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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화샘인터넷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호쉬아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 예수의 유일성
* 본 자료는 빌 브라이트(Bill Bright) 목사님이 쓰신 '백문일답 예수(순출판사)'에 수록된 내용 중 일부 내용을 인용 편집하여 소개한다. 더 구체적이고 누군가와 함께 성경공부를 하기를 원하는 분은 이 책자를 구입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인간은 누구나 영원한 것을 사모한다.(전도서3:11)
인간은 누구에게나 종교심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결정적인 특징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조시에 만들어 놓으신 거부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누구를 섬겨야 하는지,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 분명히 알고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먼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제대로 알고 믿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성경 마태복음 16장에는 예수님께서도 열두 제자 선발을 완료하시고 황제숭배 사상이 극심했던 대표적인 지역인 가이사랴 빌립보로 그들을 데리고 가셔서 제자 출정식에서 이렇게 질문하신다.
'사람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렇다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님이 제대로 알지 못하고 따라 봐야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수제자 베드로의 유명한 신앙 고백이 나온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여러분이 제대로 예수를 믿기로 결정했다면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하고 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여기서는 대학생선교회(CCC)를 창립하여 세계 복음의 확산에 많은 기여를 하신 빌 브라이트 Bill Bright목사님이 쓰신 '예수의 유일성'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 예수의 유일성<<<
Bill Bright
● 중요한 질문
여러분은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인물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얼마 전 의학을 전공하고 있는 외국 유학생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인도에서 시작된 한 종교를 믿고 있었다. 그와 같이 지내며 우리는 친구가 되었고 나는 그에게 예수님에 대해 소개해 주었다. 그 다음, 나는 그에게 세가지 질문을 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는가(His Work)?”
그는‘지금까지 살았던 그 누구보다도 가장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은 나사렛 예수입니다. 그분이 가장 위대한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다음으로 이렇게 물었다.
“인류 역사상 누가 가장 탁월한 가르침을 주었다고 생각하는가(His Teaching)?”
나는 그가 공자, 소크라테스 등의 위해한 철학자들과 학자들을 이야기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대답은 ‘가장 위대한 스승은 나사렛 예수입니다’였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물었다.
“인류 역사상 누가 가장 성스러운 삶을 살았다고 생각하는가(His Life)?”
그는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나사렛 예수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예수님의 삶을 살펴 보았을 때 그는 예수님과 같은 분은 없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이가 사실 그대로를 알기만 한다면 그가 세계 어느 곳에 살든지, 어떤 종교를 가졌든지 그는 예수님과 같은 분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역사상 가장 특별한 분이다.
● 인류 역사에 미친 영향
예수 그리스도는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인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분이다.
그는 역사의 방향을 바꾸어 놓았다. 따라서 사람들은 인류 역사를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전은 BC(Before Christ)로, 오신 이후는 AD(Anno Domini, 우리 주님의 시대)로 구분하고 있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연도는 예수 그리스도 이후로부터 새로 시작된 것으로,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따라서 역사(History)는 ‘그의 이야기’(His Story) 즉,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라는 의미로 풀이해 볼 수 있다. 인류 역사에서 예수님을 뺀다면 인류 역사를 설명할 수가 없다.
예수님은 전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예수님의 생애가 세상에 끼친 영향력을 찾아 보라. 그 분의 소식이 전해진 곳은 어느 곳이든 개인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예를 들어, 그로 인해 변화된 여성들의 위치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아리스토텔레스는‘만일 여성이 자신의 남편과 동등한 위치가 된다면, 이는 노예가 자기 주인과 동등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일이다. 따라서 사회질서는 완전히 무너지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플라톤은 그의‘이상향’에서‘여자는 남자에 의해 공동으로 소유되고 그들의 아이들은 국가에서 돌보아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또 인도에서 시작한 한 종교에서는 여성에 대한 철저한 차별을 당연히 여기고 있다.(유교나 무슬림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반면, 예수님은 여성과 남성이 동등함을 말씀하셨다.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남자나 여자나 노예나 자유인이 따로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갈3:20)
예수님의 이름이 전해지는 곳마다 인간의 존엄성과 결혼의 신성함이 강조되고 여성의 권리와 선거권이 인정되었으며, 아동복리법과 노동법의 제정, 그리고 노예제도의 폐지와 같은 수많은 변화들이 인류 복지를 위해 이루어졌다.
