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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입 : 명절 복된 가정
오늘은 우리나라 전통명절인 설명절입니다. 온 가족들이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저도 젊었을 때 명절날 고향으로 내려가면 평소에 한 두시간에 갈 수 있는 거리를 다섯 시간, 여섯 시간이 걸려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고향산천에 가는 길이요, 부모님이 계시고 또 형제자매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어릴적 친구들도 만나고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이런 명절이나 중요한 일에는 항상 가족단위로 모입니다. 가정이 중요합니다. 성경에는 가정을 아주 귀중하여 여깁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가정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아담과 하와를 만드셔서 가정을 사회 기관으로서 가정을 제일 먼저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가정을 통해서 복을 주십니다. 가정을 통해서 기업을 주시고 가정을 통해서 자손들에게 복을 주시고 가정을 통해서 행복을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가 가정을 통해서 전파됩니다. 가족 중에 먼저 믿은 사람이 가족들에게 전도하여 온 가족이 예수를 믿기도 합니다. 그리고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면 어릴적부터 믿음생활을 해서 신실한 성도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가정이 형성되려면 부부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처럼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그 가정은 하나님이 정하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가정이며 주님이 만들어 주신 가정에서 우리는 행복과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 읽은 이 성경 말씀을 보니 예수님이 갈릴리를 떠나 유대로 갔는데 그곳에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그 질문 내용이 어떤 이유로 여자를 버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즉 갈라설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것은 물을 때 좋은 의도로 물은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아주 정확하게 대답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으로 은혜를 받기 원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정하여 주신 부부
옛말에 천생연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이 정해준 연분이라는 뜻입니다. 그 말을 성경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부부라는 뜻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공생애 때에 주님이 갈릴리를 떠나 유대로 갔습니다.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에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싫어했습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시기하고 싫어하여 시험하기 위하여 질문을 하였습니다. 3절 말씀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보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리니까?’라고 했습니다. 아내와 헤어지는 것으로 표현하지 않고 아내를 버리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 시대에만 해도 남성중심의 시대였습니다. 여자는 숫자에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슨 연고가 있으면 아내를 내버려도 되는가? 즉 이혼해도 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4절에 예수님이 이렇게 대답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어서 그 코에 생명을 불어넣어 살아 있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영혼과 육체가 있습니다. 우리 영혼은 죽어서 천국에 간다면 육체는 죽으면 땅에 흙으로 돌아갑니다.
아담을 지으신 후에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서 하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아담이 깊이 잠들었을 때에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아담이 깊이 잠들고 아프지 않게 갈빗대를 취하여 하와를 만든 것을 보고 처음 마취제를 발명한 사람이 이 성경을 보고 마취제를 발명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수술할 때 아프지 않고 깊이 잠들었을 때 수술을 합니다.
하나님이 하와를 만들어 아담의 배필로 주셨습니다. 아담이 말하기를 [이는 내 뼈중에 뼈 요 살 중의 살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나의 살이요 나의 뼈와 같은 존재입니다.
5절에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라고 했습니다. 청년이 되면 부모를 떠나 아내와 남편을 만나서 부부가 됩니다. 그리고 그 부부는 한 몸이 됩니다. 한 몸이 된다는 것은 육체적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부부는 하나입니다. 모든 것에 하나가 되어 살아갑니다. 물론 조금씩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부부는 하나입니다. 그래서 일평생 주 안에서 복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갑니다.
젊은이는 부모를 떠나 아내와 남편을 만나야 됩니다. 독립을 해야 됩니다.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 청년이 되었는데도 부모를 의지하고 그러면 안 됩니다. 오히려 부모님을 모시고 공경하고 효도를 해야 합니다. 부모를 떠나 부부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부부가 되면 부모에게서 독립이 되는 것입니다. 결혼을 해도 독립을 하지 못하고 늘 부모에게 예속되어 살아가면 안 됩니다. 자녀를 낳아 기르고 교육을 시키고 직장과 사업에도 스스로 해나가야 합니다.
