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책자로 나왔던 고재봉 수기를 예전에 타이핑해 두었던 글 입니다.
아! 내가 예수를 일찍 알았더라면....
이 글은 안국선 목사님의 「내가 본 고재봉」 간증수기를 문서 전도에 맞게 편집, 제작한 것입니다.
프롤로그
․사건개요
가을의 향취도 그윽한 1963년 10월 19일 강원도에 주둔하고 있던 육군 301병기 대대장 이득주(36)중령과 그의 부인 김재옥(36) 맏딸 경숙(9), 2남 용(3), 식모 조옥이(16) 이렇게 한 식구 5명이 인제군 남면 어론리 마을 자택에서 정체 모를 흉악범이 휘두른 도끼에 찍혀 무참히 숨졌다는 이날의 신문보도에 세인의 놀라움은 실로 충격적인 뉴스였다. 이 끔찍한 피살현장을 맨 먼저 목격한 사람은 이득주 중령의 운정병 홍춘길이었다. 이날 아침에도 언제나 다름없이 홍춘길은 대장의 출근을 맞으려고 지프를 몰고 이중령 집 문앞에 당도하여 크랙션을 울렸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런 응답이 없자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안으로 들어섰다가 일가족 5명의 비참한 피살체를 발견했던 것이다.
․당시 군․경합동 수사활동
사건직후 군․경 합동 수사반이 편성되고 세밀한 조사가 진행되었다. 그러던 중 사건발생 약 1주일만에 홍천읍내 백금당 시계포 여주인 조씨의 신고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즉 25일 범인으로 보이는 군복을 입은 청년이 홍천군 서석면 풍암리에 잠입하여 장물인 다이아반지를 처분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군․경 수사대는 범인은 육군 제1109야전 공병단 소속 전과 도망병 고재봉(25) 상병으로 단정하고 전국에 지명수배했다.
이리하여 사건발생 24일만인 11월 12일 하오 6시경, 훔친 자전거를 타고 빵모자를 깊숙히 눌러 쓰고 종로구 예지동 249 동홍백화점 앞길을 달리고 있을 때 김복수(20)라는 땅콩장수가 발견, 급히 경찰에 연락하는 한편 범인을 미행하다가 달려온 경찰과 합세하여 노상에서 격투 끝에 붙잡았다. 그는 체포된 직후 기자들에게 원한이 있는 전 대대장 박모 중령인줄 잘못 알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군사재판 결과
이해 12월 상오 11시 육군 보통군법회의 첫공판이 필동에 있던 군재제 1호 법정에서 열렸다. 그리고 이달 19일에 선고공판이 열렸는데 고에 대한 강도살인, 상관살해등 피고사건의 심리를 종결한 관여 검찰과 유택형 소령은 고재봉에게 「아무런 잘못도 없는 철모르는 어린아이까지 몰살한 극악범 죄에는 추호의 동정도 있을 수 없다.」고 논고한 후 사형을 구형하였다.
「발췌. 광복오십년사 한국방송인동우회발행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