아들인 헤어턴에게 자신이 당한대로 앙갚음을 하여, 무식한 머슴으로 키운다. 새끼 뻐꾸기가 다른 새의 알들을 내치는 것처럼, 폭풍의 언덕의 주인이 머슴이 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애인을 뺏어간 에드거의 여동생 이사벨라를 유혹해서 결혼한 뒤, 인권을 짓밟는다. 히드클리프와의 만남이후 결혼전부터 갖고 있던 정신착란이 심해져서 죽은 캐서린만 찾는 무관심과 학대를 견디지 못한 이사벨라는 런던으로 달아나서 아들을 낳는다. 한편 에드거는 죽은 아내가 남긴 외동딸 캐시를 곱게 키운다.
이야기 3
여동생이 병으로 죽자 에드거는 런던에 가서 조카를 몰래 데려오지만 12살의 철없는 꼬마 캐시의 말실수로 발각된다. 히드클리프가 아들을 데려갈 것이 분명하자, 에드거는 마지못해서 조카를 폭풍의 언덕에 데려다 준다. 까다롭고 버릇없는데다가 허약하기까지 한 아들이 마음에 들리 없었지만, 히드클리프는 아들을 캐서린과 결혼시켜서 드러시크로스를 먹어치울 생각을 한다. 결국 히드클리프는 아들을 캐시와 강제로 결혼시켜, 탐욕을 채운다. 딘은 셋방을 구해서 어릴적부터 모셔온 캐시 아가씨를 다시 모시고 싶어하지만 그건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이야기 4
1802년 친구의 초대를 받아서 가던 락우드는 폭풍의 언덕에 다시 온다. 전세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는데, 딘 아주머니는 히드클리프가 죽었다고 했다. 비가 몰아치는 날, 눈도 못 감고 죽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헤어턴과 캐시 사이에서 사랑의 감정이 싹트고 결혼을 앞두면서, 폭풍의 집과 드러시크로스저택의 불행한 역사는 끝나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
1. 도서 구입 안내 : 각권 정가 15,000원 / 택배비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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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한대역 세계 명작 칼라 만화 : 총 20권(각권 정가 15,000원)
(1) 돈키호테 Don Quixote / 세르반테스 (Miguel de Cervantes)
(2) 걸리버 여행기 Gulliver's Travels / 조나단 스위프트 (Jonathan Swift)
(3) 우주 전쟁 The War of The Worlds / H.G. 웰즈(H.G. Wells)
(4) 폭풍의 언덕 Wuthering Heights /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e)
(5) 로빈슨 크루소 Robinson Crusoe / 다니엘디포우(Daniel Defoe)
(6) 파우스트 Faust / 괴테(Goethe)
(7)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and Juliet /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8) 왕자와 거지 The Prince and the Pauper / 마크 트웨인(Mark Twain) - 사무엘 클레멘스(Samuel Clemens)
(9) 보물섬 Treasure Island / 스티븐슨(R.L. Stevenson)
(10) 백경(白鯨) Moby Dick / 허만 멜빌(Herman Melville)
(11) 슬리피 해로우의 전설 The Legend of Sleepy Hollow / 워싱톤 어빙(Washington Irving)
(12) 노트르담의 꼽추 The Hunchback of Notre Dame /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3) 정글 북 The Jungle Book / 루드야드 키플링(Rudyard Kipling)
(14)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Dr. Jekyll and Mr. Hyde / 스티븐슨(R.L. Stevenson)
(15) 크리스마스 선물 A Christmas Carol / 촬스 디킨즈(Charles Dickens)
(16) 80일간의 세계일주 Around The World in Eighty Days / 쥴 베른(Jules Verne)
(17) 해저 2만리 20,000 Leagues Under the Sea / 쥴 베른(Jules Verne)
(18) 위대한 유산 Great Expectations / 촬스 디킨즈(Charles Dickens)
(19) 모히칸족의 최후 The Last of the Mohicans /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James Fenimore Cooper)
(20) 죄와 벌 Crime And Punishment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Fyodor Dostoevskii)
4. 영한대역 칼라 만화 징기즈칸((Genghis Khan) : 5권(각권 정가 15,000원)
5. 영한대역 칼라만화 삼국지(Romance of the Three Kingdoms) / 나관중 / 20권 / 할인가 108,000원
6. 이솝우화 10권(오디오 CD 포함) : 할인 가격 30,000원
7. 10주 완성 영어 회화(1권 - 정가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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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영어교육연구회 / ㈜ 파우스트 칼리지 제공 도서구입 전화 : 1599-9039 이메일 : faustcollege@naver.com / ceta211@naver.com Blog : http://blog.naver.com/ceta211 21세기 영어교육연구회 Cafe : http://cafe.daum.net/21ceta 21세기 영어교육연구회 http://cafe.naver.com/ceta21 21세기 영어교육연구회 Web-site : www.faustcollege.com (주)파우스트 칼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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