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부터 광주일원에서 발생한 소요사태가 아직 수습되지 않고 있으며 조속한 시일내에 평온을 회복하도록 모든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계엄사령부가 21일 밝혔다. 계엄사 발표전문 『계엄사령부 발표에 의하면 이번 소요사태는 최초 전남대생 6백여명이 거리에 나와 「비상계엄해제」 등을 요구하며 시위에 들어갔으나 2O일에는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터무니없는 각종 유언비어가 유포되어 이에 격분한 시민들이 시위대열에 가세함으로써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한다. 21일 상오 7시 현재 집계된 피해상황은 이 소요에서 군경 5명과 민간인 1명이 사망했고 군경 30명이 부상했으나 민간인 부상자수는 공식 집계되지 않았다. 또 이 소요로 ▲공공건물13동이 파괴 또는 소실됐고 ▲민간차량 3대와 소방차량 4대가 파괴됐고 ▲민간인 사망자의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으며 군경5명의 사망원인은 시위군중이 탈취한 차량이 군경대열에 뛰어들어 그 충격으로 인해 죽은 것이라고 밝혔다. 계엄사령부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광주지역 소요가 악화되어 극심한 난동현상을 보이고 있는 원인은 전국비상계엄이 선포되자 서울을 이탈한 학원소요 주동학생 및 깡패 등 현실 불만세력이 대거 광주에 내려가 사실무근한 유언비어를 날조해 퍼뜨린 데 기인됐다고 했다. 그런데 광주지역에 유포된 전혀 근거없는 악성유언비어의 유형을 보면 다음과 같다.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에 와서 여자고 남자고 닥치는대로 밞아 죽이고 있기 때문에 사망자가 많이 난다 ▲18일에는 40명이 죽었고 금남로는 피바다가 되었다는데 군인들이 여학생들의 「브러지어」까지 찢어버린다 ▲공수부대 애들이 대검으로 아들딸을 난자하고 「브러지어」 와 「팬티」만 입혀서 장난질을 한다 ▲공수부대가 몽둥이로 머리를 무차별 구타해 눈알이 빠지고 머리가 깨졌다 ▲한신대생 1명이 그날 다쳐서 죽었다 ▲학생50여명이 맞아서 피를 흘리며 끌려 다니고 있다 ▲계엄군이 출동하여 APC(장갑차)로 사람을 깔아죽였다 ▲계엄군이 점거하고 있는「가톨릭·센터」건물 안에는 시체 6구가 있다 ▲ 「데모」군중이 휴가병을 때리자 공수부대요원이 군중을 대검으로 찔러 죽였다 ▲계엄군이 달아나는 시민들에게 대검을 던져 복부에 박혀 중상을 입었다 ▲진압군인들은 경상도출신만 골라 보냈다는 등 허무맹랑한 유언비어가 만연되고 있는 실정인 바 시민들은 이러한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말기를 당부했다. 한편 서울지역에서도 계엄군이 성균관대에서 여대생을 능욕했다는 유언비어가 유포되어 있는바 이는 지난 5월 18일 새벽 5시 성균관대에 진주한 계엄군이 교내 수색때 동교 유도회창고에서 젊은 남녀를 발견, 옷을 입힌 후 신원을 확인 귀가시킨 사실이 와전된 것으로 밝혀졌다.』
*** 계엄군, 광주시 진입|계엄사 발표|오늘 새벽 3시30분에 시작 1시간40분만에 시내 일원 장악|2명 사망·2백여 명 연행 *** 중앙일보 1980-05-27 1면
계엄 사령부는 『27일 상오 3시30분 광주 시내에 군 병력을 투입해 상오5시10분 광주시 일원을 장악했다』고 이날 상오 발표했다. 발표 전문은 다음과 같다. 「▲계엄군은 그동안 광주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전력을 경주해 왔으며 지난 25일에는 대통령 각하의 현지 특별 담화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주 사태는 극렬한 폭도들에 의하여 호전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되는 조짐이 보였다. ▲따라서 군은 생활고와 온갖 위험에 시달리는 선량한 시민을 구출하기 위하여 27일 상오3시30분 군 병력을 광주 시내에 투입하였다. ▲군이 진입하는 동안 도청과 공원 등지에서 폭도들의 일부 저항이 있었으나 상오 5시10분에 광주시 일원을 완전 장악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기간 중 저항 무장 폭도2명을 사살했고 2백여 명을 체포하였다. 시민의 인명 피해는 없었으며 군인4명의 부상이 있었다. ▲계엄 당국은 광주 일원의 치안이 유지될 때까지 광주 시내의 출입을 당분간 제한하기로 했다.』
너무나 재미있네요! 신문에 이렇게 글을 올렸는데 광주가 폭동이 일아나고 간첩이 들끓는다고 생각했을만 하네요! 전두환 **놈! 완전히 언론을 가지고 놀았구만! 울화통이 치밀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