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시대의 문제들을 올곧고도 섬세하게 증언하는 시인 라이너 쿤체의 시들은 쉽고 친근한 말들로 이루어져, 시가 특별하고 우아하고 낯선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마시고 일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오고 또 그들 속에 존재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이 책은 그의 전체 시들 중, 「1 삶에 대한 성찰이 담긴 시들」, 「2 낮고도 따뜻한 시 본연의 목소리로 저항과 비판을 노래한 시들」, 「3 사랑시들」, 「4 시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시들」, 「5 한국에 대한 시들」, 「6 특유의 간결한 시구에 삶의 깊이와 성찰의 무게를 더한 시들」, 이렇게 여섯 묶음으로 나누어서 시인의 시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게 구성했다.
목차
I 명상
명상
그때면
야행(夜行)
빠른 야행
자살
의미 하나를 찾아낼 가능성
은(銀)엉겅퀴
녹슨 잎 알펜로제
인간이라는 말
죽어 가는 나무들 아래서
작은 개
현실 같지 않던 오월 어느 날
여름에 날마다 5시 30분이면
보리수 꽃핀다, 그리고 밤이다
II 키 큰 나무숲
지빠귀와의 대화
민감한 길
키 큰 나무숲은 그 나무들을 키운다
우화의 끝
예술의 끝
단기 교육
조각 습작 세 점
검열의 필요성에 대하여
한 잔 재스민 차에의 초대
아픔새[鳥]
뒤셀도르프 즉흥시
장벽
III 푸른 외투를 입은 그대에게
사랑
둘이 노 젓기
푸른 외투를 입은 그대에게
매일
아침의 수리
어느 계절에나 가는 산보
기차 타고 가기
십일월
보리수
당부, 그대 발치에
IV 시
시학(詩學)
만국어 동전
자동차를 돌보는 이유
푸아드 리프카
큰 화가 제슈에 대한 전설
남십자성
시인 출판인
시적, 폴로네이즈적 순간
하이쿠 교실
노령의 하이쿠
V 메아리 시조
동아시아 손님
메아리 시조
위로를 모르는 시조
어느 분단국을 위한 씁쓸한 시조
서울, 궁(宮)
서울의 거리 모습
서울의 선교
메가메트로폴리스 서점
노명인과의 드라이브
오죽(烏竹)
절 너머
옛 문체로 쓴 한국의 귀한 옛날 일
하지만 노래 속에서는
VI 나와 마주하는 시간
흩어진 달력종이
뒤처진 새
종말의 징후
젊은 젤마 메어바움-아이징어 시인을 위한 묘비명
나와 마주하는 시간
사물들이 말이 되던 때
인간에게 부치는 작은 아가(雅歌)
늙어
말을 잃고
우리 나이
우리를 위한 하이쿠
이젠 그가 멀리는 있지 않을 것
저자 소개
저 : 라이너 쿤체 (Reiner Kunze)
1933년 구동독 욀스니츠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철학과 언론학을 전공했으며 강의도 맡았다. 정치적 이유로 학문을 중단하고 자물쇠공 보조로 일하다가 1962년부터 시인으로 활동했다. 1976년 동독작가동맹에서 제명당하여 1977년 서독으로 넘어왔다. 서독으로 온 후 파사우 근처의 작은 마을 에를라우에 정착하여 시작(詩作))에 전념하고 있다.
주요 시집으로 『푸른 소인이 찍힌 편지』, 『민감한 길』, 『방의 음도(音度)』, 『자신의 희망에 부쳐』, 『누구나의 단 하나뿐인 삶』이 있고, 산문집 『참 아름다운 날들』과 동독 정보부가 시인에 대해 작성한 자료 3500쪽을 정리한 『파일명 ‘서정시’』, 그리고 『사자 레오폴드』, 『잠이 잠자러 눕는 곳』, 『꿀벌은 바다 위에서 무얼 하나』 같은 동화와 동시집이 있다.
역 : 전영애
서울대를 졸업하고, 1996년부터 동 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고등연구원의 수석연구원, 뮌헨 대학교의 초빙교원을 겸임했다. 2011년 바이마르에서 ‘괴테금메달’을 수상했다. 『어두운 시대와 고통의 언어 - 파울 첼란의 시』 『괴테와 발라데』 『서·동 시집 연구』(공저) 『독일의 현대문학 - 분단과 통일의 성찰』 등 많은 저서를 펴냈고, 시에 관한 네 권의 연구서를 독일에서 펴내기도 했다. 『카프카, 나의 카프카』 『프란츠 카프카를 위한 무지개』 등의 시집을 국내와 독일에서 펴냈으며, 『괴테 시 전집』 『서·동 시집』 『데미안』 『변신·시골의사』 『나누어진 하늘』 『보리수의 밤』 등 60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역 : 박세인
서울대학교에서 정치학과 독문학을 전공하고, 동대학 비교문학과에서 석사학위를, 그리고 미국 노스웨스턴 대학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산타크루즈 캘리포니아 대학교(UC Santa Cruz) 문학과 방문 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박사논문 『Genealogies of Lumpen: Waste, Humans, Lives from Heine to Benjamin』을 출간했으며 여러 권의 번역 작업에 참여하였다.
