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내음이 풍요로운 절집다운 절집, '연화산 옥천사(蓮華山 玉泉寺)' 경남 고성군 개천면 북평리 408 / 055-672-0100
공양미는 사람의 욕심으로 버려지고, 약수는 어리석은 욕심으로 말라버렸습니다. 그러나 맑은 물은 그대로 남아 절집을 찾는 이들의 감로수가 되었습니다. 풍경보다 더 자연스러운 절집, 옥천사를 찾았습니다.
옛 옥천사에서는 약수가 아닌 쌀이 나왔다고 합니다. 매일매일 먹을 수 있을 만큼의 쌀이 나오던 도량으로 수행정진에만 매달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양의 쌀을 얻고자 바위를 부수었고, 결국 공양미는 사라지고 약수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약수는 효험이 있어 병자들을 치료할 수 있다는 소문에 이번에는 중생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시고, 퍼 가다가 급기야는 목욕까지 하게 됩니다. 이 후 더 이상의 신비로운 효험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남은 약수는 물맛이 좋아 ‘대한민국 10대 명수’로 자리 잡아 옥천사를 찾는 사람들에게 시원함을 더해줍니다. “죽을 때 입는 옷에는 주머니가 없다.” ‘옥천玉泉’, 단순한 감로수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알고 물 한 모금 시원스레 들이켜 보는 것도 좋을 일입니다. 인간사의 어리석은 욕심이 부질없음을 알려주는 약수가 자리한 경남 고성의 천년고찰, 옥천사입니다.
경상남도 고성군은 위로는 마산시와 진주시, 아래로는 거제시와 통영시입니다, ‘시市’에 둘러쌓인 ‘군郡’입니다. 그만큼 인적이 드물고 너른 평야가 많은 땅입니다. 그러나 비옥한 토지를 가졌기에 늙었으나 병든 이 없고, 부자 없으나 굶주리는 이 없는 행복한 땅입니다. 연화산 자락의 절집, 옥천사는 그러한 비옥한 땅에 자리 한 이유로 오래된 전각들이지만 병들지 않았고, 대찰은 아니지만 고고한 천년고찰의 면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유구함이 베어나는 대웅전과 명부전의 나무의 빛을 만나보고 나면 ‘과연, 절집다운 절집’이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통영진주간 고속도로 연화산 나들목을 빠져 나와 국도에 오릅니다. 텅 빈길, 오가는 차량도, 인적도 드문 고장입니다. 그러나 한 낮의 햇살은 벌써 봄, 고성의 들녘에는 벌써 봄은 찾아 왔습니다. 푸릇한 빛을 가진 전답과 길가에 노랗게 핀 개나리들이 봄의 향연을 펼치고 있습니다. 봄바람을 맞이하며 달리던 길은 절집이 자리한 마을에 들어서면서 부쩍 좁아집니다. 그리고 일주문, 조금 더 올라 옥천사 부도밭, 한창 보수중인 사천왕문을 지나 극락교를 건너면 절집의 마당에 닿게 됩니다. 오르는 동안의 시원스런 숲길에서 진한 나무향이 베입니다. 걸으면 더욱 싱그러운 삼림욕을 즐길 수 있을 것만 같은 길입니다. 걷기에 제약이 있다면 창문이라도 활짝 열고 옥천사를 오르십시오. 아직까지 이파리 하나 달리지 않은 마른 장작과도 같은 나무들이 즐비하지만, 그 속에서도 나무의 향들은 그대로입니다. 정확히 숲의 향기가 그대로 베입니다. 가슴을 훑고, 머리를 식혀주는 최고의 자연림이 절집으로 들어가는 동안 길게 이어집니다. 싹이 나고 무성한 푸른 잎이 되는 여름이 되면 그 어느 곳에서 만나 볼 수 없는 시원한 풍경을 연출 해 줄 것만 같습니다.
‘연화산 옥천사(蓮華山 玉泉寺)’, 문무왕16년(676년)에 의상대사가 중국에서 돌아 와 ‘화엄십찰(華嚴十刹)’을 세워 화엄을 알리면서 창건 된 절집입니다. 여느 절집들의 설화 내지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창건과는 달리 그 연혁이 비교적 정확히 기술되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쌍계사의 ‘진감국사비(眞鑑國師碑)’, 고운 최치원선생의 ‘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의 기록에도 옥천사의 창건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신라 효공왕1년(898년)에 최대 규모의 중창을 이루었고, 고려시대에 들어서 중창을 거듭하다가 고종23년(1236년)에 옥천사 보융스님이 교증(敎證)이 되어 대장경 판각불사를 하게 되면서 중창 불사가 이어집니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 배불정책으로 인하여 쇠퇴의 길을 걷다가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타 사라지게 됩니다. 이 후 인조17년(1639년) 터만 남은 절터에 다시 불사를 이루어 영조대에 들어서는 산내암자를 둘 정도의 절 규모를 갖추게 됩니다. 그 사이에 많은 전각들이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정조24년(1800년)에 들어서 나라에 종이를 바쳐야 하는 진상(進上)사찰로 지정이 되자 스님들은 수행을 하지 못하고 사역(寺役)에만 매달리다 급기야는 부역을 이기지 못하여 승려들이 도망을 가기에 이르면서 절집의 사세가 급격히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던 1890년, 동학농민운동으로 거의 모든 전각들이 불에 타 전소 되었고, 이 후 1895년 명부전과 나한전을, 1897년에 칠성각, 독성각, 산신각을 중건하며 중창을 거듭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옥천사 부도
