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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탄생 -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1. 한 페이지 요약 및 견해
2. 나를 확장 시킨 책 속의 내용
p 5
한 분야의 창조적 사고를 배운다는 것은 다른 분야에서 창조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문을 여는 것과 같다.
전문화 추세가 가속화되면서 지식은 파편화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너무나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정작 그것들의 기원이나 의미는 무엇인지,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거의 파악하지 못한다. 전문적 지식의 양은 늘어나는 데 비해 학문 간의 교류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어 종합적 이해력은 퇴보 일로에 있다. 현대사회는 지식의 풍요 속에서 오히려 암흑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p 7
창조성을 발휘한다는 것은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의 문제라고 나는 늘 생각해왔다. 창조적 발상의 근원은 ‘무엇을 끄집어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끄집어낼 것인가’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p 8
그들은 마음의 눈으로 관찰하고, 머릿속으로 형상을 그리며, 모형을 만들고, 유추하여 통합을 얻었다.
그동안 우리는 정확한 답을 요구하는 교육방식과 규범에 얽매인 전체주의적 사고방식 속에서 창조적 사고를 하지 못하도록 제약을 받아왔다. 요즘 ‘교과목 통합’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지만 진정한 통합수업은 드문 데다, 모든 지식을 망라하고 아우를 수 있는 커리큘럼마저 전무하다시피 한 상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창조성을 길러야 할까?
p 9
중요한 것은 기존지식을 어떻게 활용하고 통합해 혁신적인 새 지식을 창조하느냐이다.
상상력이란 이렇듯 이미 있는 것들을 통합해 새것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을 의미한다.
발견을 온전히 현실화하는 것이 창작이다.
통찰이라는 것은 상상의 영역으로 호출된 수많은 감정과 이미지에서 태어나는 것이므로 ‘느낌’ 또한 커리큘럼의 일부가 될 필요가 있다.
p 22
매클린턱의 이러한 의문은 ‘창조적 사고’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돌연한 계시와 통찰은 어디서 오는 걸까? 어떻게 우리는 말하거나 그리거나 쓸 수 없는 것들을 ‘아는’ 걸까? 우리는 어떻게 느낌을 말로, 감정을 숫자로 옮길 수 있는 것일까? 만일 그게 가능하다면 우리는 그것을 연습하고 훈련하고 가르치고 배울 수도 있지 않을까?
p 25
"과학적 방법으로 일을 한다는 것은 내가 직관적으로 알아낸 어떤 것을 과학의 틀 속으로 집어넣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논리적으로 생각한다는 일반적인 인식은 과장된 것이다. 창조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첫째, ‘느낀다’는 것이다. 이해하려는 욕구는 반드시 감각적이고 정서적인 느낌과 한데 어우러져야 하고 지성과 통합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정서적인 느낌과 한데 어우러져야 하고 지성과 통합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상상력 넘치는 통찰을 낳을 수 있다.
p 26
느낌과 직관은 ‘합리적 사고’의 방해물이 아니라 오히려 합리적 사고의 원천이자 기반이다. 다마지오에게 있어서 몸과 마음, 감정과 지력은 불가분의 것이었다. 우리는 그의 주장에 동의한다. 과학자들은 느낌으로 논리적 개념에 이른다. 그리고 모든 학문분야에서 창조적 사고와 표현은 직관과 감정에서 비롯된다.
요리를 하든 생각을 하든 한 가지 재료만으로는 음식을 만들 수 없다. 사람들의 지적 과정 중에서 단 한 가지 요인만을 가지고 개인을 분류한다는 것은 아인슈타인을 처음부터 끝까지 논리수학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것만큼 그릇된 것이다.