6절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부부는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가정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나누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고대사회나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합니다. 물론 큰 이유가 있겠죠. 사람이 생각으로 한계를 넘어선 문제가 파도가 다가오면 견디지 못하고 이혼을 합니다. 그러나 원래는 이혼을 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약하고 죄가 많고 그렇기 때문에 이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이 하신 말씀처럼 원래 하나님의 뜻은 이혼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것을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성도는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서로 수고와 섬김으로 헌신해야 합니다. 히브리어로 결혼이라는 말은 ‘키두신’이라는 말인데 그 뜻은 ‘봉헌’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 봉헌하듯이 우리는 부부에게 서로 헌신해야 되는 것입니다. 서로에게 완전히 헌신된 사람입니다. 아내와 남편을 위해 온전히 헌신된 사람입니다 그러니 서로 섬김과 헌신으로 사랑으로 살아갈 때 부부는 행복을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아멘
둘째, 사람이 완악함으로 생기는 일들
이 말을 들은 바리새인들이 이어서 질문을 했습니다.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 24:1을 인용한 구절입니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어떤 사람이 결혼을 했는데 첫날밤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보니 여자가 첫 경험이 아닌 것입니다. 이 말은 다른 남자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남자가 생각할 때 이는 부끄러운 일이라 여기고 여자를 보내면 이혼이 되는 것입니다. 즉 여자가 수치스러운 일을 한 것입니다. 남자가 참고 살면 괜찮을 것이나 그렇게 못하겠다고 하면 여자를 돌려보낼 수 있습니다.
여자를 돌려보낼 때에는 이혼증서를 써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여자가 재혼이라도 해서 새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일 이혼 증서를 주지 않고 보내면 이 여자는 혼자 살면서 재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 시대에는 그랬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이렇게 법에 맞게 배려하기 위하여 명한 것인데 사람들이 이것을 도용했습니다.
즉 남자들이 자기 욕심을 따라 이혼을 하고 싶을 때 핑계를 대서 여자를 보내버리고 이혼 증서를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젊은 여자를 데리고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8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마음이 완악하고 죄가 많기 때문에 모세가 그렇게라도 명을 한 것이지 원래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화) 샴마이 학파와 힐렐 학파의 이혼 견해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인 중에 샴마이 학파가 있었고 힐렐 학파가 있었습니다. 샴아이 학파는 보수주의이고 힐렐 학파는 자유진보주의입니다. 샴마이 학파는 이 이혼에 대한 견해가 이러했습니다. 만일 여자가 간음을 행하면 이혼을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원래 간음을 행하면 모세의 율법에 돌로 쳐서 죽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혼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런데 힐렐학파는 꼭 간음이 아니더라고 여러 가지 이유로 이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음식이 상하여도 이혼을 해도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니까 여자가 불성실하면 내보내도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두 학파간 싸움이 늘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시험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이유로 이혼을 해도 된다고 하면 샴마이 학파가 가만 안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것을 깬다고 비판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혼을 하지 말라고 하면 힐렐 학파가 공격을 할 것입니다. 그들의 전통에는 여자가 불성실하고 남자가 참지 못하면 이혼을 해도 되는데 못 하게 하니 논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당시 해롯 왕이 자신의 아내를 버리고 동생의 여자를 취하여 살았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이것이 온당치 않다고 했다가 목이 날아갔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권력 앞에 위험하게 두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것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아주 성경적이고 하나님 아버지 뜻에 합당하게 답을 말씀해주셨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음행한 연고 외에 이혼을 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정의 문제가 이 문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 문제가 제일 큽니다. 만일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면 살 수 있겠습니까? 살기 힘듭니다. 그냥 잠깐 지나가는 것이면 모르겠으나 만일 진짜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잠자리를 하고 다니며 문제를 일으키면 그것을 알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됩니다. 분노가 하늘을 치솟기 때문에 살 수가 없어요.
