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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가-이날치판
<前略>
[중머리]
곽씨부인을 장사하고 집이라고 들어가니 부엌은 적막하고 방안은 횡 비었난디, 향내 쑥내_시체가 나간 뒤에 집안에서 그 냄새를 없애려고 향과 쑥을 태워 피우는 냄새)만 피어 있다. 방 가운데 우뚝 서서 한참 동안을 생각더니, 심봉사 발광중에 나서 앉았다 선뜻 일어나며 문갑(文匣_문서나 문구 따위를 보관하는 궤) 책상을 두루쳐 메어다가 와지끈 와그르르르 탕탕 부딪치며 쓰던 수건 빗던 빗을 모두 주어 내던지더니만
“아서라, 이것이 슬데가 없다. 이것이 무엇하겠느냐?”
정신없이 문을 북차더니 부엌으로 총총 내려가서,
“마누라 거기 있오? 거 어디를 갔소? 허허, 내가 미쳤구나.”
방으로 들어와 방 가운데 주저앉아 우두커니 앉았을 때 이씨의 귀덕이네 아기 안고 돌아와서,
“봉사님 이 아이를 보더래도 너무 애통 마시오.”
“거 귀덕이넨가? 이리주소. 어디보세, 종종 와서 젖 좀 주시오.”
귀덕이네는 건너가고 아기 안고 자탄헐 때, 원촌에 닭이 울고 찬바람은 스르르르르 어린 아기 놀래깨어 젖 달라고 슬피운다.
“응아 응아”
심봉사가 기가 막혀 우는 아기 받아안고,
“우지마라 너의 모친 먼 데 갔다. 낙양동촌(洛陽東村_당나라 유희이가 지은 시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의 첫 귀절인 낙양성동도리화(洛陽城東桃李花)에서 따 와 ‘낙양성의 동쪽 복사꽃 핀 마을’의 뜻으로 쓴 말) 이화정(李花亭_숙향은 송나라때의 미인인데, 난리를 만나 부모와 헤어지고, 천태산에서 마고 선녀를 만나 이화정에서 수를 놓으며 살게 되었다고 한다.)에 숙낭자(淑娘子_송나라의 미인으로 난리를 만나 부모와 헤어지고, 천태산에서 마고 선녀를 만나 이화정에서 수를 놓으며 살았다)를 보러 갔다. 황능묘 이비(二妃_순임금의 두 왕비인 아황과 여영))헌테 하소연을 하러 갔다. 가는 날은 안다만은 오는 날이 막연쿠나. 네 팔자가 얼마나 좋으면 너 낳은 칠일만에 너의 모친을 잃었겠느냐? 우지 마라, 우지 마라. 배가 고파 운다만은 강목수생(剛木水生_바짝 마른 나무에 물을 얻음. 이치에 맞지 않음을 비유해서 하는 말)이라, 마른 나무에 풀이 나오겠느냐? 우지 마라, 우지 마라. 날 새면 젖 많이 얻어 먹여주마. 내 새끼 울지마라.”
이렇듯이 탄식하여 날이 점점 밝아온다.
[중중머리]
우물가 두레 소리 심봉사 방긋 웃고 젖을 먹이러 나간다. 한편에 아기 안고, 또 한편 막대를 짚고, 더듬더듬 더듬더듬 더듬더듬 나간다. 우물가 찾아가서 애절이 비는 말이,
“여보시오, 부인님네들 이애 젖 좀 먹여주오. 칠 일 안에 모친 잃고 젖 못 먹여 죽게 되니 이애 젖 좀 먹여 주오.”
보고 듣는 부인들이,
“아이고, 그거 불쌍하다. 입모습 콧주저리_코 언저리의 방언) 너의 모친만 닮았구나.”
젖을 많이 먹여 내어 심봉사를 내어 주니, 심봉사 좋아라고 양지앞 언덕밑에 패버리고_털썩 주저앉아) 쉬어 앉아 애기를 안고 어룬다.
