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6, 41 - 51
+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어느 수도자가 꿈속에서 천국을 갔다 왔대요.
그런데 가서 성인들의 생활을 보게 되었는데, 살아있을 때 세상과 똑같더랍니다.
새벽 5시 되면 일어나고, 기도하고, 밥 먹고, 노동하고, 또 기도하고 그러다 잠자고, 그러다 또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하고.
이 꿈을 꾸고 난 다음 이 수도자는 너무 실망스러웠어요.
그래서 자기 스승에게 ‘천국은 좀 달라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고 물었죠.
스승이 말씀하시길,
‘네가 천국을 잘못 생각하고 있다. 천국 안에 성인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인들 안에 천국이 있단다.’
알쏭달쏭. 무어라 하셨다고요?
거꾸로 말하지 마세요.
천국 안에 성인들이 아니라, 성인들 안에 천국이 있다.
즉, 지금 내가 열심히 기쁘게 살면 바로 천국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
그런데 이 수도자가 꿈에서 본 성인들이 사는 모습은 살아있을 때와는 똑같은데, 얼굴을 보니 이 세상은 아니더래요.
환하게 웃으면서 아침에 일어나고, 밥 먹고, 기도하고, 노동하는 거죠.
천국은 어찌 보면 장소가 아니라 상태입니다.
천국은 외적인 환경이 아니라 내적인 상황입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천국을 사는 이가 있는가 하면 지옥을 사는 이가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 둘러싸여 있어도 마음이 괴로우면 바로 거기가 지옥임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가정도, 부부지간도, 고부지간도, 본당 신부와 신자 사이도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살아생전 3곳의 맛, 천국, 연옥, 지옥의 맛을 모두 느끼게 해주시죠.
부부끼리 열심히 싸웁니다, 이것은 지옥이죠?
싸우다 두 달가량 서로 이야기를 안 합니다. 힘들죠? 여긴 바로 연옥이죠.
아, 불편해. 내가 먼저 손을 내밀까 말까 하는데, 자매가 김웅열 신부 강론 하나 듣고 눈물 흘리면서 회개하고,
저녁 맛있게 하고 포도주도 준비하고, 남편이 들어오니 말합니다.
‘여보, 나랑 같이 살기 힘들지?’ 하면서 정말 평소 같으면 자존심 상해서 못 할 말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니,
남편도 ‘아니지, 내가 할 말이지. 내가 성질이 더러워서.’ 이렇게 서로 끌어안고 용서할 때, 바로 천국이지요.
또, 성당 와서도 마음 상한 자매가 있으면 멀리 떨어져 앉고, 미사 시간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결국 천국은 장소가 아니라, 외적인 환경이 아니라, 내적인 상황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 세상에 살면서 천국을 살 수 있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 세 가지만 가지고 살면, 천국을 끊임없이 느끼며 여기가 천국이구나, 죽어도 이런 마음이겠지 하는 마음이 들 겁니다.
첫 번째, 고향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본고향은 어디입니까?
우리 신앙인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청주, 진천, 괴산? 그것은 이 세상의 고향이죠.
저 같으면, 태어나 자란 곳은 인천, 신학생과 사제로 살아온 고향은 충청도, 내가 마지막 여생을 다할 장소는 감곡 근처,
하지만 이런 곳은 영원한 고향이 아니죠. 떠나야 합니다.
또 하나, 제가 이 세상에서 꼭 머물다 가고 싶은 고향이 있다면 알프스에 있는 봉쇄 수도원이죠.
2년 전 알프스를 바이크 타고 넘으면서 일부로 들렸죠.
그곳 수사님들을 보면서 제 버킷리스트에 ‘은퇴 후 일 년 혹은 이 년 여기 봉쇄 수도원 분들과 똑같이 살아보자’가 올랐죠.
하지만, 이곳 역시 영원한 고향은 아니죠. 언젠가는 떠날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이 세상 살면서 영원한 세상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세상에 갈 수 없습니다.
서울에 가려면, 일단 서울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서울에 아는 사람이 있든 말든 서울 가는 기차를 잡아타야 합니다.
이렇게 일단 그리움이 있어야 하고, 이 가고 싶다는 애절한 마음은 믿음으로 나타나고, 믿음은 행동으로 옮겨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천국에 가고 싶다 할 때는, 정말 그곳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 강렬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때 되면 가겠지?
여러분은 천국에 대한 그리움을 갖고 얼마나 사셨습니까?
몇 번이나 정말 간절히 천국을 그리워하면 사셨습니까?
휴가 때 좋은 장소 찾고, 멋있는 장소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고, TV에 나오는 많은 아름다운 장소를
가보고 싶다는 마음은 있을지 몰라고, 천국을 갈망하고 그리워한 적은 몇 번이었는가.
이 지상에서 우리는 나그네입니다.
타향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이 세상의 애착이 줄어들면서 천국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우리는 분명히 나그네, 타향 사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3절에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 죽어 갔습니다.’라고 나옵니다.
무엇에 대한 믿음이겠습니까?
천국에 대한 믿음으로 살다 죽었다는 뜻입니다.
나나 여러분이나 이 세상 떠나기 전에, 혀가 아직은 말리지 않아 옆 사람에게 말을 한마디 할 수 있을 때
내 입과 여러분 입에서 나와야 하는 말, ‘나는 믿음으로 살다가 죽습니다.’
