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목사님
기형도
읍내에서 그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철공소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그는
양철 홈통을 반듯하게 펴는 대장장이의
망치질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자건거 짐틀 위에는 두껍고 딱딱해 보이는
성경책만 한 송판들이 실려 있었다
교인들은 교회당 꽃밭을 마구 밟고 다녔다, 일주일 전에
목사님은 폐렴으로 둘째 아이를 잃었다, 장마 통에
교인들은 반으로 줄었다, 더구나 그는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법도 없어
교인들은 주일마다 쑤근거렸다, 학생회 소년들과
목사관 뒤터에 푸성귀를 심다가
저녁 예배에 늦은 적도 있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집사들 사이에서
맹렬한 분노를 자아냈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
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주에 그는 우리 마을을 떠나야 한다
어두운 천막교회 천장에 늘어진 작은 전구처럼
하늘에는 어느덧 하나둘 맑은 별들이 켜지고
대장장이도 주섬주섬 공구를 챙겨 들었다
한참 동안 무엇인가 생각하던 목사님은 그제서야
동네를 향해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저녁 공기 속에서
그의 친숙한 얼굴은 어딘지 조금 쓸쓸해 보였다.
오늘 노베님께서 올려주신 장신대 최주훈교수님께서 신학생들에게 전한 메세지를 읽으며 문득 이 시가 생각이 나서 공유해 봅니다.
기형도시인은 크리스찬은 아닙니다. 하지만 한 시인의 눈에 비친 작은 교회목사님과 그를 둘러싼 주변의 모습 속에서 각자가 음미할 것이 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첫댓글 기형도 시인이 기독교적인 시를 썼군요! 위 시를 잘 읽고 음미해 보겠습니다. 왠지 서민적이고 진실한 목사님 같아요.
저도 그런 느낌이 드네요!
일단 한번 잘 읽어 보았는데요. 기독교는 신자 외에 불신자에게 전도하는 주체로 서있습니다. 기형도 시인이 불신자일지라도 목사와 교회의 모습을 시인의 눈으로 잘 관찰한 것 같습니다.
성경을 읽었으면 읽은 내용대로 믿고 생활에서 실천하자! → 생활에 밑줄을 긋자! 로 표현된 것 같은데요. 신자들도 귀담아 들을 내용으로 보입니다.
좋은 시를 선별하여 게시한 아파르님께 감사합니다.
공감합니다.
공감의 댓글 감사합니다~~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법도 없어" --> 이 부분에서 기존의 예배 관행을 고수하는 교인들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보면요...
'큰 소리로 기도하거나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모습'이 싫어서 그 교회를 떠나는 분들도 종종 있습니다.
"성경이 아니라 생활에 밑줄을 그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신앙이 성숙하고 구원의 서정에서 성화(sactification)의 의미를 아는 성도에게 공감이 될 수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아파르님 덕분에 기독교인으로서 생각할 부분이 많은 시를 읽게 되어 고맙습니다.
공감합니다!
"폐렴으로 아이를 잃자 마을 전체가 은밀히 눈빛을 주고받으며" --> 기복종교의 마인드를 가진 마음을 시인이 읽어낸 것 같습니다.
성도일지라도 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성공한 교인 • 건강한 교인 • 형통한 교인 등의 신화와 전설만을 주고 받으면... 언젠가 위선과 거짓이 교회에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극단적인 경우를 들면...
문제 인물•문제 목사•신비주의자•이단 수괴 중에 본인은 몰래 병원에 다니고 교인들에게는 믿음으로 병을 극복하라! 고 강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위선과 거짓의 극치를 달리는 것이지요.
공감해요.
네 매우 공감합니다. 한국교회의 기복적인 민낯을 시인에게 들킨 것 같아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ㅜ
깊이 있는 감상의 글로 시를 더 풍부하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좋은 통찰력이십니다!
목사님의 친숙한 얼굴이 시인에게는 쓸쓸히 보였어도 하나님은 그 목사님 마음의 중심을 보셨을 겁니다.
(현대인의 성경) 시편 51:6 주는 중심에 진실을 원하십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지혜를 가르치소서
아멘~
검색해 보니 1980년대를 대표하는 유명한 시인이었더군요. 이 분이 기독교 신자는 아닐지라도 교회의 모습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는 잘 보았을 것 같아요. 한창 80년대라면 물질만능주의가 은연 중 교회 안으로 침투하던 시기였을 지도 모르고요.
좋은 시를 읽고, 신자로서 고민해 볼만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네~~그러고보니 한창 은사와 병고침을 중시하던 기도원분위기와 교단이 양적성장을 하던 시기이기도 하네요! 동아줄님의 공감과 댓글에 감사합니다!!
기형도 시인...연세대 출신이며 광명시가 낳은 유명 시인입니다. 광명ktx역 인근에 그의 문학관이 있네요. 아주 조금 그의 시를 읽을 기회가 있어서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아깝게 요절했습니다.
아파르님이 올리신 이 시는 처음 보는 건데 가슴이 너무 먹먹해지네요. 목사님이 아들을 장마통에 폐렴으로 잃었다는 사실에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요. 동네 사람들이 교인들 대다수였을까요? 같이 아파해주지도 않고 은밀한 눈짓을 주고 받으며 쫓아낼 궁리를 했다는 게...너무 무정하고 몹쓸 짓을 한 것 같습니다. 예전엔 목회자들이 가난하게 살면서 자식도 많이 잃고 그랬죠.
시인은 가난한 동네 목사님에게 동병상련의 정을 느낀 것 같고, 교인들이라고 하는 비정한 자들과 힘 없고 자식까지 잃고 내쫓김까지 당하는 목사님을 대조적으로 그려놓았네요. 성경을 그냥 읽기만 하고 읊어대는 것과 진정 어린 삶으로 믿음을 실천하는 것을 중시하는 신앙이 대비되네요.
그런데 그 목사님은 송판으로 무엇을 하려고 자전거에 싣고 갔을까요? 책장? 꽃밭 울타리? 대장장이가 양철통을 펴는 모습을 보며 목사로서 어떤 결심을 한 것 같은 느낌을 주네요.
매우 공감합니다.
가슴이 먹먹해진다는 표현에 공감이 됩니다ㅠㅠ
교인들이 꽃밭을 밟고 다녔다는 게 목사가 원예나 신경쓰고 있다고 무시하고 경멸해서인 것 같은데...그들의 황폐한 마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인 것 같습니다.
아파르님 덕분에 너무 좋은 시를 접하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아...코람데오님의 풍부한 감상평으로 인해 생각을 넓힐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시 본문과 위 코람데오님의 댓글을 보니 저도 소회가 깊어집니다.
카리스마로 교인 위에 군림하여 횡포를 부리는 목사에게는 순한 양 같은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 본문에 나오는 소박하고 서민적인 목사에게는 함부로 대하는 교인들이 있습니다ㅠㅠ
정말 그렇군요 깊이 동의합니다!! 목회자를 대하는 제 자신부터 돌아보게 하는 핵심을 찌르는 댓글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