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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30일 성령강림절 후 여섯째 주일 예배
성경: 계17:1~18절(신415)
제목: 큰 음녀(바벨론)의 멸망(나경수 목사)
성도 여러분, 우리는 ‘머니 머니해도 머니가 최고다’라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동성애 같은 성적인 죄에 대하여는 아주 과격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성경에서의 ‘음행’, 즉 ‘음녀의 우상숭배(영적 간음)’에 대해서(세상의 더욱 근본적인 죄악임에도 불구하고)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포함한 17:1~19:10절을 통하여 그 음녀의 성격과 그 멸망의 이유(18장)를 바르게 알고 우상숭배의 유혹을 이겨서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은 신부’(19:8)로서 ‘어린 양의 혼인 잔치’(19:9)에 다 참여하시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17장)에는 요한이 보았던 환상과 그 환상의 비밀에 대한 천사의 해석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의 환상(상징) 해석에서 하나의 실체를 가리키는 여러 상징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교회를 상징하는 일곱 촛대, 두 증인, 어린 양의 신부, 거룩한 성 예루살렘 등이 있으며, 그리고 ‘또 다른 큰 성’, 곧 하나님의 두 증인이 증거하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그 성(적대적인 세상)’을 영적으로 ‘소돔’, ‘애굽’, 그리고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11:8)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서로 다른 관점에서 하나의 실체를 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17장)에서도 ‘많은 물 위에 앉은 그 큰 음녀’(3)에서 ‘그 큰 음녀’는 앞에 ‘정관사(테스)’가 있어 당시에 잘 알려진 실체로서,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성(바벨론)’(18), 즉 로마를 상징합니다(벧전5:13). 그런데, 그녀가 타고 있는 ‘붉은 빛 짐승’(3)도 용으로부터 권세를 받은 바다에서 나온 첫째 짐승(13장)도 마귀의 지배를 받은 로마를 상징하며, 땅에서 나온 둘째 짐승(13장)도 동일한 로마를 상징합니다. 첫째 짐승은 정치 군사적 관점에서 본 로마이며, 둘째 짐승은 종교적 관점에서 본 로마이며, 오늘 본문의 큰 음녀는 경제적 관점에서 본 로마입니다(18장 참조).
또한, ‘일곱 머리와 일곱 산과 일곱 왕’(9~10)은 하나의 왕권에 대한 다른 상징들이며, ‘열 뿔’(12)도 하나의 왕권에 대한 또 다른 상징입니다.
오늘 본문(17장)은 1~3a절과 3b~18절로 나누어집니다. 전자는 17:3b~19:10절의 서문입니다. 후자는 짐승을 탄 여자(음녀)의 환상(3b~6a)과 여자(음녀)와 짐승의 비밀에 대한 천사의 해석(6b~18)으로 구별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왜 로마를 ‘그 음녀(바벨론)’로 상징하였을까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 중심의 바벨의 세상 문명’(창11장)은 주님의 재림 때까지 항상 존재하여 음녀와 같이 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 제국은 이것을 상징하는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오늘날도 음녀의 유혹과 짐승의 공포를 통한 작은 바벨론들이 우리 주위에서와 우리 마음의 깊은 곳에서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우리는 오늘 본문(17장), 아니 오늘 본문과 함께 우리를 읽기 원합니다.
1. 3b~19:10의 서막입니다(1~3a).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그)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이 서막은 ‘그 큰 음녀가 받을 심판’(1)을 17장~19:10절의 주제로, 그리고 땅의 임금들과 사람들이 그녀와 더불어 행한 ‘음행’을 그 심판의 이유로 소개합니다. 여기서 ‘음행’은 문자적인 성적인 음행이 아니라 우상숭배를 의미합니다. ‘땅의 임금들’은 자신들과 자신들의 권력을 우상으로 섬기며, ‘땅 위의 사람들’도 자신들과 자신들의 소유들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우리의 주이시다’라는 ‘영원한 복음의 진리’(14:6, 고후4:5)에 대적하는 마귀의 거짓, 즉 ‘큰 성 바벨론의 이데올로기’입니다(14:8).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떤가요?