천국에 대한 믿음으로 살다가 죽는다는 말이 우리의 마지막 신앙고백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하늘을 바라보고 그리워하라는 뜻이 현실에 무관심 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질서, 순서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가를 늘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우리 머릿속에 늘 첫째 자리에 있는 것, 그 밑으로 내려가야 할 것의 순서를 지키라는 것이니,
현실을 다 무시해 버리라는 무책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느님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것이 우상이라 했습니다.
그 첫 자리에 돈이 있다면 돈이 우상이요, 자식이 있다면 자식이 우상이죠.
눈만 뜨면 하느님보다 이 아픈 몸뚱아리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살까만 24시간 전력투구한다면, 그것이 우상이죠.
하늘, 천국을 생각하고, 세상의 길손임을 알고 너무 악착스럽고 모질게 살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 악착스럽게 살면 우리 영혼이 피폐해지고 상처가 너무 많이 납니다.
환경이 그렇더라고 우리는 여유를 갖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느 자매가 세상 욕심 때문에 너무 힘들다면서 면담을 청하셨어요.
강론을 들으면 포기하고 천국을 생각해야 하는데,
성당 밖에 나가면 돈 걱정, 자식 걱정, 하루 먹고 살 걱정, 아픈 몸 걱정에
솔직히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시기 힘든데 어떻게 해야 하냐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한 달 동안 매일 본인을 위한 연도를 바쳐보라고 면담을 마무리했습니다.
죽은 사람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을 넣고, 이 자매는 한 달간 매일 연도를 바쳤대요.
삼사일 연도를 바치고 나니, 눈물 콧물이 앞을 가려서 연도를 할 수 없을 정도가 되더래요.
그러면서 모든 것이 다 쉽게 포기되더래요.
‘그래, 내가 죽고 나면 교우들이 이렇게 내 이름을 부르며 연도를 바쳐 줄 텐데, 내가 못 버릴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여러분도 인간관계 어려울 때 세상 욕심이 생길 때, 자신을 위해 연도 해 보세요.
그러면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연도는 죽은 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자에게도 필요합니다.
천국 가기 위한 두 번째 방법을 제시합니다.
두 번째는 재물 창고를 하늘에 마련해 두고 사셔야 합니다.
하늘만큼 좋은 곳도 없죠?
그곳에는 도둑이 들거나 좀 먹는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청지기 신분을 망각하고 모든 것의 주인 인양 교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재물 창고를 하늘에 마련하기 위한 첫 번째는 청지기 신분임을 망각해서 안 된다는 것입니다.
청지기는 주인이 아니라 관리하는 사람이죠.
그래서 청지기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습니다.
청지기 하면서 공금 횡령을 한다거나, 추수량을 주인에게 거짓 보고하는 것은 선을 넘은 거죠.
이것이 도둑질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청지기에게는 소유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경영권만 있습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삶의 주인은 본인이 아니지요.
우리가 이 세상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습니까?
생긴 것도 이렇게 생기고 싶어 생겼습니까?
아니지요. 모든 것의 주인은 그분입니다.
우리는 청지기로 내 몸뚱아리를 잘 관리할 의무가 있을 뿐인데, 그 몸에 한평생 술만 집어넣고, 마약만 집어넣고,
정결한 것만 생각해야 하는 머리로 온갖 더러운 것을 자꾸 끌어들이고,
창고는 정리가 하나도 안 되어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청지기는 창고정리를 잘해야 합니다.
나중에 주인이 올해 농사지은 것 보자면서 창고를 열었을 때, 연장을 연장대로, 비료는 비료대로,
곡식은 곡식대로 차곡차곡 있다면, 주인은 최고라고 칭찬하겠죠.
그런데 창고를 열자마자 쥐가 30마리 튀어나오고, 모든 것이 썩어있고, 상태가 엉망이라면 잘못된 청지기이죠?
여러분, 자식도 여러분 것이 아닙니다.
그 자식을 관리하는 경영권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하늘에 재물을 쌓아 두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정성 된 미사, 겸손한 기도, 후회하지 않는 양보와 포기, 또 작은 친절과 따뜻한 말 한마디,
다정한 미소와 사심 없는 봉사, 숨은 선행 등, 이런 것들을 행할 때
나도 모르게 천국의 창고에 재물이 하나하나 올라가게 되는 겁니다.
세 번째로 천국 가기 위한 방법은 ‘허리에 띠를 두르고 등불을 켜놓고 준비하며 살아는 주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랑을 기다리는 슬기로운 처녀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이 언제 오실지 모르니 늘 준비하며 살자.’
종말론적인 삶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필수입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이 세상을 무한히 살 것처럼, 수의에 주머니가 없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처럼 산다면
절대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기도가 ‘주님 이외에 모든 것을 포기하는 하루가 되게 주십시오.’
그리고 따라 나오는 기도는 ‘그리하여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게 해주십시오.’
매일매일을 마지막처럼 사는 삶, 여기서 삶의 활력과 탄력이 솟아납니다.
주님은 우리가 생각지도 않을 때 올 것이니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고 예수님은 이야기하셨죠.
누가 생각하지도 않을 때 온다고요? 주님이요.
주님을 빼고, 거기에 죽음을 넣어 보십시오.
죽음은 우리가 생각지도 않을 때 올 것이니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하늘나라는 분명 우리 안에 있습니다.
첫째, 하늘을 갈망하고,
둘째, 하늘에 재물을 쌓아 두며,
셋째, 어쩌면 하늘 갈 날이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는 겸손한 마음을 갖고 살아가며 깨어 있을 때,
비로소 우리 안에 하늘나라가 도래할 것입니다.
아멘
♣2021년 연중 제19주일 (08/08)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http://cafe.daum.net/thomas0714 주님의 느티나무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