p 27
대게 예술적인 착상은 비시각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들 역시 아인슈타인이나 매클린턱 같은 과학자들처럼 ‘전달 가능한 표현수단으로 번역을 해야’ 한다. 화가이자 디자이너인 요제프 알베르스는 이 변환에 대해 간결한 말로 표현했다. “예술이란 물적인 사실과 영적인 효과 사이의 불일치이며 삶에 대한 반응을 시각적 공식으로 나타낸 것이었다.”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의 관점과 비슷하다. “나는 오랫동안 깊이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할 말을 조각으로 번역하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화가 막스 빌 역시 예술의 목적을 언급하면서 “예술이란 인간 정신의 표현이며, 마음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막연한 심상을 구체적인 형태로 가시화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p 31
그동안 우리가 창조과정의 보편성에 주목해왔다고는 하지만 그 주목이 ‘보편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직관적인 생각도구가 학문에 공통적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근시안적인 인식과 태도는 철학자들이나 심리학자들뿐만 아니라 교육자들에게도 나타난다. 유치원에서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교육단계의 커리큘럼이 과정이 아닌 결과에 의해 규정되어 어떻게 여러 과목으로 나뉘고 있는지 보라. 교육의 시작단계에서부터 학생들은 문학, 수학, 과학, 역사, 음악, 미술 등으로 분리된 과목을 공부한다. 마치 그 과목이란 것이 본질적으로 별개의 것이고 상호배타적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요즘 유행하는 ‘교과목 통합’이라는 거창한 구호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통합수업은 드물 뿐 아니라, 모든 지식을 망라하고 아우를 수 있는 커리큘럼은 아예 생각조차 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한 학문과 다른 학문을 엮어줄 수 있는 직관적인 생각도구는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다. 수학자들은 오로지 ‘수식 안에서’, 작가들은 ‘단어 안에서’, 음악가들은 ‘음표 안에서’만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각 학교와 대학들은 필요한 재료의 절반만을 사용하는 요리법을 고집하고 있다. ‘생각하기’의 본질을 절반만 이해하기 때문에 교사들은 가르치는 방법의 절반만 이해하고 학생들은 배우는 방법의 절반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p 32
분리된 과목과 공식언어체계에만 기반을 둔 현행 교육이야말로 ‘창조적 사고과정’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부분을 빠뜨리고 있는 주범임이 분명하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수학적이고 통사론적 논리를 가르치면서도 느낌과 직관의 초논리는 무시한다. 우리는 말과 숫자를 통해 배우고 평가받아왔으며, 또 그것을 통해 사고하는 것을 불변의 전제로 받아들인다. 그렇지만 학교교육에 대한 이런 잘못된 생각이 더 이상 커져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적 사고’라는 직관적인 ‘방언’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방언은 서로 통찰을 주고받는 데 있어서 말이나 숫자만큼 중요하다. 본래 통찰이라는 것은 상상의 영역으로 호출되는 수많은 감정과 이미지 속에서 태어나는 게 아니던가. 따라서 ‘느낌’도 필히 커리큘럼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학생들은 몸으로 느껴지는 것에 대해 어떻게 주목하고 그 느낌을 발전시키며 사용해야 하는지 반드시 배워야 한다.
p 45
우리는 이제 존과 레슬리 스티븐의 학습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둘 다 과학, 철학, 문학, 역사의 분야에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자신에게 ‘주입’시키는 데는 뛰어났다. 그러나 둘 다 미술이건 기계건 실제로 무엇인가를 행하는 능력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그들에게는 취미가 없었다. 그들은 손으로나 마음으로나 무엇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한마디로 그들은 상상력이 부족했고, 마음과 몸, 지성과 직관을 연결하는 능력이 결핍되어 있었다. 그들은 ‘사실’을 습득했지만 그것의 의미는 상상해내지 못했다. ‘알기’와 ‘이해하기’, 그리고 환상과 실재를 분리시킨 교육은 그들의 총명한 머리를 한쪽만 쓰게 만들었다.
상상할 수 없다면 창조할 수 없다.
p 46
지각심리학자인 리처드 그레고리는 ‘허구’를 ‘허위’와 동일시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허구와 사실을 서로 맞춰보고 대조함으로써 작가들은 진실에 가까운 근사치를 얻게 된다. 그러나 궁극적인 견지에서 볼 때, 상상으로 꾸며낸 허구는 사실 이상의 것이다. 왜냐하면 창조의 과정이 개입되었기 때문이다.
p 48
세상에 관한 모든 지식은 처음에는 관찰을 통해 습득된다.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고, 맛을 보고, 몸으로 느끼는 것들 말이다. 이런 느낌과 감각을 다시 불러내거나 어떤 심상으로 만들어 머릿속에 떠올리는 능력이 바로 형상화다. 실제로 과학자나 화가, 음악가들은 그들이 실제로 보지 못한 것을 마음의 눈으로 보고, 아직 세상에 나온 적 없는 노래나 음악을 들을 수 있으며, 한번도 만진 적 없는 어떤 것들의 질감을 느낄 수 있다.