“둥둥둥 내 딸이야, 어어둥둥 내 딸이야. 아이고, 내 새끼 배불렀다. 이게 뉘덕이냐? 부인님네 덕이다. 수복강녕(壽福康寧_명이 길고 복이 많고 건강함) 하옵소서. 너도 어서 수이 자라 현철하고 효행이 있어 아비 귀염을 쉬 보여라. 어려서 고생하면 부귀다담(富貴多男)을 한다더라. 아들같은 내 딸이야. 언덕 밑에 귀남(貴男)이 아니냐_집이 가난해서 이렇게 언덕 밑에 앉았지만 귀한 집 아들 못지 않다). 설설이 기어라, 어허둥둥 내 딸이야.”
따둑 따두어 잠들이고 삼베 전대(纏帶_무명이나 베 따위로 길게 만들어 허리에 두르거나 어깨에 매던 자루) 요동(搖動) 메어_흔들리게 메어) 왼편 어깨다 들어 매고, 한 달 죽장_줄곧의 방언) 전(錢) 거두기 어린아이 암죽으로 근근히 지내갈 제, 매월 삭망소대기(朔望小大朞_상중에 있는 집에서 다달이 초하루와 보름날 아침에 지내는 제사)) 를 허망이 모두 넘어가니 그 때에 심청이는 장차 귀히 될 사람이라 천지 귀신 도와주고 제불보살 엄명하여 외 붙듯 달 붙듯 잔병없이 잘 자라나 육칠 세가 되어 간다.
[아니리]
하루난 심청이 저의 부친 앞에 단정히 꿇어앉아,
“아버지 오늘부터 제가 나가 밥을 빌어 조석 봉양 하오리다.”
심봉사,
“엊그제 강보에 싸였던 네가 이제 내 앞에 와 그런 말을 하니 기특하고 고마운 자식이다만은 그런 말은 당초에 말아라.”
[진양조]
심청이가 여짜오되,
“말 못하는 가마귀도 공림(空林_쓸쓸한 숲속) 저문 날에 반포지은(反哺之恩_까마귀의 새끼가 자라서 어미에게 먹이를 잡아다 주어서, 길러 준 은혜를 갚는 일)을 하옵산디, 하물며 사람이야 일러 무엇 하오리까? 아버지 어두신 눈으로 깊은데, 얕은 데 천방지축(天方地軸) 다니시다 병이 날까 염려오니, 아버지는 오늘부터 집에 가만히 계옵시면 재가 나가 밥을 빌어 조석 공양 하오리다.”
[중머리]
그리 하라 허락하니, 밥을 빌러 나가는 데, 먼 산 해가 질 때 앞마을에 연기 난다. 헌베 중으_중의(中衣)의 방언) 단임_대님의 방언) 매고 앞섶 없는 헌 저고리 청목(靑木) 휘양_푸른 무명으로 만든 머리 쓰개) 둘러쓰고, 서리 아침 추운 날에 팔장 끼고 옆걸음치고 벌벌 떨고 가는 양이 수풀에 잠든 새가 외로이 날아간다. 바람 불고 비 오는 날 추위를 못 이기어 떠나가는 가마귀라. 가가문전(家家門前) 당도하여 애절이 비는 말이,
“모친 세상 버리시고 앞 어두신 우리 부친 병 드신 줄을 모르시어, 한술씩만 주시오면 추운 방 늙은 부친 시장을 면컸네다.”
부인이 가공하여 그릇 밥 김치장을 애끼잖코 덜어주니 두서너 집이 족한지라, 솔솔히 들어와서 사립 안을 들어서니,
“아이고, 아버지 춥지 않소? 시장하시리다. 어언간에 더디었소.”
그 때에 심봉사는 어린 딸을 내보내고 혼자 앉아 자탄하다, 심청소리를 듣더니만,
“오, 심청이냐? 아이고, 내 새끼야. 발도 차고나 어루만지면서 애닯구나. 너의 모친 살았으면 널로 하여 밥을 빌어 이밥 먹고 산단 말이냐? 모진 목숨 죽지도 않고, 자식 고생까지 시키네 그려. 아이고, 어쩔끄나.”
부녀 서로 붙들고서 한참 앉아서 울음을 운다.
