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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조』 봄 계간평>
서정의 갈피 속에 깃든 비원(悲願)과 희망
정용국
1. 행간의 보물들
시조는 어느 문학 형식보다도 짧고 명징한 표현을 장르의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운문이 대체로 짧고 율격을 갖춘 글을 이르는 것이지만 시조는 그 중에서도 운문의 중심축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을 역으로 풀어서 해석한다면 정제되고 압축된 시조의 행간에는 더없이 풍부하고 유려한 비원과 희망이 숨겨져 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할리우드의 저명한 시나리오 작가이며 스토리텔링 전문가인 로버트 맥기 (Robert McKee)는 상대방에게 알리고자 하는 Story(사건, 지식, 정보)를 Tell(문자, 소리, 그림, 영상)을 통해 교감하는 것을 스토리텔링이라고 규정했다. 즉 흩어져 있는 소재를 모아 어떤 주제를 전달한다고 할 경우 각자 다른 내용과 형식을 담고 있는 소재들을 하나의 주제로 엮기 위해서는 끈이 필요한데 이 끈이 바로 '스토리'가 되는 것이며 여러 가지 부재들을 이야기로 묶어서 완성된 주제로 만들어 내는 과정이 스토리텔링이라고 하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의 모든 창작과정에는 스토리텔링이 적용되며 이 과정을 통하여 상상력의 깊이와 서정이 확대되고 막연하고 모호했던 소재들도 일반성과 구체성을 획득하게 된다. 좋은 스토리의 구성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독자의 관심을 잡아끄는 (hook), 관심을 유지시키는 (hold), 이야기의 절정에서 감정과 궁금증을 풀어주는 (pay off)의 과정을 잘 갖춰야 한다는 것이 맥기의 주장이다. 상황 전개에 허점이 보이거나 인과관계의 정황이 납득이 가지 않을 경우 독자는 바로 불신의 벽을 쌓게 되는 반면, 훌륭한 스토리텔링은 상상력이 풍부한 경이로운 반전을 품고 있어서 독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게 된다. 이러한 이론들은 새롭고 독창적인 것은 아니지만 문학이 보다 활기를 갖고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한 번 쯤 재고해 볼만 할 것 같아서 간추려 본 것이다.
지난 겨울호에 게재된 시조 작품들은 대체로 풍성하였다. 계간지 외에도 연말을 맞아 동인이나 시인단체에서 발간하는 연간집들도 함께 출간되어 다양한 특집기사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시조 창작이 압축과 정제의 과정이라면 감상은 압축과 정제의 내면에 숨겨진 비원과 희망들을 파헤쳐보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 과정이 모두에 기술한 스토리텔링의 이면을 살펴보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시인이 간결하고 명료한 3장 6구의 정형에 찻잎을 덖어내 듯 수분을 제거하고 절제된 서정을 표현했다면 다관에 찻잎을 넣고 물을 부어 은근하게 우려서 그 향을 다시 피워내는 일은 독자의 몫인 것이다. 겨울호에 실린 다양한 시조 작품의 차향을 다시 음미해보기로 한다.