어떤 작가는 이러한 예수님의 영향력에 대해 ‘200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날도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중심 기둥이며 진보 대열의 지도자이다. 지금까지 진군했던 모든 육군과 해군, 개회되었던 모든 의회, 통치했던 모든 왕들을 다 합하여도 나사렛 예수 한 사람이 인류에게 끼친 것보다 더 강력한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라고 말했다.
● 개인에게 끼친 영향
나는 많은 대학을 방문하여 수천명의 남녀 대학생들에게 예수님을 전했다. 물론 예수님에 대해 강한 반감을 품고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학생들도 만났다. 그들 중 어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는 신화적인 인물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예수님은 위대한 인간이지만 그 이상은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들은 성경을 비웃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예배하는 사람들을 조롱하기도 했다.
이러한 회의론자 중에 런던대학교 철학과 교수였으며 당시 유명한 철학자 시릴 조드 (Cyril Joad) 박사가 있었다. 기독교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었던 그는 학생들의 무신론적 사고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시릴 조드 박사는‘예수님을 단지 한 인간이고 우주의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에 만일 우주가 멸망하면 하나님도 없어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또 인간에게 죄같은 것은 없으며 시간이 지나면 인간은 지상에서 천국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로스엔젤레스 타임즈’제1면에서 나는 존경받는 그 철학자의 사진과 함께 그의 생애에 일어난 극적인 변화에 관한 기사를 보았다. 죄를 믿지 않았던 그가 죄는 실제로 존재하며 죄에 대해 가장 타당한 설명이 성경 말씀에 있다고 이야기 한 것이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이 그에게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으며 죄에 대한 해결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고 말했다. 일생 동안 부인한 것을 받아들이게 된 놀라운 변화였다.
유명한 장군이며 문학 천재였던 류 웰니스(Lew Wallace)와 그의 친구인 잉거솔(Ingersoll)은 예수를 믿고 예배하는 사람들이 그럴듯한 굴레 안에 갇혀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에 분개했다.
두 사람은 기독교의 신화를 영원히 도말해 버릴 책을 쓰자고 함께 약속했다.
웰니스는 기독교를 무너뜨릴 자료를 찾기 위해 미국과 유럽의 도서관에서 2년동안 연구하며,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책의 제2장을 쓰는 중에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 부르며 크게 울부짖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사기꾼이라고 폭로하려 결심했던 그 분이 오히려 그를 사로잡았다. 후에 웰니스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생애에 관한 유명한 소설 ‘벤허’를 썼다.
전형적인 또 한명의 회의론자는 옥스퍼드 대학 교수인 씨 에스 루이스C. S. Lewis였다. 그는 여러 해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해 왔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리스도의 열렬한 신자가 되고 자신의 신앙의 고백을 담은 여러 책들을 저술했다. 그의 책 ‘순전한 기독교(Mere Chritianity)’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만약 예수가 단순히 한 인간으로서 그러한 말과 행동을 한 것이라면, 그는 정신이상자이거나 사기꾼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를 위대한 도덕적 스승 정도로 보는 입장은 옳지 않습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는 정신이상자이거나 사기꾼일 것이고,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선택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 해야 합니다.’
당신에게 나사렛 예수는 누구인가? 단순한 인간인가? 신화적 인물인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아들인가? 이 땅에서와 내세에서의 삶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의해 결정된다.
● 기독교 역사의 기초
‘기독교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세워진 것인가?’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 이 질문에 대해 역사학자들은 어떻게 답하고 있을까?
맨체스터 대학의 브루스(F.F. Bruce) 교수는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신화‘라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역사적 증거에 근거하여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공정한 역사가에게 그리스도의 역사성은 율리우스 시저(Julius Caesar)의 역사성 만큼이나 자명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하버드 대학의 클리포드 무어(Clifford Moore)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독교에서 주님으로 믿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흔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에게서 보이는 조잡한 요소가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확실하게 드러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브리테니커 대백과사전에서는 석사학위 논문 분량보다 많은 2만자를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율리우스 시저, 석가, 공자. 모하메트를 위해 할애된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이다. 나사렛 예수에 관한 수많은 자료들의 증언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이러한 자료들은 고대에, 심지어 기독교의 적대자들 조차도 예수의 역사성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그의 역사성에 대한 의심은 18세기 말에 몇몇 학자들이 부적절한 근거 위에서 처음 제기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류의 구원자라는 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자들도 있다.
나는 그들에게 찾아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이야기했고 그 때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복음의 기본 내용조차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예로,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 그가 아니더라도 다른 회의론자의 작품을 읽어 본다면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그를 반박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그것을 계속 파괴하고 있는 꼴이다.
