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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검찰기록 (pdf) - 지만원 2017.08.26. [펌]
작성자 지만원 작성일13-04-02 15:05 조회281,083회 첨부파일 5.18검찰기록.pdf (6.6M) 12423회 다운로드 DATE : 2013-04-02 15:06:31 5.18관련사건 수사결과...
cafe.daum.net/hwajung1090/etmW/11 초롱불 마당
지만원보다 더 '나간' 의원들.."발표자가 괴물" | MBC |다음뉴스 [펌]
지만원 씨.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국회에서 이런 행사를 하게 판을 깔아 준 일부 한국당...냈습니다. [이종명/자유한국당 의원] "5.18사태가 발생하고 나서 '5.18폭동'이라고...
역사를 고의적으로 왜곡시키려고 악의적으로 모략[謀略 :남을 해치기 위하여 사실을 왜곡하거나, 속임수로 남을 해롭게 함]한 자들은 영적인 건국에서 사형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공모공범자가100만 명이라도 사형입니다. 1000만 명이라도 모두 사형입니다. 왜 악은 뿌리를 뽑아야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건국은 개혁입니다.
역사를 왜곡시키는 저들은 밝혀지는 그날에 어떻게 견딜 것인가? 저들을 의와 공의로 처벌하지 못하면 개혁을 시작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역사를 왜곡시키는 저들의 죄는 무서운 처벌을 시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왜 인간의 존재의 정체성의 회복을 훼방하는 파렴치범으로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역사란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를 인간의 존재의 근원을 마땅히를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르치지 않는 행위는 역사를 왜곡뿐 아니라 지옥몰이를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건국에서 정치인 99%는 감옥에 잡아넣습니다. 5.18북괴군이 침투한 광란의 폭동이라는 것은 광주사건이 스스로 자기노출을 다한 것입니다.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증거가 말해주는 것입니다. 지만원박사님의 5.18 팩트로만 증명된 북한특수군 내용은 사실입니다.
5.18. 팩트로만 증명된 북한특수군
머리말
(5.18. 팩트로만 증명된 북한특수군)
저는 2002년부터5.18이 거짓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는 육사를 졸업하고 베트남에 파병되어 44개월 동안 소대단위 중대단위에서 실체가 없는 게릴라와 전투를 했고, 주월한국군 사령부에서 6개월 동안 장군 전속부관을 하면서 주간 브리핑을 청취했고, 합참 정보부와 국정원에서 여러 해 동안 북한의 생리와 공작 전슬을 학습했고, 하버드 스탠포드 학비의 2.5배나 되는 학비를 정부의 예산으로 보조받아 내면서, 수리공학의 원조인 미국사회의 특수학교 미해군대학원(NPS: Naval Postgraduate School)에서 분석학의 대명사인 문과의 경영학과 이과의 시스템공학으로 각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저는 국가예산으로 미국에서도 오로지 유일하게 존재하는 석-박사 양성의 귀족학교로 등극해 있는 “미 해군대학원”에서 스파르타의 전형적인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후 한국군의 경영을 선진화시키기 위해 창설된 ‘국방연구원’에서 7년 동안 군의 문제점을 발굴해 내고 그에 대한 대책을 우선순위에 따라 제시하는 연구를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사실상 국방장관 이상의 명성을 획득하였습니다. 배우로서, 직급으로서가 아닌 국방 연구계의 프리마돈나가 되었습니다.
이는 제 개인적인 자랑을 하기 위하 소개하는 글이 아닙니다. 5.18역사라는 대한민국 최대의 쟁점 역사를 바꾸려는 사람의 기본 프로필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일반의 석-박사처럼 그냥 정상적인 코스로 석사 박사를 취득한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도 그 학교에 문의해 보십시오. 저는 그 학교 창설 이래 오로지 한 사람밖에 없는 전설의 인물입니다. 문과 석사에서 이과 박사로 전향한 사람은 그 학교에서 오로지 저 한 사람뿐입니다. 이마 이런 전설은 미국사회 전체에서도 제가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사 논문을 통해 수학 공식이나 수학 정리 한 개 정도 창조하면 그건 지극히 상위의 논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수학공식 2개 수학정리 6개를 박사논문에 실었습니다. 이 정도 되었기에 지금도 저는 그 학교에서 ‘전설의 인물’로 회자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저를 나타나기 위해 이런 것들을 밝히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에 정착돼 온 가장 큰 역사를 뒤집으려면 적어도 이만한 인물은 되어야 최소한의 설득력이 있을 것이 아니겠느냐’는 일반적인 여론을 의식해서 부득이 프로필의 일부를 밝히는 것입니다.