2. 직언과 눌변 사이
문장과 여백 사이 마음이 발기한다 행과 연을 무시한 당신 향한 활자들은 밤공기 침 묻혀 넘기고 있다 나와는 상관없이
흰 글씨는 화약 같아 쪽수는 뇌관 같아 방화를 기다리는 종이 당신을 기다리는 종이 책장에 지뢰 하나 묻고, 히죽이는 그날까지 - 김남규 「시집의 기분」 《시조시학》 2018, 겨울호 -
김남규의 ‘기분’이 시에 넘쳐난다. 아니 시집에 대한 시인의 기분이 위풍당당하기 이를 데 없다. 시인은 이 작품의 시작 노트에 <하루 종일, 매일, 시도 때도 없이 시만 생각해봤다. (중략) 당신을 기다리며 당신을 쓴다. 고마울 뿐이다>라고 전하고 있다. 부러운 일이다. “발기, 뇌관, 방화, 지뢰”라는 시어들이 도처에 숨어서 극도의 긴장과 순간의 발화를 부추기고 있다. 시인이 획정해 놓은 “문장과 여백 사이”에서 “(독자의) 마음이 발기한다”. 발기의 주체는 독자이므로 시인의 의도와 일치하거나 반드시 부합하지 않을 수도 있다. “행과 연을 무시한/ 당신 향한 활자들은” 이미 시인의 손을 떠나 독자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으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시인도 이것에 연연할 사람이 아니다. “나와는/ 상관없이”라고 이미 예견한 일이므로 당연하게 그럴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지뢰는 화약과 뇌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둘 중 어느 하나만 없어도 폭발할 수 없다. 그런데 시인은 화약이 뇌관의 힘으로 폭발하고 나서 발화할 수 있는 가연재(可燃材)인 “종이”까지 준비해 두었다. 이제 독자는 뇌관과 폭약이 작용하여 폭발한 후 종이에 불이 붙으면 자신의 온 마음을 일순에 태우게 될 것이다. 시인은 이 장면을 상상하며 카타르시스를 맛보게 된다. 시인도 “히죽이는 그날”을 맞게 될 것이고 그래서 ‘시집’은 ‘기분’이 좋을 것이니 대성공이다. “책장에/ 지뢰 하나 묻고,/ 히죽이는/ 그날까지” 숨죽이며 기다리는 철부지 운명의 사람, 그가 진정한 시인일 것이다.
비를 맞아가며 비를 또 막아주고
땡볕도 한껏 가려 그늘을 넓혀주는
사는 일 말할 것 없다고 바둑돌이 오고 간다
모 달은 여름해가 들었다 물러가면
서느런 어둠자락 탁본으로 떼어놓고
터득한 하늘의 이치 별자리로 짚어본다
풋것들 패착이야 한두 수 쯤 물러주고
목청 높여 발목 잡는 댓글들 건너뛰며
느릿한 사투리 같은 묘수 한 점 놓는다
- 신필영 「느티나무 눌변」 《한국동서문학》 2018, 겨울호 -
수백 년을 살았을 “느티나무 눌변”의 깊이가 한량이 없다. 눌변이기에 망정이지 달변이었더라면 숨이 넘어갔을 것이다. 수백 년의 생은 인간이 도저히 누릴 수 없는 삶의 깊이려니 그 아래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장삼이사의 이야기는 그저 장난이거나 한 줄기 바람만도 못한 일에 불과하다. 느티나무의 수령을 오백 년이라고 하더라도 조선의 난리와 흥망성쇠는 물론이고 크고 작은 반란과 일제의 침탈, 왕조의 멸망에 이은 강점의 뼈아픈 시절, 동족끼리의 전쟁과 끝없는 부침까지도 나무는 다 보았을 것이다. 무서운 이력이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어머니가 아이를 돌보 듯, 어미 닭이 병아리를 죽지 안에 감싸 듯 나무는 “비를 맞아가며 비를 또 막아주고/ 땡볕도 한껏 가려 그늘을 넓혀주는” 넓은 품을 가졌다.
그 넓은 그늘 아래서 사람은 서로 몸을 부비고 복닥거리며 살아간다. 그러는 동안 사람도 나무를 닮아서 “터득한 하늘의 이치 별자리로 짚어”보게 되는 것이리라. 그래서 종당에는 “풋것들 패착이야 한두 수 쯤 물러주고/ 목청 높여 발목 잡는 댓글들 건너뛰며” 나무의 기상을 본받게 되는 것이다. 나무는 동구에 서있고 사람은 이와 아무런 관계없이 수백 년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시인의 눈에는 수많은 교류와 대화가 오가고 서로를 보듬고 아껴주는 신성한 가치를 다 내다보고 있었다. 바둑돌을 여유 있게 물러주고 너 죽고 나 살자는 악다구니도 못 본 듯 건너뛰며 흔들리지 않고 나가는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장하고 늠름한가. “느릿한 사투리 같은 묘수 한 점”을 점잖게 놓을 줄 아는 사람은 이제 수백 살의 느티나무를 많이 닮았다. 느티나무가 수없이 많은 잎사귀를 팔랑거리듯 그 이파리마다 따듯하고 정겨운 이야기들을 매달아 놓은 시인의 두툼한 손길이 더없이 아름다운 작품이다.
