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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의 그라운드
제8화 - " 격돌! 뉴캐슬 "
뉴캐슬 사람들의 살벌한 야유 속에서 뉴캐슬과 아스날의 선수들은 격돌하고 있었
다. 그 야유를 타도 목표인 아스날에게 퍼붓는 것인지 아니면 전반부터 두골을 실
점한 자신들의 뉴캐슬에게 퍼붓는 것인지 관중들 스스로도 구분할 수 없었다.
뉴캐슬은 분명히 강해졌다. 지난 시즌 리버풀과의 4위 동률까지 이뤄냈고, 득실
차에서 밀려 5위로 마감했다. 미세한 차이로 놓쳤던 아스날을 맞아 홈에서 이기는
경기를 해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 전반을 끝내는 휘슬도 울리지 않
았지만 아스날에 두골을 내주고 있었다. 모든 것은 선발출전한 루시아의 발끝에서
시작되었었다. 뉴캐슬의 감독, 애런 헤일즈는 후회하고 있었다.
'왜 루시아를 분석하지 않았는가. 나는 왜 자만했는가. 저 여자가 찰튼을 붕괴
시키는 것을 보았음에도 왜...'
"롱킥으로 두 경기에서 벌써 세 골이나 만들어 냈네요. 계속 이렇게 나가면 전
리그 팀에 비상이 걸리지 않을까요?"
린다의 카메라맨 앨런은 루시아의 플레이에 몰입한 나머지 걱정까지 하기 시작했
다. 루시아는 뉴캐슬의 미들진을 저지하고 있었다. 그 냉정한 시선으로 공의 흐름
을 추격하며 공간을 막아나갔다. 뉴캐슬 공격수가 공격진영에서 빠져나와 공간을
만들자 미드필더들은 교환패스로 공을 투입했다. 패스가 빠져나갔다고 느끼는 순
간 루시아의 쭉 뻗어온 빠른 발끝이 공을 가로막고 있었다. 다시 붙어오는 뉴캐슬
선수를 왼쪽으로 방향을 전환해 틈을 벌리고는 전방을 응시하자 관중들의 신음소
리가 울려 퍼졌다.
"루시아! 또 다시 롱킥을 시도하려 합니다!!!"
위쪽 중계 해설진들이 흥분해 질러대는 소리가 기자석까지 울려퍼졌다. 조급한
흥분의 이유는 곧 드러났다. 루시아가 왼발로 전방을 향해 킥을 날리자 뉴캐슬의
관중들은 벌떡 일어나 머리를 양손으로 쥐어짜며 비명을 질렀다. 공이 그라운드
중앙을 뚫고 나가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5만 관중들의 눈에는 슬로우 모션처럼 보
였다. 공이 그라운드에 잔디파편을 흩뿌리며 튀겨올랐을 땐, 이미 사하와 골키퍼
는 일대일로 맞서고 있었다. 공은 항상 골키퍼에 가깝지 않았다. 사하는 공의 두
번째 바운드를 노려 깔아찼다. 뉴캐슬 골키퍼는 댓쉬에서 사이드 블록으로 미끄러
져 슈팅을 막아냈다. 막혀 흘려진 공을, 추격해오던 수비수가 걷어내자 골키퍼는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누운 채로 숨을 헐떡이며 이번에 몇번째인지 생각해 봤
다. 그리고 자신이 아니었다면 저 전광판에 찍혀있을 숫자가 무엇일지도 한번 그
려봤다.
린다 크로포드는 기자석에서 카메라맨 앨런을 대동하고 아스날의 뉴캐슬 원정경
기를 관전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꾸준히 루시아를 향했고 뉴캐슬이 그녀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가 이번 경기의 주관심사였다.
"그래 봤자 라고 생각했겠지. 상대는 여자다. 패씽이 빼어난 듯 하지만 찰튼 따
위의 허접한 팀이나 당했을 뿐, 자기들의 통상적인 압박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겠
지. 그나마도 그라운드 위에선 무용지물이 되버릴 뿐이야. 저 눈 앞의 모습 때문
에."
