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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복음 1,1-18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ᆢ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1,1.14)
"여러분이 ᆢ 진리를 알기 때문입니다."(1요한1,21)
오늘 복음은 성탄 낮미사 복음과 같아 묵상을 쓴지 얼마되지 않아 두 이야기로 성탄의 신비를 묵상할까 합니다.
이야기 하나,
"진리가 무엇인지 말해 주세요! 야곱!"
어떤 사람이 물었어요.
"말로 진리를 표현하는 것은 자칫 거짓을 만들 수가 있게 됩니다."
야곱이 대답했어요.
"우리에게 기적을 보여줄 수 있나요. 야곱?"
그 말에 야곱은 이렇게 대답했어요.
"기적이란 대개 보통일을 특별한 방법으로 보려는 소원이예요."
"어떻게 하면 더 가질 수 있을까요?"
야곱이 대답했지요.
"숨을 들이마시는 유일한 방법은 숨을 내쉬는 것입니다.
(더 가지려면 내어놓아야 하고)
더 크게 되려면 기꺼이 작아져야 합니다."
성탄의 신비를 잘 바라보도록 도와주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이야기 둘,
옛날에 어질고 현명한 왕이 있었다. 연일 국정에 몰두하던 왕이 모처럼 짬을 내 신하들과 함께 사냥을 떠났다.
아침 일찍 떠났다가 저녁에 환국할 요량이었는데, 사냥에 심취한 나머지 미처 해가 기우는 것을 알지 못했다.
왕과 일행은 날이 너무 어두워 궁궐까지 돌아갈 수가 없었다.
충직한 신하들은애가 탔다. 왕이 말했다. "저기, 저 민가에서 하루 묵도록 하자." 신하들은 펄쩍 뛰며 두 팔을 내저었다
어떻게전하께서 누추한 여염집에 들 수가 있겠느냐며, 밤길을 재축해서라도 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그때 왕이 말했다. "내가 저 집에 들어가면, 내가 백성이 되겠느냐 아니면 저 집이 궁궐이 되겠느냐?"
말씀이 내 안에도 오셨나요?
오늘 어떤 말씀을 마음에 품고 하루를 시작하시(하셨)나요?
한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은 시간을 내셔서 주님 앞에서 한해를 마무리하시면 좋겠습니다.
평소처럼 성령을 간구하고 먼저 지난 1년을 되돌아 볼 때
부족했다고 느끼는 면에 대해 자비를 구합니다.
그다음에는 감사를 드리는 시간을 가지고 특히 새 한해를 주심에 감사드리면서 새로운 각오, 결심을 드리고 주님의 강복을 청하면 좋겠습니다.
(천 사비나 수녀님)
12월31일 [성탄 8일 축제 제7일]
요한 1,1-18
2025년, 당신은 빛이었습니까, 등불이었습니까?
찬미 예수님!
어느덧 2025년의 마지막 날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오늘, 저는 여러분께 냄새나는 생선 이야기로 강론을 시작해 볼까 합니다.
중국 역사상 최초로 천하를 통일했던 진시황은 자신을 인간을 넘어선 신, 곧 영원히 지지 않는
태양이라 믿었습니다.
그는 죽음을 거부하며 불로초를 찾았고, 자신의 무덤 지하에 수은으로 강과 바다를 만들고 천장의 별자리를 보석으로 박아 영원한 빛의 제국을 건설하려 했습니다.
스스로 빛이 되려 했던 욕망의 끝판왕이었지요.
그의 최후는 어땠을까요?
그는 순행 중에 객사했습니다.
한여름이라 시신은 금방 부패하여 악취가 진동했습니다.
환관 조고는 황제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시신이 실린 수레 앞뒤에 절인 생선, 즉 썩은 생선을 가득 실어 시체 썩는 냄새를 생선 비린내로 덮어야 했습니다.
영원히 빛나려 했던 신의 육신은 썩은 생선 더미 속에 숨겨져 옮겨졌습니다.
이와 비슷한 인물이 성경에도 나옵니다.
사도행전 12장의 헤로데 아그리파 1세입니다.
어느 날 그가 은으로 짠 눈부신 옷을 입고 연설하자, 아침 햇살을 받아 옷이 번쩍였고 아첨꾼들은 소리쳤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라 신의 목소리다!"
헤로데는 이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지 않고, 마치 자신이 진짜 빛인 양 으스대며 즐겼습니다.
그 즉시 주님의 천사가 그를 쳤고, 그는 구더기들에게 먹혀 비참하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스스로 신이 되려던 몸은 가장 하찮은 벌레의 밥이 되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인간은, 그리고 모든 피조물은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가 아니라 빛을 받아 반사하는 '반사체'로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전구가 필라멘트를 태워 스스로 빛이 되려 하면 결국 끊어지고 타버립니다.