나사렛 예수에 관한 증거들을 성실하게 검토해 보고도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나는 한 사람도 만나보지 못했다. 내가 만났던 많은 회의론자들은 함께 이야기하고 생각을 나누는 동안, 성경을 거의 읽어보지 않았고 예수님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생각해 보지 않았음을 인정했다. 그들이 기독교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게 된 것은 유년 시절에 기독교에 관해 좋지 못한 인상을 가길 만한 경험이 있었거나 어떤 기독교인의 생활에서 모순점을 발견했거나 또는 어떤 대한 교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 4가지 놀라운 질문
예수님은 인류를 위해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많이 하셨다. 그 중 가장 중요한 네 가지를 소개하려고 한다.
첫째, 예수님만이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
둘째, 예수님만이 인생의 목적을 알려 주신다.
셋째. 예수님만이 인간의 상한 심령에 평안을 주신다.
넷째, 예수님만이 우리가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신다.
▶ 죄를 용서해 주심(Pardon)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께 나갈 수 없게 되었고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죽음이란 죄로 인해 하나님과 영적으로 분리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에 대해서 알지 못한체 삶의 목적을 잃고 방황하게 되었고, 마음에는 불안과 염려가 끊이지 않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옳은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죄는 무엇을 뜻하는가?
죄는 도둑질, 거짓말 혹은 부도덕한 행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해야할 것을 하지 않는 죄,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한 죄, 생각으로 짓는 죄, 마음으로 짓는 죄, 말로 짓는 죄, 행동으로 짓는 모든 죄를 포함한다.
근본적으로 죄는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려는 태도를 뜻한다.
다시 말하면, ‘내 인생은 내것이므로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겠다.’라는 태도이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이 창조하신 그 분의 피조물이라는 의존적 위치를 거부하고 인간의 자존, 자율성을 선언하는 것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가능한 위치를 주장하는 일이다.
하나님을 떠나 자기 중심적인 삶을 영위하는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서 마치 전원에 연결되지 못한 조명기구처럼 죄악의 어두움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 사회의 탐욕, 거짓, 부정, 성적인 범죄, 소송 사건의 증가, 가정에서의 불화와 높아지는 이혼율 등을 생각해 보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저지른 전쟁, 환경 파괴 문제를 생각해 볼 때 인간의 지나친 자기 주장은 하나님의 영역에 도전하는 큰 죄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인간은 아무리 애를 쓴다해도 죄로 인해 벌어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간격을 뛰어넘을 수 없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간격을 넘어갈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 주셨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3:16)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어떻게 해결하셨는가?
죄의 삯은 사망이다(로마서6:23). 즉, 죄를 지은 자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구약시댕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염소, 양, 비둘기 등을 희생 제물로 제사장에게 바쳤다. 제사장은 그 사람을 대신 그 동물을 죽여서 제물을 바친 사람의 조기 용서받게 되는 의식을 거행했다. 그러나 이 제사제도는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할 것에 대한 예표로써 완전하지 못했고, 죄를 더욱 생각나게 할 뿐이다.
속죄 제사는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위헤서 피흘려 죽게 하심으로 비로소 완전해졌다. 흠없는 제물이신 예수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인류의 죄값을 모두 지불하신 것이다. 예수님은‘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마가복음 10:45) 고 오신 목적을 분명히 말씀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심자가 외에는 인간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대책은 없다. 근본적으로 다른 모든 종교는 구원에 이르는 수단으로 선행의 원리를 주장한다. 사람들은 자기의 선행과 악행을 저울에 달아 선행 쪽이 더 무거우면 천국에 가고, 악행 쪽이 더 무거우면 지옥에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삶이 끝날 때까지는 그가 천국에 갈지 혹은 지옥에 갈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한 종교나 철학은 얼마나 불안한 것인가? 또한 과연 누가 구원받기에 충분할 만큼 선행을 할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 분은 3일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후에 죄와 죽음의 모든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면 우리의 죄가 모두 용서 받는 것은 물론, 그 능력으로 죄를 이길 힘을 얻게 된다. 인간의 죄에 대해, 이와 같이 분명하고 구체적인 해결이 제시되어 있는 종교는 어디에도 없다.
▶ 인생의 목적을 알려 주심(Purpose)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가운데 목적이 없이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꿀벌도 꿀을 모으는 것과 함께 꽃의 수정을 돕는다. 아무도 살지 않는 지구 어딘가 내리는 비는 어떨까? 그 비는 지구 생태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나름의 목적이 있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유하면서도 위대한 삶의 목적이 있다.
