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산사와 서원을 따라(5-1)
(2021년 9월 3일∼9월 14일)
瓦也 정유순
<제5일-1> 창녕우포늪 → 대구 하목정
(2021년 9월 7일)
창녕에서 숙면을 하고 아침 7시 경 조반을 끝낸 후 자동차는 대구광역시 달성군에 있는 도동서원으로 가기 전에 갑자기 일정을 바꿔 우포늪으로 간다. <우포늪 천연보호구역>은 일억 사천만 년 전에 공룡이 살았던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곳으로 가까운 곳에 와서 그냥 지나친다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다. 이거야말로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다.
<우포늪 위치도>
우포늪 천연보호구역은 낙동강의 배후습지로서 4개의 늪(우포늪, 목포늪, 사지포, 쪽지벌)으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최대 규모인 자연내륙습지로 한반도지형의 탄생시기를 같이한다고 한다. 그리고 화왕산(757.7m) 북쪽에서 발원하여 낙동강으로 흘러들어오는 토평천이 가로지르고, 우기나 홍수 때에 충분한 수분을 토양 속에 저장하였다가 건기 때 주변에 물기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천연 늪으로 각종 야생 동·식물의 서식처다.
<우포늪 표지석>
우포늪 입구의 숲길을 따라 가면 대대제방이 나온다. 대대제방 길 아래로는 경지정리가 잘된 전답(田畓)들이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다. 제방 안쪽 호수에는 물새들이 아침 기운을 받으며 여유롭게 헤엄을 친다. 한 무리의 새들은 편대를 이루어 활공(滑空)을 하고, 또 한 무리의 새들은 어디서 왔는지 수면 위로 날렵하게 안착을 한다. 저 수면 위에 조용하게 앉아있는 것 같은 새들도 물속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쉼 없이 물갈퀴를 움직이리라.
<우포늪 오리 - 2016녕 11월>
<우포늪 제방 밑의 대대리들녘>
이곳에는 가시연꽃, 노랑어리연꽃, 마름 등의 수생식물을 비롯하여 약500여종의 관속식물, 400여종의 식물성플랑크톤, 20여종의 포유류, 180여종의 조류, 20여종의 양서류와 파충류, 그리고 30여종의 어류와 800여종의 곤충 등 다양한 동·식물들이 서식하여 생태계의 보고다. 그리고 4계절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먹이 때문에 많은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로 활용되어 국제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우포늪 가시연꽃>
이렇게 습지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우포늪은 다양한 생물들의 보금자리로 생태계보전지역 중 생태계특별보호구역(1997년 7월)으로 지정되었으며, 국제적으로도 람사르협약 보존습지로 지정(1998년 3월)되었고,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1999년 8월)되었다. 그리고 습지의 중요성으로 인해 천연보호구역으로도 지정(천연기념물 제524호, 2011년 1월)되었다.
<우포늪>
우포늪이 이렇게 국내·외적인 습지보호지역으로 인정받기 까지는 질곡(桎梏)의 세월을 보내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 때인 1930∼40년대에는 홍수방지와 농경지를 확보하여 쌀을 수탈하기 위해 대대제방을 쌓았고, 1970년대에 들어 와서는 개발을 목적으로 매립공사가 진행되다가 비용과 기술력 부족으로 중단되었으며, 1990년대 중반에는 목포늪 주변에 생활쓰레기매립장이 만들어 지다가 중단되었다고 한다.
<우포늪>
우포늪은 강원도 대암산 비무장지대(DMZ) 안에 있는 고원습지인 용늪에 이어 민간환경단체의 노력으로 국내에서 두 번째 람사르습지에 등록되어 국제적인 습지가 되었다. 그 이후 예전에 비해 사람의 간섭이 줄어들자 습지의 훼손도 줄어들었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생물의 수와 종류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새들도 다양한 종류의 텃새와 철새들이 진객(珍客)으로 찾아온다.
<우포늪의 철새들 - 2016년 11월>
그리고 우포늪에 올 때마다 한 가지 걱정거리가 떠오른다. “물이 고이면 썩는다.”라는 말은 수초 등 수 생태계가 잘 발달되어 있어 별로 염려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 문제는 외래어종들에게 쉽게 점령당하는 취약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외래종들은 흐르는 물보다는 고여 있는 물에 적응을 빨리하여 생태계를 교란시킨다. 하기야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바로 도태될 것이고, 적응하여 살아남으면 폭군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우포늪>
또한, 양질의 모피(毛皮)를 얻기 위해 외국에서 들여왔던 뉴트리아가 왕성한 번식력으로 퍼져 나가고 있으며, 배스와 불루길이란 물고기도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에 영양(단백질)을 공급하려고 수입해 왔던 것이었는데, 이제는 물의 흐름이 약하거나 고여 있는 호소(湖沼)등에는 이들 외래어종들이 점령군이 되어 안방까지 차지하며 토종민물고기의 씨를 말린다.