마지막에 웃으려면, 내가 빛이 되는 것이 아니라 빛이신 분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요한 세례자는 이 진리를 가장 명확하게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요한에게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그를 메시아로 착각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요한은 시대의 등불 행세를 하며 영광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선을 긋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나는 그 빛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 즉 형체 없는 도구로 낮추고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며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그가 스스로 빛이 되기를 거부했기에, 예수님은 그를 "여자가 낳은 이들 중에 가장 큰 인물"이라며 진짜 별처럼 높여주셨습니다.
만들어진 존재가 좋은 마지막을 맞이하려면, 만드신 분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전하는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영화 '아폴로 13'의 실화를 기억하십니까?
우주선 고장으로 궤도를 잃은 아폴로 13호의 비행사들은 지구로 돌아오는 길을 찾기 위해 창밖의 별자리를 봐야 했습니다.
그런데 우주선 안에서 켜둔 계기판 불빛들과 떠다니는 잔해들이 반짝거려 밖의 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살기 위해, 길을 찾기 위해 우주선의 모든 전원을 껐습니다.
내부가 춥고 캄캄해지자, 비로소 창밖으로 그들을 인도할 진짜 별들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내 빛을 끌 때 별들이 보이고 갈 길이 보입니다.
지난 1년, 우리는 내가 이룬 성취, 내 자존심, 내 계획이라는 불빛을 너무 밝게 켜놓고 살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정작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의 별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닙니까?
오늘 밤, 나의 빛을 끄십시오.
그리고 먼저 참 빛을 바라보고 그 빛으로 사람들을 인도하십시오.
그러면 내년 이맘때, 우리는 훨씬 더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한 해를 마감하게 될 것입니다.
저도 올 한 해를 돌아봅니다.
'하.사.시.' 연구 모임을 만들고, 번역을 하고, 책을 내고, 강의를 다녔습니다.
많은 냉담 교우들이 다시 성당에 나오는 기쁨도 맛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 중에서 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저는 그저 스피커였고, 몽당연필이었습니다.
제가 사라지고 오직 제가 증언한 주님만이 남는다면, 그것으로 제 한 해 농사는 대성공입니다.
마지막으로 루르드의 성녀 베르나데트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녀는 성모님을 18번이나 만난 기적의 주인공이었지만, 수녀원에 들어가 평생 궂은 일만 했습니다.
한 수녀가 "당신은 기적의 증인인데 왜 이렇게 숨어 지냅니까?"라고 묻자 그녀는 답했습니다.
"저는 빗자루입니다.
성모님은 청소할 때 저를 쓰셨고, 일이 끝나면 문 뒤에 세워두셨습니다.
빗자루가 스스로 나서면 안 되지요."
그녀는 빛을 반사한 뒤 철저히 그림자 속으로, 문 뒤로 숨기를 원했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습니까?
스스로 태양이라 칭했던 진시황과 헤로데는 썩어 문드러졌지만, 스스로 빗자루라 칭했던 베르나데트의 시신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썩지 않고 잠자는 듯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빛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2025년은 빛이 되려는 해였습니까, 아니면 빛을 전하는 해였습니까?
새해에는 내가 빛나려 하지 말고, 주님의 빛을 세상에 반사하는 맑은 거울이 됩시다.
내가 작아질수록, 내 안의 하느님은 커지십니다. 창조자가 아닌 피조물로 살아야 합니다.
내년 이맘 때는 스스로 타오른 재가 아닌, 빛을 머금은 별의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해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아멘.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12월31일 [성탄 팔일 축제 제7일]
요한 1,1-18
비록 우리는 곤궁하고 빈약하지만 주님의 충만함으로 인해 우리는 거룩해지며 완전해집니다.
세월은 이토록 속절없이, 그리고 덧없이 흐르고 흘러, 또다시 우리는 다사다난했던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습니다.
튼실하고 뿌듯한 결실이 아니라 하찮고 초라한 수확 앞에 큰 구멍이라도 숭숭 뚫린 듯 가슴이 시린 연말입니다.
역사상 유래없이 혹독하고 참담한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면서, 다들 너나 할 것 없이 온몸으로 느끼는 바가 하나 있습니다.
강력한 대재앙 앞에서 우리 인간이란 존재 참으로 나약하고 부실한 존재라는 것. 때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참으로 제한적이라는 것.
이토록 암담한 시기, 길고도 지루한 대재앙의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절실한 노력이 있습니다.
매일 하느님의 이름을 간절히 부르는 것. 부단히 그분의 크신 자비를 청하는 것.
하루하루를 기꺼이 견뎌내는 것. 고통 속에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우리의 얼굴을 통해, 그분의 현존을 드러내는 것.
성무일도를 바치다가 길고 긴 시련의 터널을 지나는 오늘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희망이 되는
성경 말씀을 발견했습니다.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온전히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빕니다.
또 여러분의 심령과 영혼과 육체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완전하고 흠 없게 지켜주시기 빕니다.”