p 50
놀이는 또 다른 통합적인 생각도구로 몸으로 생각하기, 감정이입, 역할 연기와 모형 만들기 등의 생각도구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놀이는 작업에 즐거움을 불어넣어주며 관습적인 절차나 목표, 게임의 법칙 등을 크게 중시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다는 이유만으로 기존 과학과 예술, 기술의 한계에 장난스럽게 도전한다는 것은 기발한 생각들이 탄생하는 가장 흔한 방법 중의 하나이다.
p 58
모든 지식은 관찰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세계를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행동의 패턴들을 구분해내고, 패턴들로부터 원리들을 추출해내고, 사물들이 가진 특징에서 유사성을 이끌어내고, 행위모형을 창출해낼 수 있으며, 효과적으로 혁신할 수 있다.
p 61
글쓰기에도 예리한 관찰의 기술이 요구된다. 시인 에드워드 E. 커밍스는 자신을 태양 아래 있는 모든 것을 관찰하는 사람으로 규정한 바 있다. 작가 존 도스 파소스의 기억에 따르면 두 사람이 같이 산책을 할 때마다 커밍스가 종잇조각에 뭔가를 적고 스케치를 하곤 했다고 한다. 소설가 서머싯 몸은 “사람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것은 작가의 필수적인 자세다”라고 했는데 그 말은 사람의 외관뿐만 아니라 대화, 행동까지 관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간접적으로 전해지는 얘기라도 몇 시간 동안 들어줄 수 있어야 무심결에 새어나오는 중요한 단서를 포착해낼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작가들에게 관찰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다. ‘진짜처럼 보이는’ 플롯의 전개를 위해서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말과 몸짓과 행동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독자들의 감각에 자극을 주기 위해서는 감각 자체를 알아야 한다. 작가는 경험을 향유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관찰하고 분석한다.
소설가 다프네 뒤 모리에는 그녀가 십대 시절 자기 자신과 곧잘 나누곤 했던 혼란스러운 대화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그때 그녀는 대화자로서의 의식과 이를 관찰하는 자로서의 의식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P 69
예리한 관찰자들은 모든 종류의 감각정보를 활용한다. 위대한 통찰은 ‘세속적인 것의 장엄함’, 즉 모든 사물에 깃들어 있는 매우 놀랍고도 의미심장한 아름다움을 감지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만 찾아온다.
P 71
‘세속적인 것의 장엄함’을 발견하는 일은 과학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현대미술의 많은 영역에서 일상적인 현상의 가치를 재발견 하는 일이 주목을 받고 있다. 스트라빈스키는 “진정한 창조자는 가장 평범하고 비루한 것들에서도 주목할 만한 가치를 찾아낸다”라고 했다.
P 92
우리는 마음의 눈으로 볼 뿐만 아니라 마음의 귀로도 들으며, 냄새와 맛과 몸의 느낌을 ‘상상’하기도 한다. 이런 모든 감각을 통해 형성되는 것들은 상상이나 이미지의 전달과 관계가 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우리가 눈으로 관찰을 한다면 시각적 이미지를 만들어 낼 것이고 우리가 손을 써서 관찰한다면 손의 위치, 손의 움직임에 대한 이미지와 함께 촉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낼 것이다. 만일 우리가 코로 관찰한다면 냄새의 이미지를 만들어낼 것인데 이것은 과학적 발명과 예술적 발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요컨대, 우리는 관찰할 수 있을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상상을 통해 형상화가 이루어진다.
P 95
음악가들, 특히 작곡가들은 눈으로 듣고 귀로 보는 능력을 마치 일반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소리와 글자를 연결시키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배양한다.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청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사람들은 대체로 종이에 글을 쓸 때 이에 상응하는 내면의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이런 능력을 상당한 수준으로까지 발달시킨다.
P 101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것이 지력을 촉진시킨다는 결과가 나오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시 낭송이나 소설 낭독에 귀를 기울일 때 내면의 소리는 커지고 눈은 종이책에서 해방된다. 그 결과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p 102
이 책에서 우리가 제안하는 모든 것은 전 교육과정의 학생들이 형상화능력을 배양시키는 데 쓸 수 있다. 나이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관찰기술을 연마할 수 있듯이 형상화기술도 발달시킬 수 있다. 이 일은 매우 간단하다.
첫째, 자신의 시각적, 청각적, 기타 감각적 이미지를 인식해보라. 방금 열쇠를 어디에 두고 왔는지 마음의 눈으로 보라. 읽고 있는 소설을 마치 영화로 보는 것처럼, 아니면 그것을 라디오로 듣고 있는 것처럼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려보라. 바나나, 눈, 고양이를 상상할 때 머릿속에서 그것들을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심지어 맛까지 보려고 노력해보라.
