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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의 책]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김화영 옮김,
○기고: 권조이
info@koreansafari.com.au
2026.08.16
■권조이가 기고한 위클리 톱 뉴스(Weekly Top NEWS) 코너에서는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이자 실존주의 고전인 소설 《이방인》(김화영 옮김, 민음사)을 재조명하며,
▪︎주인공 뫼르소의 무심한 태도와 부조리한 사회적 규범에 대한 단상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주요 내용 및 의미
◇줄거리 구성: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눈물 흘리지 않는 주인공 뫼르소의 일상과,
▪︎이후 해변에서 햇빛 때문에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재판을 받는 과정이 1인칭 시점으로 냉담하게 서술됩니다.
◇부조리의 발견:
▪︎사회가 요구하는 관습이나 위선적인 슬픔을 거부하고,
▪︎생물적 진실에 솔직한 뫼르소를 통해, 카뮈는 인간 존재의 근원적 부조리를 고발합니다.
◇김화영 번역:
▪︎국내 독자들에게 가장 널리 읽히는 민음사 판본은 불문학자 김화영 교수의 번역으로, 카뮈 특유의 간결하고 절제된 문체를 섬세하게 살려냈습니다.
(호주 톱뉴스: Australian TOP News)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카뮈의 생전 모습
■톱뉴스에 서평을 기고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오 년째가 되었다. 좋은 책을 소개하고 읽은 소감을 나누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머리에 있는 생각과 감정을 언어로 구체화하는 연습이 무엇보다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훈련이 되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타인에 대해 궁금해하며 호기심을 갖고 관찰하게 되었다.
▪︎글을 쓰는 것은 처음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힘들지만, 이런 쏠쏠한 재미가 대견하고 좋아서 계속해 나갈 수 있는 것 같다.
▪︎톱뉴스에서 특별 기획으로 지면을 더 내주신다고 했을 때 옳다거니 하고 알뵈르 카뮈의 ‘이방인’을 떠올렸다.
▪︎이 작품이 전달하는 세세하고도 강렬한 울림을 나누고 싶었지만, 짧은 지면에 농축해 담아내기가 어려웠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국땅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 ‘이방인’이라고 확연히 느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 자랄 때도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거나 다른 사람들과 뚜렷한 거리감을 느꼈을 때 이방인이 되어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제는 잠깐 다니러 가는 그곳에서 왠지 어설픈 내 모습을 보며 더 ‘이방인’ 같다는 쓸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과 생각하는 것이나 살아가는 방식이 너무나 달라 무리에서 겉도는 것처럼 느껴질 때, 타인에게 내 정신과 마음이 온전히 이해받지 못하는 것 같을 때, 낯선 느낌과 답답함을 통해 우리는 이방인이라고 자각하게 되는 것 같다.
▪︎어디에든 마음을 붙이고 소속되고 싶은 욕구, 누구 하나라도 마음을 트고 연결되고 싶은 소망, 그것이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알베르 카뮈가 그의 작품 ‘이방인’을 통해 의도했던 거친 밑그림은, 소외된 인간이 방향을 모른 채 혼자의 몸짓을 하다 ‘규범’이라는 안전선을 벗어나 낭떠러지 끝으로 떨어지고만 그런 상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자신의 생물적 욕구와 느낌에는 솔직하지만, 사회로부터 이해받거나 인정받을 수 없었던 주인공 뫼르소.
▪︎“오늘 엄마가 죽었다”라는 첫마디에서부터 묘사되는 뫼르소는 불편하고 이상한 인물이다.
▪︎어머니와 자신의 삶이 철저히 분리되다 못해 아예 아무 관계도 없는 타인처럼 부고 소식을 듣고도 전혀 슬픈 기색이 없다.
▪︎장례를 위해 고작 이틀의 휴가를 내면서 사장에게 “그건 제 탓이 아닙니다(p.8)”라고 말할 만큼 어머니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일은 그저 의무감에서 마지못해 치르는 행사 같다.
▪︎엄마가 돌아가신 양로원으로 가는 중 버스 안에서 무심히 잠에 빠지는가 하면 엄마의 정확한 나이도 기억하지 못한다.
▪︎또 장례식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이제야 잠자리에 들어 열두 시간 동안 잘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기뻐하고, 바로 다음 날 예전 회사 동료를 만나서는 전혀 거리낌없이 자기 육체의 욕정을 채우는 데 열중한다.
▪︎어린 시절 엄마에게 학대를 당했다거나 절연을 한 상태도 아니건만 친어머니의 죽음에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그는 패륜아이거나, 일종의 정신 장애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그러나 일인칭으로 기술된 내용을 읽어 가노라면 묘하게도 뫼르소의 입장이 되어 그의 행동들이 자연스레 여겨지는 일이 벌어진다.
▪︎그는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사는 살라마노 영감의 외로운 마음을 헤아릴 줄도 알고, 동네 깡패 레몽도 편견없이 대하며, 특별히 거절할 까닭이 없다는 이유로 편지 대필 부탁도 순순히 들어준다.
