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피리 하나
박경선
하멜론의 동화 속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간 아이들을 생각해 본다. 피리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어떤 노래가 흘러나왔을까? 그 노래가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었으면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을까?
나도 그런 ‘마법 피리’ 하나 가지고 있다. 남편한테는 ‘학교 일에 미친 여자’로 불렸지만,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호박 선생님’으로 불리며 지냈다. 그러다가 십 년 차쯤 되었을 때 새 학기가 되어 아이들을 맞아 우리 반 ‘재미있는 놀이’하나를 선포했다. 학교 올 때나, 집에 갈 때 선생님께 다가와 ‘시링해요’ 인사로 서로 껴안으며 지내야 한다고. 저학년들은 스스름 없이 안겼다. 주로 고학년이다 보니 처음에는 뻘쯤해 했지만 차차 놀이의 재미에 물들어갔다. ‘사랑해요’ 하며 안아주는 품 안에 안기면서 온갖 이야기를 쏟아내었다.
“선생님, 어제 우리 엄마•아빠 부부 싸움해서요. 밥도 못 먹고 왔어요.”
일러바치는 미경이에게는 뭐든지 요기할 거리를 아이들 몰래 챙겨주게 된다.
“선생님, 우리 집 강아지가 어제 새끼를 네 마리 낳았어요. 한 마리 줄까요?”
“경헌아, 축하, 축하! 그런데 선생님은 강아지 키울 시간이 없어.”
이렇게 안아주고 안기며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주고받는 1:1의 시간을 나눈다. 집에 갈 때도 그랬다.
“사랑해요. 얌전이 우리 정윤이 오늘 발표 잘하던데?”
“그런데요. 대식이가 저한테 똥침 했어요.”
“그래? 내일 혼내줄게.”
내 나이 마흔 즈음, <학부모 수업 참관 날> 참관이 끝나고 학부모와 마주 앉은 자리에서 신고가 들어왔다.
‘선생님은 우리 성균이 마음을 빼앗아 갔지요?’ ‘제가요? 언제, 왜 무슨 일로….’ ‘엄마보다 선생님이 더 좋다네요.’ ‘그럴 리가요?’
그때 엄마 등에 붙어 앉아 있던 순형이가 끼어들었다. ‘나도 선생님이 더 좋은데….’ ‘나도!’
나는 할 말이 없어 눈치 발치 없는 꼬맹이 녀석들에게 눈을 흘기며 얼굴을 붉혔다.
“우리 엄마들도 안아 주세요.”
한 엄마가 그러면서 안기자, 다른 엄마들도 다가와 안기고 갔다. 그 뒤로 수업 참관이나 총회때 보면 모두 안기고 갔다. 어쩌다가 참석하는 아빠들까지 안아주고 ‘아내 다음으로 러브레터 써보기는 처음입니다.’하는 아빠의 편지도 받아보았다. 지긋한 나이와 호박 같은 얼굴이 무기가 될 줄 이야. ‘성추행’ 운운할 여지는 못 되고 그저 푸근한 가슴에 안겼다 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리 집 꼬맹이 어릴 때도 그랬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고 해서 한 개 사주었는데 그걸 먹지 않고 집까지 들고 오더니 냉동실에 넣으며 말했다. ‘내일 우리 선생님 갖다 줄 거야. 먹지 마세요?’
그때 약간의 배신감도 느꼈지만, 선생님이 아이를 어떻게 꾀었으면 저렇게 선생님을 좋아할까 싶어 그저 고마웠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우리 반 아이들 집에서 가족 간에도 서로 안아주는 놀이를 즐겨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세월이 흘렀다. 꼬맹이들이 자라 대학교에 합격하면 떼거리로 호박 선생을 찾아왔다. 어릴 때 교실에서 주었던 ‘신나는 상’을 주고 안아주면, 아이들도 ‘고마운 선생님 상’을 주며 선생님을 안아주었다. 입대를 앞두고 몰려오면 고기를 사 먹여 보내며 당부했다.
“호박 선생이 면회는 못 가지만, 월간지 ‘좋은 생각’을 일 년간 구독 신청해보낼 테니 선생님인 양 받아 보거레이.”
그러다가 소식이 끊기고, 결혼할 때면 다시 소식을 보내온다. 호박 선생은 크리스털 패에 ‘축시’를 써 보내며 아이와 아이의 아이까지 행복하기를 빌었다.
어느 날, 준원이
가 서울에서 하루 날 잡아 대구에 내려왔다. 변호사 시험 합격했을 때 호박 선생의 시골집에서 밥 한 끼 해 먹였는데, 이번에는 장가가겠다며 선생님 부부에게 인사하러 오려고 했다.
“제갈 명식이도 서울 회사에 취직해서 돈 벌었다며 내려왔을 때, 명식이가 고생하며 자낸 일 이 생각나서 눈물이 찔끔 나더라. 밥알도 목에 걸려 잘 안 넘어가더라. 너도 마찬가지야. 너는 밥 사고 돈은 내가 낼게.”
“꼬맹이였던 제자가 이런 좋은 일 있을 때 밥 한번 살 수 있는 직장인이 된 것도 큰 기쁨 아니겠습니까. 하하!”
“하긴, 윤 변호사 마음이 그렇다면 그 기쁨 받아줘야지.”
그래서 호박 선생 부부는 준원이를 맞아 축시 패를 전하며 밥을 얻어먹었다.
“준원아. 어제 제주 항공 비행기 사고 말이야. 아차 순간에 누가 어떻게 죽을지 아무도 몰라. 죽는 순간에 남기고 싶은 말 ‘고마워요. 사랑해요!’ 하는 말을 우리 부부는 아침에 눈뜰 때마다 미리미리 해둔다.”
“저도 매일 아침에 그 말 한마디 하면 서로 다툴 일이 없겠네요.”
우리는 잉꼬 부부 유기 그릇 세트를 전하며 '특별한 날 이 그릇에 밥을 담아 먹으며 고마워요. 사랑해요' 말로 부부의 정을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제자는 해맑게 웃는데, 호박 선생은 헤어질 때까지 밥알이 목구멍에 걸려 ‘잘 가라!’고 손만 흔들었다. 그때 키 185cm의 몸집 큰 코끼리 한 마리가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사랑해요.’ 하며 늙고 마른 호박 한 덩이를 덥석 안았다.
“어, 준원아. 아직도 우리 ‘사랑해요’ 놀이를 잊지 않았네.”
“잊을 리가요.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2025년 1월 6일 1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