둘째, 하고 싶은 것을 무엇이든 마음껏 해보라. 만일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장면을 다시 떠올리고 싶다면 그것이 완전히 자신의 것이 될 때까지 머릿속으로 다시 쓰고 다시 ‘보라’. 만일 소리를 이미지 형태로 사고하고 싶다면 가장 좋아하는 노래나 협주곡의 선율뿐만 아니라 화성을 머릿속에서 떠올리거나 들으려고 해야 한다.
셋째, 예술을 하라. 그러나 음악이나 춤, 회화나 요리에 관한 것을 ‘배우기만’ 하지 말라. 직접 그리고, 작곡하고, 시를 쓰고, 음식을 만들어보라. 그러는 가운데 이미지가 저절로 떠오른다. 아마도 당신은 색으로 사고하지 않고서는 그림의 색을 고르지 못할 것이며, 소리로 혹은 소리에 관해 사고하지 않고는 피아노 건반 위의 선율을 짚어낼 수 없을 것이다. 닭고기와 어울리는 맛에 관해 사고하지 않고는 닭고기 요리를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행위들을 하기 전에 과정을 먼저 상상하고 그 과정을 떠올리려고 노력하라.
마지막으로 내면의 눈, 코, 귀, 촉감과 몸감각을 사용할 구실과 기회를 만들라. 다른 사람을 시켜서 수학과 과학문제를 구술로 내게 하고, 연극대본을 읽으면서 다른 목소리를 듣고 다른 표정을 보라. 음악을 들으면서 느끼고 상상하는 일에 집중하라. 다른 기술도 그렇지만 이것을 일관성 있고 끊임없이 연습할 때 보다 강력한 이미지를 보다 빠르게 만들어낼 수가 있다.
p104
우리는 아직 ‘원시단계’에 있기 때문에 마음에 떠오른 모든 이미지들을 다른 전달수단으로 변환(변역)해야 한다. 그 전달수단에는 말, 음악, 동작, 모형, 회화, 도형, 영화, 조각, 수학공식 등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직접 형상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대단한 표현수단이 생긴 것이니까.
p 117
나무에 남아 있는 동료 잎사귀들과 헤어진 나뭇잎의 상태이며, 고독한 개인의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p 120
추상화는 다른 모든 분야의 사람들에게 어려운 일이다. 마크 트웨인이나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비롯한 많은 작가들은 편집자에게 원고가 지나치게 길어져서 유감이라는 편지를 썼다. 그들은 한결같이 시간이 좀 더 있었더라면 길이가 절반으로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윈스턴 처칠은 5분짜리 얘깃거리를 가지고 하루종일 떠들 수는 있지만, 말할 시간이 5분밖에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걸 위해서 하룻동안 꼬박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시인 에드위 A. 로빈슨은 젊어서 짧은 시를 쓰다가 점점 긴 시를 썼는데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나이가 예순이 넘고 보니 시를 짧게 쓰는 것이 너무 힘들구나.”
이처럼 글쓰기의 본질은 종이 위에 단어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을 골라내고 버리는 데 있다. 교사들은 막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어느 정도 배움이 진척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고 한다. 이유는 그 아이들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을 단순화시켜 가르치기 힘들기 때문이다.
기초원리는 저변의 단순성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현실의 복잡성을 꿰뚫고 단순한 원리를 발견하는 일은 위대한 천재성을 요구한다.
p 122
대다수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현실을 무시하면서 추상화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대상을 관찰하는 것은 어떤 예술가에게든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다. 심지어 브리짓 라일리 같은 화가들, 즉 그림을 그리는 목적이 “실제로 경험하지 않고도 감각을 일깨울 수 있도록 감각을 항상 열린 상태로 두는 것”에 있는 화가들도 현실을 지각하는 일은 첫 번째 과제다. 그런 다음에야 추상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피카소는 다른 화가들에게도 주의를 주고 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추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항상 구체적인 실재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뭔가 실체가 있는 것에서 출발해야만 나중에 실재의 흔적들을 제거해나갈 수 있다. 그리고 그런다 해도 큰 위험은 없다. 왜냐하면 그 오브제가 표방하는 이념은 아무리 지운다 해도 지워지지 않는 표시를 남길 테니까. 어쨌든 현실이야말로 화가가 그림을 시작하게 되는, 마음이 흥분되고 감정이 동요되는 출발점이 된다”라는 것이다.