“5.18. 팩트로만 증명된 북한특수군”,이 새로운 미니 보고서는 순전히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1980년의 수사기록과 1997년의 수사기록을 100%의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정부 문서를 떠나면 누구라도 이의를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오로지 정부문서 그것도 우익정부와 좌익정부가 공동으로 인정한 정부문서들만을 증거로 사용하였습니다, 이의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미 대법원에서 땅땅 쳤잖아” 하지만 이 말은 일반 국민들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빨갱이들도 말하고 판사들도 말합니다. 그러나 제 연구결과에 의하면 대법원 판결은 완전 엉터리입니다. 그 어느 법조인이나 판사도 제 연구결과를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소책자는 그 유명한 ‘미니화보’를 광주 법관들이 발행-배포 중지 판결을 했기에 그 대타로 준비한 책입니다. 그런데 수많은 국민들과 대학생들은 이 또 다른 미니 책자“5.18. 팩트로만 증명된 북한 특수군”을 더욱 더 강한 논리적 근거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나라가 매우 위험합니다. 빨갱이들이 판을 칩니다. 빨갱이들이 정권을 잡았고, 골수 주사파와 타 지역 국민들을 증오하는 전라도 세력이 정권을 잡았습니다. 주사파와 전라도를 집중 등용하는 노골적인 점령군 식 인사가 노골적으로 자행되고 있습니다. 이들의 공동 목표는 5,18을 헌법정신의 근간으로 넣어 적화통일을 굳히기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책자는 이렇게 위험한 시기에 오로지 국가를 지키겠다는 마지막 몸부림으로, 하지만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오로지 팩트와 논리만을 가지고, 엮어 낸 소책자입니다.
이 책은 크게 두 개의 큰 챕터로 구성되었습니다, (1) 1997. 대법원 판결의 의미 (2) 5.18을 북한이 주도한 증거(25개)
2017.8.22. 지만원
5.18 폭동, 북한이 주도한 증거
작성자지만원17-08-23 10:08조회1,337회댓글0건
5.18폭동,북한이 주도한 증거
1.1980.5.21.상황 기록한 검찰보고서9개 줄
2.무기고 탈취 기록
3.광주사람들 중5월18-21일 폭동 주동자 없다
4.카빈총상 사망자75%
5.광주교도소 공격
6.전남도청2,000여발 폭탄조립
7.대한민국 세뇌 시킨 광주비디오
8.김영택기자의500명과5․18기념재단500명
9.1960.신천박물관 모략수법,1980.광주모략의 수법
10.최미애와 무장괴한 조직10명
11.2015. 5․18,광주시 시가행진에 나타난 김대중-김정일 캐릭터
12.전남도청의 경찰복 사진
13.북한에서 최고인 것에5․18영예의 상징부여
14.매년5월 북한전지역 시군에서5․18기념-추모행사
15.김일성이 직접 황석영과 윤이상을 불러 제작한 북한의5․18영화
16.국제신문 기자팀이 관찰한 북한군 시체 도둑매장 광경
17.한국인이 아닌 시체12구
18.남북한이 만든5․18영화6편 모두에 영웅과 지휘부 없어
19. “시민군”정체 드디어 발견
20.광주시와5․18단체들이 공동하여6개월간 개최한 사진전시전
21.1999년 방송3사가 애타게 찾은5․18현장주역4명의 얼굴
22.황장엽-김덕홍의 증언
23.계엄군의 광주사랑
24.오죽하면5.18발생9일전의3쪽짜리CIA보고서에 매달릴까
25.푸른눈의 목격자‘힌츠페터’의 정체
2018.8.23.지만원
1980.5.21.상황 기록한 검찰보고서 9개 줄
작성자지만원17-08-23
1980.5.21.상황 기록한 검찰보고서9개 줄
1995.7.18.에 민-군 검찰이 공동으로 발행한“5.18관련사건 수사결과”(증거자료 별책1항,이하 별책으로 호칭)제92-93쪽에는 아래와 같은9개 줄의 매우 중요한 기록이 있습니다.
