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희 연재 동시 레시피 소스
-오늘의 날詩
중고등학생이나 어른들을 만나는 강연에 가면 이렇게 호언장담합니다.
하루에 3분만 3줄 이상을 30일 동안 쓰면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제목도 붙였습니다. 333쓰기법이라고.
(333을 강조하며 나는 사랑 아니고 삼랑한다고 말합니다. 3랑합니다. 여러분!)
100일을 못 채워서 누구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건국 신화도 있지요.
30일을 하루도 거르지 않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여 시인하기 쉽지 않습니다.
보이는 대로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글제로 매일 쓰자. 딱 한 달만 하자.
매일 쓰려면 어떤 제목이 좋을까?
‘오늘의 날씨’가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한 달간 제 블로그에 쓰고 인증했었습니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써야 작가다.’를 실천하려고 애씁니다.
오늘 여러분의 날詩는 어떤가요?
믹스커피의 날씨
꽃 나들이객들이 인터넷이며 신문을 가득 메우고 있네요.
하늘에서 촬영한 벚꽃들이 아우성이고요.
주인님이라고 가만히 있을 수 없지요.
막 끓는점을 통과한 물을 보온병에 붓네요. 긴장되는군요.
동네 산으로 오르네요. 아줌마들을 만나요.
정상은 아직 멀었는데 벌써 가방을 여네요.
잘 찢어진다는 절취선을 따라 과감한 손길.
제 몸을 벌려 종이컵에 물구나무를 세우네요.
촤르르, 내 몸은 비우기에 돌입해요.
그동안 담아두기만 했다는 걸 반성하는 중이에요.
평소엔 설탕 조금, 프림 조금이란 내장은 남겨두는데
오늘은 '조금'을 처리할 수가 없어서 그냥 통째 컵 안으로 보내네요.
확실히 깨끗하게 비워지고 있어요.
나는 바들바들. 벚꽃 잎도 하늘하늘. 같이 떨어주네요.
마음을 알아주는 벚꽃이 옆에 있다니 행운이에요.
공장 라인에 누워 나올 때처럼 떨려요.
나는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가 아닌 ‘따뜻해도 얼고 있구나’ 상태가 되어요.
앗, 아, 으악. 온몸이 불에 덴 것 같아요.
커피와 프림과 설탕으로 잡탕이 된 나를 만나요.
뜨거워요. 정말 뜨겁네요. 내 비명에 놀라 벚꽃잎들이 뛰어내렸어요.
오늘은 정말 70도를 넘는 뜨거운 날이라고 말하겠어요.
휴, 하반신에 달콤함을 묻힌 채 간신히 빠져나왔어요.
뜨거운 불기둥, 소용돌이를 만나고 왔지만
나는 글쎄, 그러니까 멀쩡한 것 같아요.
커피믹스 봉지를 걱정하는 하해(河海) 같은 아량을 베푸시어
나무젓가락이라도 챙길 것을 간절히 예보해요.
나무 젓가락에게는 미안하지 않냐구요?
모르시나 본데요. 나무젓가락은 웬만한 온도에는 꿈쩍하지 않는 근육을 가졌다고 소문이 자자해요. 헛소문이 아닐 거라 믿어요.
네, 오늘은 봄나들이 간 믹스커피 님을 연결해 보았습니다.
일회용 커피/김미희
봄나들이 가면
바리스타들이 화창하다
봄에 취한 사람들은
풍경이 된다
꽃이 사람 구경하며
활짝 웃는다 말을 건다
커피와 꽃 서로 맡는다
흐흠, 네 향 참 좋다
*동시먹는달팽이 2024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