p 131
추상화는 현실에서 출발하지만, 불필요한 부분을 도려내가며 본질을 드러나게 하는 과정이다. 추상화는 화가도, 작가도, 과학자도, 수학자도, 무용수도 모두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패턴을 알아낸다는 것은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하는 것이다. 우리는 패턴에서 지각과 행위의 일반원칙을 이끌어내어 이를 예상의 근거로 삼는다. 그런 다음 새로운 관찰결과와 경험을 예상의 틀 안에 끼워넣는다. 이 관찰과 경험의 틀을 흔드는 무엇인가가 일어나게 될 때 우리는 또 다른 패턴을 만들어내며, 새로운 발견은 이런 순간에 이루어진다.
p 150
자연은 스스로가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 많은 단서를 제공하지 않는다.
p 151
과학퍼즐 풀기는 조각 맞추기 퍼즐을 푸는 것과 같다. 충분한 조각들이 서로 맞춰지게 되면, 완성된 그림이 나오거나 빈 자리가 드러나게 된다. 완성된 그림은 어떤 조각들이 사용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새로운 구조물이다. 그러나 빠진 조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빈 자리 역시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 자신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가늠하게 하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p 152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안다는 것. 곧 무지의 패턴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아는지 아는 것만큼 귀중하다. 노벨상 수상자인 의학자 토머스 웰러의 말에 의하면 “산더미 같이 쌓인 미지의 것들이 과학적 진보의 자극제가 된다”라는 것이다. 역시 노벨상을 수상한 물리학자 아이작 라비는 “과학에서 가장 흥미로운 분야는 자신이 무얼 말하고 있는지 본인도 잘 모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스젠트 기요르기도 이에 동의한다. 그의 견해는 “과학자라면 인간 지식영역의 공란에 당연히 흥미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그 부분을 메우기 위해 기꺼이 일생을 바쳐야 한다”라는 것이다.
p 159
패턴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여기저기 어슬렁거리거나 놀이를 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러자면 상당한 인내력이 요구된다. 나보코프는 어린 시절 자신은 패턴에 대단히 민감했다고 한다. 특히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할 때 그랬다고 하는데, 수도꼭지에서 “똑, 똑, 똑” 하며 물이 떨어지는 소리에 맞추어 욕실문을 잡아당겼다 밀었다 했다고 한다. 그는 “리드미컬한 소리와 움직임의 패턴을 성공적으로 일치시켰고, 자주 욕실벽의 복잡한 문양을 머릿속으로 풀어보곤 했는데, 그러다가 눈길을 잡아끄는 갈라진 금이나 그늘 부분에서 사람의 얼굴을 발견하곤 했다”고 쓰고 있다.
청각적, 시각적, 언어적 패턴을 움직임의 패턴과 결합시킨 일은 그에게 대단히 중요한 경험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 이와 관련한 충고 한마디를 기록해놓았다. “제발 부모들에게 간청하다. 아이에게 ‘서둘러’라고 말하지 말라.” 나보코프가 충고한 것처럼 최소한 아이들이나 친구, 동료들에게 빈축을 놓기 전에 잠시 멈추고 그들의 말이 어떤 중요성을 갖고 있을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기발한 수수께끼가 그런 것처럼, 넌센스라는 것이 별것 아닌 듯 보일 수 있겠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센스를 담고 있을 수도 있다.
p 163
우리는 경험한 세계를 표현하고, 경계 짓고, 정의하기 위해 더 많은 패턴을 고안해낼수록 더 많은 실제지식을 소유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의 이해도 더욱 풍요로워진다. 패턴형성기술을 배우는 것은 모든 분야와 교과과정에서 혁신의 열쇠가 되는데, 그것은 특별한 도구나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운동감감적 패턴과 청각적 패턴, 리듬감만을 이용해서 훈련할 수 있다. 한 패턴을 분해하면서 동시에 다른 패턴을 조립하는 일은 어떤 현상과 과정을 이루는 기본요소들에 대해 실제적으로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더 나아가 그것은 지식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인다.
