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에 얽힌 추억
이영애
이번 추석 연휴가 3일 이라 모두들 짧다고 하지만 나에겐 6일간의 긴 휴가 기간이다. 아는 언니가 괴산에서 담배 농사를 짓고 있는데 담배잎을 쪄서 말려 간추리는 작업으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며 산에 도토리가 늘렸지만 일손이 없어 갈수 없다는 연락을 받고 연휴기간 하루 시간 내어 청정 지역 괴산으로 가기위해 친한 사람 셋이 모였다. 각자 준비한 간식은 고구마를 찌고 대학 찰옥수수가 처음 나와 부드러울때 삶아 냉동실에 얼린것을 다시 삶고 쑥개떡도 준비하고 사과, 배 ,물과 함께 베낭에 담았는데 옆집 언니는 주먹밥을 만들었다면서 가져왔다. 깨소금과 참기름 각종 야채를 다져넣고 뭉처 호일에 하나 하나 싸온 주먹밥은 옛날 6,25 전쟁때 피난 가면서 먹었다던 주먹밥을 보진 못했지만 아마 이런게 아니었을까 연상해본다.
깊은 산골에 들어서는 순간 내 앞으로 지나가는 뱀 한마리가 눈에 띄었다. 어릴때 보고 오랜만에 직접 보게 되었는데 소스라치게 놀라 나도 모르게 "아~악~~! 하고 괴성을 지르는 바람에 옆 사람들도 모두 놀라 저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주춤하며 몇발짝 뒤로 물러서서 봐라보니 개구리 한마리가 뱀에게 쫒기며 심하게 숨을 몰아쉬는듯 다급하게 폴짝 폴짝 뛰면서 이리 저리 피해 가고 있다. 쫓기는 자와 쫓는자! 한생명이 위태롭기 그지없어 보고 있자니 안타깝기만 하다.
인적이 없는 산이라 그런지 산짐승의 변이 여러곳에 늘려 있고 이름모를 산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먼산에 울려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 오는것 같다. 때 늦은 한낮의 열기에 마지막 매미의 울음 소리도 합창을 하며 애달프게 목마름을 더하가고 다람쥐와 청솔모가 숲속을 오가며 가지 타기를 하고 묘기를 부린다. 시내에서 한시간 정도 외곽으로 들어가니 마치 동물의 왕국에 온것같다.
산속에는 그야말로 한 여름에 농사를 지어 놓은 것처럼 도토리가 무수히 떨어져 있다. 남의 농사에 내가 수확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많아 양손으로 주어담기 시작 하는데 조그만 자루가 금세 넘쳐 베낭에 쏟아 붓기를 여러번 점점 부피가 커져가는 베낭을 바라보니 뿌듯한 마음에 부자가 된것같아 재미가 있어 흥이 나고 흥얼 흥얼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도토리 줍는 재미는 이렇게 좋은데 그동안 15년간 줍지 않았다. 옛날 설악산 공룡능선 등산을 하다 높은 산중에 손으로 쓸어 담을 정도로 많은 도토리를 보고 그냥 갈수가 없어 남편과 함께 줍기로 했다. 맨몸으로 가도 힘든 산에서 남편의 배낭속에 내 배낭의 짐을 몽땅 넣고 빈 베낭에 도토리를 잔뜩 주워담아 혼자 들기 힘들 정도까지 되었다.
바위돌 위에 올려 놓고 한사람이 뒤에서 밀어주면 둘러메고 일어서서 걷다가 무거우면 교대로 짊어지고 내려 오는데 등산객들이 힘들어 보이니까 어디로 이사 가느냐고 묻는데 설악산에서 오대산으로 이사 가냐고 묻는 바람에 웃음보가 터지도록 웃기도 했다. 어깨가 빠질듯 아프면서도 가을 설악산 단풍은 오색 물감을 쏟아 놓은듯 아름 다웠지만 무거운 도토리 베낭탓에 단풍을 제대로 감상도 못하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왔다. 괜한 욕심을 부린게 아닐까 생각도 들었지만 내가 직접 만든 도토리묵을 먹을수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위로를 하며 힘든것도 참았다.
문제는 그 다음 부터다. 도토리를 주워 오긴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동네 어르신 들에게 물어보고 방앗간에 갔다주니 25kg 이나 되었다. 껍질째 빵아 물에 불려 문질러야 하는데 아파트 긴 베란다에 고무대야 다섯개를 줄지어 놓고 거실에 걸터 앉아 하루 왼종일 녹말가루 내기 위해 물을 부어 씻어내기를 수없이 하니 허리는 끊어질 만큼 아파 비명이 나올 정도로 고통 스럽고 집안은 엉망이고 하얀 베란다의 홈에는 몽땅 밤색으로 물들어 지저분하기 까지 했다.
도토리 녹말을 가라 앉혀 완성되기 까지 일주일 정도 걸렸다. 녹말은 가라 앉히고 위에 뜨는 물은 따라내고 떫은맛을 우려내기 위해 찬물 채워 넣기를 수없이 해야 한다. 지금 중학생인 아들이 기어 다니던 애기일때 물을 너무 좋아해서 목욕대야에 물만 채워 놓으면 종일 시간 가는줄 모르고 철썩 거리며 잘 놀았다. 내가 다른일을 하고 있을때 애기 소리가 나지 않아 이상히 여기고 찾아 헤메는데 아뿔사 이럴수가 베란다 문을 잠깐 열어 놓은 틈을 타 우려 내는 도토리 다라속에 들어가 있는게 아닌가.
벌써 온몸과 얼굴에는 도토리 녹말로 뒤집어 쓰고 검은 물속에서 좋아라고 놀고 있다. 나를 보던 애기는 더욱 좋아서 두손으로 철썩 거리며 푸당 거리는데 울수도 없고 웃을수도 없는 지경이 되었다.애기는 뭐가 그리 좋은지 아무 사정도 모르고 온몸은 진흙팩이 아닌 도토리 녹말팩을 하고 베란다와 유리창은 온통 엉망 진창이 되어 버렸다.
다섯 대야중 한개는 그냥 버려야 했고 도토리만 보면 그때의 악몽 같은게 떠올라 잊을수 없는 추억으로 간직하고 절대로 다음 부터는 눈에 띄어도 줍지도 않을 뿐더러 그냥 사먹자고 생각 했는데~~~ 여자가 애기 낳을때 고통이 너무 심해서 하늘이 노랗게 변하고 죽었다 깨어나듯 힘들어 다시는 애기 안낳을 거라고 하지만 몇년 지나지 않아 까맣게 잊고 또 낳듯이 나 또한 15년이 지난 올해 또 도토리를 주워 왔으니 설마 이제는 다큰 아들녀석 도토리 녹말물 속에 들어갈 일은 없겠지.
2008. 9. 19 |
첫댓글 여자가 애기 낳을때 고통이 너무 심해서 하늘이 노랗게 변하고 죽었다 깨어나듯 힘들어 다시는
애기 안낳을 거라고 하지만 몇년 지나지 않아 까맣게 잊고 또 낳듯이
나 또한 15년이 지난 올해 또 도토리를 주워 왔으니
설마 이제는 다큰 아들녀석 도토리 녹말물 속에 들어갈 일은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