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시편 묵상
2024년 12월 13일 금요일 (대림 2주간)
제오권
제 109 편
(지휘자를 따라 부르는 다윗의 노래)
1 내 찬미의 하느님, 침묵을 깨고 나오소서.
2 사악한 자들이, 사기치는 자들이 입을 벌리고 달려듭니다. 혀를 놀려 거짓말을 퍼붓습니다.
3 증오의 말들이 주위에서 들려오고 까닭 없이 나를 공격합니다.
4 그들이 우정을 원수로 갚아도 나는 그들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5 그들은 선을 악으로 갚고 사랑을 미움으로 보답합니다.
6 "부랑배를 내세워 그를 치자. 그 오른편에 고발자를 세우자.
7 재판에서 죄를 뒤집어쓰게 하자. 그의 기도마저 죄로 몰자.
8 이제 그만 그의 명을 끊어버리고 그의 직책일랑 남이 맡게 하자.
9 그 자식들은 고아가 되고 아내는 과부가 되게 하자.
10 자식들은 이리저리 빌어먹고 다니며, 폐허가 된 제 집마저 쫓겨나게 하자.
11 빚쟁이가 그의 재산을 모조리 잡아버리고 남이 와서 그의 수입을 털어가게 하자.
12 그에게 동정하는 사람도 없게 하고, 그 고아들을 불쌍히 여겨주는 사람도 없게 하자.
13 그의 후손은 끊기고 그의 이름은 다음 세대에서 없어지게 하자.
14 그 아비가 저지른 잘못이 잊혀지지 않고 제 어미가 지은 죄가 지워지지 않게 하자."
15 야훼여, 이자들을 항상 눈앞에 두시고 이 땅에서 그들의 기억을 없애버리소서.
16 사랑을 베풀 생각은커녕 가난하고 가련한 자들을 들볶으며 마음이 상해 있는 사람을 목조릅니다.
17 남 저주하기를 좋아했으니, 그 저주를 자기가 받게 하소서. 남에게 복 빌어주기를 싫어했으니 그 복이 그를 떠나게 하소서.
18 저주를 옷처럼 둘렀으니, 그 저주가 뜨거운 물처럼 그 살 속 깊숙이, 뜨거운 기름처럼 뼛속 깊숙이 스며들게 하소서.
19 저주가 옷처럼 그의 몸을 뒤덮고, 허리를 맨 띠처럼 풀어지지 않게 하소서.
20 나에게 악담하며 고소하던 자들이 야훼의 이러한 갚음을 받게 하소서.
21 야훼여, 당신 이름에 어울리게 나를 다루소서. 당신의 사랑은 어지시오니 나를 구하소서.
22 나는 가난하고 가련하오며 내 마음은 속속들이 아프옵니다.
23 기우는 석양처럼 이 몸은 기울어가고 메뚜기처럼 나는 휩쓸려 갑니다.
24 단식으로 두 무릎은 후들거리고 내 살은 기름기가 없어서 말라버렸습니다.
25 사람들에게는 놀림감이 되었고 나를 보는 이마다 머리를 설레설레 흔듭니다.
26 야훼, 나의 하느님, 나를 도와주소서. 당신 사랑에 어울리게 나를 건져주소서.
27 손수 살려주신 것, 그들에게 알리소서. 야훼 당신께서 하신 일임을 그들에게 알리소서.
28 저들은 나에게 저주를 빌지만 당신께서는 복을 내려주소서. 나를 공격하지만 그들은 수치를 당하고 당신의 종인 이 몸은 기뻐하게 하소서.
29 나를 고발하는 자들, 온몸에 망신살이 끼고 겉옷처럼 치욕을 뒤집어쓰게 하소서.
30 나는 야훼께 크게 감사 드리고 사람이 모인 곳에서 그를 찬양하리라.
31 야훼께서 이 가난한 자의 오른편에 서시어 재판관들의 손에서 목숨을 건져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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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편은 개인 탄원 시편입니다. 시인이 겪는 고통 특히 다른 이들로부터 당하는 음해와 공격의 순위가 상당히 높습니다. 이에 시인도 독설과 격한 표현으로 적대자들에 대한 저주를 서슴지 않습니다.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한 저주가 주괸 내용이기에 선뜻 이 시편을 공적 예배에서는 바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구약에서는 고통받는 이스라엘이 정의로우신 하느님에 기대어 완전한 회복을 염원하며 종종 이런 거친 표현을 통해 자신들의 처지를 아뢰는 경우가 종종 있었음을 이해하며 오늘 시편을 묵상해야 합니다.
큰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자신의 억울함을 주님께 호소하며 드리는 간구가 오늘 시편의 전체적인 내용입니다. ‘그들은 선을 악으로 갚고 사랑을 미움으로 보답합니다.’ (5절) 오늘 시편 전체를 요약하는 구절입니다. 까닭 없는 공격과 중상모략, 호의를 악으로 갚는 뒤틀린 세상의 현실을 돌아보도록 오늘 시편이 우리를 이끌고 있습니다. 얼마나 이런 음해와 공격이 심했던지 ‘두 무릎은 후들거리고 내 살은 기름기가 없어서 말라버렸습니다.’ (24절)라고 호소합니다.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오늘 시편을 교부 오리게네스는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에 대한 예언이라고 했습니다. 고통이 심하면 사람이기에 저주와 악담 그리고 극단적인 생각으로 원수들에 대해 날이 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시편을 묵상하며 우리 역시 이런 극단적인 복수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생각은 생각에 머무를 뿐이고 호소는 호소에서 그치기 마련입니다.
시인의 마음을 헤아리며 오지 하느님의 의로우심과 자비로우심에 의지하며, 더 큰 자비와 사랑 그리고 공정하심을 기억하며 기도합니다.