린다는 뉴캐슬 벤치의 애런 헤일즈 감독을 바라봤다. 그는 벤치 옆에 서서 가만
히 경기를 지켜보고 있을 뿐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았다. 린다는 그가 후회와 함
께 후반의 대책을 찾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애런 헤일즈의 머리 속에서 루시아
에 대한 놀라움은 이미 몇십분 전에 사라지고 없었다. 이제 애런 헤일즈의 눈 앞
에 있는 선수는 뉴캐슬의 중앙 공격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수비형 미드필더일 뿐이
었다. 하지만 그라운드의 뉴캐슬 선수들은 그처럼 침착할 수 없었다. 자신과 경합
을 벌이는 이가 긴머리를 휘날리며 격돌해오는 루시아란 것을 깨닫게 될 때마다
몸이 움츠러 들곤 했다. 그런 루시아가 장거리 킬링 패스로 골을 만들어나가자 일
부 선수는 눈 앞의 현실을 기적으로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뉴캐슬 선수들은 잔다
르크 신드롬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애런 헤일즈는 포기하지 않았다. 홈팀이
전반 2실점으로 포기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전반내내 가했던 프레씽이 루시아를 주축으로 한 아스날의 중상위라인에 풀려
버리면서 수많은 역습을 당했다. 골키퍼의 무수한 선방 때문에 두골 밖에 실점하
지 않은 것이 고마울 정도지. 그렇다고 해서 전반 중에 변화를 줄 수는 없다. 저
역습패스 때문에 수비진을 내리거나 스위퍼 시스템으로 변환하는 것은 밸런스의
붕괴만 올 뿐이다. 실점도 밸런스 안에서 이뤄져야 하는게 나의 믿음이다. 여태껏
쌓아온 밸런스를 무너뜨리고 실점까지 당하게 된다면 이 90분간의 용광로 속에서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버텨라. 남은 3분을 더 이상의 실점없이 전반을 끝낼 수 있
다면 우리에게도 희망의 끈은 여전히 메여있을 것이다.'
벤치 근처에서 드로잉이 선언됐다. 애런 헤일즈는 벤치 방향에 시선을 두고 있는
루시아를 노려보듯 응시했다.
'마치 군인 같은 표정이군. 고통은 과정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건가.'
수비형 역습모드에 있던 아스날에게 심하게 접근하지 않은 덕분에 더 이상의 실
점없이 전반을 마쳤다. 뉴캐슬 선수들은 빗발치는 관중들의 야유소리가 들리지 않
았다. 다만 락커룸으로 향하는 도중 루시아를 한번씩 유심히 바라보고서는 무거운
걸음을 끌어옮겼다.
"대체 눈 앞에서 보고도 아직도 믿을 수가 없어요! 리플레이를 봐야 겠어요."
앨런이 침을 튀겨대고는 프레스데스크에 설치된 모니터에 머리를 박아넣고 리플
레이에 빠져들었다. 린다도 앨런의 큰 머리를 간신히 밀어내고는 리플레이를 분석
해나갔다. 뉴캐슬은 전반내내 중앙부근에서 루시아에게 완전히 가로막히고 있었
다. 선수들의 당황한 표정들도 생생하게 클로즈업되었다. 루시아의 신속한 댓쉬로
압박에 걸려든 뉴캐슬 선수가 화들짝 놀라며 경합 중인 루시아를 피해버리는 장면
까지 있었다. 뉴캐슬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루시아를 상대했는지 잘보여주는 대목
이었다. 하지만 뉴캐슬에게 내려온 재앙은 루시아가 공을 가로챌 때마다 반드시
터져나오는 저 역습패스였다. 단방에 최종수비수를 무력화시키고 일대일 상황을
만들어 버린다. 5만 관중들을 절망에 빠뜨린 무서운 정확도. 전반에만 5차례가 터
져나왔다. 세번째부터 관중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카운터야. 저런 무모한 패스를 계속 성공시키다니."
린다도 루시아의 롱킥에 소리를 지를뻔 하다 꾹 억눌렀었다. 그래도 기자석 곳곳
에서 탄성이 터져나왔었다. 린다는 연습경기 잠입과 찰튼과의 개막전을 통해 루시
아의 주무기가 이 카운터 패쓰라는 것을 잘알고 있었지만 리그 상위의 뉴캐슬에게
도 통할지는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의외로 뉴캐슬이 루시아를 아주 가볍게 보고
나왔고 무엇보다 뉴캐슬을 붕괴직전까지 몰고 간 것은 남자 선수에 전혀 뒤떨어지
지 않았던 루시아의 수비력이었다. 일대일 퀵마킹 상황에서 뒤에 붙어서 밀고나오
는 루시아에 계속해서 컨트롤을 잃어댔고 중앙을 거치는 패씽 연계에서도 아스날
수비진과 함께 공간을 막아나가는 루시아의 리딩에 밀려 양사이드와 뒤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분위기 파악에 소질없던 그들의 스트라이커가 공을 몰며
가벼운 걸음으로 루시아를 제끼려다 스탠딩 태클에 빼앗기며 넘어지자 뉴캐슬 선
수와 관중 모두가 패닉에 빠져 들어버렸다.