춘하추동 사시절(四時節) 동내 걸인이 되는데 일 년, 이 년, 삼 년, 사 년, 나이 십이 세가 되어지니 동내 집 바느질삼 공밥 먹지 아니하고 일없는 날 밥을 빌어 근근히 지내갈 제, 세월이 여류(如流)하여 나이 십오 세 되어진다.
[아니리]
이러한 소문이 원근에 자자하니, 하루는 건너 마을 장승상댁 부인께서 시비를 보내어 심청을 청하였구나. 심청이 저의 부친께 여짜옵고 승상댁을 건너 가는디,
[진양조]
시비 따라 건너갈 제, 승상 댁 계신 곳은 원원(遠遠)이 바라보니 대문앞에 심은 버들 청청한 시상촌(柴桑村)_중국 강서성 덕화현에 있는 마을로, 도잠이 집 앞에 버드나무를 심어 놓고 살던 곳)의 황금같은 저 꾀꼬리는 자아내니, 수다로구나. 대문 안에 들어서니 가사(家舍_집)도 웅장하고 문창(門窓)도 화려하다. 당상(堂上_마루 위에서)으 반백이나 된 부인이 심청을 보고 반기시며,
“네가 심청이냐? 듣던 말과 같도 같다.”
당상으로 인도하여 좌(座)를 주어 앉으려고 한다.
[중중머리]
심청이 거동 봐라. 가장(假粧) 단장(丹粧_화장하고 머리와 옷 맵시를 꾸미는 일) 헌 일 없이 천자(天姿_타고난 맵시) 만고(萬古) 국색(國色_나라에서 으뜸갈 만한 미인)이라. 염용(殮容_조심스러운 몸가짐을 하고)하고 앉은 거동 백석청탄(白石淸灘_흰 돌위에 흐르는 맑은 여울) 맑은 물에 목욕하고 앉은 제비 사람보고서 날아갈 듯, 황홀한 저 얼굴은 천심(天心)에 들은 달이 수변(水邊)에 가서 미치난 듯, 천상미간(天庭眉間_이마와 눈썹 사이)에 두 눈썹은 초생달이 뜬 듯하고 도화(桃花) 양협(兩頰복사꽃이 핀 듯이 예쁜 두 뺨)에 고운 빛은 무릉도원(武陵桃源)이 비치는 듯, 팔자점점 삼사녹발_검고 윤택이 있는 총총한 머리) 새로 난초 핀 듯하고, 말하고 웃는 양은 부용화(芙蓉花_연꽃)가 새로 보이는 듯, 월궁의 노던 선녀 벗 하나를 잃었도다. 부인이 칭찬하니,
“전신(前身) 내 몰라도 응당 선녀로다. 도화동에 적거(謫居)하야 무릉촌은 네가 살고 도화동에 내가 사니, 무릉촌 봄이 들어 도화동 계화(桂花)로다. 내 말을 들어봐라. 승상은 일찍 기세(棄世_세상을 떠나고)하고, 아들이 삼형제나 황성가서 등사(登仕_벼슬길에 오르고)하고 다른 자식은 손자가 없으니, 슬하에 말벗 없어 대하느니 촛불이요, 보는 것이 고서(古書)로다. 네 신세 생각하니 양반의 후예로서 저다지 곤궁하니 나의 수양딸이 되었으면, 예절도 숭상하고 문자도 학습하며 기출(己出_제가 낳은 자식)같이 성취(成就)시켜 만년영화(晩年榮華)를 볼 것이니 네 뜻이 어떠하냐.”
[중머리]
심청이가 여짜오되,
“명도(命途_운명)가 기구하여 나온 지 칠 일 만에 모친을 잃사옵고, 앞 어두신 부친께서 동냥젖을 얻어 먹여 근근히 길러내어 내가 부친 모시기를 모친 겸 모시옵고 우리 부친 날 믿기를 아들같이 믿사오니 사정이 서로 의지하여 맟도록 모시자 하옵니다.”
말을 마치면서 두눈에 눈물이 듣거니 맺거니 떨어지는 양은 춘풍세우가 도화에 잠겼다가 점점이 떨어지니, 부인이 가긍하여 등을 어루만지면서,
“출천지대효(出天之大孝_하늘이 낸 큰 효녀))로다 노(老)한 마음으로 실언을 하였으니 부디 섭섭이 생각마라.”