여기서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1)가 요한에게 ‘음녀’를 소개하고, ‘같은 천사’(21:9)가 ‘어린 양의 신부(새 예루살렘)’를 소개하여 대조합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을 여섯째와 일곱째 대접의 재앙(16:12~21)과 연결하며,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은 다른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나타낸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또한, 이 천사는 큰 음녀의 비밀(멸망)을 잘 볼 수 있도록 요한을 성령으로 ‘광야’로 데려갔습니다(3). 왜 광야일까요? 바벨론의 문명에서 벗어난 장소입니다. 자신의 보호나 만족(탐욕)을 위하여 거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장소이며, 오직 하늘만 바라보는 장소입니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분주한 세상을 떠나 세상을 바라보며 조용히 묵상하며 생각하는 것이 ‘할리데이(holy day)’입니다. 이것은 분주하게 여행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원에서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와 함께 세상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광야는 어디일까요? 가난할 때(마5:3, 눅6:20)나, 약할 때(고후12:10)나, 별세(죽음)의 순간이 바벨론의 세상을 잘 볼 수 있는 광야입니다. 성도 여러분, 자주 광야로 나가서 음녀의 세상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2. 요한이 보았던 여자와 짐승에 대한 환상입니다(3b~6a).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 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여기서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붉은 빛 짐승’(3b)은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큰 붉은 용(마귀)’(12:3)의 형상인 13장의 ‘바다에서 나온 첫째 짐승’(13:1-2)입니다. 여기서 머리가 하나이신 어린 양과 달리, 일곱 머리(왕권)와 열 뿔(왕권)을 가졌다는 것은 ‘용과 짐승의 분열적인 속성’을 암시합니다. 여기에서 ‘권력은 자식과도 나눌 수 없다’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이는 왕권을 자기만을 위한 권력으로 여기는 것, 곧 우상 숭배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보았던 ‘화려한 옷과 반짝이는 고귀한 보석으로 치장하며 금 대접을 손에 들고(4) 그 붉은 빛 짐승을 타고 있는 여자’(3)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그녀가 ‘화려한 옷과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금잔’을 사용한 것이 도덕적으로 잘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어린 양의 신부인 새 예루살렘’(21:11~21)은 더욱 귀한 보석들로 꾸미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여자의 문제(우상숭배)는 무엇일까요? 어린 양의 신부인 새 예루살렘은 보화를 공동으로 소유하지만(영생도 삼위 하나님과 다른 성도들과 공동으로 소유함), 이 여자는 자신의 부를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가진 재물(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을 어떻게 보며 사용하는가에 따라 가증한 우상이나 선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금 대접 안에는 ‘가증한 물건과 음행이 가득한 것’이 들어 있으며(4), 로마법에 따라 그녀의 이마에 ‘비밀’, ‘큰 바벨론’,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5)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우상숭배로 유혹하는 큰 음녀(창녀)였습니다. 특히 그녀는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6a) 아주 잔인한 여자였습니다. 여기서 ‘피’는 죽음을 포함하여 경제적인 착취로 인한 고난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는 반복입니다. 이는 ‘성도들’은 ‘예수의 증인들’이기 때문입니다.
3. 그 짐승과 그 여자의 환상에 대한 해석 천사의 설명입니다(6b~18)
1) 요한의 놀람(당황과 두려움)에 대한 천사의 답입니다(6b~7). “내가 그 여자를 보고 놀랍게 여기고 크게 놀랍게 여기니, 천사가 이르되 왜 놀랍게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가 탄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그)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천사는 ‘왜 놀랍게 여기느냐’(7)의 질문으로 그 여자를 보고 당황하며 두려워하는 요한(6b)을 책망하면서 ‘여자와 짐승의 그 비밀’을 설명하겠다고 말합니다(7).
성경에서 ‘비밀’은 수수께끼가 아니라 인간 이성으로 알 수 없고 오직 계시를 통해서 이미 ‘알려진 진리’이며, 계시받지 않은 자에게는 ‘비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여자와 짐승의 ‘그 비밀’(7)은 복수인 비밀들이 아니라 단수인 ‘그 비밀’입니다. 여자와 짐승이 다른 관점에서 하나의 바벨론(로마)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여기서 ‘그 비밀’은 여자와 짐승(로마)의 화려한 모습과 굉장한 권세는 잠깐이며, 반드시 멸망한다, 이 세상의 어떤 권세도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또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다는 비밀(계시된 진리)이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해석 천사의 설명(8~18)에서 계속 반복되는 비밀(계시된 진리)입니다.
2)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빛 짐승에 대한 설명입니다(8~14).
첫째로 짐승은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적 그리스도로서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 왔다가 멸망으로 들어갈 자입니다(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여기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는 짐승의 이상한 역사는 8절에 두 번, 11절에 다시 반복됩니다. 이것은 분명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1:4, 8, 4:8, 11:17, 16:5)이신 하나님을 조롱하며 모방한 것입니다. 13:3절입니다.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이처럼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모방한 짐승을 오직 땅에 사는 자들만 놀랍게 여기고 따르지만, 그 짐승의 종말은 언제나 멸망입니다(8, 11).
‘땅 위에 사는 자들’(8)은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창세 이후로’는 ‘세상의 시작부터’이며, ‘기록되지 못한’은 완료형 부정으로 ‘기록되어 오지 않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이름이 창세 전에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이름은 그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엡1:4~5절입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고 예정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의 거룩하고 흠이 없는 아들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둘째로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올 짐승은 한동안(잠깐) 세상의 모든 왕의 능력과 권세를 소유하였다가 결국 멸망으로 들어갈 자입니다(9~13).
