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중
류홍자
손전화에 건네진
함박웃음 밤송이
한달음에 달려가는
산등성이 밤나무골
유년의 가을이
송이째 떨어진다
밤송이 지르밟은
헤진 운동화 사이
똘망똘망 알밤
꺼내 주며
씨 익
하얀 이를 보이던 철이
끝끝내 내밀지 못한 앙다문 마음
가시 곧추세워
나처럼 굴러가고 있을지도
씨 이익 웃어본다
성큼 가을이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이 가을, 류홍자 시인의 「마중」을 읽습니다.
시, 「마중」의 중심 소재는 ‘밤송이’입니다. 유년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사람이라면 가을에는 ‘밤송이’가 떠오를 것입니다. 어린 날 잘 익은 알밤은 최고의 맛입니다. 그 맛은 생밤도 좋지만 군밤은 더욱 좋지요. 그러나 알밤을 얻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밤송이의 가시 때문이지요. 첫째 연, “손전화에 건네진/함박웃음 밤송이”는 지인으로부터 밤송이 사진을 받습니다. ‘함박웃음 밤송이’는 만개한 밤송이 사진을 말합니다. 시인은 그 사진을 보는 순간, “한달음에 달려가는/산등성이 밤나무골”을 생각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밤나무골’은 시인이 자란 고향의 지명이겠죠. 밤나무가 많은 골을 이르는 말이겠습니다. 시인은 밤송이 사진을 보자 유년의 추억에 잠기게 되지요. “유년의 가을이/송이째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 추억 속으로 들어가면 “밤송이 지르밟은/헤진 운동화 사이/똘망똘망 알밤/꺼내 주며//씨 익/하얀 이를 보이던 철이”가 있지요. 밤송이 가시를 ‘헤진 운동화’로 까서 얻은 알밤을 자신이 가지지 않고 ‘나’에게 건네주던 ‘철이’가 떠오릅니다. 철이의 순수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러나 “끝끝내 내밀지 못한 앙다문 마음”을 열지 못했습니다. 그 마음은 ‘나’의 마음이기도 하고 ‘철이’의 마음이기도 하지요. 소년과 소녀들의 순수한 사랑 표현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세월이 흘러 인생의 가을이 된 현재 “나처럼 굴러가고 있을” ‘철이’를 생각하면 즐거운 그때가 떠올라 웃음이 나옵니다. 마지막 연 “성큼 가을이다”는 자연의 가을을 말하면서 동시에 인생의 가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시인에게 가을을 상징하는 ‘알밤’은 추억입니다. 동시에 그리움이고 사랑입니다,
첫댓글 알밤처럼 매끈하고 토실토실한 순수한 사랑
어느 듯 많이 지나간 시간 앞에 서 있네요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손가락을 콕 콕 찌르는 가시는 추억을 심어 주지요.
밤송이에 스민 풋사랑
즐겁게 감상합니다
교수님 고맙습니다.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아름다운 시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