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 나는 '하늘 아래 첫 동네 통리'에 관해서 짧은 글 하나를 올렸다.
그런데 댓글 하나가 조금은 재미가 난다.
상상력을 동원하니까.
그래서 나는 인터넷으로 '통리초등학교 총동문회'를 검색한 뒤에 '김정미님의 추억'이란 방을 열었다.
김정미 님이 올린 글 80개나 뜬다.
모두 한국의 알프스 소녀가 쓴 글이다.
태백시 하늘 아래 첫 동네, 사방이 산으로 가려서 땅이라고는 고작 세 평 반으로 여겨지는 정말로 작고 오진 곳이다.
하룻만에 지은 한 칸 방, 한 칸 부엌인 오두막살이 집에서 계집아이는 늙은 어미와 함께 산다.
아홉 살 아이는 교회당 종지기 소녀가 되어 그 높은 줄을 매달리는 형태로 종을 친다.
알프스 소녀가 되어 종을 울린다.
댕그렁 댕그렁 종소리는 파문으로 멀리 산자락에 오래 여운을 남기고, 꿈 같은 이야기가 펼쳐지고
아름다운 산골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 카페에도 글이 올랐다가 지금은 많이도 지워져서 조금만 남았다.
아름다운 이야기들만 남았다.
한국의 알프스 소녀, 아홉살 종지기 계집아이가 커서...
지금은 베리꽃님이다.
통리재.
예전에는 석탄광으로 유명하여, 숱한 사람들이 탄광에서 막장인생을 보냈다.
탄 캐는 갱부는 물론이고 그 가족들도 모두가 힘이 들고, 어렵고, 가난하게 살아도 하늘 아래 사람들, 인근 사람들한테는 순박한 정과 인심은 살아 있었다.
알프스 소녀가 커서 혼자서 그 높디높고 긴 통리재를 넘어서 읍내 중고등학교에 다녔단다.
통리재는 모두 깎아내려서 평평한 자동차 길을 넓게 냈단다. 통리재 허리가 뚝 끊어졌다는 뜻이다.
그래도 통리재는 남아 있다고.
서해안 내 고향에서도 10km 내륙으로 들어가면 성주 탄광지대가 나온다.
산 깊고, 물 깊은 곳이다.
지금은 모두 폐쇠되어서 갱구를 메꾸고 막아서 소나무 등을 심어서 언저리를 가렸다.
그래도 그 지방을 지나려면 그 흔적을 엿볼 수 있다다. 검은 빛깔의 탄덩어리들, 냇물이 검은 빛깔을 띄운다.
성주면에는 석탄박물관을 세워서 탄광지의 흔적인 옛 모습을 조금은 남겼다.
나는 이따금 그 언저리를 지난다.
그리고는 태백시 통리의 어떤 여학생을 떠올리며,
서울에 오면 인터넷으로 '통리초등학교'를 검색하여 김정미 선생님이 쓴 글을 읽는다.
오늘도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베리꽃님의 추억 어린 옛이야기, 동화같은 글을 읽었다.
그리고는 읽었다는 흔적을 이렇게 남긴다.
2017. 11. 12. 일요일.
첫댓글 잘 보았슴니다
예, 댓글 고맙습니다.
한 번 통리초등학교를 검색해서 김정미 선생의 글을 더 읽을 수 있겠지요.
베리꽃님의 옛이야기를요.
@곰내 넵—. 감사합니다
통리재정상으로 가자면 스윗치백이란 철로개설예정지가 급경사일 경우에 적용되는 공법이 적용되는 이 구간은~~~
일정시대 왜놈의 야욕을 달성하기위해 설치되었다가 최근에 이르러 터널로 전환된 우리나라 유일의 장소입니다~~~
예, 좋은 정보에 고맙습니다.
일본 사람만을 탓할 바는 아니지요.
강한 자한테 먹한 이조왕조의 무능도 탓해야 하고, 일본에 빌붙어서 굽신거렸던 공직자들, 양반계급도 엄청나게 많았지요.
그 장소를 배경으로
삼포가는 길이란 영화도 찍었지요.
산이 높고 골이 깊은 그 곳 낭떠러지 아래로 버스도 많이 굴렀습니다.
두어집에 한명씩 아까운 목숨을 잃었지요.
이십리 산길을 걸어서
도착한 황지.
낙동강의 발원지
바로 황지연못입니다.
외로웠던 사춘기
이 곳에서 맘 달랬습니다.
2년전 여름 오투에 며칠 운동하러 갔다가
황지연못 가 봤어요
베리꽃님 사연을 알았더라면 더 의미있는 탐방이 되었을텐데요
@봉 봉 황지에는 태백산과 황지연못이 유일한 관광거리이지요.
예전에는 황지연못이 지금처럼 잘 정비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추억은 여전합니다.
황지연못옆의 스쿨서점은
저의 지식의 창고였지요.
통리 십일장이 서는 곳입니다.