▪︎어찌 보면 사기 당하기 쉽게 생긴 선량한 이웃의 모습을 하고 있다.
▪︎또 레몽의 친구 마송 부부와 어울리는 데도 전혀 문제가 없어서 특별히 공감능력이나 사회성이 결여된 인간으로 보이지도 않고, 오히려 아랍 사람들에게 상해 당한 레몽의 흥분을 가라 앉히려고 일부러 권총을 맡아 주는 등 지극히 이성적인 모습도 보인다.
▪︎그래서 지끈거리는 태양의 열기 가운데 눈썹에 고인 땀방울이 눈꺼풀을 뒤덮고 반사된 칼날의 빛이 눈앞에 쏟아져 들어 온 순간 방아쇠를 당기게 되는 동작은 지당한 연쇄 반응 같기도 하다.
●태양, 열, 땀, 흐려지는 시야와 번쩍이는 칼날 그리고 총성이 너무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충분히 그럴 수 있었겠다 싶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 만일 현실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해 보면, 이 얼마나 충동적인 행동이고 끔찍한 사태인가를 깨달으며 잠시 동안 뫼르소와 동화되었던 것에 대해 무슨 죄책감까지 느끼게 된다.
▪︎그러나 살인 사건 이후 재판 과정을 다루는 이 부의 내용을 읽으며 독자들은 뫼르소와 더 밀착되어 버리고 만다.
▪︎“모든 것이 나의 참여 없이 진행되었다. 나의 의견을 묻는 일 없이 나의 운명이 결정되고 있었다.” (p.130)
▪︎사람을 죽인 피고로서 재판받는 처지면서 무슨 의견을 물어 주길 바라는가 싶으면서도, 또 그의 성격상 자기변호를 위해 포장된 말을 늘어놓지도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안타까운 것이다.
▪︎조금만 자신의 상황을 이해가 가게끔 설명했더라면 사형선고까지 받는 일은 없었을 텐데......
▪︎아랍인을 향해 총을 쏘게 된 원인이 ‘태양’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대신, 칼을 든 상대에 대해 신변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었다고 했더라면 재판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밑도 끝도 없이 오로지 찰나에 가장 강렬하게 느낀 것에 대해서만 말해 버린 탓에 배심원들은 그에게 등을 돌렸고, 검사가 의도했던 방향으로 그림이 맞추어져 버렸다.
▪︎결국 뫼르소는 표현에 서툴고 조금 요령 없는 사람에 불과한데, 자신이 겪은 아픔과 감정들에 대해 사회적으로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표출 방법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이 사회에서 영원히 퇴출당하는 이방인이 되고 말았다.
▪︎즉,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울며 괴로워하는 애도의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고, 이후 자숙하는 기간도 갖지 않았기 때문에, 그 총격 사건은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는 충동적인 행위가 아닌” “고의적 살인”(p.132)으로 판결되었다.
▪︎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일,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반응 태도를 근거로, 사형이라는 법의 판단을 받게 된 것이다.
▪︎뫼르소가 그의 방식으로 애도하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철저히 무시되고 다수가 옳다고 생각하는 잣대에 맞지 않는다며 그라는 인간 자체가 부정되었다.
▪︎물론 자신의 감정에 진실하고 충실하다고 해서 사회에서 우리가 져야 할 책임과 의무로부터 자유로운 것은 아니며 오히려 솔직하다는 빌미로 우리의 언행이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고 폭력이 되는 일도 얼마든지 있다.
▪︎뫼르소는 엄연히 살인을 범했으며 자기 생각과 마음을 타인과 소통하는 데 실패했다. 아니, 그럴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던, 대부분의 사람과 다른 ‘이방인’이었다.
▪︎아무리 겉과 속이 다를 바 없는 솔직한 인물이었다 해도 가까이 두기 불안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측은하다.
▪︎매사에 무심해 보이는 주인공의 행동 양태와 생각의 흐름을 절제된 독백을 통해 찬찬히 보여 주는 이 소설은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읽을 때마다 조금씩 다른 여운을 남긴다.
▪︎처음에는 영락없이 소시오패스 같기만 했던 뫼르소가 점점 익숙하게 여겨지고 그의 시선에 맞추게 되는 내가 낯설게 느껴지는 일이 벌어 지기도 했다.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객체화시켜 관찰하게 되는 놀라운 경험이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 또 타인에 대해 과연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다양한 민족이 뒤엉켜 사는 땅에 오래 살다 보니 문화와 언어, 성별과 세대 간에 두드러지는 차이를 확연히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표현하는 방법은 다를지언정 누구나 사랑과 신뢰, 그리고 진정성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공통점도 발견한다.
▪︎서로가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도움의 손을 내밀되, 인간은 사랑해야 할 대상이지 전적으로 믿고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기로 한다.