당신은 자신의 삶을 위한 목적이 무엇인지 발견했는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 목적을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하지 않는가? 시계의 용도는 시계 제조업자가, 의자의 용도는 그것을 만든 목수가 제일 잘 알고 있다. 그처럼 내 인생의 목적도 나를 만든 분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 아닌가!! 성경은, ‘모든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창조 되었다’고 말한다.(골1:16)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참된 목적을 발견할 수 있다.
최초의 인간이던 아담 이후로 인류는 피조물로서의 의존적 위치를 거부하고 자신의 인생에 대한 자율권을 주장하였다. 그 결과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를 상실하게 되었고 동시에 인생의 방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길을 잃어버린 인간은 거친 바다 위에서 닻도 없고 지도도 없이 물결에 휩쓸려 떠다니는 배와 같다. 인간은 비록 그가 아무리 많이 배우고 아무리 많이 소유하고 아무리 높은 명예를 성취했다 하더라도 불만족과 공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유명한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휄스(H. G. Wells)는 61세가 되었을 때 ‘나에게는 평안이 없다. 나는 인생의 종점에 서 있다.’라고 했고, 시인 바이런Byron)은 ‘내 인생은 만추의 낙엽이라. 꽃과 열매는 다 떨어지고 낡고 벌레 먹음과 비애만이 내 것이 되었구나.’라고 고백했다. 또한 미국의 일류 만화가 랄프 바톤(Ralph Barton)은 죽기 전에 ‘나는 친구가 많았고 성공도 했으며 어려움이라고는 별로 없었다. 결혼도 여러번 해 보았고, 이집 저집 옳겨 살아 보았고, 여러 나라를 여행해 보았지만 단 하루도 마음의 피로가 그친 날이 없었다. 하루 24시간을 매우는 일에 진력이 났다.’고 말했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어서 느끼는 인생의 공허함에 대해 철학자 파스칼(Blaise Pascal)은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의 공백이 있다. 이것은 어떠한 피조물로도 채워질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에 의해서만 채워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당신의 마음은 어떠한가? 인생의 진정한 의미와 만족을 찾고 있는가?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 마음 가운데 구주로 영접하라. 당신을 만드시고 당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 분이 당신의 인생의 목적에 대해 알려 주실 것이다.
▶ 평안을 주심(Peace)
오늘 날 만큼 인간의 내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시기는 없었던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고통과 불안과 근심을 경험하며, 마음의 평안을 찾아 나선다. 사람들은 경제적 문제로, 인간관계로, 그리고 가정의 문제로 염려하며 고통을 당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의 왕으로 당신에게 진정한 평화를 주실 수 있다.
그는 요한복음14:27에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다.
또 마태복음 11:28에서는‘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를 따르는 자들은 이러한 놀라운 내적 평안을 경험하게 된다.
몇 년 전, 나는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 기독교 지도자 협의회에 연사로 초청받은 일이 있다.
대학 시절, 절친했던 기숙사 친구가 지금은 해군 사령관으로 국방성을 대표해서 모임에 참석했다. 우리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사랑하는 어린 자녀가 최근에 죽었다는 자신의 비통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는 나에게 자기 집으로 가서 그의 아내와 함께 이야기 할 것을 요청했다. 그날 저녁 우리는 함께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들 부부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다. 그리하여 그들은 놀랄 만큼 큰 평안과 위로를 경험할 수 있었다.
다음 해, 다시 그 모임에 초청을 받아 워싱턴으로 갔다. 그 친구도 마찬가지로 국방성을 대표하여 참석하였다. 그는 지난 해에 나와 만난 이후 더욱 비극적인 사건이 있었음을 이야기 해 주었다. 그의 또 다른 자녀마저 신경세포 조직에 암이 생겨 죽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와 나눈 그 날의 대화를 잊을 수 없다. 그는 ‘어떻게 된 것인지 잘 알지는 못하겠네. 그 아이를 무척 사랑했고 죽음의 이별이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그 아이가 앓아 누워있는 동안과 죽고 난 후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가 더욱 절실했다네. 참 이해할 수 없지만 모든 것을 뛰어 넘어 평안이 주어졌다네’ 라고 말했다.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는 겸허한 미소를 지었다.
▶ 능력을 주심(Power)
사람들은 흔히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지만, 된다고 해도 도저히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 때까지 많은 잘못들, 마음의 미움과 원한, 부도적함, 과음 거친 말투, 그 외에 여러 가지 죄악된 일들을 행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많은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음을 알고 있으므로 나는 도저히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다’고들 말한다.
