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이 아프다. 묵직한 돌덩이를 올려놓은 듯 뒷목이 뻐근하다. 자세를 바로 하여 팔과 어깨를 돌려 스트레칭한 후 허리를 좌우로 풀고 앉았다, 일어나기도 몇 번 한다. 몸이 썩 가벼워지진 않지만 새로운 기운이 퍼져 나가는 것 같다. 다시 컴퓨터 앞으로 가 앉는다.
결혼 후 30여 년을 집안에서만 살았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데 온 힘을 쏟았고 자식을 또래에서 처지지 않게 키우려고 애썼다. 아이들이 웬만큼 자란 후 운동을 하다가 디스크가 탈 나 버렸다. 수술을 하고 어둔한 몸으로 수영교 아래를 걷는데 물속에서 팔뚝만 한 게 번쩍이며 튀어나와 앞으로 떨어진다. 헛것을 보았나 했더니 조금 후 또 하나가 떠올라 수직 낙하한다. 숭어다. 산란을 하고 나니 몸이 가벼워져 묘기를 부린다. 강 수면이 가매지며 손가락만 한 치어 수백 마리도 물 밑에서 이동 중이다. 목과 겨드랑이가 간질간질해지며 숭어를 닮아가는 것 같다. 이 상황을 무슨 말로 표현할까.
아들이 해병대에 입대했다. 예쁜 편지지와 편지 봉투, 우표를 많이 샀다. 저녁마다 ‘파도가 크게 부서지네, 오늘 무슨 훈련 받았지, 매화 꽃눈이 봉긋하다.’고 편지를 썼더니 얼마 못 가서 더 이상 쓸 말이 없어졌다. 마음속에 할 이야기는 그득한데 글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어떻게 하나.
무엇을 해야 할까, 문화센터로 갔다. 글쓰기 재미를 약간 알듯할 때 폐강되어 버렸다. 몇 명이 용기를 모아 인근 대학 평생교육원에 등록했다. 몇십 년 만에 강의실에서 받아보는 수업은 경이로웠다. 수강생 중 반 이상이 등단한 작가였다. 열심히 읽고 듣고 물어가며 배웠다. 한 해가 지나니 등단한 이만 보이고 그러지 못한 나는 기가 죽었다. 대상을 만날 때마다 글의 재료가 되나 하고 굴리고 비틀어 보며 글쓰기에 전념했다. 천신만고 끝에 등단했다.
한 고개는 넘었으니 이제 좀 느긋해져도 되겠다 싶다. 글감이 내게로 오도록 책을 읽고 자료를 찾았다. 정신을 가다듬어 화살을 겨누고 빗나가지 않도록 주의를 집중했다. 글 전체를 순수하고 함축성 있게 할 수 있는 낱말 하나를 찾아 며칠을 헤맸다. 애써 다듬은 원고를 여러 동인지에 우송했다.
내가 보낸 글이 어느 문인회의 작품상에 선정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꿈만 같다. 이런 일이 내게도 생기다니…. 옆에서 같이 웃어 주는 남편과 반갑게 전화하는 아이들이 고맙다. 오늘이 있도록 길잡이 해준 분들이 있었지만 마치 혼자 해낸 듯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축하를 받는다. 언감생심(焉敢生心)작가라는 명함까지 생기고 보니 저세상으로 떠난 사람들도 다가온다. 늘 내 건강을 걱정하던 엄마와 신라문화제의 백일장에 나란히 참석했던 오빠와 딸처럼 아껴주던 중학교의 국어 선생님이 계셨으면 손뼉을 쳤을 텐데.
몇몇 문우들이 개인 수필집을 내었다. 나더러 언제 낼 거냐고 묻기에 실력을 연마해 십 년 후에나, 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이 들수록 생각의 앞뒤가 엉켜서 글쓰기가 더 어렵다. 내심 큰일이라 여겨진다. 빨리 수필집을 내야겠다는 생각에 쓴 글을 프린트해서 읽어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작심하고 컴퓨터를 켠다. 다시 구성하고 정확한 단어를 찾아 고치느라 책상 앞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운동을 게을리하고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으니 혓바닥에는 가시가 돋고 어깨와 팔도 너무 아프다. 가족들은 왜 그리 힘들게 매달리느냐고 타박하지만, 재주 없는 내가 대강해서 될 일인가. 내 이름이 적힌 책을 내는 게 얼마니 힘 드는 일인지 원고 다듬느라 애를 태우면서 비로소 알겠다.
추락하여 탑승객 전원의 목숨을 앗아간 비행기에 타려다 만 사람이 있었다. 어쩌다 그는 비행기에 타지 않았고 운명 아니면 우연이 선사한 생명을 받았다. 지금까지는 그저 목숨을 부지했지만 이제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이 분명히 인식되었다.
나도 사십여 년 전 교통사고로 보름 동안 의식이 없다가 눈을 떴다. 몸과 마음이 많이 부서졌지만,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가 보였다. 살아야 했다. ‘욕심부리며 살지 않겠습니다 ~ 저의 앞날이 초라하지만은 않도록 보살펴 주십시오’. 기도하며 잃어버린 나를 찾아 챙기느라 온 힘을 쏟았다. 남보다 두 배는 어렵게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욕심이 생기고 주위를 보는 눈도 까다로워진다. 피곤하다. 힘들게 지켜 낸 삶을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 박자 누그러뜨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나무들이 숨을 쉬고 숲이 이야기하면서 침묵하듯 잔잔한 글로 나를 위로하고 싶다.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구체적이면서 유연하게 형상화하려고 노심초사한다.
내 글쓰기는 남편이 출근한 후부터 시작된다. 앉아서 집중을 해도 글이 술술 풀리는 날은 없고 늘 문맥이 막혀 봄을 뒤틀다가 일어난다. 괜히 주방으로 가서 정리정돈은 잘 되었나 냉장고 안은 깔끔한가 확인하고 행주를 폭폭 삶아서 빤다. 나름대로 기분 전환의, 방식이다.
산도스 마라이는 소설 ≪열정≫에서 쌍둥이처럼 보살폈던 벗과 사랑하는 아내에게 기만당한 후, 분노와 절망과 고독 속에서 41년이나 기다린 끝에 친구를 만나 영혼과 운명과 삶을 풀어내는 것을 열정이라고 했다. 컨디션이 가장 좋지 않을 때도 해낼 수 있는 차분하고 성실한 인내심을 말하는 것이리라.
이제 열정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는 길 외에 방법이 없다. 더 여문 글을 쓰기 위해 사상을 가다듬고 꾸준하게 모은 마음을 전부 바칠 일이다. 하다 보니 불가능할 것 같던 수필집 출간도 조금씩 진행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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