출판사 리뷰
시인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닌 사람, 라이너 쿤체.
그의 시는 모든 생명 있는 것들, 아름다운 것들을 따뜻하게 바라본 후 만들어졌습니다. 쿤체 시인의 시들 중 가장 울림이 큰 작품 70여 편을 최선을 다해 고르고, 정성을 다해 옮겼습니다. ― 전영애(옮긴이)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시대의 문제들을 올곧고도 섬세하게 증언하는 시인 라이너 쿤체의 시들은 쉽고 친근한 말들로 이루어져, 시가 특별하고 우아하고 낯선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마시고 일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오고 또 그들 속에 존재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의 전체 시들 중, 1 삶에 대한 성찰이 담긴 시들, 2 낮고도 따뜻한 시 본연의 목소리로 저항과 비판을 노래한 시들, 3 사랑시들, 4 시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시들, 5 한국에 대한 시들, 6 특유의 간결한 시구에 삶의 깊이와 성찰의 무게를 더한 시들, 이렇게 여섯 묶음으로 나누어서 시인의 시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중 특히 사랑시 모음인 〈푸른 외투를 입은 그대에〉에는 시인의 아내 엘리자베트 쿤체가 국경이 삼엄했던 냉전시절, 동독 라디오에서 쿤체 시인이 읽은 시를 듣고 체코에서 보내온 편지로 시작하여 400여 통의 편지가 오간 후 만나보지 못한 채로 청혼하고 지금도 함께하고 계신, 그이들의 험난하고 행복했던 시간들 그리고 노년의 애틋한 사랑이 잘 담겨 있습니다. 한국에 대한 시들 모음인 〈메아리 시조〉에는 쿤체 시인이 2005년 짧은 한국 방문 후 시인의 예리하고도 애정 어린 눈길에 포착된 한국의 면면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 시집에 대한 최선의 소개는 쿤체 시인의 개성이 잘 드러난 시들을 직접, 여러 편 보여주는 것이라 여겨져, 총 여섯 묶음에서 가장 대표적인 시 1~2편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하려 합니다.
1. 삶에 대한 성찰이 담긴 시편묶음 ‘명상’
〈은엉겅퀴〉
뒤로 물러서 있기
땅에 몸을 대고
남에게
그림자 드리우지 않기
남들의 그림자 속에서
빛나기
2. 낮고도 따뜻한 시 본연의 목소리로 저항과 비판을 노래한 시편묶음 ‘키큰 나무숲’
〈지빠귀와의 대화〉
지빠귀네 집 문을 두드리다
지빠귀는
흠칫하며
묻는다, 너니?
내가 말한다, 조용하구나
나무들이
애벌레들의 노래를 칭찬하고 있어, 지빠귀가 말한다
내가 말한다. … 애벌레들의 노래라고?
애벌레들은 노래를 못하는데
노래를 못해도 괜찮아, 지빠귀가 말한다
걔들은 초록색이잖아
3. 연시묶음 ‘푸른 외투를 입은 그대에게’
〈둘이 노 젓기〉
둘이 노 젓기
배 한 척을,
하나는
별들이 훤하고
또 하나는
폭풍들이 훤하고
하나가
별들을 헤치며 이끌면
또 하나는
폭풍들을 헤치며 이끌리
그리하여 끝에 가서는 아주 끝에 가서는
바다가 추억 속에서
푸르리
〈당부, 그대 발치에〉
나보다 일찍 죽어요, 조금만
일찍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혼자 와야만 하는 이
당신이 아니도록
4. 시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은 시편묶음‘시’
〈시학(詩學)〉
많은 답(答)들이 있지만
우리는 물을 줄 모른다
시(詩)는
시인의 맹인 지팡이
그걸로 시인은 사물을 짚어 본다,
인식하기 위하여
5. 한국에 대한 시편묶음 ‘메아리 시조’
〈동아시아 손님〉
그녀 배가 고픈가?
아뇨
그녀 배가 고픈가?
아뇨
그녀 배가 고픈가?
약간
세 번
산(山)에다 대고 문 두드려야 한다
세 번째에야
열린다?
틈새 하나
6. 특유의 간결한 시구에 삶의 깊이와 성찰의 무게를 더한 시편묶음‘나와 마주하는 시간’
〈뒤처진 새〉
철새 떼가, 남쪽에서
날아오며
도나우강을 건널 때면, 나는 기다린다
뒤처진 새를
그게 어떤 건지, 내가 안다
남들과 발 맞출 수 없다는 것
어릴 적부터 내가 안다
뒤처진 새가 머리 위로 날아 떠나면
나는 그에게 내 힘을 보낸다
이 깊고 정갈한 시편들이, 시를 아끼는 독자들의 따뜻한 손에, 무엇보다 "뒤처진 새" 같은 마음에 가닿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