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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현절
마태복음2:9-11, 3:16-17 2026/1/25 주현 후 3주
2: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2:10 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2: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평안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자녀와
고난 받는 이웃들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교회력으로 오늘은 ‘주현 후 셋째 주일’입니다.
‘주현절’
교회력 중에서 가장 낯설게 여기는 절기입니다.
하지만 사순절이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 전까지,
늘 우리와 함께 해 왔던 절기로,
부활절 다음으로 가장 오래된 교회의 절기입니다.
2세기경부터 지켜온, 전통이 아주 깊은 절기입니다.
‘주현主顯’
'주인 주主'의 '나타날 현顯'자를 씁니다.
‘주인이 나타난 날(절기)’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주인’, 누구를 가리키는 말일까요?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로 고백되는 ‘예수님’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주현절’이란?
‘요셉(사람)의 아들’이자 ‘나사렛 출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고 ‘그리스도(메시아)’로 공인을 받고,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이 땅에 이 세상에 아주 명확하게 드러내신 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주현절’을 다른 말로 ‘공현公現절’(가톨릭/성공회)이라고도 부릅니다. 세상사람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예수님이 자기 자신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합리적인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어떻게 ‘사람(요셉)의 아들’이 ‘하나님의 아들’로
‘나사렛 사람’이 ‘그리스도(메시아)’로 공인을 받게 되었는가,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서방그리스도교회(가톨릭/개신교)와 동방그리스도교(정교회)가 ‘주현(주님이 나타났다)’이라는 하나의 진리를 붙잡되, 그 강조점이 조금 다르게 발전해 왔습니다.
우선 첫 번째 서방 교회 주현절은
‘만왕의 왕’으로 예수님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사건
바로 ‘동방박사의 경배와 예물’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우리가 속한 서방 그리스도교 즉 가톨릭과 개신교는
주현절이 다가오면, 항상 이 본문을 묵상합니다.
마태복음 2장입니다.
(새)마2: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셨다.
그런데 동방으로부터 박사('점성가들' '마고스')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2 말하였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결국 별(빛)의 인도를 받아 찾아온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함으로써, 모든 이방민족을 구원하시는 ‘만왕의 왕’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왕 뿐만 아니라 만왕의 왕으로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서방교회가 주현절을 지키는 이유이자 목적입니다.
(새)마2:10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무척이나 크게 기뻐하였다.
2:11 그들은 그 집에 들어가서, 아기가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서 그에게 경배하였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동방 박사들은 자신이 가장 이끼는 보물 상자를 엽니다.
그리고 ‘황금 유향 몰락’을 아기 예수님께 드리지요.
놀라운 것은 이 때 드린 예물들이 ‘만왕의 왕’ 즉 모든 민족을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증거의 예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새)마2:11 그들은 그 집에 들어가서, 아기가 그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서 그에게 경배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보물 상자를 열어서,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① ‘만왕의 왕’으로 드려진 ‘증거의 예물’은 ‘황금’이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황금’ 받으심으로, 시편 72편의 말씀처럼 도울 사람이 없는 불쌍한 백성을 건져 주시는 ‘만왕의 왕’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새)시72:12 진실로 그는, 가난한 백성이 도와 달라고 부르짖을 때에 건져 주며, 도울 사람 없는 불쌍한 백성을 건져 준다.
72:13 그는 힘없는 사람과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가난한 사람의 목숨을 건져 준다.
72:14 가난한 백성을 억압과 폭력에서 건져, 그 목숨을 살려 주며, 그들의 피를 귀중하게 여긴다.
72:15 이러한 왕은 만수무강할 것이다. 그는 아라비아의 황금도 예물로 받을 것이다. 그를 위하여 드리는 기도가 그치지 않고, 그를 위하여 비는 복이 늘 계속될 것이다.
② ‘만왕의 왕’으로 드려진 ‘증거의 예물’은 ‘유향’이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하나님의 향기가 묻어나는 ‘만왕의 왕’이었다는 것입니다.
③‘만왕의 왕’으로 드려진 ‘증거의 예물’은 ‘몰약’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희생 제물이자 모든 민족을 죄에서 구원할 ‘만왕의 왕’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송가 133장 2절은 주현절을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2) 온 하늘이 찬양하며 천사들도 찬양하네
만국 백성 경배하네 우리의 왕 하나님께
모든 입술 열어 찬양 목소리를 합하여 영원토록 영원토록
새해와 함께 시작되는 주현절이 되면, 서방교회 사람들은 집안 문설주나 대문 밖에 C.M.B라는 글자를 내걸거나 붙입니다.
‘C.M.B 2026’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강복’을 비는 축복의 의미이지요.
그래서 ‘C.M.B’을 라틴어 ‘Christus크리스투스(그리스도) Mansionem만시오넴(집/거처) Benedica베네디캇(축복하시기를)’의 약자로 해석합니다. 번역하면 이런 뜻이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집을 축복하시기를...’
그리고 또 하나 ‘C.M.B’에는 이런 뜻도 담겨져 잇습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던 동방박사 카스파르(Caspar), 멜키오르(Melchior), 발타자르(Balthasar)처럼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온전히 예배(헌신)하겠다는 다짐이지요.