▪︎내 경험에서 축적된 선입견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겠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제도와 규범의 안전망 안에서 착실히 관계를 맺어 가기로 한다.
▪︎나는 어차피 이 세상에 잠시 살다 가려 태어났다. 돌아갈 곳을 분명히 아는 정체성이 확실한 이방인이라 별로 고달프지 않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기고: 권조이, 시드니 북홀릭 회원)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핵심 인물 소개와,
■문학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화 중 하나로 꼽히는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와의 특별한 관계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출생과 성장:
▪︎1913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아주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전쟁으로 일찍 돌아가셨고, 청각 장애가 있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습니다.
◇철학과 사상:
▪︎인간은 결국 죽을 수밖에 없고 세상은 본질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부조리(Absurdity)'를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이에 절망하지 않고, 주어진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는 '반항과 연대'를 주장했습니다.
◇주요 업적:
▪︎소설 『이방인』, 『페스트』, 에세이 『시시포스 신화』 등을 발표했습니다.
▪︎1957년, 44세라는 젊은 나이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생의 마감:
▪︎안타깝게도 노벨상을 받은 지 불과 3년 뒤인 1960년,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알베르 카뮈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관계
▪︎두 사람은 개인적으로 깊은 친분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문학적 동반자이자 서로를 깊이 존경했던 '영혼의 라이벌'이었습니다.
1. 노벨 문학상 단 '1표 차이'의 운명 (1957년)
▪︎1957년 노벨 문학상 심사 당시, 스웨덴 한림원의 최종 후보로 프랑스의 알베르 카뮈와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그리스의 거장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올랐습니다.
▪︎투표 결과, 단 1표 차이로 카뮈가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시 카잔차키스는 노벨상 후보에만 9번이나 올랐으나 결국 수상하지 못하고 그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2. 카뮈의 위대한 고백과 찬사
▪︎대선배이자 거장인 카잔차키스를 제치고 상을 받은 서른네 살의 청년 작가 카뮈는 미안함과 깊은 존경심을 담아 카잔차키스의 아내 엘레니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 "카잔차키스야말로 나보다 백 번은 더, 이 상을 받았어야 했습니다."
▪︎카뮈는 카잔차키스의 문학적 깊이를 완벽하게 인정하고 있었으며, 자신이 상을 받은 것을 오히려 겸손하게 낮추었습니다.
3. 문학적 공통점:
.. "신이 없는 세상,
그래도 삶을 사랑하라"
○두 작가는 사상적으로 아주 닮아 있었습니다.
◇지중해의 정신:
▪︎두 사람 모두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지중해(알제리와 크레타섬) 출신으로, 삶의 원초적인 생명력을 사랑했습니다.
◇절대적 자유와 반항:
▪︎카뮈의 뫼르소(『이방인』)가 사회적 위선을 거부하고 자유를 외쳤다면,
▪︎카잔차키스의 조르바(『그리스인 조르바』) 역시 관습과 억압에 얽매이지 않는 야생의 자유를 보여주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종교나 신의 구원에 기대지 않고, "죽음이 기다리는 허무한 세상일지라도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현재의 삶을 치열하게 사랑해야 한다"는 실존적 결론을 내렸습니다.
1. 뫼르소 vs 조르바
(성격 차이)
▪︎두 캐릭터 모두 사회적 관습을 거부하고 자유를 추구했지만, 그 방식은 정반대였습니다.
●뫼르소 (이방인):
▪︎"건조하고 차가운 얼음"
▪︎특징: 감정이 없고 세상만사에 무덤덤합니다.
▪︎태도: 슬프지 않으면 울지 않고, 사랑하지 않으면 고백하지 않습니다.
▪︎세상과 거리를 두는 내향적인 자유주의자입니다.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
▪︎"뜨겁고 거친 불꽃"
▪︎특징: 온몸으로 슬픔과 기쁨을 다 표현합니다.
▪︎태도: 기쁘면 춤을 추고, 슬프면 통곡하며, 본능과 욕망에 솔직합니다.
▪︎세상을 온몸으로 들이받는 외향적인 자유주의자입니다.
■카뮈와 사르트르
(절교 일화)
▪︎두 사람은 1940년대 프랑스 문단을 이끈 최고의 단짝이자 실존주의 동반자였지만, 정치적 생각 차이로 철저한 원수가 되었습니다.
●배경:
▪︎당시 전 세계는 자본주의(미국)와 공산주의(소련)로 나뉘어 싸우고 있었습니다.
◇사르트르의 입장:
▪︎"더 나은 평등 사회(공산주의)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독재나 폭력은 참아야 한다.
◇"카뮈의 입장: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인간을 죽이고 억압하는 독재와 폭력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이 생각을 담아 책 『반항인』을 씀)
◇결과:
▪︎사르트르는 카뮈의 책을 공개적으로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상처받은 카뮈도 반박하면서 두 사람은 영원히 절교했고, 카뮈가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죽을 때까지 끝내 화해하지 못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