[아니리]
부인이 연연(憐憐)하여 양식과 채단(綵緞)을 후히 주며,
“나는 너를 딸로 아니 너는 나를 잊지 말고 종종 다시 보면 다행일까 하노라.”
그 때에 심봉사는 건너 마을 장승상댁에 심청을 보내 놓고 생각 두루하여 날이 저물어도 오지를 아니하니 혼자 앉아 울음을 우는디,
[진양조]
배는 고파 등에 붙고 방은 추워 한기들 제, 먼 데 절 쇠북을 치는데 날 저문 줄 짐작하고 혼자 앉아 딸 부른다.
“나의 딸 심청이는 어이하여 못 오느냐? 부인께 붙들렸나? 동지들께 잠적을 하였나_마음 맞은 사람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나)? 내 딸 소문 이 사방에 당자하여 승상부인이 오란다 하고 몹쓸놈들이 중노(中路)에 가 들어앉아 내 딸마저 데려갔느냐?”
웬갖 생각 다하면서 오고 가는 사람소리 듣고 개만 컹컹 짖고 나도,
“심청이 오느냐?”
아무리 불러봐도 적막공산 인적이 끊어지니,
[잦은몰이]
심봉사 답답하여 닫은 방문 번쩍 열고 지팡막대 찾아 짚고 더듬더듬 더듬더듬 더듬어 나가다가 개천물에 미끌어져 물에 가 풍, 나올라고 옮겨 디디면 도로 들어가 허리가 획, 또 옮겨 디디면 도로 들어가 턱에가 꽉 차오니, 심봉사 몸도 뒤뚱 못하고,
“아이고 사람 죽네.”
아무리 불러봐도 적막공산 인적이 끊어진다.
[아니리]
일모도궁(日모途窮_날이 저물고 길이 험하여서)하였으니, 뉘랴 사람 살리리오마는 사람 살 일은 곳곳마다 있었겠다.
[엇머리]
중 올라간다 중 하나 올라간다. 저 중이 어떤 중인고. 행색을 알 수 없네. 연연(年年)이 묵은 중, 허허디 헌 중, 몽은사 화주승(化主僧_속세에 난가서 불교를 포교하며 부처에게 바칠 공양물과 중들의 음식과 옷 따위를 대주는 책임을 맡은 중)인데, 절 중창(重창_헐어내거나 고쳐지어 새로 지으려고) 하려고 권선문(勸善文_시주해 달라는 뜻을 적은 글) 메고 시주집 찾아갔다, 절 찾아가는 길이라. 원산은 암암(暗暗)하고 설월(雪月)은 돋아올 제, 석경(石徑)에 비낀 길로 인도한 곳 올라간다. 저중의 호사보소 굴갓_벼슬한 중이 쓰던 대로 만든 갓)쓰고 장삼(長衫_검은 베로 길이가 길고 소매가 넓게 달아 만든 중의 웃옷)입고 염주는 목에 걸고 단주 팔에 걸어 백저포(白苧布_흰 모시) 장삼(長衫)을 진홍띠를 둘러 메고 소년 당상(堂上)헌 별랑금_정삼품 이상의 벼슬아치들이 징표로 달던 ‘옥관자’의 속칭) 귀 위에 떡 붙이고, 용두(龍頭)새긴 육환장(六環杖) 채고리 길게 달아 처절 철철철 흔들흔들 흐늘거리고 가는 양은 삭발한 도진사요, 졸입은 표장부하는 사명당의 거동이라. 육관대사_소설 「구운몽」에 나오는 큰 스님으로 성진을 양소유로 환속시킴) 성진_「구운몽」에 나오는 육관대사의 제자로 대사의 심부름으로 용궁에 다녀 오던 중 팔선녀를 만나 희롱한다. 절에 돌아 온 후 성진은 세속에 관심을 품는데, 이를 안 대사가 성진을 양소유로 인간 세상에 태어나게 해 인간세상의 허무함을 깨닫게 한다는 이야기)이 용궁에 문안갔다 과약주(果藥酒_과실을 넣어 담근 약주) 취케먹고 팔선녀 희롱하던 성진대사 거동이라. 중이라 하는 것은 절에 들어도 염불, 속가(俗家)에 가도 염불.
