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0:13 살인하지 말라
여러분은 살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살인자는 죽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살인자도 생명이니 사형시키는 것은 너무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에 대한 찬반 논쟁이 끊임없이 거론됐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 1위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2017년도 빼고 계속 부동의 1위이다. 2021년 기준으로 하루 평균 36명[1년에 13,352명]이 죽었고, 2011년도엔 하루에 44명씩 죽어 최고치를 찍었다. 1990년대보다 3배 증가한 셈이다. 그리고 노인 자살률도 세계 1위다. 이유는 가족이나 의지할 대상이 없어 상실감이 크고, 외부 출입이 줄어들어 우울감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노인뿐만 아니라 다른 자살도 원인을 종합해 보면, 우울, 상실감, 스트레스, 왕따, 경제 문제, 질병 등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누군가를 죽였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도 많이 일어났다. 대부분 살인자에 대해 무기 징역이나 사형을 원할 것이다. 인권가들은 그들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자고 주장할 것이다. 그런데 스스로 목숨을 끊은[자살한] 사람들에 대해선 동정심을 갖기도 한다. ‘이 세상에서도 힘들고 억울하게 살았는데, 다음 세상에선 부디 행복하세요’ 이에 대해 성경은 우리에게 뭐라고 답을 주고 있는가? 살인하지 말라(13) 하나님은 남을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을 죽이는 자살까지도 거부하신다. 그러나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으로 끝내지 않는다.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출 21:12, 레 24:17) - 미워서, 기회를 봐서, 악의가 찬 손으로, 철 연장으로, 돌로, 나무 연장으로 사람을 쳐 죽이면 그 살인자를 반드시 죽이라(민 35:16-21)고 하셨고, 고의로 죽여 놓고 하나님의 제단에 숨어도 잡아내어 죽일지니라(출 21:12-14)고 말씀하셨다. -
그러나 악의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기회를 엿봄 없이 무엇을 던졌거나 보지 못하고 돌을 던졌는데 사람이 죽었을 땐, 죽이진 않았다. 대신 도피성으로 가야 했고(민 35:22-25, 출 21:13),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지내야 했다. 속전을 내고 돌아올 수 없었고(32), 대제사장이 죽지 않았는데도 도피성 밖으로 나가면 그 살인자는 죽일 수 있었다(26,27). 따라서 자기 소유의 땅[고향]으로 돌아오고 싶다면 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28). 도피성은 오늘날 교도소와 같은 곳은 아니다. 악의 없는 살인자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소이다. 하지만 그 안에 갇혀 살아야 하니 사실상 오늘날 무기 징역과 다름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살인자를 죽이라고 명령하셨을까? 성경을 보면 2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창 9:6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 죄로 인해 인간이 타락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그래도 인간은 하나님의 생령[생명]이 흐르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따라서 인간을 살해한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생명과 형상을 파괴한 것이므로 그 대가는 죽음[피]이었다. 둘째, 살인은 그 땅을 더럽히는[오염시키는] 죄였기 때문이다(민 35:33,34). 민 35:34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 곧 내가 거주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 여호와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있음이니라 – 살인으로 오염된 땅을 깨끗하게 하려면, 살인한 자를 죽여 그 피로 땅을 속(贖; 죄를 면제)할 수 있도록 하셨다(33). 그래서 살인하지 말라고 하셨고, 살인한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의 형상을 함부로 하고, 하나님이 계신 땅을 자살로 오염시킨 살인자는 사형으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죽어서 지옥에 간다. 살인의 결말은 지옥이다. 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계 22:15]하나님은 생명을 사랑하시지만, 살인자의 생명까지 사랑하지 않으셨다. “예수 믿는데 살인, 자살하면 어떻게 되냐? 천국 가느냐 지옥 가느냐?”고 묻는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살했겠는가! 하지만 답을 하기 전에 이렇게 역질문하고 싶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었으면 살인과 자살을 저질렀겠는가?” 하나님과 그 말씀을 제대로 믿고 살았으면 하나님의 형상을 함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땅을 더럽히지 않았을 것이다. 살인과 자살한 자들의 믿음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 사람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셨다. 이들은 자들은 누구인가?[21가지] 교만하고, 자랑하고, 능욕(凌辱)하고, 추악, 탐욕,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무정하고, 무자비하고, 불의, 분쟁, 비방하고, 부모 거역하고, 배약하고, 시기, 살인, 사기, 수군수군하고, 악의가 가득한 자, 악독이 가득한 자요, 악을 도모하고, 우매한 자이다(롬 1:29-31).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고 두둔까지 한다(1:32).
살인과 자살은 갑자기 생기는 것일까? 하나님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약 4: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 살인의 원인은 욕심이다. 욕심이 겹겹이 쌓여 결국 살인[자살]으로 이어진 것이다.
가인의 경우, 하나님께서 그와 그의 제물을 받지 않자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다(창 4:5). 그러자 낯[얼굴]을 들지 못했다. 죄[사탄]가 마음의 문에 엎드려 있었다. 그 죄가 우는 사자와 같이 가인을 원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죄를 다스릴지니라”(4:7)고 명령하셨다. 그러나 그의 욕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다.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 동생 아벨보다 자신과 제물이 더 낫다고 생각한 욕심을 다스려야 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그 욕심이 거절되자 분노라는 죄를 낳았다. 이 죄들을 다스리지 않자 아벨을 살인했다.