3. 인간을 넘어 신이 된 것들
주로 자연과 교감하던 인간에게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되는 기계장치와 기구들이 틈입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부터인 근래의 일이다. 처음에 이것들은 인간의 생활을 편리하고 신속하게 해주기 시작하더니 전자를 응용한 제품들은 이제 그 차원을 넘어 인간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수준에 다다라 있다. 이송희의 신선한 발상과 윤경희의 섬찟한 상상력이 세탁기와 퍼스널컴퓨터를 통해 교감하는 21세기 인간의 새 유형을 표현하고 있다.
때 절은 하루를 세탁기에 넣는다
먼지 낀 내 눈과 끌려 다닌 발까지
밖에서 돌아온 몸들이 뒤엉키며 돌아간다
우울한 저녁마다 물 뿌리고 씻어내며
어디선가 떠돌다 왔을 몸과 몸이 섞인다
길들은 풀어지면서 다시 감겨 돌아가고
어느덧 잘 마른 내가 세탁기에서 걸어 나온다
이제 나는 그를 넣어 버튼을 누르고
왔던 길, 반대편에서 그가 오길 기다린다
- 이송희 「세탁 중입니다」 《좋은 시조》 2018, 겨울호 -
전자제품과 인간이 혼연일체가 된 듯 어색하지 않고 신선하다. 세탁기는 의류만을 세척하는 것이 아니라 “때 절은 하루”도 훌륭하게 씻어낸다. 또한 세탁기 안에서는 각각 “밖에서 돌아온 몸들”과 “어디선가 떠돌다 왔을 몸과 몸이 섞인다”는 표현에서는 “먼지 낀 내 눈과 끌려 다닌 발”과 “우울한 저녁”과 조우했던 수많은 일상의 순간들이 “풀어지면서 다시 감겨 돌아가고” 있다. 충전의 시간을 통하여 “어느덧 잘 마른 내가 세탁기에서 걸어 나온다”는 환상적인 표현은 새롭고 분주했던 생활의 매 순간에서 자신의 새로운 역할을 감내했던 분신들을 만나게 되는 엄숙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세탁기는 이제 단순하게 옷을 빨아주는 기계가 아니라 복잡하고 다단한 일상에 지친 인간의 영혼까지 위무해주는 신비한 물건으로 탄생했다. 최후의 마무리에서 “이제 나는 그를 넣어 버튼을 누르고”있다는 엄청난 반전으로 대미를 맺고 있다. 과연 세탁기에 들어간 “그는” 더러운 의류가 세척되었듯이 주인공이 갈망하는 상태로 “반대편”에서 걸어 나올 것인지 자못 궁금하기 짝이 없다. 이제 세탁기는 시인 이송희를 통하여 인격과 정신을 갖춘 새로운 ‘인격체’로 우리 앞에 앉아 있게 되었다.
너는 내게 신이었다, 완전한 몸이었다
씻기고 닦이고 때 되면 백신 접종까지
철없는 아이 돌보듯 십여 년을 함께했다
불행은 예고 없이 바람처럼 들이닥쳐
치명적인 바이러스 하얗게 감염되어
불러도 감감무소식 대답 없는 너를 안고
아직도 남은 온기 주검을 들여다본다
느닷없는 이별 통보 불치의 병명 앞에
행여나 되돌아올까 미련 조각 맞춰보지만
애써 부정하고픈 나의 욕심인 것을
수백 개의 빈방엔 알 수 없는 흔적들
깨어진 믿음 사이로 영정 하나 걸렸다
- 윤경희 「퍼스널 컴퓨터」 《좋은 시조》 2018 겨울호 -
윤경희의 세계는 한 발짝 더 나가서 컴퓨터는 인간을 지배하는 “신”으로 존재한다. 당당하게 “너는 내게 신이었다, 완전한 몸이었다”라고 단언한다. 이 단언 속에는 컴퓨터가 나의 바라는 바를 다 해결해주었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문서 작성은 물론이고 도표와 그래프의 구성, 지식 조회, 음악 청취, TV 및 동영상 시청, 메일 소통과 통화 등 무엇이든 가능한 시스템이어서 내 혀와 같이 나를 편안하게 돌봐주는 신과도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식과도 같이 “씻기고 닦이고 때 되면 백신 접종까지” 해주었다는 말은 지당하다. 그러나 그 신의 존재는 하루아침에 무너졌으니 그야말로 맹신(盲信)이 아니고 무엇이랴. “불행은 예고 없이 바람처럼 들이닥쳐/ 치명적인 바이러스 하얗게 감염되어/ 불러도 감감무소식 대답 없는 너를 안고” 못난 인간은 가짜 신의 몰락 앞에 사상누각이 되어 그냥 “하얗게” “알 수 없는 흔적들”로 사라져 버렸다. 첫 수의 단호한 발단에 비하여 그 이후로 전개된 세 수의 구성에서는 부언이 이어지며 다소 긴장감이 풀어진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그래도 마지막 수의 종장에 놓인 “깨어진 믿음 사이로 영정 하나 걸렸다”라는 결구가 상징성을 가지며 끝까지 컴퓨터의 존재감을 각인시켜 주고 있어서 다행이다. 어쩌면 몇 년 뒤에는 인공 로봇이 시조를 써서 인간에게 둘려주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4. 짙고 푸른 욕망의 그늘