기적소리 끊기고
탄광이 폐쇄되어
광부들의 노랫가락도 사라져버린 깊은 산중에
새로 생긴 십일장이
통리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통리를 갈 때면 가던 날이
장날이 되도록 합니다.
제가 탄광지대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요.
시골부잣집 딸인 누나는 일곱살 때 화상을 입어서 얼굴을 크게 데였지요.
그 결과로 결혼도 후질거리는 사람한테 갔고요. 매형은 탄광갱부였지요.
제가 아비가 죽은 뒤 매형을 탄광에서 뽑아내서 대전의 사업체를 누나한테 주었지요.
아비의 사업체를요. 자가용도 있고, 영업용 차도 있고.. 졸지에 사장이 되었던 매형은 10여 년 뒤에는 아파서 죽었지요.
그래서 탄광지대에 제가 관심을 더 갖지요.
@곰내 매형이 탄광에 근무하셨었군요.
예전엔 고생스럽고 위험한
직업이긴 했어도 돈은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일단 황지땅에 들어오면
번 돈을 흥청망청 유흥비로 다 날려버리고 진폐증만 얻어서
나가기 일쑤였지요.
슬픈 역사도 공존하는 곳입니다.
시간이 멈추어 버린 시장터.
배아프다고 엄살부려 받아낸
동전한닢들고 신나게 산길 내달려 찾아간 과자가게.
서울 명동이 부럽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지금은 온통 빈집투성이 입니다.
통리장은 5일장이 아니라 10일장이군요.
빈 집이 늘어나는 현실에 제가 살짝 눈물이 납니다.
마치 제 서해안 시골마을을 보는 것 같아서요.
서해안 제 집에서 10km 떨어진 탄관마을은 새롭게 변해서 토속음식점 등으로 오히려 활기를 띄던대요.
땅값도 오지게 비싼데 비하여 통리는...
김 선생님. 통리에 관한 글로 수필책 꼭 내요.
제가 사서 늙 읽을게요.
@곰내 책을 한번 내 볼 요량으로
120편 정도의 글을 써놓긴 했는데 아직은 때가 아닌 모양입니다.
언젠가는 제 소장용만으로라도 내고 싶습니다.
10일장 이야기는 또
처음 듣네요~~~~
어제는 티비에서 지리산
정상에 있는 하늘 아래
첫동네 이야기가 나와서
잼있게 봤는데^^^^
5,15,25일에 장이 섭니다.
제 생각엔 산골이다 보니
손님이 적어서 십일장으로
한 것 같습니다.
언제 오지산골 장터풍경 사진한번 찍으러 가보세요.
사방으로 산이 둘러쳐진 곳에 그 만 한 장이 열리다니..
상상은 금물입니다.
태백 철암 예전에 밤에 가본 기억나네요
예전엔 밤이나 낮이나
온통 까만색이었지요.
개울물도 까맣고
산도 까만색이었지요.
그래서 크레파스 까만색이
많이 필요했었답니다.
@베리꽃 네
통리에 살았네 ㅎㅎ 난 통리에서 일하러 댕겼는데 엥~
곰내님은 부지런도 하셔요 그리고 감성도 만점!
감성이야 운선님이 최고이지요.
운선님의 책 ,산문집
'내 안의 나는 무지 예쁘다'
제 책꽃이에 있지요.
저한테 붙잡혀 있어유. ㅋㅋ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예.
베리꽃 님의 글이 정말로 곱습니다.
이해하기도 쉽고, 유머, 재치, 발상의 전환, 남을 배려하는 마음씨, 생활의 글을 알뜰살뜰하게 잘 썼지요.
'인터넷에서 '통리초등학교 김정미 선생님', '통리초등학교 총동문회' 등으로 검색하면 글 80개 쯤이 뜨지요.
책으로 내면 정말로 칭찬받을 겁니다.
@곰내 맞어요 저도 두분하고 같은 생각했어요
닉도 고우셔요
@양보다질
예, 서해안 고향 땅 이름이지요.
곰 웅(熊)에 내 천(川). 웅천(熊川)이지요. 한글로는 곰내.
뒷산에 오르면 서해바다인 무창포, 대천해수욕장이 보이고,
내륙으로 들어가면 산 높고 골 깊은 성주산이 나오지요. 예전 탄광지대가...
님의 댓글이 더 곱습니다.
사북,태백,도계 ......
한국 현대사의 한 쪽을 열고닫던..
그 당시엔, 사북탄광 갱부 분 들이 도깨비 처럼 언론에..ㅜㅜ.
격세지감 이옵니다. 곰내님
예.
댓글 고맙습니다.
아픔들이 많이 남아 있지요.
탄광지대에는 탄광 갱도의 찬 공기를 이용하여 버섯을 재배하고, 인삼 등도 실험재배하지요.
생각을 바꾸면...
동해 지역의 탄광지대... 오지의 산에서 사는 산골사람들의 애환이 많이도 남아 있겠지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