먼저 9a절입니다.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이것은 “지혜가 여기 있으니”(13:18)에 이어서 나오는 두 번째 경고입니다. 천사의 계시(해석)를 통하여 지혜가 주어진 이유는 그들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제 9b~11절입니다.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시 동안 머무르리라. 전에 있었다가 지금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그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여기서 ‘일곱 머리’(9b)는 ‘여자가 앉은(다스리는)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인데, 이들이 구체적으로 로마의 어떤 황제들을 가리키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고, 다만 다섯이 망하였고 현재 하나도 망할 것이며, 일곱째도 잠시 머무르다가 망할 것을 말합니다(10). 그러므로 ‘일곱 머리(산, 왕)’에서 아마 ‘일곱’은 상징적인 숫자로서 외형적으로는 하나님의 권세와 같이 그들의 완전한 왕권으로 보이지만, 서로 분열하여 잠깐 있다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특히 ‘예수’의 이름은 게마트리아로 계산한 숫값이 ‘888’이며, 그가 한 주의 여덟 번째 날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에서 ‘전에 있었다가 지금 없어진, (장차 무저갱에서 나올)’(11, 8), 짐승이 ‘여덟째 왕’(11)이라는 것도 그리스도를 모방합니다. 또한, 여덟째 왕인 그 짐승이 ‘일곱 왕 중에 속한 자’라고 하여 계시를 통하지 않고는 그 짐승의 비밀을 알 수 없다는 것, 즉 삼위일체 하나님의 비밀을 모방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짐승은 결국 멸망한다는 비밀(계시된 진리)을 강조합니다.
또한, 12~13절입니다.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과 더불어 임금처럼 한동안 권세를 받으리라. 그들이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여기서 ‘열 뿔’(12)은 ‘열 왕’인데, 그들은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고, 다만 짐승과 더불어 임금의 권세를 한 시간만 받을 것이며, 그들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고자 하는 한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그들의 권세는 잠깐이며 짐승과 함께 멸망한다는 사실이 암시됩니다.
셋째로 그들은 어린 양과 그의 성도들과 영적 싸움에서 패배할 자들입니다(14).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여기서 ‘그들’은 ‘짐승과 열 왕’(13)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는 것’(14a)이 그들이 한뜻으로 짐승과 연합(13)하는 목적입니다. 이 종말론적 전쟁은 여섯째 나팔 재앙(16:12~16)에 이미 언급되었으며, 이 전쟁의 모습과 결과는 19:11~21절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됩니다.
그런데, 어린 양이 그들을 이기시는 이유는 ‘만주의 주, 만왕의 왕’(19:16)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만유의 주, 만왕의 왕’이 되셨을까요? 그의 죽음과 부활, 승천을 통하여 ‘만유의 주와 만왕의 왕’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복음입니다.
그러면, 그와 함께 있는 자들(우리)은 어떻게 그들(열 왕과 그 짐승)을 이길까요? 그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미 승리하신 어린 양과 그의 복음을 오직 믿음으로입니다. 12:11절입니다.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특히 그들에게 승리할 ‘그와 함께 있는 자들(우리)’을 세 가지 명칭, 즉 ‘부르심을 받은 자들, 택하심을 받은 자들, 진실한(신실한) 자들’로 설명합니다.
3) 음녀의 멸망에 대한 설명입니다(16~17).
“네가 본 바, 이 열 뿔(12절)과 짐승(11절)은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의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이는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그들(열 뿔)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그들의 나라를 그 짐승(11)에게 주게 하시되(13절)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라.”
이것(16)은 음녀에 대한 하나님의 간접적인 심판입니다. 즉 그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게 하여 스스로 멸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인 17절은 12~16절의 종말론적 사건들에 대한 천사의 해석입니다. 그렇습니다. 외모적으로 엄청난 권세를 가진 열 왕과 짐승과 음녀도 다 우리 주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습니다. 즉 그들은 다 그의 심판의 도구일 뿐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기까지’(16), 즉 율법(창조) 언약에 따라 그들에 대한 그의 진노를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15:1).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짐승과 음녀의 성격과 ‘잠깐 있다가 멸망하는 것’이 그들의 ‘비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귀는 그의 짐승을 통한 두려움과 음녀의 유혹으로 우리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활동을 분별하사 복음의 전신갑주(엡6:13)를 입고 주 안에서 그들을 대적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교회 안에서도 두아디라 교회의 이세벨 같은 음녀의 유혹으로 음행(우상숭배)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머니 머니해도 머니가 최고입니다.’ 그러나 아주 좋은 것들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마6:24). 음녀(바벨의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 음행하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찬송 483장을 부르신 후 다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