인간의 욕망은 늘 푸르고 거대하다. 나무로 말하자면 하늘을 가리고도 남는 무성한 이파리다. 그러나 인간은 그 굴레 때문에 늘 휘둘리며 산다. 여기 적나라하게 들끓는 두 여인의 욕망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이성간의 욕망이라고 해도 좋겠고 아니면 시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욕구라 해도 상관이 없다.
두어 계절 자다 깨어 이름 없이 살고 싶네
이마에 뚝뚝 지는 희푸른 하늘 덮고
마음 속 깊은 곳을 두드려 슬픈 소리 흘리다
과거도 미래도 무연한 마을을 만나
단풍물 숲길 같은 사내 하나 얻어서
삼백 날 난봉꾼의 여자로 울며불며 살아도 좋아
행여나 미련처럼 이름 한 줄 받는다면
그대 손에 감기어 생목으로 뒹굴다가
좋은 날 잘 마른 향으로 죽어 살면 좋겠네
- 서성자 「들국화라는 꿈」 《오늘의시조》 2019, 연간집 -
주인공의 욕망은 그냥 이성에 대한 욕구일까 아니면 허무주의자의 비탄일까. 시인이 각주에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차용해 왔다는 그 유명한 구절을 기억해보자. 「무사태평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 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는 표현은 일본 문학 100년사에 최고의 국민작가로 칭송된다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에서 고양이 눈에 비친 웃기는 인간과 한심한 세상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부분에서 나온 것이다. 종횡무진하는 풍자와 해학이 인간심리의 이면을 시원하게 꿰뚫으면서 지식인들의 답보적인 세계와 근대인의 불안한 심사를 그리고 있는 소설이기에 인용구의 함의가 자못 크다. 서성자는 자신의 심연에서 잠자고 있는 허무의 한 자락을 들춰내고 있다. 그리고는 복잡하고 다양한 모든 현실을 버리고 자신의 감정이 이끄는 곳으로 도피하려고 한다. 그래서 일부러 “단풍물 숲길 같은 사내 하나”를 불러내고 “삼백 날 난봉꾼의 여자로 울며불며 살아도 좋”을 것이라는 감정의 극단을 끄집어내며 강렬한 표출을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상의 질주를 멈추고 “들국화라는 꿈”이라는 시의 제목을 다시 생각해보면 아차 싶을 정도로 감정은 누그러들고 만다. 우아하게 대접받고 피어나는 온실의 국화도 아니고 그저 들판 아무 곳이나 저절로 자라고 피어나 서리와 함께 시드는 ‘들국화’라니 그 들국화가 꿀 수 있는 꿈이야 아무려면 어떻겠는가. 마지막 수의 종장을 “그대 손에 감기어 생목으로 뒹굴다가/ 좋은 날 잘 마른 향으로 죽어 살면 좋겠네”라며 조신하지만 섬뜩한 각오로 덮은 것은 국화의 꿈을 넘어 어느 안타까운 여인의 꿈과도 궤적을 함께 하고 있어서 따스하고도 흐뭇한 일이라 하겠다. 서성자가 그려낸 ‘들국화라는 꿈’은 차마 표현의 극단을 오갔지만 그 속에 살짝 감춰진 시인의 정감을 고도로 숨기고 있는 기법이라고 해야겠다. 몇 번이고 다시 읽는 내내 자꾸 뒤를 돌아다보게 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긴장감이 잘 지켜진 까닭이다. 들국화와 주인공의 이미지가 적당히 범벅이 되면서 극단의 상상력도 배가되었다가 서서히 하강하는 감정의 완급에서 독자들이 느끼는 이완감은 각별했을 것이다.