물론 남편이 술만 먹으면 아내를 폭행하고 또 못 살게 하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럴 때에는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조치를 해야 되겠죠. 이혼 한 사람이 무조건 죄인은 아닙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이왕 이혼을 했으면 이제 돌이킬 수도 없는데 새롭게 행복하게 잘 살아야지 모든 희망을 잃어버리고 인생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성경으로 돌아가서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 이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은 자기 욕심을 위해서 이혼을 정당화 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들이 신학적 핑계를 대서 마음에 안 드는 여자를 버리고 젊은 여자를 데리고 사는데 합당한 이유를 붙이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의 완악함 때문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완악하다고 한 것은 ‘거칠고 완고하고 잔인하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우리는 그런 일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신앙으로 주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여 서로 사랑하고 희생하고 섬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 갈수록 사람은 약해지고 병이 생기고 문제가 많이 생깁니다. 그럴수록 더욱 사랑으로 이해하고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이렇게 성경원칙대로 엄격하게 말씀하시니까 제자들이 하는 말이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은 것이 좋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즉 독신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타고난 자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사람도 있고 사람이 만든 경우도 있다고 했습니다. 옛날 같으면 왕궁의 내시들은 사람이 만들어 그렇게 되어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독신이 되는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받을 사람만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바울처럼 천국 복음전도를 위해서 그는 스스로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온 세계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로마에서 순교를 하였습니다.
예화) 이수정-한국교회의 선구자
우리나라 복음이 들어오는데 큰 역할을 한 사람 중에 이수정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한국에 오도록 요청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원래 이수정은 고종 때 궁에서 일하였습니다. 1882년 임오군란 때 수구파들이 개혁파들을 치려할 때에 민비도 죽이려 했습니다. 그래서 그 때 이수정이 지게에 명성황후를 업고 피신하여 살았습니다. 고종이 이를 귀하여 여겨서 그에게 보상해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때 이수정은 고종에게 일본으로 가는 일본신사유람단에 동참하여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그곳에서 일본의 농업과 기술을 배우고 한국에 보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다가 그곳에서 일본 츠다켄 목사와 미국 선교사 루미스를 만나서 신앙의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동경외국어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습니다. 뿐만아니라 루미스 선교사와 함께 한국어 성경 번역을 했습니다. 마가복음을 제일 먼저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 편지를 보내어 조선에 선교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가 미국 기독교 주간지에 그의 편지를 보내어 언더우드 선교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한국에 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수정의 편지는 일반 기독교 주간지인 <The Illustrated Christian Week>의 1월호(1884년 1월 26일 발행)와 선교잡지 <Missionary Review>의 3월호에 게재되었고 이글을 보고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오게 됩니다.
다른 나라에 해외선교사로 가려고 했던 장로교 언더우드가 이 편지를 보고 조선으로 가려고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 역시 조선에 오게 됩니다. 그들이 일본을 거쳐서 조선에 오려고 할 때 조선에 1883년 갑신정변이 일어나서 두 달간 일본 요코하마 해변 교회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그 때 이수정이 그들에게 한글 교사가 되어 한글과 조선의 문화를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조선어로 번역된 마가복음 성경을 그들 선교사에게 전달했습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이수정의 요청으로 조선에 선교사로 왔을 뿐 아니라 조선에 들어오기 전에 조선어와 문화를 배우고 또 조선어로 된 성경을 받게 들어왔습니다. 이듬해 1884년 4월 부활절 아침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두 선교사가 인천 부두에서 동시에 발을 내딛게 됩니다. 그리고 조선에 이처럼 교회를 뿌리 내리게 했습니다. 이수정은 농업이나 기술을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선에 필요한 것은 복음과 생명이었고 그 위에 조선이 발전하기를 기원했습니다.
그는 조선 조정의 부름을 받고 1886년 귀국하여 수구파에 의해 순교를 당했습니다. 정치적 이유도 있었지만 반기독교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 결국 이수정의 행보를 보고 그를 참수한 것입니다. 이수정은 4년의 짧은 기독교 생활과 활동에서 조선에 엄청난 기여를 한 것입니다. 그는 조선 기독교의 선구자였습니다. 그의 동생이 조선에서 일본으로 건너와서 수업이 요청했습니다. 조선에 들어와서 출세하고 편안하게 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의 복음을 선택했습니다. 주님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신의 짧은 생애를 온전히 바쳤습니다.
결론) 오직 주님의 나라를 위한 가정
우리는 가정도 주님의 나라를 위해 복된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 가정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가정은 하나님이 정해준 복된 기관입니다.
또한 우리는 이 가정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이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사람들처럼 우리는 가정을 소흘이 하거나 또 가정의 일을 함부로 결정해서는 안 됩니다. 가정을 통해서라도 오직 주님의 영광을 찾아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