"애런 헤일즈... 역시 전반을 버텨냈군."
웽거는 라커룸으로 가는 복도를 지나면서 중얼거렸다. 내심 전반에 뉴캐슬이 전
술을 바꿔 대처하기를 바랬었다. 그랬다면 오늘의 승부는 세번째 추가골로 전반에
쉽사리 결정내버렸을 것이라는 아쉬움이었다. 그래야 다음 아스톤 빌라와 그 다음
토튼햄과의 경기까지 루시아를 이용해 어느 정도 쉽게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전반에 세번째 골이 나오면 루시아를 빼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애런 헤일즈는 두
번째 실수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분명히 방심이라는 실수도 메스로 잘라내버리고
봉합하여 다시 나올 것이다. 애런 헤일즈에게 락커룸은 수술대와도 같은 곳이었
다.
"루시아."
웽거의 부름에 루시아가 뒤돌아섰다. 온화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눈동자가 웽거를
향하고 있었다.
"후반전도.. 괜찮겠나?"
웽거는 왠지 느리게 물어보았다. 사실 하려던 말은 '후반전엔 뉴캐슬이 전력으로
달려들 것이다. 괜찮겠나?' 같은 것이었다.
"네."
루시아는 간단히 대답했다. 그 목소리에 웽거는 눈 앞의 이 선수가 여자라는 것
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눈 앞에서 펼쳐진 활약을 보았지만 웽거조차도 그 근본
적 편견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 없었다. 자꾸 달라붙는 이 의문. 루시아를 처음 소
개받고 연습경기에 내보냈을 때와 찰튼과의 첫 데뷔. 그리고 이제 또 한번 미지의
영역이 찾아올 것이다. 후반에 총 전력을 끌어낼 뉴캐슬. 그리고 그에 맞설 루시
아. 웽거의 한쪽 구석모서리에선 그 장면을 보고 싶지 않다는 념이 떠오르고 있었
다. 이 특이한 존재의 가까이에서 웽거는 그의 인생동안 만났던 그 어떤 선수보다
도 동정심을 느꼈다. 하지만 다시 '우승'이라는 글자를 떠올렸다. 여느 때처럼.
"미안하다. 모든 것은 나의 잘못이다."
애런 헤일즈는 선수들에게 정중한 사과로 락커룸에서의 첫마디를 내었다. 라커룸
에 축처져 있던 뉴캐슬 선수들은 눈이 휘둥그래져 감독을 바라보았다. 뜻밖의 말
이었다.
"우리가 챔피언스 리그에 나가면 어떻게 하자고 말을 했었지?"
감독은 특유의 울림으로 선수들에게 대답없을 질문을 던졌다.
"후회없는 경기를 하자고 했었다. 우리가 최고는 아니지만 세계최고의 선수들로
둘러쌓인 팀을 만나도 꺽이지 말자고 했었다."
말에 힘을 주지는 않았다. 침울한 분위기를 그대로 타내려갔다.
"아마도 이번이 그 드문 기회 중에 드문 하나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애런 헤일즈는 등을 돌려 라커룸의 문을 빠져 나갔다. 선수들이 자신의 눈에서
후회와 분노, 또 그 자신에 대한 분노를 보기 전에 등을 돌리고 걸음을 옮겼다.
이제 그들 차례였다.
"앨런. 카메라를 점검해."
"아까 점검했어요. 이 기자석에서 카메라로 뭘 찍으라는 거에요?"
앨런은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물었다. 린다가 또 무언가를 시키기 시작했기 때문
이다. 역시 여느 때처럼 린다는 어딘가 앞을 내다보고 있는 것처럼 진지함과 집중
의 표정이었다.
"후반전.. 남은 후반전 동안 루시아의 모습을 모두 담아. 아마 이제 루시아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몰라."
"에?"
앨런은 다시 퉁퉁거리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는 프레스데스크에 알맞은 카메라스
탠드를 펼쳐 그 위에 카메라를 세팅하고 초점을 맞췄다. 하여간 '허가받지 않거
나', '불법적인' 일을 꽤 좋아하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입에서 '
아마'라고 했던 부분에선 무엇인가 벌어졌다. 렌즈의 초점은 그것을 기다리고 있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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