공터에 맨드라미 닭 벼슬처럼 서있다 꽃술 전부의 사유, 환히 터진 시월 쯤 그 자세 표표하더라도 화살이자 과녁이었지
잠행하던 기억 속, 내 귓불처럼 붉혔으리 난전이어도 좋은 꽃밭 바람소리 못 알아듣는 아직도 끓어오르는 신열 철없이 허공에 건다
- 구애영 「난전이어도 좋은 꽃밭」 《시조시학》 2018, 겨울호 -
서성자의 욕망에 비하면 구애영의 욕망은 단정하며 감정을 추스르느라 안으로 타고 있다. “닭 벼슬”로 비유된 “맨드라미” 꽃은 강렬하고도 저돌적인 욕망을 상징하고 있다. 태도와 행동이 사납다는 의미를 가진 “표표하다”로 서술 된 맨드라미여서 한층 더 의미를 확장시키고 있다. “화살이자/ 과녁이었지”라는 결구는 ‘도전인 동시에 목적’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어서 사랑의 상징인 ‘꽃’을 한 번 더 도드라지게 해주고 있다. 그렇게 활활 타오르던 꽃은 결국 “내 귓불”로 되살아나면서 “아직도 끓어오르는 신열”로 각인된다.
“난전이어도 좋은 꽃밭”이라 붙인 제목은 시인의 욕망을 아주 소박하게 표현한 부분이며 시 전체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고 있다. 그래서 맨드라미의 붉은 꽃은 주인공의 강한 의지처럼 타오르지만 시인은 자꾸 그것을 억제하고 삼가려 애쓴다. 그 심증의 한 가닥이 바로 “철없이/ 허공에 건다”라는 공손함으로 감춰진 부분이라 하겠다. 그렇게 비장한 의지를 드러내지 않으려는 시인의 태도는 이미 시제 뿐 아니라 욕망으로 대변되는“신열”에 “바람소리 못 알아듣는”다는 수식어를 붙여 놓은 것만 보아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은 이렇게 감정의 폭발을 제어하여 ‘신열’로 표현된 욕망의 무게를 더욱 배가시키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서성자의 욕망이 극단의 길을 갔다면 구애영의 그것은 안으로 감추어진 수굿한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
5. 이야기의 힘과 시조의 힘
시조의 압축과 정제미를 행간에 숨은 ‘스토리텔링’의 힘으로 파악하는 것은 조금 아니러니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시조가 산문처럼 스토리를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면서 독자가 상상력과 서정의 힘으로 스스로 이야기를 찾아내고 유추하며 향유하게 한다는 것은 한층 더 격조 높은 수준이라 해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더 상징성이 풍부하고 독창적인 시어를 구사하려는 시인의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겨울호에 게재된 많은 시조 작품들이 이에 부응하고 있다. 소소하면서도 너볏한 짧은 한 구절에서 차지게 풀려나오는 이야기의 힘이 곧 시조의 힘이라 믿는다. 『좋은시조』에 계간평을 연재하게 되었다. 좋은 기회를 주신 김영재 발행인께 감사드리며 독자들께도 봄 인사를 올린다.
정용국 : 경기 양주 생. 2001년 계간 『시조세계』로 등단. 시집 『난 네가 참 좋다』 외 2권. 시선집 『눈이 물고 온 시』 한국출판문화진흥원 선정 비평집 『시조의 아킬레스건과 맞서다』 한국작가회의 시조분과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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