절집의 마당에 들어서면 가장 근래에 세워진 2층 규모의 ‘유물전시관’을 만나게 됩니다. 성보문화재들을 보관, 전시하는 공간으로 옥천사의 내력과 불교의 의미등을 알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입니다. 그 옆의 작은 언덕을 따라 오르면 너른 마당, 절집의 앞마당입니다. 직사각형의 너른 마당의 끄트머리에 ‘범종각’이 서고 그 앞으로 수령 130년생의 청매, 겹홍매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로 ‘자방루(滋芳樓)’입니다. 정면7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으로 옥천사 내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전각입니다. 자방루에 걸린 주련들과 단청의 빛, 나무의 색들이 옥천사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합니다. 너른 마당과는 달리 경내에 들어서면 아주 복잡해집니다. 건물의 수도 많거니와 전각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풍경입니다. 더하여 모든 전각들이 팔작지붕을 하고 나름의 옛 방식을 고집하고 있어 공간은 보고 있는 것보다 더 좁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잘 정돈되어 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중심 전각인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로 팔상전과 옥천각, 우로 명부전과 칠성각, 뒤로는 조사전과 나한전이 에워싸고 있습니다. 대웅전의 작은 앞마당의 좌우로는 심검당과 적묵당이 자리 하고 정면으로 자방루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절집의 향보다, 더욱 짙은 나무의 빛, 향. 그러한 자연스러움이 가득한 절집이 옥천사입니다. 절집은 자연이 되고, 자연은 그 절집을 품어 안아 주고 있습니다. 오밀조밀 모아 놓은 전각들은 우리네 눈에야 복잡스런 인공의 건물일 터, 그러나 자연이라는 큰 틀에서 바라본다면 연꽃의 씨악처럼 보일겝니다. 마음까지 상쾌지는 숲, 기분까지 적셔주는 맑은 물, 그리고 나무의 결, 무늬, 내음이 그대로 살아있는 절집, 옥천사입니다.
옥천사 천왕문
옥천사 극락교
유물전시관이자, 성보박물관
1층과 2층 전시관
옥천사 범종각 그 뒤로 수령 130년생의 청매, 홍매가 자라고 있습니다.
옥천사 자방루 자방루에 걸린 주련은 조선말 '김성근(金聲根, 1835~1919)'의 글씨입니다.
圓覺山中生一樹 (원각산중생일수), 開化天地未分前(개화천지미분전) 非靑非白易非黑(비처비백역비흑), 不在春風不在天(부재춘풍부재천) 三界猶如汲井輪(삼계유여급정륜), 百天萬劫歷微塵(백천만겁역미진) 此身不向今生度(차신불향금생도), 更待何生度此身(갱대하생도차신) 원각산 가운데 한그루 나무가 났으니, 천기가 나뉘기 전에 꽃이 피었네. 푸르지도 희지도 또한 검지도 않으니, 봄바람에 있지도 하늘에 있지도 않도다. 삼계는 마치 우물의 두레박 같아서, 백천마겁이 미진토록 지났도다. 이 몸이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생에 제도하리요.
옥천사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진 돌두꺼비, 그 아래 작은 돼지저금통이 앙증 맞습니다.
옥천사 대웅전(大雄殿)
팔상전
옥천사 옥천각
옥천사 명부전(冥府殿)
칠성각
옥천사 나한전(羅漢殿)
조사전
적묵당
심검당
자방루
연화옥천(蓮華玉泉)
자방루
글,사진 박성환 |
출처: 길손의 旅行自由 원문보기 글쓴이: 길손旅客
첫댓글 옥천사 의 여행을 아침부터 다녀올수있게 하여주심에 무한한 감사를 드림니다
매일 매일 먹을수 있는 양식을 주심에 우리 인간들의 욕심에 한꺼번에 많은 량의 쌀을구하려다 모든 것을 잃게된 좋은사연 정말 감명깊게 읽고 갑니다.
옥천사의 성수 또한 우리들에게 욕심을주셨군요
우리 인간들이 모든 욕심을 버리도록 교훈을 주심에 너무 감사드림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한 봄날 되시길 바랍니다.^^
죽을때 입는 옷에는 주머니가 없다.......한 깨달음 하고 갑니다.....
역시..득도하셨군요.^^
득도만 하면 뭐합니까??.....실천이 안되는데요....ㅋㅋㅋㅋ
실천까지 하시면 안되지 말임돠!
제가 명망있는 큰스님들을 별로 안좋아하는데요. 그 이유중에 하나가 자신의 답을 찾기 위해 가족들이 가슴에 못질을 한다는 것이지 말임돠! 그것 역시 자기만의 욕심이쥐 말임돠!
특히 법정스님같은분 말임돠! 끝내 가족이 박살나고 죄다 머리깍고 산으로 들어갔쥐 말임돠! 아주 마음에 안드는 양반임돠!
그걸 그냥 편하게 업 이라고 부릅디다.....
그럼 저도계속 실천 안할랍니다....ㅋㅋㅋ
먼길 다녀오심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좋은절집을 다녀오심에 수고하셨습니다
옥천사 물이유명한 절집이지요 물맛이 최고라고 하여 먹은적이있습니다
좋으신글과 사진 그리고 주변풍경을 감사하게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네, 물맛 참 시원하고 좋았습니다.
빈병에 받아 여행 하면서 마셨습니다. 옥천사, 생각했던 것보다 더 고즈넉한 절집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