“아어허허흐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리 한참 올라갈 제, 동편에 들리는 소리. 사람을 구하라 하거늘,
“이 울음이 웬울음? 이 울음이 웬울음? 마외역(馬嵬驛_중국의 섬서성에 있는 역으로 당나라 현종이 안 녹산의 난을 맞아 피난을 가다 성난 군중을 달래기 위해 양귀비를 죽인 곳) 저문날에 하소대로 울고 가든 양태진(楊太眞_태진은 양귀비의 호)의 울음이냐? 이 울음이 웬울음?”
저중이 우뚝 서서 소리 나는 곳 살피다가 그곳을 찾아가니, 어떤 사람인지 개천물에 가 빠져서 ‘어푸 어푸’ 거의 죽게 되었구나. 저중이 급한 마음으로 굴갓 장삼을 훨훨 벗고 행전 단님 벗어 새(細)뉘빈_가늘게 누빈) 바지 가랑이를 딸딸되게 말아 자개밋_자개미의 방언으로 겨드랑이 또는 오금 양쪽의 오목한) 에 딱붙이고 백노횡장(白鷺橫江_소동파가 지은 「적벽부」에 나오는 말로 ‘백로가 강을 건너감’) 격으로 징검징검 들어가 심봉사 고추_꼿꼿한) 상투 앳뚜루미쳐채여 나오다 살펴보니 전에 보던 심봉사라.
[아니리]
업고 집으로 돌아와,
“활인지불(活人之佛_사람을 살리는 부처님)인지, 죽은 사람 살려내니 은혜 백골난망이요.”
“예, 소승 몽은사 화주승이온데, 우리 절 부처님이 빌면 아니 듣는 일이 없소. 공양미 삼백석만 본전에 시주하고 진심으로 불공하면 어둔 눈을 다시 떠서 대명(大明) 천지(天地) 볼지리라.”
심봉사 눈뜬단 말은 어찌 반겨 들었는지,
“그러면 적어 주지.”
권선문 제일장에 공양미 삼백 석을 몽은사로 납상(納上)이라, 심학규 성명 삼자 뚜렷이 적어 두고 떠났겠다. 심봉사 곰곰 앉아 생각하니,
‘판출(販出)할 길 바이 없어, 복을 빌어 눈 뜨려다 오히려 죄를 지었구나.’
[중머리]
묵은 근심 햇근심이 동무 지어 일어난다.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어떤 사람 팔자 좋고, 재물이 영영(盈盈)하고, 곡식도 진진(津津)하여 용지불갈 취지무궁(用之不갈 取之無窮) 바랄 것이 없지마는 이내 신세 어찌하여 형제 없고 앞 못 보며 이런 팔자가 어디가 있느냐. 일간두옥(一間斗屋) 팔자 한들 서툰 진지 바이 없네. 아이고 이를 어쩔끄나. 아이고, 아이고, 어찌를 할끄나.”
복통단장으로 울음을 운다.
[자진머리]
심청이 들어온다. 시비를 뒷 세우고 천방지축 들어와, 닫은 방문 펄쩍 열고,
“아이고 아버지 날 찾아 오시다가 이 지경을 당하였소. 이웃집 가시다가 이 모양을 당하였소. 춥긴들 오직하며 시장인들 오직하리까? 승상댁 노부인이 굳이 잡고 만류하기로 어언간에 늦었소.”
[아니리]
농 안에 옷을 갈아입고, 정제로 들어가 밥을 속히 얹어,
“아버지, 진지 잡수시오.”
“아니, 나 밥 안 먹을란다.”
“아버지, 소녀가 더디 왔다 그러시오?”
“너 알 일도 아니고 나 혼자만 알다 혹 죽어버릴 일이다.”
“아버지 아버지는 저를 믿고 소녀는 아버지 영을 받자와 대소사를 의논한디, 아무리 불효여식이라고 ‘너 알아 쓸데없다’ 하시니 소녀가 도리어 섧소이다.”