p177
작가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낱말을 결합하여 문장과 단락과 시와 이야기와 책을 만들어내는 마술을 부린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은 자신들의 다양한 경험으로부터 패턴들을 생성해냄으로써 글의 구조를 만든다고 말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버지니아 울프가 장면과 인물을 구상할 때, 그녀는 다음과 같이 패턴을 인식했다. “따로 떨어져 있는 어떤 것들을 결합하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으며...쓰면서 나는 내가, 무엇이 무엇에 속하고 있는지를 발견하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이런 느낌으로부터 나는 철학이라고 부를 만한 개념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것은 내가 소유하게 된 항구적인 관념이 되었다. 무의식적으로 영위하는 일상사에도 어떤 패턴이 숨겨져 있다는 것 말이다.” 울프에게 있어서 문학의 목적은 이 패턴을 분명하게 드러내보이고 그것이 노래하도록 만드는 데 있었다.
p 179
단순한 요소들이 결합해서 복잡한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패턴형성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특징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색깔들은 빨강, 파랑, 연초록, 혹은 빨강, 파랑, 노랑이 일정하게 혼합된 것이다. 오직 4개의 핵산 염기만으로 지구상 전 생명체의 모든 유전자정보가 암호화된다. 자연상태에서 파악된 모든 단백질은 20개의 아미노산의 ‘알파벳’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주 안에 있는 수억 개의 화합물질은 불과 100개 미만의 요소들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모든 언어가 두 개의 기호 -모르스부호의 점과 장음- 으로 옮겨질 수 있다는 사실과 실제로 모든 정보가 1과 1로 변환되어 컴퓨터에 입력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패턴형성에서 인상적인 것은 결합되는 요소들의 복잡성이 아니라 그 결합방식의 교묘함과 의외성이다.
p 189
유추란 둘 혹은 그 이상의 현상이나 복잡한 현상들 사이에서 기능적 유사성이나 일치하는 내적 관련성을 알아내는 것을 말한다. 많은 철학자들은 유추가 비논리적이라서 판단을 그르치게 한다고 폄하하지만, 오히려 유추는 불완전하고 부정확하기 때문에 알려진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 사이에 다리가 될 수 있다. 유추는 우리가 기존지식의 세계에서 새로운 이해의 세계로 도약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p 195
현대 핵물리학의 용어를 빌어 유추를 말해본다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만일 적절한 생각이라는 ‘파장’을 가진 일련의 개념들을 ‘조사’한다면 우리는 아마도 배음과 상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이전에는 종잡을 수 없었던, 심지어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현상들을 밝게 비추어줄 것이다.”
p 197
유추와 닮음은 다르다.
이 관정에서 중요한 점은 유추와 닮음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추란 둘, 혹은 그 이상의 현상들 사이에 기능적으로 유사하거나 일치하는 내적 관련성을 알아내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우리는 ‘유추’라는 용어를 비교에만 한정하고 있다. 한편 닮음이란 색이나 형태처럼 관찰에 근거한, 사물들 사이의 유사점을 말한다.
p 210
어린아이에게 장난감을 줄 때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가지고 놀게 해야 한다. 아이들이 블록이나 인형, 종이, 헝겊, 일상용품을 가지고 다양한 시나리오에 맞춰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놀게 하라. 막대기를 검으로, 스카프를 강으로 상상하도록 아이들을 지도하라. 보석상에서 쓰는 확대렌즈를 아이들에게 주어 어떤 것을 집중해서 관찰하도록 하라. 그런 다음 질문을 하라. “이게 무엇처럼 보이니?” 아이가 대답하면 생각나는 것을 그리게 한 다음 다시 같은 질문을 한다. 그렇게 해서 목록을 만들어본 다음 이 시각적 유추에 대한 평을 해주고 기능적인 관련성을 찾아보게 한다. 마지막으로 왜 그것이 이것들과 같다고 보는지 이론을 세우도록 하라. 유추적 사고훈련은 학년을 막론하고 작문, 미술, 과학, 수학, 사회 등 거의 모든 과목에 접목되어야 한다.
p 215
우리는 몸을 움직여 어떤 일을 처리하고 난 후에야 그것을 인지할 때가 있다. 또한 자각하지 않은 상태에서 몸의 느낌을 알게 될 때도 많다.
피아니스트들은 근육이 음표와소나타를 기억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손가락에 이 기억들을 저장한다. 그것은 마치 배우들이 몸의 근육 속에 자세와 몸짓의 기억을 저장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사고하고 창조하기 위해 근육의 움직임과 긴장, 촉감 등을 떠올릴 때 비로소 ‘몸의 상상력’이 작동한다. 이때가 사고하는 것은 느끼는 것이고, 느끼는 것은 사고하는 것이라는 결론을 자각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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