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의 저주
시골 우리 동네에서 20분 정도 걸어가면 저수지가 있다.
사람들은 저수지라하지 않고 언이라 불렀다. 저수지가 크지는 않았지만 어릴 적 우리들의 신나는 놀이터였다. 방학을 하면 점심을 먹고 여럿이 언으로 멱을 감으러 가는데 한가지 조심할 건 어른들이 눈치 못채게 몰래 가야했다.
언으로는 절대 가지말고 계곡으로 가라고 신신당부를 하지만 어디 애들이 어른들 말을 듣던가?
우리가 눈치를 봐가며 몰래몰래 언으로 가는 이유는 어른들의 말에 의하면 언에는 물귀신이 있어서 사람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간다고 했다.
실제로 우리 뒷집의 친구 오빠가 그 전 해에 미역감으러 갔다가 빠졌는데 일년이 지나도록 떠오르질 않아 찾질 못했다.
나중엔 무당까지 불러 넋을 건진다고 언 둑에서 둥당거리고 한바탕 굿판을 벌였지만 무당이 건져낸 건 머리카락 한주먹 정도였는데 그걸 받아든 친구 엄마는 그게 아들인양 가슴에 꼬옥 품으며 아들 이름을 목터지게 불러대는데 그 모습을 보고 울지 않는 이가 없었다.
굿 하는 날,
애들은 따라오지 말라고 어른들이 무섭게 얘기했지만 그런다고 안 갈 우리가 아니었다. 언둑엔 굿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시커멓게 몰려들어 무당의 굿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조그만 시골 동네에 매일 그날이 그날인데 모처럼의 굿소식은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여자애들은 울긋불긋 차려입은 한무리의 무당들의 옷차림새에 빠져있고 남자애들은 마침 방학이라 할일없이 빈둥대며 시간 죽이며 지내느라 심심해서 죽을 판에 굿소식도 흥미있지만 언 둑 한쪽에 소여물 만큼이나 잔뜩 쌓여있는 굿 음식을 향해 눈화살을 쏘고 있다.
얼른 굿이 끝나서 여름 내 쉬어터진 열무짐치만 먹어대선 입만 열었다 하면 군내가 등천을 하는 입에 고급진 음식을 넣을 궁리를 한다.
그러면서 서로 손가락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히히덕대다가 눈화살 쏜 음식이 겹치면 내가 먼저 찍었네 어쩌네 하며 시끄러웠지만 그 또한 오랜 친구간인 머스마들의 장난섞인 치기였기에 보던 사람들이 왁자하게 한바탕 웃고나면 그만이었다.
한참을 둥당거리기도 하고 넋두리도 하던 무당이 한참 후에 머리카락을 건지는 걸 보며 우린 어찌나 무서웠던지 모른다.
친구 하나가 옆에서 물귀신이 사람을 당길때 머리부터 당겨서 저렇게 빠지나봐~ 하는데 우린 꼭 보이지않는 누군가가 머리카락을 끌어당기는 것 같아 손으로 머리를 꼭 감싸쥐었다.
어른들이 물귀신이 사람을 끌어당긴다고 하는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해마다 꼭 한 두명은 언에 빠져 죽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걸 두고 물귀신이 누구든 한명을 끌어들여야 자기가 저승을 가기때문에 해마다 사람이 물에 빠져 죽는 거라고 했다.
우린 무서워서 한동안 가지 않았지만 그 이듬 해엔 다시 보무도 당당히 언에 가서 놀았다.
언을 관리하는 아저씨가 언 한가운데에 조그만 배를 띄워 놓았었는데 우리 거기까지 누가 먼저 헤엄쳐가나 내기를 하곤 각자 편한대로 개구리 헤엄에 개 헤엄에 갖은 폼으로 배까지 가는 희열을 느끼곤 했었다.
그러다 언이 시시해지면 신작로 건너 계곡을 따라 내려갔다. 거기엔 큰 소沼가 있어 자맥질을 해가며 놀곤했는데 거긴 물이 어찌나 차가운지 10분 이상을 못버텼다.
동네 어른 중에 한분이 논물을 보고 집에 가다가 언에서 내려와 신작로를 가로질러 두멍소로 가는 우리들을 보고 했다던 말이 지금도 생각난다.
'지지배들이 시커멓게 타서는 홀랑 벗고 걸어가는데 볕에 타서는 반질반질하니 꼭 흑염소 떼가 지나가는 줄 알었지 뭐유? ' 했다는데 그 시절에 속옷도 변변치 않아 팬티만 입고 겉옷은 팔이나 어깨에 걸치고 떼로 몰려다녔으니 그럴만도 했다.
웃긴 건 그 중에 당신 딸도 있었는데 아마 알았다면 어땠을까?
제법 깊은 개울 한가운데 소沼 에다 감자를 까서 물속에 던져놓고 먼저 찾기 내기도 하고 높은 바위에서 다이빙도 해가며 한참 놀다보면 입술이 파래지고 이빨이 딱딱 부딪힌다. 그러면 개울가 넓적한 바위에 엎드리는데 햇살을 받아 뜨거워진 바위는 차가워진 몸을 녹이기엔 더없이 좋았다.
우리 고향의 계곡물은, 다른 지역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데 비해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북수 北水라 더 차갑다고 어른들이 그랬다.
아뭏든 저수지에서 놀다가 싫증나면 빤쓰만 입은 채로 신작로 가로질러 계곡으로 가는 한무리의 흑염소 닮은 계집애들 행렬은 여름방학 내내 이어졌다.
올여름, 진절머리나게 더우니 고향의 언과 차디찬 계곡이 생각났다.
그 시절로 다시 갈 순 없을까?
제발~!!!
첫댓글 「저수지의 저주」는 단순한 어린 시절의 추억담을 넘어, 죽음과 놀이, 금기와 욕망, 공동체와 개인이 교차하는 농촌 사회의 풍경을 생생하게 기록한 농촌출신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좋은 글입니다. 이 글은 결국, “저수지”라는 공간을 통해, 두려움과 향수, 공동체적 기억을 동시에 소환하는 문학적 기록이기도 합니다. 저도 마을 저수지(포강)에서 수영을 배웠지요. 개구리 헤엄이지만.
여름만 되면 가고 싶은 곳이예요.
개구리, 개헤엄, 누워서도 가고요.
선생님이나 저나 시골서 자란 게 큰 자양분이었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