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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배·가압류 폭력에 스러져간 노동자와
그 가족이 겪어야 했던 상실과 해체의 고통
훼손된 사회정의와 헌법정신 회복시켜야
용혜인 기본소득당 상임대표
노란봉투법이 마침내 국회를 통과했다. 노란봉투법에 찬성 표결을 하면서, 문명국가에서는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가혹했던 손배·가압류 폭력에 스러져간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과 그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상실과 해체의 고통을 생각했다. 그러나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지난 8일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노란봉투법의 철회를 국회에 요청했듯, 노란봉투법의 운명은 다시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거부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필자는 그러지 말기를 호소한다. 노란봉투법이야말로 죽어가는 우리 경제를 살리기 위한 법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훼손된 사회정의와 헌법정신의 회복을 거부하는 것임은 물론, 윤석열 정부 아래 국가 부도를 염려할 정도로 죽어가는 우리 경제를 더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것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노동조합 북돋아 경제 살린 루스벨트의 와그너법
노란봉투법은 대공황 이후 미국의 뉴딜정책을 통해 86년 전에 등장했다. 1936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뉴딜정책의 일환으로 제정한 전국노동관계법, 일명 와그너법에 이르러 전국노동관계위원회가 노동자들의 단체교섭권을 보장하고, 부당해고, 어용노조, 차별대우를 금지했다. 최저임금제와 주 40시간 노동제도 이때 함께 도입되었다. 와그너법과 뉴딜정책에 의해 노동조합의 수와 노조 가입률은 크게 높아졌다. 그 이후 수십 년 동안 전개된 경제 상황을 우리는 다름 아닌 ‘자본주의 황금기’라고 부른다.
대공황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앞에서 루즈벨트 대통령과 민주당 정부가 왜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강화하는 정책을 뉴딜정책의 핵심으로 삼았겠는가? 미국이 갑자기 노동자 국가로 변신이라도 한 것인가? 미국 민주당이 갑자기 노동자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였나? 그렇지 않다. 노동권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대공황을 극복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속가능한 경제로 관리하는 데 불가피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180도 태도를 바꾸는데 작동한 경제 논리가 바로 케인스주의의 유효수요 개념이었다. 유효수요를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대규모 재정 지출과 함께 노동자들 시장 소득의 증가, 즉 임금 인상이 반드시 필요했다. 임금 인상이 일어나려면 기업에 대한 노동자들의 협상 능력이 높아져야 했다. 미국 정부는 와그너법을 통해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활동을 권리로서 보장하여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높인 것이다.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가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연 '노조법 개정안 통과 촉구 100인 행동'애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3.11.2. 연합뉴스
노란봉투법은 86년 만에 소박하게 재탄생한 와그너법
필자는 노란봉투법을 21세기 지금 여기 우리나라에서 가장 소박한 형태로 재탄생한 와그너법으로 부르고 싶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활동을 무겁게 억누르는 손배·가압류를 적절히 제한함으로써 그만큼 노동자들의 교섭력을 높일 것이다. 이로써 최종적으로 우리 경제의 건전한 발전과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가계의 유효수요를 확대할 것이다.
또한 특별히 노란봉투법으로 인해 원청 대기업 및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과도하게 집중되었던 과실이 하청 중소기업 노동자에게도 적절히 이전되는 효과 역시 기대되는 바이다. 지금까지 한국 제조업에 특유한 수직적 원하청 구조에서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원청 대기업을 상대로 근로조건의 개선을 요구할 길이 사실상 막혀 있었다. 노란봉투법은 원청 대기업이 손배·가압류라는 잔인한 보복의 칼을 휘두르는 것을 일정하게 제약함으로써 원청과 하청 사이의 합리적 자원 배분에도 기여할 것이다.