“02:30경 용산을 출발,고속도로를 경유하여08:00경 광주에 도착한20사단 지휘차량 인솔대는 광주공단 입구에서 진로를 차단한 수백 명의 시위대로부터 화염병 공격을 받고 사단장용 짚차 등 지휘용 짚차14대를 탈취당하였는데,그 과정에서 사병1명이 실종되고(수일 후 복귀), 2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09:00경20사단 지휘차량을 타고 온 시위대3백여 명과 고속버스5대를 타고 온 시위대3백여 명이 아세아자동자공장을 점거하고 장갑차4대와 버스 등 차량56대를 탈취하여 광주시내로 진출하였음.”
위 글에서56대는356대의 오타로 보입니다.별책 제23쪽에는200여대, 33쪽에는305대, 76에는328대 등으로 기록돼 있기 때문입니다.군상황일지,안기부상황일지,치안본부상황일지,계엄사 등을 종합한 결과 저는374대로 정리하여 놓았습니다.군대 상식이 없는 사람들이 위 검찰보고서를 읽으면 전혀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1985년의 안기부가 그랬고, 1995년 검찰이 그랬습니다.그냥 시위대가20사단 차량 부대를 공격해10여대의 지프차를 빼앗고,아시아자동차 공장에 시위대600명이 모여 장갑차4대와 수십 대의 차량을 탈취해 시내로 나갔구나,하는 정도의 느낌을 주는 데 그쳤습니다.하지만 군대는 물론 게릴라와의 전투경험이 있는 제 눈에는 아래와 같이 읽혔습니다.
“시위대3백여 명이08시에 광주공단 입구(톨게이트 부근)에서20사단 지휘차량부대를 공격했다”는 의미
군부대 이동 상황은 극비 중의 극비정보입니다.이 극비정보가 이들300여명의 폭도들에 넘어갔다는 뜻이 이 문장에 들어 있습니다.군 이동계획에 대한 극비정보를 빼낸다는 것은, ‘스스로를5.18의 주역이었다고 주장하는10-20대의 비조직 화된 광주의 콩가루 하층계급’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5월26일,도청, YWCA등을 지켰던 광주사람들은10~20대의 개념 없는 하층계급70~100명 정도에 불과했습니다.좌익들은 이들을‘항쟁본부’라며 존재감을 풍선처럼 부풀려왔습니다.
조직화된300명이, ‘이동 중인 현역부대’를 공격할 수 있는 능력과 배짱은 일반 시민이나 학생들에 없습니다.광주에는 이렇게 조직화된 순수한 민단인300명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오전08:00에 정규군을 공격했다는 것에도 엄청난 의미가 내포돼 있습니다.적어도06시 정도에는300명의 시위자들 각자가 집에서 기상하여 최소한07:00경 공격대기지점(Line of Departure)근방에 집결하여 실무적 작전점검을 하고,공격대기지점에 매복해 있다가08시에 작전을 개시했다는 말이 됩니다.어느 나라 군대에서건 이는 기본 틀에 속합니다.광주의10~20대 최하층 노동자300명이 이른 새벽에 일어나 집결지에 모여 작전 전 회의를 하고,공격대기지점에 매복하고 있다가 정규부대를 공격할 수 있다고 생각할 사람 아마 지구촌에는 없을 것입니다.
“300명이 사단장1호차를 포함한14대의 짚차를 탈취한 후 그것을 몰고 아시아자동차 공장으로 갔다”는 의미
이300명은 전투력이 뛰어난 제20정규사단을 상대로 그 어려운 기습작전을 성공시켰습니다.정규군을 공격해서 이겼다는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한국의 정규군이 자기들보다는 약하다는 사실을 먼저 평가한 후 자신감을 가져야만 감행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이들300명은 극비 중 극비로 취급되는 제20사단 이동계획을 사전에 파악했고,이동하는 한국군이 자기들보다 취약하다는 사실을 평가한 결과 매복을 했고,기습을 감행했습니다.그리고 제20사단 차량부대를 패닉상태로 몰아넣었습니다.그리고14대의 짚차와300명을 태울 수 있는 또 다른 차량들까지 운전하여 아세아자동차로 갔습니다.극비정보 획득능력,피아 전투력 평가능력,전투부대 공격능력,운전능력 모두를 다 갖춘 이300명은 절대로 광주시민일 수 없습니다.이는 단순한 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규군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참으로 엄청난 특별-특수 훈련을 이수한 맥가이버 집단의 실력 것입니다.