“아가, 너를 속일 리가 있겠느냐? 내 말하마 너 오는디 찾아가다 개천물에 빠져 거의 죽게 되었더니, 몽은사 화주승인지 나를 건져놓고 부처님께 시주하고 진심으로 불공하면 어둔 눈을 뜬다기에 뒷 일은 생각않고 쌀 삼백석을 적었으니 백 가지로 생각해도 후회 막심하다.”
심청이 듣더니,
“걱정 말고 진지나 잡수시오. 도리어 후회하면 진심도 못되오니, 어두신 눈을 밝아 만물을 보신다면 되도록 빠른 시일 소녀가 준비하여 몽은사로 들리리다 걱정마옵소서.”
심청은 그날부터,
[진양조]
후원에 단(壇)을 무어_‘뭇다’,‘무으다’에서 변화했으며, ‘모으다’의 옛말) 황토 깔고 금줄을 매고 머리 목욕을 정히 하더니만 하느님 전에다 축수를 한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느님전에 비나이다. 일월은 사람의 인물이오. 일월이 없사오면 무슨 분별 하오리까? 아비의 허물은 심청 몸으로 대신하고 아비의 어두신 눈을 밝혀 점지 하옵소서.”
[아니리]
이렇듯이 빌고 경황없이 앉았을 때, 하루는 뜻밖에 골목거리 외치는 소리 들려온다.
[중중머리]
남경장사 상인들이 골목골목 들어서서 각기 모두 외치는 말이,
“우리는 남경장사 선인으로 인당수라 하는 데는 인제수를 받삽기로, 십오 세나 십육 세 먹은 처자가 있으며는 중(重)값을 주고 살 것이니 처녀팔이 혹 있소? 있으면 있다고 대답을 하시요. 허허허.”
[아니리]
심청이 반기 듣고 그중에 수선인(首船人_뱃사람의 우두머리)을 불러 앉치우고, 부친 사정 말한 후에 인당수 제수로 제 몸을 팔게 하고 공양미 삼백 석을 몽은사에 바치어서 부처님께 공을 닦아 안맹하신 부친 눈을 뜨게 하고 행선 날은 내월 십오일로 정하고 선인들은 하직하고 떠났것다. 심청이 부친 앞에 단정히 꿇어 앉어,
“공양미 삼백 석을 몽은사로 올렸나이다.”
심봉사 반겨하여,
“삼백 석은 어데서 나서 바쳤느냐? 장정승 부인께서 수양녀로 의를 맺아 글노 받은 백미오니 호호 염녀 마옵소서.”
“거 그 일 잘 되았다. 그리면 언제 다려 가시마 하시드냐?”
“내월 십오일 날 다려가시마 하옵니다.”
“거 날도 잘 났다.”
심청은 부친을 만단으로 위로하고 곰곰 앉아 생각허니,
<중략>
[아니리]
강두에다 집을 짓고 망사대(望思臺_한나라 무제가 태자를 간신의 모략으로 죽였는데, 후에 사자궁(思子宮)을 짓고 태자의 넋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 안에 누각을 지은데서 죄 없이 죽은 사람의 넋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누각)를 씌웠는데 비명을 타루비(墮淚碑)라 하였것다.
[진양조]
강촌에 밤이 드니 수운(水雲)이 적막한 데 외로운 강두에 망사대만 우뚝 솟아 물새소리만 기웃기웃 갈대소리는 서리렁서리렁 무심한 잔나비 짝을 지어 슬피우니, 그 때에 심봉사는 망사대를 찾아가서 비문을 안고 운다.
“아이고 내 딸 심청아, 인간 부모를 잘 못 만나 생죽음을 당하였구나. 네 아비를 생각거든 나를 어서 다려가거라. 살기도 나는 귀찮고 눈뜨기도 내사 싫다.”
가슴을 두드려 머리를 찧고 두발을 끌러 남지서지(南之西之)를 가르치는구나.
[아니리]
밤낮으로 울고 다니거늘 그 동네 사람들이 심봉사 생각을 가엽이 생각하고, 그 근처에 뺑덕을 중매하여 후처가 되어 사는디, 이 계집의 행실이 이렇겠다.