(데살로니카 1서 5장 23절)
하늘의 성인성녀들께서,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그리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큰 환난 속에 살아가는 오늘 우리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고 계심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어려움이 클수록 우리의 심령과 영혼과 육체를 완전하게 흠없이 지켜나가도록 백방으로 노력해야겠습니다.
시편 작가의 한 말씀은 또 제 마음을 얼마나 잘 표현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제 젊은 시절의 허물과 죄악을 다시는 마음에 두지 마옵소서”(시편 24)
지난 한 해 천천히 되돌아보니 온통 잿빛입니다. 속 빈 강정 같아 고개를 들 수 없습니다.
말로는 만리장성이라도 쌓는 듯했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한 것 없어 너무나 초라하고 참담하고 부끄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꼼꼼히 돌아보니 주님의 은총으로 충만했던 한해였습니다.
죽을 것만 같았는데, 보십시오. 그럭저럭 살아지는 게 우리네 인생입니다.
불안불안하지만 견뎌내다 보면 그럭저럭 그렇게 또 세월이 흘러갑니다.
이 혹독한 시절도 시간과 더불어 흘러갈 것입니다.
비록 우리는 곤궁하고 빈약하지만 주님의 충만함으로 인해 우리는 거룩해지며 완전해집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당신의 큰 자비와 은총으로 채워주시는 주님의 큰 사랑에 깊이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이 한해와 작별해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성탄 팔일 축제 제7일 강론>
(2025. 12. 31. 수)(요한 1,1-18)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 같은 존재.>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그분께서는 한처음에 하느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고, 그분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요한 1,1-5).”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세상에 계셨고, 세상이 그분을 통하여
생겨났지만,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 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요한 1,9-14).”
1) 연말연시를 맞아서 새해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많을 텐데, 계획을 세우기 전에 먼저 다음 말씀을
새겨들어야 합니다.
“자 이제, ‘오늘이나 내일 어느 어느 고을에 가서
일 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겠다.’ 하고 말하는 여러분!
그렇지만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하고 말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허세를 부리며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은 일을 할 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곧 죄가 됩니다(야고 4,13-17).”
여기서 ‘주님께서 원하시면’은, ‘주님께서 허락하시면’입니다.
우리가 하기를 원하는 그 일도, 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도, 모두 주님의 주권 아래에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뜻에 합당한 일’을 하려고 계획해야 하고, ‘주님의 뜻에 합당하게’ 일해야 하고, 일의 결과는 주님께 맡겨드려야 합니다.
2) 구약성경 ‘잠언’의 저자는 “마음의 계획은 사람이 하지만, 혀의 대답은 주님에게서 온다(잠언 16,1).”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인간이 아무리 거창한 계획을 세워도, 주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믿음 없는 악인들을 보면, 자기들이 하고 싶은 일을 다 한다. 주님께서 그 악인들의 ‘악한 일’을 허락하셨는가?” 라고 물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 ‘악인들의 악한 일’을 허락하실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자들이 하고 싶은 일을 다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 일들을 인간의 눈으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을 거스르는 자들의 일은 모두 바벨탑처럼 허무하게 무너질 것입니다.
의인이든지 악인이든지 간에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 같은 존재라는 점은 똑같지만, 주님 마음에 들게 잘 살고 있는 의인들은 허무에서 벗어나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고, 그들이 행한 선한 일은 영원히 남아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주님의 뜻을 거스르면서 살고 있는 악인들은, 회개하지 않으면, 그냥 한 줄기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고, 그들이 한 일도 먼지처럼 허무하게 소멸될 것입니다.
3) 요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세상도 또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자녀 여러분, 지금이 마지막 때입니다(1요한 2,15-18ㄱ).”
세상과 세상 안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탐욕과 집착입니다.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갑니다.” 라는 말은, 그런 것들은 모두 허무하게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영원하신 하느님께서 주신 것, 하느님에게 속한 것만 영원히 남아 있게 됩니다.
신앙인은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고, 하느님과 함께 영원히 존재하기를 희망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허무하게 사라질 것들에 대한 탐욕과 집착을 버리고, 영원한 것만 얻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4)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는 일은 자신의 의지로 한 일이 아니었지만, 어떻게 끝날지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습니다.
허무하게 사라질 것인가, 영원한 존재가 될 것인가는 ‘지금’ 어떻게 사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는 우리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고,
우리가 ‘지금’ 만들어 갑니다.
지난 한 해를 반성하는 것은, 새해를 더 잘 만들어가기 위한 일입니다.
지나간 일을 후회하기만 하는 것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자기 마음대로 설계하면서 큰소리치는 것도, 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시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시간을 더 주신 것에 감사드리면서, 겸손하게 새해를 맞이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내가’ 죄 속에서 죽지 않고, 당신과 함께 살기를 바라시는 분입니다.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