그래서 ‘C.M.B 2026’를 내걸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면, 동방 그리스도교, 정교회의 ‘주현절’은 ‘세례’를 중요시 여깁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실 때,
바로 그 때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스도’로,
하늘의 공인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시각적 이미지인데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내려, 예수님 위에 머무심(abide)으로 공인을 받으십니다.
또 하나는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청각적 이미지인데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는 하늘의 소리로
공인을 받으십니다.
(새)마3: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①(시각적 이미지)그 때에 하늘이 열렸다. 그는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같이 내려와 자기 위에 오는 것을 보셨다.
3:17 ②(청각적 이미지)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하였다.
그래서 세계의 모든 교회가 주현절이 되면
‘세례주일’로 기념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같이 내려와
우리 안에 머물게 된 성령 세례를 기억하고, 감사하자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이 3차전도 여행을 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2차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잠시 머문 에베소 교회를
바울이 다시 방문합니다.
그 때 아볼로에게 성경(율법과 예언서)을 배우고, 유대교로 개종한 경건한 헬라인들이 사도 바울의 소문을 듣고 일부러 찾아옵니다.
(새)행19:1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는 동안에,
바울은 높은 지역들(갈라디아 지방과 부르기아 지방)을 거쳐서, 에베소에 이르렀다. 거기서 그는 몇몇 제자를 만나서,
여기서 바울이 만난 ‘몇몇 제자’란?
아볼로처럼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경건한 삶을 보고,
그들의 높은 도덕성과 거룩한 삶을 따랐던 헬라인들을 말합니다.
유대교로 개종한 헬라인들이지요.
이들에 대한 기록이 처음 등장한 것은 사도행전13장 43절입니다.
(새)행13:43 회중이 흩어진 뒤에도, 유대 사람들과 ‘경건한 개종자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많이 따랐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에게 말을 걸면서, 늘 하나님의 은혜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경건한 개종자들’이 바로 사도행전 19장 1절에 나오는 ‘몇몇 제자’입니다.
바울은 그들을 만날 때 마다 틈틈이 이런 권면을 했습니다.
‘늘(항상) 하나님의 은혜에 머물러 있으라.’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그들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볼로의 가르침처럼
‘율법을 더욱 열심히 공부하라’는 것인지,
‘율법의 계명을 더욱 힘써 지키라’는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에베소에 머문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유대교로 개종한 ‘몇몇 제자’가 한 걸음에 찾아 간 것입니다.
‘늘(항상) 하나님의 은혜에 머물러 있으라.’ 할 때
‘하나님의 은혜’의 실체를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는 것이지요.
그렇게 며칠을 보내지요.
그런데 이상한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라는 주제는 같은데, 그 은혜의 실체가 서로 다른 것입니다.
우선 유대교로 개종한 몇몇 제자는 ‘하나님의 은혜’ 율법 안에서 찾으려 했습니다.
어떤 율법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은혜’일까?
어떤 율법의 실천이 ‘하나님의 은혜’일까?
반면, 바울은요?
‘하나님의 은혜’를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것(엔 크리스토)’으로 가르쳤지요. 그러니 같은 주제를 놓고,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먼저 깨달은 것은 바울이었습니다.
지금 그들의 믿음에(열심에)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바울은 즉각 문제의 본질을 찾아 이렇게 묻습니다.
(새)행19:2a "여러분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하고 물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주제에 있어
‘성령’은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신앙의 주제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답합니다.
(새)행19:2b 그들은 "우리는 성령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바울은 그 즉시 ‘물세례’ 함께 받아야할 ‘성령세례’를 아주 친절하게 가르쳐 줍니다.
(새)행19:3 바울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여러분은 무슨 세례를 받았습니까?" 그들이 "요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고 대답하니
19:4 바울이 말하였다. "요한은 백성들에게 자기 뒤에 오시는 이 곧 예수를 믿으라고 말하면서, 회개의 세례를 주었습니다."
19:5 이 말을 듣고,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19:6 그리고 바울이 그들에게 손을 얹으니, 성령이 그들에게 내리셨다. 그래서 그들은 방언으로 말하고 예언을 했는데,
19:7 모두 열두 사람쯤 되었다.
말씀을 마칩니다.
유럽의 여러 도시들을 순례할 때, 유서 깊은 교회를 찾습니다.
그 때 순례 객들은 웅장한 교회 건물에 모든 시선을 빼앗기지요.
하지만 교회 건물만큼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교회 입구나 그 중심의 놓인, 팔각형 형태의 세례반洗禮盤입니다.
그만큼 유럽의 교회가
회개의 물세례와
하나님의 영이 머무는 성령세례를 중시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장정교회가 그 전통을 있는 세례반洗禮盤과 같은 교회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회개의 물세례와
하나님의 영이 머무는 성령세례가
살아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래서 어느 누가 우리 교회에 들어와도
‘이곳이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는 교회’라는 감화와 감동이 있는 교회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유혹의 시대, 말세의 시대 이런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밥티자투스 숨’
‘나는 세례 받았다’
‘나는 하나님의 영이 머무는 성령 세례를 받았다’
‘나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이다.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신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