사용자에 대한 노동자의 협상력 제고가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다른 경로도 있다. 그것은 바로 저임금으로 연명하는 이른바 좀비 기업들의 경쟁력을 떨어뜨림으로써 시장에 기술 혁신을 촉진하는 역할이다. 일자리 자체가 희소재가 되면서 모든 나라의 정부들이 일자리를 만들거나 유지하는 기업에 대해 막대한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이러한 재정 지원의 결과 한계기업들이 계속 연명하면서 경제의 역동성과 활력을 갉아먹는 부작용 역시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커졌다. 노란봉투법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높아진 협상력은 저임금과 질 낮은 일자리로 연명하는 기업들의 상대적 경쟁력을 일상적으로 떨어뜨리는 효과를 낼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이유로 노란봉투법이 노동자의 높아진 교섭력을 통해 최종적으로 가계의 유효수요를 높이는 방식으로, 한국 경제의 경착륙을 방지하고 저성장 체제로의 연착륙을 달성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노란봉투법은 국민경제에서 강화된 내수를 통해 수출 비중의 구조적 하락을 대체하고 수출 여건의 불안정성 증대를 완충하는 효과로 이어질 것이다. 노란봉투법이 단지 훼손된 사회정의와 헌법정신을 회복하는 것을 넘어 우리 경제의 건강한 회복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하는 이유다.
잘못된 이론 세워 노동자들 권리 막는 보수세력
그동안 한국의 자칭 보수세력은 임금이 노동생산성의 반영이라고 주장했다. 임금이 낮은 것은 노동생산성이 낮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생산성 임금 이론이다. OECD 통계만 보더라도 이는 간단히 반박된다. 시간당 부가가치 생산량으로 계산한 한국의 노동생산성 지수는 2015년 100.0에서 2022년 121.3으로 7년 동안 연평균 2.8% 증가했다. OECD 국가들 안에서도 수위권에 들어가는 실적이다. 그러나 같은 기간 실질임금은 연평균 2.2% 증가했다. 임금 인상이 노동생산성 향상에 크게 뒤처지고 있는 것이다.
임금이 노동생산성을 반영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윤 극대화를 노리는 기업에 맞서 자신의 생산성에 적합한 임금을 요구할 노동자들의 협상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근로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해 헌법이 보장하는 단체행동을 한 결과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거나 가족 전체의 패가망신이라면, 그런 나라에서 노동자의 사용자에 대한 협상력이 적정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생산성 임금 이론을 신봉하는 보수세력이 노란봉투법을 반대할 명분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을 진지하게 믿는 보수세력이라면 노란봉투법 제정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검찰권력과 언론장악이 민생경제보다 중요하다는 대통령의 하명에 따라, 그들 스스로 오인하고 있는 보수세력의 경제관을 국민에게 설득하려는 노력조차 포기했다. 권력 추종이 그들의 세계관을 잠식하기에 이른 것이라고 평가한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다시 한 번 경고한다.
노란봉투법이야말로 ‘경제살리기’ 법이다. 노란봉투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곧 경제살리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거부권 행사가 대통령의 권한일지언정, 그 어떤 국민도 대통령에게 민생경제를 파탄낼 권한을 준 적이 없다. 대한민국 경제의 건전한 발전과 지속가능성을 위해 국민과 국회가 수개월, 수년을 고민해 통과시킨 법안을 다시금 가로막는다면, 그 후과는 오롯이 대통령의 무지와 무능에 대한 국민적 심판으로 되돌아올 것이다.
민생을 살리겠다, 국민의 뜻이 늘 옳다는 말이 진심이었다면, 막무가내 거부권 행사 중독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한다.
출처 : 민생경제 살리는 노란봉투법을 막아서지 말라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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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난 몰라요.
시키는 대로 할 뿐입니다.
거부권 행사 !!
(노조탄압하는데 앞장서는 것을 알기나 할까?
민생들이 죽어 가는 것을 알까?
밟으면 밟을수록 꿈뜰거리고 대항하는 것을 알까?
민중들의 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