사울 왕의 경우, 백성들의 인기는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 욕심은 여성들의 노래에서 그 실체를 드러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노래할 때, 사울의 욕심은 곧바로 불쾌를 넘어 심한 분노라는 죄로 이어졌고[자기애성 성경장애],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며 말도 안 되는 추리를 하고[편집성 성격장애], 더 나아가 주목[시기질투]했다(삼상 18:8,9). 그러자 다음날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렸고, 그는 분열형 성격장애로 이어져 정신 없이 떠들어댔고, 결국 자신의 감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하여 수금을 연주하는 다윗에게 창을 던져 살인을 저질렀다(18:11). 이에 실패하자 그는 암살단을 보내고, 군대를 동원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했다. 욕심과 죄가 결탁하여 결국 살인으로 이어지고, 이런 과정에서 반드시 등장하는 자가 악령[사탄]이다.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
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 미움은 사랑과 거리가 멀다. 미움이 살인일 수는 없다. 하지만 미움은 영혼을 사냥하는 살인이고, 얼마든지 살인으로 이어질 수 있는 “잠재적 살인”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살인은 미움과 시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가인과 사울이 이를 증명해 준다. 이들에게 영생[사랑]이 있을 수 없다. 이들은 어둠에 있는 자이다(요일 2:9,11).
그래서 예수님도 “살인하지 말라”는 6게명을 재해석하셨다. 옛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1,22) – 육체적 살인[자살]을 넘어 영혼의 살인까지도 심판받을 것임을 언급하셨다. 분노가 살인은 아니지만, 미움과 마찬가지로 영혼을 사냥하는[마음에 성처를 주는] 살인이고, 이 분노가 계속되면 살인을 일으킬 수 있는 “잠재적 살인”이라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지방 법정에서 심판을 받게 된다. ‘라가’는 상대의 우둔함을 조롱하는 유대인의 욕인데, 뜻은 ‘텅 빈 돌머리’이다. 라가라는 말을 통해 분노를 밖으로 표출한 것이다, 이런 자들은 일반 법정보다 상위 기관이자 최고 의결기관인 공회[산헤드린]에 잡혀간다. 미련한 놈이라고 남을 경멸하는 말을 하는 자는 교만하다. 상대를 무시한다. 이런 자들은 지옥에 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 분노를 죄라고 규정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이러한 사회적 통념 때문에 우리는 예수께서 심각하게 말씀하심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무시하고 지나갔다. 그래서 성경을 많이 읽고, 기도를 열심히 하고, 교회에서 충성 봉사해도 분노를 달고 산다. 교회, 가정, 사회에서 기득권을 더 가지고 있는 사람[가진 자, 직책이 높은 자, 권한이 많은 자]일수록 더 많이 분노를 표출하고, 특히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가정이란 사각지대에선 빈번히 분노가 성행하고 있다. 이런 분노와 미움이 영혼을 사냥하는 살인인지도 모른 채, 살인으로 치달아 오를 수 있음을 모른 채, 심판을 자초한다는 것을 모른 채. 롬 13:9,10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
영혼을 사냥하는 살인[분노/미움/비난/경멸]을 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마 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 하나님은 평소 분노하고, 욕하고[라가], 교만하여 경멸하는 말[미련한 놈]을 하는 자들의 예배와 예물을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말씀하고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인과 그 제물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님은 이사야 시대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기름에 배불렀고, 피[제물]를 기뻐하지 않는다. 보여 주기식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가증하다[괘씸하고 얄밉다].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싫다. 너희 예배가 내게 무거운 짐이다. 곤비[피곤]하다. 너희가 손을 펼 때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기도를 많이 해도 듣지 않을 것이다”(시 1:11-15).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제사[예배]를 이토록 거부하셨을까? 그들의 손에 피가 가득했기 때문이다(1:15). 하나님은 스스로 씻으며 깨끗하게 하여 악한 행실을 버리고[그치고] 다시 말해서 회개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해 신원하며[원통함을 풀어 주며], 과부를 위해 변호해 줄 것을 명령하셨다(1:16,17).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질 것이라(1:19,20)고 말씀하셨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땅이 저주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냈다(창 3:17,18). 평생 수고해야 그 소산을 먹을 수 있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을 때도,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주지 않았다(창 4:12). 뭘 해도 농사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가인은 떠돌아다니는 방랑자가 되었다(4:12).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과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4:13,14). 땅이 살인자인 줄 알고 그런 것인가? 아니다. 그 땅이 그 입을 벌려 아우의 피를 받아 더러워져 저주받았기 때문이다[오염](4:11). 하나님께서 막으신 것이다. 삶과 재물은 별개인 것 같지만 매우 밀접하다.
여러분의 삶이 잘 풀리지 않고 있는가? 죄를 점검하라. 분노, 라가, 미련한 놈, 시기, 질투, 욕심, 살인 등.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라. 죄를 속히 회개하라.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이처럼 내가 삶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결정된다. 사람과의 관계가 하나님과의 관계로 직결되고 정비례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