이들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초자연적인 특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우리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을 예수그리스도께 맡기고 그 분과 함께 살아가는 삶인 것이다.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함께 하실 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공급받게 된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목적에 맞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어느 날 밤 불쑥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요한복음3:1~21)고 하셨다. 니고데모는 거듭난다는말이 무슨 뜻인지 알수 없었다. 그는 ‘사람이 어떻게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까?’하고 되물었다. 이에 예수님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하시며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대답하셨다.
먼지 속을 기어다니는 애벌레 한 마리를 상상해 보자.
그 애벌레에게‘너는 왜 나비같이 날지 못하고 먼지 속에 기어다니니?’라고 묻는다면, 애벌레는‘나는 날개가 없어요. 그러니 날 수가 없고 먼지 속을 기어다닐 수 밖에 없지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우리는 그 애벌레에게 ‘수술을 해서 네 몸에 나비의 날개를 다는 것은 어때? 그리고 항공기술을 배워보면 어떻겠니?’라고 제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날개가 없는 한 그 모든 것은 쓸모 없는 노력일 뿐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는 것은 위의 애벌레에게 수술로 날개를 달아주거나 항공 기술을 익히도록 하는 것과 같다. 아무리 애쓰고 노력한다 하더라도 날개가 없는 애벌레는 날 수가 없다.
그러나 애벌레가 몸 둘레에 고치를 짓고, 얼마 후에 고치를 벗어 버리면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나올 것이다. 고치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는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은 이전에 먼지 속을 기어다니던 애벌레가 이제 나비가 되어 하늘을 높이 날고 있다는 사실 뿐이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도 이와 같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모셔 들일 때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는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다만, 이러한 새로운 탄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마음 가운데 오실 때 일어나게 된다.
● 인격적인 믿음의 필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원한다면, 먼저 믿는다는 것의 의미를 알 필요가 있다.
사람의 마음에는 왕좌가 있다. 사람들은 그 왕좌에 자신이 앉아서 삶의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를 원한다면, 당신은 마음의 왕좌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넘겨드려야 한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지식적으로 아는 것만이 아니라 의지를 드려 삶의 주도권을 넘겨 드리는 것을 포함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나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내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신 것을 믿는다. 이때까지 이것을 믿어 왔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그러나 만약 나의 모든 의지를 그분께 드리려 하지 않았다면 그는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또‘나는 수련회나 특별한 집회 기간 중 훌륭한 설교 말씀을 듣고 크게 감동받은 적이 있었다. 심지어 자진해서 앞에 나아가 상담까지 했다. 그런데도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하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자기 마음 중심의 왕좌를 그리스도께 드리지 않았다면 그는 아직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나는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가고 매일 성경을 읽으며 선한 삶을 살기 위해 애쓴다. 그래도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그러나 그 역시 자신의 의지를 그리스도께 드리지 않는다면 결코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다.
의지를 포함한 전인격적인 신뢰만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사는 비결이다.
● 기회를 붙잡으라
아직 예수 그리스도로 영접하지 않았는가? 주님은 이 순간에도 당신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신다.
요한계시록 3:20을 보면,‘볼지어다 내가 문밖에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하셨다.
지금 조용히 당신의 의지를 그에게 드리지 않겠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삶에 초청하면 그는 당신 안에 들어오셔서 당신의 죄를 용서하시고 당신 생애에 목적을 주시며 그의 평화와 능력을 부어주실 것이다. 바로 지금, 이렇게 기도하지 않겠는가?
‘주 예수님, 나는 주님을 믿고 싶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내 죄값을 담당하시니 감사합니다. 지금 나는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합니다. 나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생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를 다스려 주시고 나를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1:12에는‘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성경은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요한일서5:11~12)라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당신은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기로 결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의 새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Born Again)이다.
갓 출생한 갓난아이에게 부모의 보살핌과 양육 그리고 가정이라는 환경이 필요하듯이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난 사람에게도 영적 성장을 위해 그를 보살펴 주고 이끌어 줄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이러한 공동체가 바로 교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전하는 교회에 규칙적으로 나가서 성실하게 신앙생활 하는 것은 신앙의 성장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 본 자료는 순출판사에서 출판된 ‘백문일답 예수’ 자료에서 발췌한 자료이므로 더 구체적인 내용을 알기를 원하면 '백문일답 예수' 책을 구입하여 참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