<우포늪>
그리고 물기가 많은 습지(濕地)는 많은 종류의 생명들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인 반면, 물기가 없는 마른 땅은 생명이 쉽게 살아가지 못한다. 이러한 생명의 보고인 우포늪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자랑이며 자부심이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개발행정이 판을 칠 때에도 용케 살아남아 있는 게 지금 이곳을 찾아오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큰 선물이다. 그래서 더 많은 생명들이 공존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고 보전해 나가는 길이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우포늪 지도>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하신리에는 하목정이란 건물이 있다. 하목정(霞鶩亭)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이종문(李宗文)이 1604년(선조 37)에 세운 것이다. <霞鶩亭(하목정)>이란 정호는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곳에 머문 적이 있어 그 인연으로 이종문의 장남 이지영(李之英)에게 직접 써 주었다고 한다. 또한 일반 백성들의 주택에는 서까래 위에 덧서까래인 부연(附椽)을 달지 않는 것이 관례였으나, 인조의 명으로 부연을 달았다.
<하목정 입구>
하목정 이름은 초당사걸(初唐四傑)로 오언절구에 뛰어났던 당나라 시인 왕발(王勃)의 ‘등왕각서 滕王閣序’ 중 ‘지는 노을은 외로운 따오기와 가지런히 날아가고(落霞與孤鶩齊飛 낙하여고독제비)/가을 물은 먼 하늘색과 한 빛이네(秋水共長天一 色 추수홍장천일색)’라는 시구에서 따왔다. 붉게 물든 노을 속으로 검은 점으로 날아가는 따오기와 정자 이름에서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것 같다. 초당사걸은 당나라 초기의 시인 4인방이다.
<하목정 안내>
이종문(1566~1638)의 자는 학가(學可)이고, 호는 낙포(洛浦)다.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교위(校尉) 이경두(李慶斗)의 아들이다. 1588년(선조 21) 생원에 합격, 1592년 임진왜란에 서사원(徐思遠)ㆍ손처눌(孫處訥) 등과 더불어 의병을 팔공산(八公山)에서 일으키고 서면대장(西面大將)이 되어 왜적과 항전하여 초유사 김성일(金誠一)의 표창을 받고, 그의 추천으로 수령이 되어 세 고을을 다스렸는데 가는 곳마다 치적(治績)이 나타났다고 한다.
<하목정>
그러나 만년에는 벼슬에 나가지 않고 지역 유림들과 강학하며 여생을 보냈다. 1638년(인조 16) 6월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니 향년 73세였다. 사후 그는 승정원 좌승지(左承旨)에 증직(贈職)됐다. 후손들은 그의 유문(遺文)을 수습해 낙포집(洛浦集)을 편찬하였고, 1897년 전성세고(全城世稿)에 다른 이들의 문집과 함께 엮어 간행되었다.
<인조가 내린 하목정 편액>
하목정은 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된 뒤 2019년 12월30일 보물 제2053호로 승격했다.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사랑채로 이용되었던 이 집은 전체적으로 ‘T’자형 구조로 되어있어서 처마곡선도 부채 모양의 곡선으로 처리되었다. 내부에는 김명석·남용익 등 많은 사람들이 쓴 시의 편액이 걸려있는데, 대표적인 시가 한음 이덕형(漢陰 李德馨)이 남긴 제하목정(題霞鶩亭)이란 시다.
<하목정>
하목정 뒤에 있는 사당(祠堂)은 지영의 증손인 전양군 이익필(全陽君 李益馝)을 제향(祭享)하는 곳이다. 무인이었던 이익필은 1728년(영조 4) 이인좌가 난을 일으키자 도순무사 오명항(吳命恒)과 토벌에 나서 분무 3등공신이 되었으며, 나라에서 불천위(不遷位)로 정하여 사당에 영정을 모시고 영원히 제사를 지내게 했다. 사당 앞뜰에는 400년 된 배롱나무 5그루가 있는데 여름에 백일동안 붉게 물들이는 광경은 장관을 이룬다.
<하목정 사당과 배롱나무>
하목정이란 이름은 정자 아래로 흐르는 낙동강에 따오기들이 아침 안개를 가르고 나르는 모습이 연상되지만, 하목정나루에서 성주군 선남면 소학리를 연결하던 나루터는 물길이 바뀌어 옛 풍경은 찾을 길 없고, 대구와 성주를 연결하는 국도 제30호의 성주대교가 1975년에 개통되었으며, 교통량이 늘어나자 1995년 기존 다리에서 남쪽으로 약 10m의 간격을 두고 왕복 2차선의 다리가 새롭게 건설하였다. 따라서 옛 풍경은 멀어져 갔고, 대신 앞마당에 핀 상사화처럼 만날 수 없는 옛날만 그리워한다.
<낙동강 성주대교>
<하목정 상사화 - 2018년 8월>
<하목정에 오기 전에 도동서원을 먼저 보았으나, 지면상 도동서원에 대한 후기는 다음 장(5-2)에서 따로 기술>
※ <제1일>부터 <제12일>까지 후기가 계속 이어지며
다음은 <대구 도동서원>편이 연재됩니다.
첫댓글 항상 역사기행 도서를 읽는 와야님의 상세한 후기에 감사드립니다.
곧 역사기행서를 발간 하셔도 인기 역사서로도 충분히 보장 되시리라 믿습니다. 앞으로 올리실 후기도 재미나게 읽길 기대하면서...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과찬의 말씀 고맙습니다.
그냥 본 대로 느낀 대로 적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