[잦은몰이]
양식 주고 떡 사 먹고, 술 잘 먹고 욕 잘하고, 억지 많고 욕심 많고, 흉 잘 보고 해담하고, 술처먹고 훌떡 벗고, 담배 달라 싱간하기 잡스럽고, 행하기는 고금천지 둘도 없다. 삐쭉하면 빼쭉하고, 빼쭉하면 삐쭉하고, 힐긋하다 핼긋하고, 핼긋하다 힐긋하고, 하루도 열 번이나 시시각각 변덕한다. 이런 제기 붙고 발길할 년 행실이 이렇거든 가오지사를 알겠느냐.
[아니리]
하루는 심봉사 뺑덕이네를 불러,
“여보게 뺑덕이네 우리가 본촌(本村)서 살자하니, 이웃도 부끄럽고 우리 저 먼데로 떠나는 것이 어떠하오.”
약간 세간 등물을 모두 팔아 가지고 정처없이 떠나간다.
[중머리]
“도화동아, 잘 있거라. 무릉촌아 부디 잘 살아라 나는 간다. 이제 내가 떠나가면 어느 시절에 돌아오나.”
도화동 사람들은 모두 나와 인사를 하고 울며 불며 떠나간다.
<중략>
[중머리]
도화동 찾아가니 딸의 생각이 절로 난다. 봄이 가고 여름이 되면 녹음방초 한이로다. 산천은 적적한디 물소리만 처량쿠나. 도화동 사람들도 모두 나와 인사를 하고, 딸과 같이 놀던 처자들은 종종 와서_종종 걸음으로 와서) 인사를 하면 심봉사 기가 막혀, 아이고 내 딸 심청아 인간 부모를 잘 못 만나 생죽음을 하였구나. 날잡아 가거라. 나를 물어가거라, 삼심국 소귀들아_천신, 지신, 산신의 나라에 있는 시끄러운 잡귀들) 날 잡아 가거라, 아이고 악신들아 날 잡아 가거라. 살기도 나는 귀찮다. 아이고, 이를 어찌를 할까나.”
복통단장으로 울음을 운다.
[아니리]
하루는 본관(本官_고을 사또가 있는 곳)에서 심봉사를 불러,
“황성서 맹인잔치가 있다는데, 그대는 참석치 않나. 노자 이십 냥을 줄테니 내일 떠나도록 하오.”
[중중머리]
심봉사 좋아라고 돈을 받아 손에 들고 저의 집으로 돌아오니,
“여보게, 뺑파. 눈먼 가군이 어디갔다 집안이라고 돌아오거든 우르르르르 쫓아 나와 영립하는게 도리지, 좌이부동(坐而不動_그대로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음))이 웬일인가? 에라! 요년아, 요망하다.”
뺑덕이네가 나온다.
“아이고 여보 영감. 영감 오신 줄 내 몰랐소. 내 잘못 되었소. 이리 오시오, 이리 오라면 이리 와요.”
[아니리]
“뺑덕이네 거기 앉게. 자내더러 할 말이 있네. 황성서 맹인잔치가 있다는디, 잔치는 맹인잔치지만 백리 길도 아니고 천리 길이나 되는디, 나 혼자 가겠는가 뺑덕이네도 같이 가자, 응.”
[중머리]
“못 가겠소, 안 갈라요. 나는 안 갈라요. 황성천리 먼먼 길을 누구를 보려고 내가 가요?”
심봉사 기가 막혀,
“오지 마라, 요년아. 우리 곽씨 부인이 오늘날 살았으면, 이런 패단이 있겠느냐? 나 혼자 갈란다. 오지를 마라.”
뺑덕이네 나 앉으며,
“아이고 여보 영감 길이 백 리 길도 아니고 천리길이 되는데, 영감 혼자 보내리까? 어찌 그리 속이 옹졸하시오.”
“오냐 네 속은 땅꾸두 같다.”
그날 밤 그렁저렁 지내고, 황성길을 떠나는데, 아침밥을 지어먹고 뺑덕이네도 눈을 감아 황성길을 떠나갈 제, 신세 자탄으로 울음을 운다.
<재편집: 오솔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