이들300명은 왜 이 어려운 작전을 통해 짚차를 탈취해가지고 아세아자동차공장으로 직행했겠습니까?아래에 설명하겠지만 전남지역17개 시군에 숨어 있는38개의 무기고를 털 군용트럭이 필요해서였습니다.한국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수행하려면 장갑차들도 필요했을 것입니다.그런데 그 차량들은 군납업체인 아세아자동차공장에 있었습니다.아세아자동차 공장의 벽은 요새의 벽입니다.높고 견고하고,철조망이 있고,망루가 있고,경비병들이 있습니다.경비병들은 높은 망루에 모래 마대를 쌓고 기관총을 거치하고 여차 하면 발사할 준비를 갖춘 전투병들이었습니다.이런 벽을 뚫고 그 많은 차량을 탈취하려면 삼엄하게 경비를 서는 경비병을 제압해야 합니다.경비병과 싸우려면 총이 있어야 하는데 폭도에는 총이 없습니다.싸우면 총 없는600명이 전멸합니다.총 없는 폭도600여명이 총을 가진 경비병들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기발한 작전이 필요했습니다.짚차 등14대의 짚차를 구태여 빼앗아 아세아자동차공장으로 갔다는 것은“이 거 봐라, 20사단이 다 일망타진됐다,이미 대세가 기울었으니 반항하지 말고 순순히 항복하라”또는“우리가20사단 지휘부다.문 열어라”는 식의 엄포용이었을 것입니다.
“09:00경20사단 지휘차량을 타고 온 시위대3백여 명과 고속버스5대를 타고 온 시위대3백여 명이 아세아자동자공장을 점거하고 장갑차4대와 버스 등 차량356대를 탈취하여 광주시내로 진출하였음.”이라는 의미
시위대600여명이 아세아자동차 공장을 점거했다는 말은 경비병력이 순순히 경비를 풀고 문을 열어주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장갑차와 군용차를 수백 대 단위로 내주었다는 것은 차량키를 꽂아주었다는 뜻입니다.그 많은 장갑차와 군용차량들을 몰고 시내로 나갔다는 말은 자가운전 시대가 아니었던 광주에 장갑차를4대씩이나 운전을 할 수 있는 운전기술자들,군용트럭을300여대나 몰 수 있는 많은 운전사들이 광주에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별책74쪽(계엄사)상단 표의 셋째 줄에는 탈취당한 차량이 군용 민수용 다 합쳐서 총882대인 것으로 표기돼 있습니다. 900대에 가까운 차량을 몰 수 있는 운전자들이 광주에 나타났다는 뜻입니다.그 당시 이렇게 많은 운전자들이 광주에 있었다는 사실을 믿을 사람 별로 없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600명은 부대이동에 대한 극비 정보도 얻을 줄 알고,매복해 있다가 현역부대를 급습할 줄도 알고,짚차를 몰고 다닐 줄도 알고,장갑자와 트럭도 몰 수 있고,곧바로 뒤에 석명하겠지만38개 무기고 위치를 사전에 파악할 줄도 알고,무기고 경비병을 단번에 제압할 줄도 알고,무기고를 단숨에 부술 줄도 알고,총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줄도 알고,총기사용방법도 교육시킬 줄 알고(별책14쪽),뒤에 설명하겠지만8톤트럭 분의 다이너마이트로2,100여발의 폭탄을 조립한 매우 희귀한 기술도 보유했습니다.실로 다재다능한 능력을 가진600명 팀인 것입니다.이런 맥가이버들이600명 씩이나 광주에 있었다는 것 역시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이상이 제가 검찰보고서에 기록돼 있는9개 줄을 읽는 독해방법이었습니다.이9개 줄을 놓고 군-안기부-검찰-법관들이 읽은 방법과 제가 읽은 방법이 천지차이로 다른 것입니다.그래서 그들은 북한특수군을 보지 못했고,저만 보게 된 것입니다.
2017.8.23.지만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대한민국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